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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이야기 ㅣ 바깥바람 4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 이름 치고 참 특이하다 생각했었다.
어떤 모임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책 출판사 중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곳 얘기를 하다가 창x, 사계x 등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바람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였다. 역사가 그리 오래된 출판사는 아니지만 그 출판사의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고 프랑스 문학과 번역 일을 하다가 이 출판사를 만들었는데 꽤 까다롭게 작품을 고른다면서.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가려낼 줄 아는 소신과 주관이 있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그 이후 그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을 읽어보게 되었고, 또 아이들 책들을 읽다보니 최 윤정이라는 이름을 번역자의 이름으로 자주 보게 되었다.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의 대표 이름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 수지 모건스턴의 작품을 국내에 많이 소개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번역 작품이 아닌 최 윤정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집이 작년에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물로 받는 기회까지 생겨 반갑게 읽어보았다.
보통 책들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제목 외에는 아무 그림이 없는 붉은 표지는, 꼭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 가죽 표지를 닮았다. 제목이 양파이야기란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2004년 부터 2010년까지 7년 동안 바람의 아이들의 다음 카페에 '바람결'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렸던 글을 선별해서 실었다. 7년 동안의 기록이라. 저자의 소개말에도 있듯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과장이 심하지 않다면, 쉽게 일반화 시키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과연 책의 초반은 그저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더니 중반을 넘어가면서 저자의 생각과 주관이 이렇게 저렇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제목 아래 글이 길어야 네쪽, 짧은 것은 세줄. 아마도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저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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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인 무관심
열정적인 관심이 아니라,
우호적인 무관심이다.
차이를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5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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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일 공감한 구절을 꼽으라면 위의 글일 것이다. 금방 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관심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관심의 표현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나만 위한 것도 아니고 상대만을 위한 것도 아닌, 나와 상대의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요령일 수도 있다. 상대와 나의 차이가 있음을 거리감과 동일시 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이다.
저자는 인간은 세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인 기질이 있는 사람, 시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 그리고 시인을 부러워하면서 사는 사람, 이렇게 나누었다. 세번째 부류의 사람을 짝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제일 불쌍해보인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시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나는 저 시인의 자리에 어떤 단어를 넣을 수 있을까?
한국 학교에 다니다가 잠시 엄마를 따라 프랑스에 머물면서 그곳 학교를 다니게 된 저자의 아들이 한 말,
"우리 나라에서는 학교에 딱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생각'이라는 건 할 필요가 없거든. 진짜로 1분도 생각할 일이 없어. 그런데 여기 교육은 항상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
우리 나라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할 수록 점수가 나쁘다는, 문제집을 자기 키 만큼 풀어야 좋은 대학엘 간다는, 심지어 졸면서 문제를 풀어도 정답을 맞힐 수 있도록 문제집을 풀고 또 풀어야 한다는 한국의 입시 교육. 얼마 전에 읽은 아이들책 <학교엔 왜 가야하지> 생각이 난다. 그 책에서 어린 아이가 자기가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것이 교육이고 학교이구나 생각했었다. 우리 나라 학교는 제외.
잘 쓴 글이 곧 더 진실된 글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도 공감이 되었다. 사람의 생각은 그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결론짓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단정하게 논리적으로 써내려간 글을 추구하던 20대 때의 생각과 다르게 나이를 좀 먹은 지금 생각은 잘 짜여진 글일수록 거짓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사람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 그 사실 앞에서 과연 우리는 나의 생각이 절대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고 목청 높여 주장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이를 먹어가면서 도달하는 곳은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이 세상은 흑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우유부단, 그것일까?
양파 맞구나.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고 나라는 존재도 그런 것이구나. 미로 같은 것이구나.
나중에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 그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될까, 지나가듯이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