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학술저널 담론비평에서 진화생물학에 관한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원래는 '[통섭논쟁] 진화론도 진화한다'는 기획기사의 일부로 연세대 대학원신문(152호)에 게재된 것인데(사회생물학에 관한 내용이 다음호에서 다루어진다고 한다) '헌대 진화생물학의 전망'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상식 차원에서 정리해둘 만하다.

담비(07. 04. 13)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다윈과 진화생물학 

‘진화(Evolution)’라고 하면 흔히 생물의 진화가 연상된다. 그런데 국어사전의 정의에도 그러하듯 ‘진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진보’ 또는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생물진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진행되는 생물들의 진보 또는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일례로,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때 그 주된 논리는 흑인들이 진화적으로 백인들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나치의 게르만주의의 배후에도 역시 그런 왜곡된 논리가 숨어있다.  

과학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의 하나로 간주되는 진화의 개념과 그 메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연구자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근 5년 동안 영국의 군함 비이글호를 타고 세계 전역을 일주하면서 생물 진화의 증거들을 풍부히 수집했다. 이런 증거들에 바탕 하여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하게 된다.

다윈은 맬서스(Thomas Malthus)가 1798년에 발표한 인구론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맬서스에 의하면 모든 생물종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서 만약 기아나 질병과 같은 재해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으면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생물들이 대부분 안정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각 세대에서 소수의 자손을 제외한 대다수 개체들이 강제로 죽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이론을 따라 다윈은 각 세대에서 도태되는 자손들은 아마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한 개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가축이나 곡식들이 인간에 의해 선택됨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종자가 개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도 어떤 선택의 메커니즘이 존재함으로 해서 생물종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윈 이후의 진화생물학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으로 진화를 설명함으로써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이론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연선택과 진화의 관계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설명하는 데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연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다윈조차도 자연선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다윈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론 연구가 현대의 진화생물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다윈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금세기 초엽, 멘델의 업적이 재발견됨으로 해서 과학계는 비로소 유전자와 자연선택 사이의 관련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전학적 지식이 처음부터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초기의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돌연변이가 대부분 개체에 해로우며 그 영향도 점진적인 것이 아닌 아주 대규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였고,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에서 요구되는 새롭고 유용한 변이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점차 유전학에 수학이 가미되면서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전학과 자연선택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원리가 종합되었는데, 이를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부른다.

사회생물학의 등장

신다윈주의가 출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도브잔스키(Dobzhansky), 메이어(Mayr), 심프슨(Simpson) 등은 집단유전학, 계통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신다윈주의의 원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 종합설(The Modern Synthesis)’이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설이 타당하다는 점을 전 세계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쾌거라 하겠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신종합설의 제창으로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신종합설이 대두되기까지 주로 고생물학, 계통분류학, 유전학 등에 의존해서 발전했던 진화생물학은 1950년대부터는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서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비롯한 일단의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물들 사이의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많은 현장 생물학자들의 관찰을 근거로 정말로 중요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생식을 위한 개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킨스, 윌리암스(Williams), 스미스(Smith) 등에 의하면 진화는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유전자들의 투쟁으로 정의된다.

1970년대에 출현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유전자 중심 진화론의 연장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생물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옳다면 어떻게 생물들 사이에서 다른 개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현상이 빈번히 관찰될 수 있으며, 또 흰개미나 꿀벌의 집단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 협조하는 공생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다윈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논의하기로 한다).

현대인과 진화생물학

다윈 이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때로는 그런 관심이 지나친 나머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과학으로서의 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일부 비전공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창조(?)해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과학자들이 단체를 결성해서 한 과학 분야를 공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진화생물학은 비단 창조과학자들과 같은 비전공 과학자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빈번하게는 일반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한 예가 아래의 풍자만화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화생물학은 앞에서와 같은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크게 해서 널리 바라본다면, 학문으로서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은 그것이 바로 인류의 장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의 적응을 다윈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했는데, 우리는 자연계에서 지나치게 적응에 성공했던 나머지 나중에 갑자기 새로 변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렀던 많은 생물종들의 예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현재 지나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지나친 적응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인류의 번영은 환경 파괴와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열대우림, 산호초, 바다와 호수, 늪지, 강과 하구 등 생물상이 가장 풍부한 장소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오존층을 훼손하고 있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더해서 온실효과를 부추기고 있다. 또, 매년 그 사용이 늘어나는 유독성 화학물질들은  우리의 식량원인 곡식의 품종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훼손과 파괴는 필경 새로운 환경 조건을 조성해서 우리 인류로 하여금 바뀌어진 환경 속에서 살 것을 강요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러한 적응에 성공해서 영원히 번영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구하는 학문이다.(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박사)

07. 04. 15.

P.S. 필자인 홍욱희 소장은 생물학과 환경학 전공자로서 여러 권의 저역서를 갖고 있다. <생물학의 시대>(범양사출판부, 1998)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물론 박스보관도서인지라 소장의 의미가 없는 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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