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 종일 집안에서 한발짝도 안나가는 날이 더러 있다. 의도한건 아니라도 어찌어찌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가 움직이기 싫다고 떼를 쓰는 날, 즉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었을 것이다. 하루쯤 그러는 건 괜찮은데, 그게 이틀 혹은 사흘까지 계속될라치면 거의 대부분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목적지가 있어 바쁜 걸음을 해야할때도 있지만 때로 누구와 약속 없이 그저 나혼자 걷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건 행운이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야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더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저자가 줄곧 하고 있는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5쪽)

먼저 나온 책 <걷기예찬>과 주제는 같으나 다른 점이라면 이 책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 사례등이 훨씬 많이 인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수려한 문장 표현, 경험과 생각이 잘 집약되어 있는 구절 등은 전작에 뒤지지 않으나 인용 부분이 많으니 어딘지 깊이가 덜 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 (32쪽)

걷는다는 일은 때로는 침묵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 (43쪽)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다. (59쪽)

짧고 전달력있는 문장들은 마치 광고 카피같기도 하다.

 

가방을 가볍게 꾸리는 일은 정신을 가볍게 하는 형태이다. (189쪽)

알면서도 잘 안되는 일중 하나.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 사색적인 느낌보다는 여행기 느낌이 나서 이 책의 원래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것도 저자 자신의 여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 인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전달하는데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까, 아니면 사례 인용 먼저 해놓고,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한 것일까.

 

풍경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노잣돈처럼 늙어가는 일을 돕는다. (147쪽)

이런 표현들.

산책은 그날의 근심을 털어내면서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섭취하는 또다른 방식 (168쪽)

 

산보객은 도시의 예술가인 동시에 행인들이나 건물의 세부묘사 또는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하는 일종의 사랑스런 형사이다. (177쪽)

걷는 사람을 고도의 관찰을 직업으로 삼는 형사에 비유한 이런 예리한 표현도 이 사람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쇠이유협회는 비행청소년들을 맡아 주변사람들과 잠시 거리를 두는 경험을 통해 사회 복귀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으로서 석달동안 휴대전화나 게임기 또는 음악없이 배낭만 짊어지고 매일 25km 가량을 걷는다. (211쪽)

Seuil (쇠이유).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한 청소년 교화단체이고 마침 이에 관한 다음과 같은 책이 최근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자신 앞에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빌리는 의미, 즉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가치들이다. 자신의 존재와 단절된 각각의 개인은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세상 앞에서 영원히 제자리 걸음을 치는 형벌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그 벽에 창문을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의미의 길을 세우고, 존재 이유를 만들어내고, 즉흥적이든 혹은 지속적이든 흥분을 만들어내고, 존재감을 되살리는 일이다. 집에서 멀어질 방법을 갖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짧고도 반복적인 걷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장악력을 되찾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이다. (221쪽)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고 느끼는 것은 대상의 실체, 본질이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대상의 가치라니, 이런 부분에선 동양 사상이나 불교 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건 내 몸이나 마음이 그래도 정상 수준에 있을 때 얘기이고, 가끔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심할때는 걷기는 커녕 자리에서 꼼짝 하기 싫어지기도 하다. 이럴 때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선다는 것은 정상 수준에 있을 때보다 몇배 더 강한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 그렇다면, 그런 수준에 이르기 전에 미리 미리 대처를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수 밖에.

문없이 벽으로만 둘러쌓인 방에 갇혀 있는 느낌은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인데, 그 상황을 애써 부정하고 모르는 척하며 넘아가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똑바로 인정하고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데 느리게 걷기는 분명히 한 몫 한다.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찰스 디킨스-

 

 

걷기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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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8-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예찬이라는 책, 제목부터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높을 때, 정말 꼼짝하기 싫을 때, 잠만 자고 싶은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합니다. 걷기나 비슷한 것 같아요.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다는 문구ㅡ 참 좋아요.

그런데 갑자기 집 검사를 하다가 지붕에만 창문을 냈던 어느 그림이 생각이 나네요.
이런 그림의 해석이 참 잼나요... 이런 창문은 남들은 집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자신은 내려다볼 수 있다죠.
제 창문은 그렇지 않길 바라는데, 잘 모르겠네요. 나인 언니, 즐거운 한주되셔요.

hnine 2014-08-11 19:58   좋아요 0 | URL
문이나 창 없는 방,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한데,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그런 곳에 가둔 채 속수무책으로 지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하니 참...
몸과 마음이 이렇게 같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저자의 전작인 <걷기 예찬>이 이 책보다 좀 더 좋았어요 저는 ^^

icaru 2014-08-1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책 표지가 오래 눈에 와 박히네요.
처음엔 그냥 어디에나 흔한 다리 사진인가 했다가는,, 다리가 아니고, 물가를 끼고 있는 도로네요.
걷고 싶은 길들을 아직 가리는 저는 ㅎㅎ
꽤 쓸만한 운동화를 장만하면 걷는 일이 즐거워질지도 하는 생각이나 하구요 ^__^

hnine 2014-08-12 23:22   좋아요 0 | URL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싶은 사람과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요? ^^ 저도 바라는 일이랍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걷기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걷기를 말하고 있어요. 몸을 움직여나감으로써 마음의 정해진 회로에서 벗어나보는 것, 정체된 상황에서 자신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노력, 뭐 그런거라 할까요?
해가 갈수록 걷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긴 해요.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언제부터 이렇게 일부러 걸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지...
책 표지 그림이 예뻐서 꼭 미술책 같기도 했어요.
(아참, 그리고 제 건강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이제 완전 괜찮아요~ ^^)
 

 

2014년 7월의 꽃 사진.

 

 

 

 

찬물도 순서가 있는 법.

꽃도 아래부터 차례로 피어요 ^^

 

 

 

 

 

 

 

'나는 너희들이 좋다'고 해놓고 이름도 모르는 나는 참...

 

 

 

 

 

이 사진에 <생과 사> 라고 제목을 붙인다면, 내가 너무 심각하게 가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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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8-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참 예뻐요 제가 찍었다면 이렇게 못 찍었을텐데~~
잘 지내시죠?

hnine 2014-08-09 05:28   좋아요 0 | URL
제가 잘 찍었다기 보다는 주위를 둘러보면 저렇게 찍어두고 싶은 것들이 늘 있더라고요. 마음이 바쁠땐 카메라를 못 챙겨나가기도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요. 다 여유짓이지요 저에게는 ^^ 하루 24시간 바쁘게 사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요.
전 잘 삽니다. 하늘바람님 아이들 둘 데리고 얼마나 분주하세요.

프레이야 2014-08-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반가워요 돌아오셔서요. 건강이 나아지고 있을거라 믿어요. 꽃피는 데에도 순서가 있군요. 우리네 삶에는 순서가 없겠지만 보이지않는 질서와 균형은 있겠지요. 순서없는 생과 사는 잠시 접어두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hnine 2014-08-09 05:31   좋아요 0 | URL
네, 건강은 이제 좋아졌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방학중인 아이 데리고 있느라, 또 매일 병원에 왔다갔다 하느라 힘들었지요. 저는 있는 동안엔 아주 편했습니다 ^^
제가 어줍잖지 않게 올린 사진보다 여기 프레이야님 댓글이 더 좋습니다. 읽고 또 읽어요.

icaru 2014-08-0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과 사> 제목 정말 기가 막힌걸요~
오랜만에 들어와서, 언제 봐도 좋은 나인 님의 식물성? ㅋㅋ 야생 식물 사진 보고, 좋네요!

hnine 2014-08-09 05:35   좋아요 0 | URL
한 뿌리에서 난 식물같은데 어떤 꽃은 아직 활짝 피어있고 어떤 꽃은 말라비틀어져 있는 모습때문에 카메라를 열게 되었기에 붙여볼까 했던 제목이랍니다.
왜 식물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느냐고, 언젠가 제 아이가 묻던데요 ㅋㅋ 인물사진보다 전 초상권 침해 걱정 안해도 되고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서 그런지 저렇게 말없이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식물들 사진 찍는게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찍을께요, icaru님 가끔 들러서 구경해주세요~ ^^

2014-08-0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9 0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8-0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사진은 '자리공' 혹은 '미국자리공' 같아요.
향명으로는 '장록'이라고 해서 꽃시장에선 '장녹수'라고 불리기도 하더군요.
'자리공'과 '미국자리공'이 어떻게 다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ㅠ

hnine 2014-08-09 06:31   좋아요 0 | URL
이런 경우 저도 모르게 순오기님을 떠올린답니다, 혹시 순오기님은 아시지 않을까 하고요.
사진 보니 말씀하신 '자리공'이 맞는것 같아요. 많이 보아오던 식물이고 이름도 듣고 보니 귀에 익네요. 따로따로 알고 있었나봐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 다는 사이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았네요.
순오기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한번 가봐야지 찜해놓고 끝내 못가보는 공연이나 전시가 대부분인데, 그동안 칩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어젠 식구들 저녁먹은 설거지 후다닥 해치우고 극장 가서 '명량'을 보고 왔고, 그것도 모자라 오늘은 빗속을 뚫고 서울까지 가서 퓰리처사진전을 보고 왔다.

명량은 원래 지난 주에 남편, 아이와 함께 보러가기로 했었는데 점심 먹자마자 낮잠의 세계에 빠져든 남편, 컴퓨터 앞에서 몇시간째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있는 아이를 보며 포기해야했다.

퓰리처사진전도 언제 서울 갈일 있을 때 꼭 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전시였다. 그런데 막상 일이 있어 서울 가서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전시까지 둘러보고 올 시간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많아 다음에 오지 하며 그냥 돌아오곤 했다.

 

오늘 아침, 새벽부터 계속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만 집을 나섰다. 오로지 퓰리처사진전을 보기 위해서, 서울까지,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땐 가능하면 그때 하는게 좋다. 더 적절한 시기가 올때 기다리다가 결국 못하는 수가 많다. 약5분 주저함을 이런 말로 다스리며.

 

다행히 서울은 흐리기만 할뿐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때로 그 어떤 말보다, 글보다, 더 많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 그 사진에 담긴 우리 사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아무리 글로벌 세상이라지만 우리가 사는 동안 볼 수 있고 알게 되는 세상은 극히 일부분이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이지만 그래도 우물 밖 세상이 궁금하다.

 

 

 

 

 

 

 

 

 

 

 

 

전시가 시작되면 사진 금지.

 

총 전시작 230여점.

오디오를 대여하려고 했더니 40여점 밖에 해설이 담겨있지 않다고 해서 해설은 눈으로 자세히 읽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1940년대 사진부터 시작되는 전시장의 첫 사진은 최초 수장작인 1942년 밀턴 브룩스 (Milton Brooks)의 피켓라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상황이 담겨진 사진이다.

1950년대에는 한국 전쟁 사진으로 수상한 맥스 데스포 (Max Desfor)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안드레아 도리아호의 침몰'이라는 제목이 달린 해리 트라스크의 1957년 사진 옆 해설에는 선원들에 의한 대규모 철수 작전으로 1650명이 살고 51명이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의 세월호 숫자와 비교가 되었다.

윌리엄 비얼의 1958년 작품 '신념과 신뢰 (Faith and confidence)'도 나혼자 뽑은 베스트 중의 하나.

 

1960년대 사진에는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을 담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고,

1970년대 사진 중, 1970년대 워싱턴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매튜 루이스가 찍은 존 윌슨 변호사의 사진이 있는데, 사진을 찍어보고자 하는 매튜 루이스를 앞에 두고도 윌슨 변호사가 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신문만 보고 있자,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져 잡아낸 표정이다. "윌슨씨, 당신은 터프한 걸로 유명합니다."

이 밖에도 흑백대립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백인이 흑인을 구타하는데 도구로 성조기 깃대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한국전쟁을 담은 사진은 옆에 따로 방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데 모두 맥스 데스포의 사진들이다.

전쟁은 어느 나라에서, 어느 민족에게 일어났는지 상관없이 비참하고 우울하다.

 

이렇게 위기의 현장에서 잡은 사진들이 상을 받게 되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기쁨만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아니었다는 질타를 받게 되고, 결국 양심의 무게에 짓눌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상자도 있지 않은가.

보고 나오는 내 발걸음 역시 보고 싶은 걸 보고 나서의 만족감으로 가볍기만 한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이런 상태에서 오늘 나의 생각이 꼭 옳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남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옳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다른 의견을 설득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는, 어떤 이에게는 가장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 세상과 작별하는 그 순간,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고 싶은 그 몇초의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이유로 조금만 더 버텨서 뭔가를 얻어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후자를 질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것이 어쩌면 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빗줄기가 커지고 있었다.

사진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 남동생 생각을 하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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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9 0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4-08-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시 보러가고픈데 여의치 않아요. 호젓한 나들이 잘하셨습니다^^

hnine 2014-08-09 05:2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오기에 버스표 예매까지 해놓고도 누구와 약속이 있는 건 아니어서 갈까 말까 망설였답니다, 약 5분간. 그러다가, 하면서 귀찮은게 하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나을것 같기에 나섰어요. 수십년 살던 서울인데 이렇게 가끔 가면 어찌나 복잡하고 어지러운지 ^^ 사람속에서 이런 복잡함과 분주함을 느껴보는 것도 가끔이면 오히려 전 활력이 되더라고요.
9월 중순까지 이던데 프레이야님도 기회가 되시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4-08-08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나들이까지 한 걸 보니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나 봐요.
잘하셨어요~ 하고 싶은 일은 그때그때 하고 살아요. 우리!!^^

hnine 2014-08-09 05: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발은 좀 어떠세요.
전 이제 다 나았어요. 서울 나들이쯤이야 충분히 할 수 있고 일도 예전만큼 다시 하고 있고요.
걱정해주셔서 정말 고마왔어요.
살면서 보니 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최적기일때가 많더라고요. 나중에 더 좋을 때가 오기보다는요.
남자는 술때문에, 여자는 희생과 양보 정신때문에 오는 기회를 놓치는 수가 많대요.
억지로 무리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하면서 살자는 말씀 들으며 저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

순오기 2014-08-12 14:00   좋아요 0 | URL
어제 엑스레이 찍었는데 뼈가 절반만 붙었어요.ㅜ
의사샘이 부지런히 움직였나 보다고... 될 수 있음 걷지 말라고 그래서 입원을 시키는 거라고 말했어요.
집앞에 와서 데려가고 데려다줄 때만 출타했는데도 무리였나 봐요.
젊은애들은 뼈가 붙는 무슨 진액?이 많이 나오는데 나이가 들면 그것도 잘 안된다고... ㅠ
난 시간만 지나면 붙는 줄 알았어요~ 이러다 추석때까지 깁스로 있을지도 몰라요. 흑흑~
그래서 다음주부터 예정된 프로그램 2개는 추석 이후로 아예 늦춰버렸어요.ㅠ

hnine 2014-08-12 14:4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순오기님. 출타라니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회복이 더디어지니까 되도록 다리 쓰지 않으셔야 할거예요.
깁스가 얼마나 불편하고 더구나 여름엔 견디기 어려우실거라 짐작이 되지만 그래도 조금만 참으셔야겠어요. 몸의 어디가 불편해서 집중 관심을 요하면 다른 어떤 일보다도 내 몸이 하라는대로 잘 들어줘야 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힘드셔서 어떡해요. 누군가 따라다니면서 돌봐줘도 불편하고 힘든데...

2014-08-15 0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5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미 2014-08-1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날도 흐린데, 서울까지 와서 보고 간거야?
서울 간 김에 뭔가 하기엔 시간이 많이 촉박하지.
맘에 여유도 없고...
그리고 예술의 전당이 교통이 그다지 좋지 않은 외진 곳에 있어.
어제 오늘 부쩍 한국 가고 싶은 날이었어.
딱히 무슨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 없는 날 한국 가고 싶더라.
와라스 여행기도 너 보라고 부지런히 올렸고
쿠스코 여행기 마저 올려야 하는데,
멈춰버렸네....
얼른 올려야지

hnine 2014-08-15 10:57   좋아요 0 | URL
좀이 쑤셨던거지. 이러다가 또 전시 끝날 때 넘겨버리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혼자 하루 종일 놀다 들어오겠다고 나가는데 다린아빠는 어디 가냐고 묻지도 않더군 ㅋㅋ
한국 생각이 나는 날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가지 생각, 여러 사람 생각들이 나곤 했지. 남편과 함께 있는 너도 그런데 혼자 있던 나는 어땠겠니 ㅠㅠ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관심도 없던 내가 요 며칠 꽃보다 청춘을 열심히 보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너때문이지.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페루가 이제 내겐 예전의 페루가 아닌거야.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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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거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는가하면 이 책 처럼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다시 읽게되는 책이 있다. 숙제처럼 남아 있는 책. 그래서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느낌을 정리할 수가 없다. 언젠가 또다시 읽게 될까.

1869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지드는 우리에겐 <좁은 문>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이 책 말고 내가 더 읽은 책으로는 <전원교향악> 정도이다. 고등학교때 나에게 글로, 말로, 이전의 누구와도 다른 공감, 교감을 나누던 분이, 이 책을 꼭 읽어보라는 권유도 아니었고 그저 편지에 단 한줄 이 책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읽어본게 첫번째였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싱크로 시키고 싶어했던 그분이 그렇게 찬탄한 이 책을 처음부터 끝페이지까지 다 읽도록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좀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 했던게 거의 30년 후인 지금이 될 줄이야. 처음 읽을 때 만큼 오리무중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며 읽지 못했다. 마치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몇 사람이 돌아가며 쓴 것 같은 느낌.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는 지식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욕망과 본능을 허용하며 살자는 쪽인지, 아니면 신의 존재를 항상 잊지 말고 자기 완성을 추구하며 살자는 쪽인지.

한가지 분명한 건 이 책은 눈으로 들어오는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냄새를 맡아가며, 귀로 들어가며, 살갖으로 느껴가며 읽어가야 한다.

평소 그리스신화와 성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데 이 책 제목 <지상의 양식>은 코란의 제2장 23절 "여기 우리가 지상에서 양분을 받은 과일들이 있다"에서 왔다고 한다. 제자인지 후배인지, 아니면 젊은이를 일컬은 익명인지 모르겠지만, 나타니엘이라고 하는 자기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남기는 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대부분의 글이'나타니엘이여' 라는 부름으로 시작한다. 때로는 나타니엘이 아닌 '메날크'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는 지드 전반기의 사상을 대표하는 그림자 같은 인물이라고 해설에 나와있는데 이것 역시 뚜렷하지 않은 설명이다. 지드 자신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분신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쓴 글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상관있는 것일지.

처음 발표하고 20여년 동안 겨우 5백부 밖에 팔리지 않았고 그 이유를 자가는 이 책이 그 시대의 취미와 얼마나 충돌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고 썼다. 어느 비평가도 이 책을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니. 

나의 지인을 그렇게 감동시켰다는 책.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책. 내게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는 책. 책 만큼이나 읽고난 심정도 복잡하다.

 

우리들이 삶에 흥미를 갖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하였는지 그대는 도저히 모르리라 (16쪽)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기다림은 욕망이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갖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 (28쪽)

-욕망이 마음의 준비로 바뀔 무렵이 되어야, 그때서야 기다리는 것이 오던가, 아니면 기다림 자체가 끝이 나는 것 같다.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29쪽)

-이 구절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당시 제일 인상깊은 문장으로 노트에 따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Let every moment renew your vision." 이렇게 기억했는데 번역문과 조금 다르네. 내 기억이 틀릴지도 모른다.

 

그대의 진리가 어느 다른 사람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라. 만약에 내가 그대의 양식을 찾아준다면 그대는 그것을 먹기 위한 시장기를 잃고 말 것이다. 만약에 내가 그대의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그대는 졸음이 달아나서 거기서 잘 수 없게될 것이다.
나의 책을 던져 버려라. 그것은 인생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수천의 태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 자신의 태도를 찾아라.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는 존재를 너 스스로 창조하라. (183쪽)

- 이번에 뽑은 베스트 문장은 바로 이것. 키워드는 "너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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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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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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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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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한문 시간에 배운 한자로 '신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린 신독은 '혼자 있을 때에도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가한다'는 뜻의 '愼獨'이 아니라, '경전을 단순히 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행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 '身讀'이었다.

수업 시간에 같은 음으로 읽지만 두 가지 다른 뜻에 대해 배우며, 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아니면 연결되어야 옳은가보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기억이 난다.

몸이든 마음이든 무겁고 명쾌하지 않을 때 제1처방은 걷는 것. 저자도 말했듯이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니까 (255쪽).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걷는 동안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어떻게 오는지 다 알테지만, 아마 이 책의 저자만큼 수려한 문장으로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번역을 그만큼 훌륭하게 해내었다는 말도 될까.

때로는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문제 거리를 곰곰히 생각해보느라 걷지만 때로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기 위해 걷는다.

때로는 걷고 있는 내 발을 보며 걷지만 때로는 왼쪽 오른쪽 살피며 꽃이나 나무를 보며 걷는다.

어떻게 걷든, 마음만 혼자 힘들어할때 몸에게 알려주는 걷기.

몸이 무거울때 그걸 이미 알고 같이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걷기.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이지만 '몸'의 문제와 중요성에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81)노래는 보행의 도반이요 마음의 균형추다.

(250)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252)길을 걷다보면 세계가 거침없이 그 속살을 열어보이고 황홀한 빛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는 어떤 개인적인 변신의 문턱 같은 것이다.

(258)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261)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264, 역자 후기)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지시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육체다. 이것은 뒤르켐의 오래된 직관이다. 즉 몸은 개인화의 요인인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세상에 내놓는 것, 우리를 인정받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몸이다.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인식의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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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0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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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2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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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1 0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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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0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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