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집에서 자동차로 40여분 거리. 일요일에도 새벽같이 일어나는 못말리는 나와, 그 점에 있어서는 아빠가 아닌 엄마의 DNA 를 물려받은 아들은 6시 10분에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 더 자고 싶은 남편을 결국은 일어나게 하여 9시도 안된 시각, 아직은 쌀쌀한 공기를 느끼며 출발했다.
도착하자 마자 나를 놀라게 한 광경
비엔날레 행사가 열리고 있는 장소때문이었다.
옛 청주연초제조창.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은 허름한 건물 그곳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벗겨진 페인트 그대로, 시멘트 벽 그대로.
와! 나는 탄성을 질렀다.
파리에 오르세 뮤지엄이 그렇고,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 더구나 갈수록 거리, 풍경, 하천 까지 보여주기 위한 상품화 되어 가고 있는 듯 안타까운 정책이 벌어지고 있는 이 땅에서 이런 발상이 반갑고 신선하고 답답하던 마음을 확 뚫어주는 것 같았다. 남편 말에 의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요즘 전시 트렌드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나의 상식을 깨는 전시장 모습 이곳 저곳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나중에 보면 전시장 외관을 왜 이리 찍어댔나 할지도 모를 사진을.

유용지물 (有用之物)
무용지물이 아닌 유용지물.
'공예', 즉 crafts란 그냥 예술 작품이라기 보다 실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을 예술성 있게 만드는 분야를 말한다고 남편이 아이에게 해주는 설명을 귀동냥한다.
이번 청주비엔날레의 키워드.
또 한번 나의 상식을 깬 전시장 내부
전시장의 거의 모든 작품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순진한 나는 사진은 한 장도 못찍었다.
나의 상식을 깬 것은 그게 아니라 바로 모든 작품에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다는 점.
어떤 작품에도 작품만 전시되어 있을 뿐 누구의 무슨 작품이라는 팻말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단지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진 작품 번호만 붙어 있다.
전시장 입구에 쓰여 있는 말, 누구의 무슨 작품인지 신경쓰지 말고 자유롭게, 스스로 제목을 붙여가면서 관람하시라고. 같이 온 다른 사람이 붙인 제목과 비교도 해가면서, 의견도 나누어 가면서.
대신 각 전시장 입구엔 A4크기의 목록 책자가 벽에 달려 있고 원하는 사람에겐 관람하는 동안 빌려주기도 한다. 그 목록에서 궁금한 작품의 번호를 찾으면 거기에 작가와 제목, 제작 연도, 재료등 작품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이런 전시장은 나에겐 처음 보는 일. 그런데 무척 마음에 든다.
전시장에 도우미로 계신 분들이 연세가 꽤 있으신 분들이 많았다. 입고 계신 노란색 상의에 새겨진 글씨를 보니 청주시 자원봉사 단체에 소속되신 분들인데, 바로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같으신 분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참 색다른 기분이었다. 뭘 여쭤보면 어찌나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던지. 나이 드신 분들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젊은이이 전시장 한 구석 의자에 조용히 앉아 감시자인지 안내원인지 모를 역할만 하고 있는 보통의 전시회에서 역시 틀을 벗어나는 점이 아니었다 생각한다.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기에
'안 돼! 데이빗'의 데이빗 판넬 뒤에 가서 다린이가 눈만 내놓고 섰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그림책 '설빔' 판넬 뒤에서 혀를 낼름 내밀고 있는 뉘집 아들.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체험학습장에서 학습은 아니고 자동차 모형 만들기

도기로 만들어진 공깃돌.

바로 옆 건물에서는 한국공예가협회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를 안보고 그냥 갔으면 후회했을 뻔.

멋진 작품들이 잔뜩. 이런 탁자는 그냥 눈에 그대로 담아오고 싶었다. 손은 대지 못해도 눈에라도 담아서.

나비가 보이시는지요?

참빗 모양을 한 의자

멀리서

가까이서

좀 더 가까이

전시장 밖에 있던 나무.
'주목'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달려있는 모습이 진초록색과 어찌나 선명한 색상대비를 이루던지.
남자 아이라서 그런가. 따라는 갔지만 아이는 지루해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오랜 만에 신이 나서 여기 저기 자세히 구경하려던 나는 그런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할뻔! 하다가 한편 생각하니 내가 좋은 것을 아이도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를 나는 별로 안 좋아하듯이. 지난 주 캠핑에 같이 가자는 아이의 간청에도 결국 같이 안가고 남편과 아이만 보내고 집에 남아 자유를 만끽했던 내가 아닌가? 그래서 아이를 꼬득였다.
"다린아, 엄마는 오랜만에 보고 싶은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신이 나는데. 너는 재미없겠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니 참아주자, 그렇게 생각해주면 안될까? 너, 엄마가 기분 좋아하면 너도 좋아하잖아~~" 조금 이해하는 것 같다가 30분 쯤 지나니 또 집에 가자고 툴툴거린다. 이번엔 또 다른 방법으로 회유.
"이런 것들 구경하는 동안 다린이 아이디어 뱅크에 너도 모르게 하나씩 둘씩 저축이 되고 있는거야. 나중에 뭔가 다린이가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할때 그때 불쑥 튀어나와서 멋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거지, 아이디어가 그냥 생기는게 아니거든."
이 방법으로 또 한 30분 버티고.
오늘이 마침 한글날이라 야외에서는 커다란 천에 커다란 붓으로 글자를 쓰는 컬리그래피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는데 잘 보니 '뿌리 깊은 나무는' 으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었다.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방송국에서 취재나왔는지 내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한글의 어떤 점이 좋다고 생각되느냐고. 뭐라 뭐라 대답했더니 다시 대답해달라면서 카메라로 찍어가고 이름이랑 사는 곳을 적어갔다.
어느 시간에 TV 에 잠깐 비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