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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바꾼 사진들 - 카메라를 통한 새로운 시선, 20명의 사진가를 만나다
최건수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나라 사진 작가 20명과 그들의 사진 작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역시 중견 사진작가인데 책을 시작하는 글을 읽자마자 대번 그의 글쓰기가 보통 수준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 소개를 보니 사진 평론으로도 꽤 많은 활동을 해온 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 사진 작가라면 김아타, 배병우 정도가 고작인데 여기에 소개된 20명의 사진 작가 대부분은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 그들의 작품과 작품 세계에 대해 읽으며 사진이라는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진의 기능, 즉 기록과 재현에 중점을 둔 사진을 '스트레이트 사진 (straight photo)', 찍는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해석이 다양한 기법으로 표출되는, 즉 예술 사진이라고 하는 것을 '만드는 사진 (Making photo)' 라고 한다는 것. 예전에는 사진을 잘 찍는 비법으로서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요즘 사진은 머리로 찍는다고 한다. 물론 위의 '만드는 사진'의 경우에 해당하겠지만, 작가의 작업 노트에서 사진의 절반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현대 사진은 더 이상 김삿갓처럼 세계를 대책없이 떠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찍기 전에 대상에 대한 이해, 경험, 인식과 같은 사유능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김병걸. 그는 동일한 사진을 아주 미세하게 잘라 붙임으로써 하나의 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기법을 Optical art라고 한다고 하고 작가는 특별히 '흔들기 (shake)' 라고 부른단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마를린 몬로의 사진과 모택동의 사진을 세로로 잘게 잘라 번갈아 붙여 작품을 만들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유현미의 경우는 조각을 전공했다가 사진으로, 이제는 영화까지 시도하는 중인데 본인의 조각 작품을 찍어서 유명해진 사진가인 바바라 카스텐 (Barbara Kasten)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해오고 있다.
이처럼 처음부터 사진 작가가 되기로 하고 사진을 전공한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그림, 조각, 건축, 심지어 임양환 같은 사진작가는 공학박사 출신이다. 그의 논문 제목은 '중크롬산 젤라틴의 사진적 특성'이었다나. 줄곧 고전적인 인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특히 어둠과 아침이 교차하는 magic hour (촬영에 필요한 일광이 충분하면서도 인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명 혹은 황혼 시간대)를 담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정동석은 드물게 현실참여 사진가로서 한때 미행되고 도청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작품 Full Empty 289-267, 두개의 달이 겹쳐서 떠있는 듯한 Dreamscape 225-1을 보면 그를 따뜻한 통찰의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천경우 작품이다. 보다시피 흐릿한 초상 사진.
고남수의 제주오름 사진은 없는 듯 있는 듯 드러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깔끔한 디자인적 명암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배병우의 오름과 차이점을 보인다.
구본창의 작품중 '숨'이라는 작품은 작가 아버지의 임종 사진. 숙연해지기도 하고, 이 순간 카메라를 들 생각을 했던 그에 대해 이 책의 저자도 언급을 하고 있다. 그에게 카메라를 들지 못할 순간이라는건 따로 없는 것이다.
김대수는 다양한 매체를 하나의 콜라주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유행을 거슬러 만드는 사진에서 스트레이트 포토로, 실험에서 전통 사진으로 역전환을 했다.
노순택의 사진은 얼마전 대전시립미술관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기획전에서 낯이 익었다. 대추리를 찍은 작품마다 흰색 공이 들어가 있었고, 당시 도슨트가 저 공이 무엇인지 알겠느냐고 관람객을 향해 질문을 던졌었다. 그 흰공 같이 생긴 물체의 정체는 레이돔 (Radome)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레이더. 우리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보호의 명분 아래 정찰되고 있는 것이다.
스무명의 작가들이, 각기 다 다른 경로를 통해 사진 작가가 되었다. 처음부터 사진 작가가 되기로 작정한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아마도 그건 사진 작가의 경우에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이렇게 자기 세계를 뚜렷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이것이 아니다 싶었을 때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쪽으로 삶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용기와 주관이 있었다는 것.
이들은 모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찍지 않는다. 찍기 전, 혹은 찍은 후 제2의 작업을 통해 사진을 사진 이상의 무엇이 되도록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바로 대상에 대한 이해, 경험, 인식과 같은 사유능력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저자가 말하는 아마추어적 시각이란? 소재를 선택할 때 남의 관심을 끌만한 대상, 시각적 힘이 강한 사진을 추구하는 것. 그것들을 한 장의 사진에 담고자 하는 명작 의식.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이있게 사진 관련 일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