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요 색깔로 뭔가를 끄적이고 나가고 싶어진다.
어제는 충청남도 금산의 군부의 벚꽃 만개한 산을 오르고 왔다.
산벚꽃은 보통 늦게 펴서 진다 하여.

끝까지 꿋꿋하게 잘 걸은 아이를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다 컷다, 다 컸다...'를 연발하셨다.
시끌벅적한 꽃 잔치가 아니라, 산을 내 발로 직접 걸어 내려오면서 느끼는 벚꽃이 좋았다.



 

 

 

 

 

 

 

 

내려오는 길, 계곡에서 아침부터 준비해간 도시락 (김밥, 유뷰초밥, 불고기 상추쌈밥) 을 펴서 먹고, 돌아 오는 길에 옛날 물건들 수집해서 파는 곳을 구경했다. 아이는 거기서 돌 해태를 사달라고 조르고, 우연히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마당, 아니 '토방'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곳이 있는 낡았지만 정이 가는 집, 전형적인 시골집을 남편이 보고는 나를 불러서 이 집 어떻냐고, 나중에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옆에서 아이는 돌 해태 안 사줬다고 같이 안 살겠다고 계속 투정이고 ㅋㅋ...
근처 화원에서 아빠께서 찾으시던 '천사의 나팔'이라는 식물도 사가지고 왔다.



 

 

 

 

 

 

 

  --- 그 집 앞 ---



 

 

 

 

 

 

 

--- 문제의 돌 해태와 입 나온 다린 ---



 

 

 

 

 

 

 

--- 천사의 나팔 ---

온천의 고장이니 또 마무리는 부모님 모시고 온천에 가는 것으로.
밖에서 저녁 사주신다는 것을 내가 만류, 집으로 모시고 와서 기어이 떡국을 저녁으로 먹었다 (반찬 별다른 것 준비할 시간 없을 때는 떡국이 제일 만만한 메뉴).

내가 월요일 일찍 집을 나서야하는 관계로, 식구들이 아침으로 먹을 떡을 쪄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시각 오전 5시, 오늘은 나들이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 다녀와도 될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4-23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고 서울가려고 일찍 일어나셨군요. 시골집 사진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싸이런스 2007-04-23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치나인님 넘 아름다운 시간들이어요... 돌 해태는 뭐나요?

세실 2007-04-2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간 보내셨군요~~
'천사의 나팔' 이름이 참 예뻐요...향기도 좋다고 하네요. 호박꽃처럼 기억되는데...
서울 잘 댕겨오세요. 조는건 아니시온지...

hnine 2007-04-25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ci님, 일단 집 나와 다른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달라지더라구요. 저 시골집, 어떤가요? 아주 fancy하진 않지요? ^ ^
싸이런스님, 돌 해태 보셨지요? 불을 삼킨다는 상상의 동물이지요.
섬사이님, 저건 화원에서 찍은 것이고, 지금 제 집에 사다 놓은 것도 저렇게 꽃이 피게 잘 키워야 할텐데...
세실님, 맞아요. 호박꽃처럼 생겼어요. 역시~~ ^ ^ 서울 오며 가며, 쫌 졸았습니다 헤헤...

싸이런스 2007-04-2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다린이가 입나올만하네요. 멋진걸요?

hnine 2007-04-2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하루 지나니 오늘은 벌써 잊어버렸는지 더 이상 얘기 안하네요. 아이들이란 이렇다니까요. 저게 25만원이래요.
 
별난 한의사 손영기의 먹지마 건강법 - 개정증보판 마이너스 건강 1
손영기 지음 / 북라인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을 먹어야 어디에 좋고, 무엇을 먹으면 오래 살고.
참살이(well - being)에 대한 사람들의 증가되는 관심, 인터넷에 의한 정보 수집의 간편함과 확산 속도는 특히 건강 정보에 대해서 홍수를 이루다시피 해오고 있다. 이것 저것 챙겨 먹는 부지런함에, 모든 일에 저런 정성을 쏟는다면 큰일을 못할 사람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와 어느 정도 코드가 맞는 책이었다. 뭘 그렇게 계속 먹음으로써 답을 찾으려 하는지. 배탈이 났거나 속이 안 좋을 때, 뭘 먹으면 나아질까 보다는 한두끼 속을 비우는 쪽을 선호하는, 감기나 몸살에 걸렸을 때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속을 가볍게 하고 몸으로 하여금 병원(病原)과 싸우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쪽을 선호하는 내게는 말이다. 또한 스스로를 식의(食醫)라고 하며 藥보다 제대로 된 食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1.칼슘이 좋으면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먹자. 칼슘 제제를 약으로 먹으려 할 것이 아니라.
현미가 몸에 좋으면 현미를 먹으면 될 일이지 현미 추출액을 이용한 첨가 식품을 먹지 말자. 오렌지가 좋으면 오렌지를 사서 먹는 것이 오렌지 쥬스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평소에 나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DHA가 들어간 우유와 과자, 콜레스테롤 분해 물질이 함유된 마가린, 뼈의 노화를 막는 칼슘, 비타민 D, K가 들어간 카라멜등. 이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2. 무엇을 먹는냐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한 사람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조기 유학이나 과외에 쏟는 열정의 반만이라도 자녀들의 식습관 개선에 신경을 쓰라는 저자의 말에도 역시 동감이다.


3. 감기라든지 소화 불량, 갱년기 장애, 피로 등을 단순히 약을 먹어서 하루 빨리 고칠 생각만 말고, 몸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 들이고 귀 기울이라. Let it be의 여유가 필요하다.

4. 마음의 병을 육체로 다스리는 법칙, 병든 마음을 몸으로 달래 보자. 음식 가리기는 마음 다스리기의 원천이다. 음식이 곧 마음. 실천하기 어려운 마음 다스리기에 지쳤다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음식 가리기를 실천해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이런 먹거리에 관한 책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이슈보다는 '환경'의 차원에서 더 관심이 가고 있다. 거창한 이야기인지 모르나, 우리가 사는 환경의 오염과 파괴의 정도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인류의 위기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서히 우리의 손에 의해 진행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본격적인 인스턴트 가공 식품 세대인 지금의 10대, 20대가 사회의 주역이 될 21세기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궁금해진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다.

제목이 다소 원초적으로 붙여진 감이 있지만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5-01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7-05-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맞아요. 예전보다 양적으로는 풍요로와 졌는데, 질적으로는 별로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가려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네요. 먹거리 앞에 두고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해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속삭이신님, 우울할땐 운동으로 푸는 것이 훨씬 더 좋더군요.
오늘 노동절, 열심히 일하셨으니 푹 쉬셔야지요. 출장은 잘 다녀오신거죠?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1, 2 읽기를 마치다.
16세기 말, 터어키 이스탄불 외곽의 어느 우물 바닥에 죽어 버려진 한 세밀화가 엘레강스의 독백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어가는 이후로 계속 '내 이름은 누구...' 하는 식의 소 제목 아래 등장 인물 (혹은 무생물일수도 있다)들이 돌아가며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 이슬람 국가의 미술 형식은 인물의 특징은 배제되고 이야기와 사건이 담긴 그림의 내용이 더 중시되던 시대. 서서히 베네치아를 비롯, 서양의 새로운 사조가 밀려 들어오고, 그것은 신과 군주에 대한 모독이라는 믿음과 부딪히게 된다. 이런 배경아래, 궁중화원 소속의 한 화가가 죽은 채 우물에 버려진 사건이 일어나고, 읽는 사람은 이 책 2권의 말미에 가서야 그 범인을 제대로 알게 되니, 읽는 사람의 흥미는 지루함을 느낄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방식이나, 계속 관점을 달리하여 말하는 화자 전환 방식의 구성은 작가의 치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오르한 파묵은 지난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벨상 후보 일순위에 있던 사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터어키, 이슬람 문화, 세밀화 기법 등, 책에 처음 들어갈 때의 익숙하지 못함이 오히려, 잘 모르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전환되어 흥미를 더해준 책.  이런 이야기와 구성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생각을 결코 할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있는 책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작가를 마음 속에 담고, 터어키를 비롯, 그 시대 이슬람 미술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졌으니, 나의 관심 분야가 또 한번 확장되었음이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4-1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고 아직 손 못 대고 있어요. 터키와 이슬람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인가 봐요. 님의 리뷰 보니 흥미진진한 서술방식인 것 같아요^^

hnine 2007-04-1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읽어보세요. 독~특 하답니다 ^ ^
섬사이님, 책을 읽기 시작하고 초반부에는 좀 집중력이 요구되지요. 감을 잡아야하니까요. 하지만, 감 잡았다 싶으면 벌써 중반을 훌쩍 넘어서 속도가 붙고 있더군요. 세살 아기가 있으시군요. 한참 힘드시겠다...하지만 더 컸을때보다 고맘때가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웠던것 같아요.

해적오리 2007-04-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여행할 때 타지마할 같은 이슬람 문화를 접하면서 나름 많이 반했드랬죠.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일품이에요. 이론적으로 아는 건 없지만 그때의 감동은 아직 남아있네요. ^^

hnine 2007-04-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 인도 다녀오셨군요. 옆에 앉아 얘기 듣고 싶네요.
 

아이스크림 가게 테이블의 작은 화병.
아이가 먹고 있는 동안 나는 무심하게 사진만 찍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담벼락.
그래, 아직 개나리도 지지 않고 있다. 비록 나중에 출현한 다른 꽃들에 가려있긴 해도.





 

 

 

 

 

 

 

현호색. 대학교 때 처음 저 꽃 이름을 알고는 특이한 꽃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계룡산 자락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우리는 싸워도 30분만 지나면 왜 싸웠는지도 잊어버려요~'
어제 전화통화중 올케의 말.
말없이 사진만 올리고 싶은 날이면서도 30분 아니라 일년전 이맘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몇 마디 흘리고 만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04-18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전 뭔 일 있으셨군요. 30분 아니라 일년이 지나도 안 잊히는 일,
서서히 잊히겠지요. 현호색이란 꽃은 저도 첨 봐요. 색깔도 모양도 참 신기하네요.
계룡산에 지천이라구요.. 흠.. 그리고 전 두번째 사진이 젤 맘에 들어요. ^^
4월, 오늘도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hnine 2007-04-1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따뜻한 댓글, 감사드려요. 현호색은 저렇게 보라색 말고 노란색도 있고 흰색도 있답니다.
섬사이님, 누구나 잊고 싶은 일은 있기 마련인데 제가 좀 엄살을 떨었나요. 마음이 안 좋을땐 차라리 자연과 대화를 나누라고 책에서 읽었는데, 저렇게 꽃을 보면서 마음을 환하게 다잡는것, 맞아요.

향기로운 2007-04-1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트 담벼락의 꽃도 놓치지 않고.. hnine님의 섬세함에 4월이 훌쩍 흥분했겠어요. 가기 싫다고..^^ 오전내내 꿀꿀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니 햇살 한줌 내려주네요. 따스해요..^^

hnine 2007-04-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저 담벼락을 끼고 한참 걸어야 저희 아파트에 다다르거든요. 서울이신가요? 여기 대전은 오늘 날씨 대체로 맑음인데요...

비로그인 2007-04-1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이나 여기 댓글을 달다가 다운이 됐지만서두 - 요새 컴퓨터가 좀 이상해서요 - 꿋꿋이 밤에 다시 왔습니다.
결코 이쁘지는 않은 담벼락에 가려져도 또 그걸 넘어서 삐쭉 고개를 내미는 개나리의 모습이 사는거겠지요? 기운내시기를..

hnine 2007-04-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와주신 Manci님, 고마와요.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평소에 눈에 안 들어오던 것도 들어오지요. 하지만, 너무 자주 약해지는 마음, 이건 정말 문제여요 어휴....
 
 전출처 : 로쟈 >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학술저널 담론비평에서 진화생물학에 관한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원래는 '[통섭논쟁] 진화론도 진화한다'는 기획기사의 일부로 연세대 대학원신문(152호)에 게재된 것인데(사회생물학에 관한 내용이 다음호에서 다루어진다고 한다) '헌대 진화생물학의 전망'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상식 차원에서 정리해둘 만하다.

담비(07. 04. 13)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다윈과 진화생물학 

‘진화(Evolution)’라고 하면 흔히 생물의 진화가 연상된다. 그런데 국어사전의 정의에도 그러하듯 ‘진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진보’ 또는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생물진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진행되는 생물들의 진보 또는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일례로,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때 그 주된 논리는 흑인들이 진화적으로 백인들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나치의 게르만주의의 배후에도 역시 그런 왜곡된 논리가 숨어있다.  

과학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의 하나로 간주되는 진화의 개념과 그 메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연구자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근 5년 동안 영국의 군함 비이글호를 타고 세계 전역을 일주하면서 생물 진화의 증거들을 풍부히 수집했다. 이런 증거들에 바탕 하여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하게 된다.

다윈은 맬서스(Thomas Malthus)가 1798년에 발표한 인구론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맬서스에 의하면 모든 생물종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서 만약 기아나 질병과 같은 재해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으면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생물들이 대부분 안정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각 세대에서 소수의 자손을 제외한 대다수 개체들이 강제로 죽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이론을 따라 다윈은 각 세대에서 도태되는 자손들은 아마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한 개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가축이나 곡식들이 인간에 의해 선택됨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종자가 개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도 어떤 선택의 메커니즘이 존재함으로 해서 생물종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윈 이후의 진화생물학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으로 진화를 설명함으로써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이론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연선택과 진화의 관계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설명하는 데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연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다윈조차도 자연선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다윈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론 연구가 현대의 진화생물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다윈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금세기 초엽, 멘델의 업적이 재발견됨으로 해서 과학계는 비로소 유전자와 자연선택 사이의 관련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전학적 지식이 처음부터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초기의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돌연변이가 대부분 개체에 해로우며 그 영향도 점진적인 것이 아닌 아주 대규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였고,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에서 요구되는 새롭고 유용한 변이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점차 유전학에 수학이 가미되면서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전학과 자연선택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원리가 종합되었는데, 이를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부른다.

사회생물학의 등장

신다윈주의가 출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도브잔스키(Dobzhansky), 메이어(Mayr), 심프슨(Simpson) 등은 집단유전학, 계통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신다윈주의의 원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 종합설(The Modern Synthesis)’이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설이 타당하다는 점을 전 세계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쾌거라 하겠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신종합설의 제창으로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신종합설이 대두되기까지 주로 고생물학, 계통분류학, 유전학 등에 의존해서 발전했던 진화생물학은 1950년대부터는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서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비롯한 일단의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물들 사이의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많은 현장 생물학자들의 관찰을 근거로 정말로 중요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생식을 위한 개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킨스, 윌리암스(Williams), 스미스(Smith) 등에 의하면 진화는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유전자들의 투쟁으로 정의된다.

1970년대에 출현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유전자 중심 진화론의 연장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생물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옳다면 어떻게 생물들 사이에서 다른 개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현상이 빈번히 관찰될 수 있으며, 또 흰개미나 꿀벌의 집단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 협조하는 공생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다윈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논의하기로 한다).

현대인과 진화생물학

다윈 이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때로는 그런 관심이 지나친 나머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과학으로서의 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일부 비전공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창조(?)해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과학자들이 단체를 결성해서 한 과학 분야를 공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진화생물학은 비단 창조과학자들과 같은 비전공 과학자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빈번하게는 일반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한 예가 아래의 풍자만화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화생물학은 앞에서와 같은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크게 해서 널리 바라본다면, 학문으로서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은 그것이 바로 인류의 장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의 적응을 다윈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했는데, 우리는 자연계에서 지나치게 적응에 성공했던 나머지 나중에 갑자기 새로 변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렀던 많은 생물종들의 예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현재 지나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지나친 적응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인류의 번영은 환경 파괴와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열대우림, 산호초, 바다와 호수, 늪지, 강과 하구 등 생물상이 가장 풍부한 장소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오존층을 훼손하고 있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더해서 온실효과를 부추기고 있다. 또, 매년 그 사용이 늘어나는 유독성 화학물질들은  우리의 식량원인 곡식의 품종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훼손과 파괴는 필경 새로운 환경 조건을 조성해서 우리 인류로 하여금 바뀌어진 환경 속에서 살 것을 강요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러한 적응에 성공해서 영원히 번영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구하는 학문이다.(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박사)

07. 04. 15.

P.S. 필자인 홍욱희 소장은 생물학과 환경학 전공자로서 여러 권의 저역서를 갖고 있다. <생물학의 시대>(범양사출판부, 1998)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물론 박스보관도서인지라 소장의 의미가 없는 책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