거의 20년 전 이야기이지만 학교 실험실에 있다보면 실험 진행 상황에 따라 아주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올때가 있었다. 실험실 안에 있다 보면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불을 끄고 실험실 문을 탕 닫고 돌아서면 컴컴한 복도와 맞서야 했고, 또 컴컴한 교정을 걸어나와야 했다.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발걸음을 하고 교문까지 도착하면 조그만 쪽문만 열어 놓고는 수위아저씨께서 교문까지도 닫아놓은 상태. 내일은 꼭 같이 늦게 까지 남아 있을 사람을 구해서 같이 있다가 나와야 겠다 생각하며 교문을 벗어나면, 그 요란 법석, 화려한 학교 앞의 상가들도 거의 문을 닫고 썰렁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가다보면 그때까지 문을 닫지 않고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던 매장이 있었으니 거기가 바로 모 아이스크림 체인점. 아직 저렇게 문 안 닫은 곳도 있는데 뭘...하면서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좋아졌다 (이런 말도 안되는 ㅋㅋ...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아이스크림 회사와 나 전혀 상관 없다.).
그런데 언젠가는 집에 오기를 포기하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진행상으로는 훨씬 일찍 끝나야 했으나, 하다보면 2시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과정이 5시간만에 끝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실험을 중간에서 그만 둘수가 없으니 끝날 때까지 있다 보면 끝나는 시간이 새벽 4, 5시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날은 밤을 학교에서 보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는 학교에서 밤을 새려면 건물사용허가서니 뭐니 해서 미리 서류에 사용허가를 받아 놓고, 또 한가지, 함께 있어줄 사람을 구해야했다. 아무래도 컴컴한 건물에 혼자 있는 것은 좀 무서우니까. 그리고 실험을 하다 보면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1층, 2층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대학 신입생이던 남동생을 불렀다. 11시쯤 담배를 한 보루 사가지고 동생 등장. 웬 담배? 했더니, 건물의 수위 아저씨 드린단다. 남동생은 예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도 5분 안에 친해지는데 탁월했다. 그날 실험을 마치고 이른 아침에 집에 잠깐 가서 씻고 다시 학교로 나왔다.
이후에도 실험실에서 밤을 샌 일이 몇 번 있다. 밤을 새면서 뭔가 할일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병상을 지키며 밤을 새거나, 걱정으로 밤을 새우는 일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지금도 가끔 밤을 새우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 집에서이다. 어떻하다보면 너무 늦게까지 안 자고 있게 되고 그때 잤다가는 새벽 6시 반에 아침을 차려내야 하는데 못 일어날까봐 그냥 그대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쓰다보니 위의 그 실험실에서 종종거리고 나올 때가 다시 눈 앞에 그려지면서, 그때가 아련하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