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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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기에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전단계 아니냐고 누군가 말했을때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했다. 짧은 분량속에 더 탄탄하게 무장을 해야할 구성, 그리고 뚜렷한 메시지와 임팩트, 많지 않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뚜렷해야할 캐릭터. 단편이 갖춰야할 조건은 많다. 세계적으로 단편 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져있는 체홉의 작품집을 읽었다.

안톤 체호프. 1860년 러시아 생. 의대를 졸업하여 의사로 일하면서 직업 작가로도 활동한 사람. 자신을 조련하기 위해서라며 홀로 사할린으로 가서 거주하며 마흔 편이 넘는 작품을 쓴 사람. 1904년 병세가 악화되어 독일 휴양지에서 "이제 죽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미소를 지으며 운명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굴>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아들과 구걸을 해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굴'이라는 생소한 음식을 소재로 한 짧은 글에서 보이는 간략, 압축, 주제의식을 통해, '단편'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진창> 팜므 파탈의 손아귀에서 채례로 당하는 두 남자 형제의 이야기이다. 단편의 힘은 '반전'에 있는 것일까?

<구세프> 죽음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죽든 죽음은 명예로울 수만은 없고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구세프는 아무도 아니다. 구세프는 나이고 너이다.

<검은 수사>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브린은 체호프의 전기적 인물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검은 수사라는 망상적 존재를 통해 코브린은 학문으로 성공을 바란 것, 실패한 결혼 생활 등에 대해 주입당하게 된다. 우리 인생에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검은 수사라는 존재에 대적하여 무너지지 앉을 힘을 키우는 것은 평생을 통한 숙제임을 깨닫게 한다.

<로실드의 바이올린> 평생 한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가 죽고서 비로소 찾아온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역시 죽음을 맞게 되는 관 짜는 이 야코프의 이야기이다. 평소 혐오해 마지않던 유대인 로실드에게 자기의 바이올린을 넘겨주는 행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한 자각으로, 자비를 베풀며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은 처음이자 마지막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항상 너무 늦게 깨닫는다.

<상자 속의 사나이>자신이 규정한 상자로부터 벗어날까봐 안절부절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특이한 것은 이 이야기 속 중심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아무 관련없는 사람이, 역시 아무 관련없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산딸기> 앞의 '상자 속의 사나이'와 이 작품 '산딸기', 뒤의 '사랑에 관하여'는 사할린에서 돌아온 그가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라는 곳에 머물며 쓴 작은삼부작에 해당하는 연작 단편들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영역은 때로 그 사람의 한계가 되고 상자속이 되고 넘고 싶지 않은 경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관하여> 동양적 사고 방식으로는 그닥 새로울게 없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결혼과 별개로 오고, 별개로 진행되는 막돼먹은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을 뿐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앞의 '산딸기'나 '사랑에 관하여'와 비슷한 소재,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 이 책의 앞에 수록된 작픔들에 비해 뒤로 올수록 너무 익숙한 소재인 느낌인데 제목때문에 그나마 눈길을 끈다. 바람둥이 남자와 우울하고 소심한 여자. 실제 현실에서 이런 성격의 남녀 사이에 서로 끌리게 될 가능성, 그것도 평생에 한번이라 할 만한 사랑을 할 가능성을 얼마나 될까. 뒤늦게 발견한 사랑을, 숨어서 하고 회한에 젖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의 단편 모음집은 제일 속도감 있게 읽혀지는 책이다. 안톤 체호프 하면 '벚꽃 동산'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그것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대개 어떤 분위기일지 조금은 머리 속에 그려진다.

펭귄클래식 시리즈는 이 책이 처음인데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들고 다니기 좋은 가벼운 제본과 장정이 실용적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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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부터 공부하자-엄마도 몰랐던 나뭇잎 하나

 

와, 백점, 백점!

예전에 식물일기라는 책을 보고 참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그림책중에도 식물에 대해 이렇게 잘 만든 그림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무척 기쁘다.

글작가 윤여림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나무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고, 이 책 역시 나무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서울대 식물학과 이은주 교수가 감수를 하였다.

집 밖에만 나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뭇잎.

우리 어른들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나뭇잎일뿐.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이게 뭐야? 어디서 왔어? 왜 떨어져있어? 왜 이렇게 생겼어? 왜 이것만 빨간 색이야? 이제 이건 어떻게 돼?

나무마다 다 다른 나뭇잎의 모양. 첫 페이지에는 정말 다른 모양의 나뭇잎 그림들로 채워져있다. 이름따윈 나중에 알아도 괜찮다. 이렇게 여러가지 모양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하면 된다. 한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도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다음에야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 나뭇잎 중에 서로 어긋나기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건 왜 그럴까? 모든 생물의 형태나 구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 외에 가끔 크레파스로 쓱쓱 그려진 그림이 나오는데 그건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위한 페이지이다. 이런 것은 아이에게 그냥 보여주기 보다는 엄마가 미리 보고 아이 눈 앞에서 엄마가 이렇게 그려가면서 설명해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자, 이게 나무야. 여기 잎이 있어. 나뭇잎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대신 나뭇잎은 숨을 쉬지. 요기 나뭇잎을 뒤집어서 뒤를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숨구멍이 있거든.' 이런 식으로.

나뭇잎 속에는 물길 밥길이 있다는 설명은 '물관', '체관'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단어에서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이 금방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수나무 같은 그물맥 나뭇잎 모양은 그림 작가가 스탬프로 찍듯이 그려놓았다. 동글동글 나뭇잎이 종이 위에 붙어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좋은 아이디어이다.

햇빛에 나뭇잎을 비쳐보면 여러 갈래 길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물길, 밥길이라는 내용 끝에, 그래서 나뭇잎에 귀를 대면 물과 밥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고 나온다. 이런 표현 하나에서 작가의 감성을 읽는다.

나뭇잎에 낙엽이 왜 생길까에 대한 설명을 네 컷 그림으로 그려놓았는데, 낙엽이 생기는 이치를 이보다 더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떨어진 나뭇잎은 또 누가 이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책 마지막엔 모르는 나뭇잎을 한 페이지에 크게 그려놓고, 나를 찾아온 (그냥 떨어진 나뭇잎이라고 하지 않고) 얘는 어디서 날아왔을까, 이름이 뭘까 궁금해하는 것으로 맺었다. 끝까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놓지 않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다.

자연과 과학에 대해 이렇게 쉽고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해놓은 어린이책들을 보면 정말 감탄한다. 한가지 능력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가는 기쁨이란

 

업적을 남기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한 삶에 '업적'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롭게 하는 일일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뭔가를 남기고 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한 분야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다보면 해볼만한 다른 많은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만 사람이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병선. 언젠가 신문에서 본 것 같은데 그 정도의 기억만 있을 뿐 어떤 일을 한 분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쓰신 작가분의 소개로 비로소 알게 되어 책을 읽어보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은 그녀는 대학 재학 당시 은사 이병도 박사가 심어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평생을 프랑스 어딘가에 쳐박혀 있는 우리나라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일을 하며 우리나라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신 분이다. 가족도 없이 타국에서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대한 외롭고 쓸쓸한 투쟁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별로 바라지 않던 박병선. 병들어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그동안 자기가 걸어온 길, 기울여온 노력을 작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결국 이 책이 나오고서 얼마 안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책은 우리 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라는 것은 학교 다닐때 국사시간에도 배워서 잘 알고 있으나 아는 것은 딱 그것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던 것이 어떻게 바로 잡아 졌는지, 누구에 의해서인지, 어떻게 그것을 증명해보였는지, 직지심체요절이 대체 어떤 책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지심체요절은 박병선이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다니다가 운좋게 발견해내었고 그것이 세계 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어떤 업적을 이룬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다는 것은 그 업적이 무엇이든간에 가슴 뭉클하게 한다.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생의 다른 많은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

'십년을 하루 같이' 라는 각오 없이 무엇을 이루길 기대하지 말아야 함을 또 깨닫는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한국 자료와 고문서들에 파묻혀 살아오셨습니다. 후회는 없으신가요?"

"천만에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누군를 만나는 건 순간적인 기쁨일 뿐이에요. 무언가에 몰두해서 몇 년을 헤매다가 마침내 찾아내는 기쁨이 어떤 건지 아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가는 기쁨입니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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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1-0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3년 한해도 책 많이 읽고 좋은 글 쓰는 님을 기대합니다~ ^^

나뭇잎 하나, 제가 꼭 봐야 할 책이네요.
박병선님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이 책은 꼭 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hnine 2013-01-05 13:0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숲해설가 과정 참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도 기회가 되면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용이야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아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시키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노하우가 필요할테니까요.
2013년도, 2014년도, 책과 떨어져 살 수 없지요. 순오기님도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려요.

파란놀 2013-01-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뭇잎 하나는 예쁘장하기는 한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나뭇잎을 바라보다 보면...
살짝 모자라거나 아쉬운 대목이 많답니다.

같은 나무라 하더라도, 나뭇잎 모양이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다른 나무 나뭇잎이랑 비슷하게 보이기도 해요.
그림책에서는 몇몇 도드라지는 나뭇잎만 보여주는데
더 넉넉하게 보여주지 못하더라고요.

우리 집 아이들은, 그냥 들판과 숲에 가서
손수 나뭇잎 만지며 놀아요..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실제 나뭇잎'은 훨씬 반들반들 반짝거리며
싱그러운 푸른 빛깔이요 누런 빛깔 붉은 빛깔인데
그림책에서는 이 빛결을 좀처럼 살리지 못해요..

hnine 2013-01-05 12:5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아무리 책이 뛰어나다한들 실제로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만 하겠어요.
전 그래도 그림책으로서 이 정도면 아주 만족입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작가가 아주 잘 썼다고 생각해요.

프레이야 2013-01-0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병선, 전 몰랐던 인물이야기군요. 관심갑니다. 나인님 올해에도 알찬 페이퍼 기대할게요.^^

hnine 2013-01-05 13:05   좋아요 0 | URL
작가분께서 실제로 이 분을 취재하기 위해서 프랑스에서 한동안 머물며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본인에 대한 것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무척 싫어하셔서 취재에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여생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많이 달라지셨대요. 가족도 없이 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셨다는데 본인은 후회없는 생을 살았고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하셨다니 참 대단하세요.
프레이야님, 올해도 여기서 함께 해주실거죠? ^^

블루데이지 2013-01-1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지대모 라고 불리셨던 박병선박사님! 대단한 일을 하셨는데 그분의 생활은 전혀 대단하지못해 참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어요^^의궤에 관심이 있어서 의궤반환될때 이분도 한국에 오셔서 오래 편안히 사셨으면 했는데 돌아가셔서...아이들 읽어줘야겠어요!책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덕분입니다 hnine님♥.

hnine 2013-01-10 15:33   좋아요 0 | URL
역시, 블루데이지님! 말씀하신대로예요. 의궤반환될때 한국에 잠시 오셨다는데 그때 이미 병세가 안좋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에 대해 얼마나 알려진게 없는지 돌아가시고 국립묘지에 안장될때서야 알게 된 사실들도 많대요.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혼자서 분투하는 대목을 읽을 때에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에 대해 나온 책이 이것말고 한권 더 있는데 저는 이 책 저자로부터 인터뷰 과정에 대한 얘기까지 직접 들어서인지 더 끌리네요 ^^
 

아이는 심심할 때 특별한 힘을 가진다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놓은지 꽤 오래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마침 발견하여 보게 되었다.

글쓴이 넬리 스테판은 1921년 프랑스 태생 여류 작가이며 글을 쓴 어린이문학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앙드레 프랑수아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1915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거의 평생을 산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화가, 조각가.

이 책은 195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고 하니 정말 나이가 지긋한 책이다. 뉴옥타임스 올해의 우수그림책에 선정된 것도 1958년.

제목의 '롤랑'은 이 책에 나오는 남자 아이 이름이다. 이 아이가 책의 주인공이 될만한 특징은 무엇일까?

지각을 한 벌로 교실 한 구석에 서있던 롤랑은 심심해서 연필로 벽에 호랑이를 그리고 "쨍!" 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린 호랑이가 살아나 교실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께 인사까지 한다. 여기서 선생님이 놀라 호들갑을 떠나? 아니다. 인사를 하는 호랑이에게 선생님의 대답은,

"음, 여기에 네 자리는 없다."

마치 새로 들어온 학생에게 대하듯 한다.

다음엔 교실에 혼자 남은 롤랑이 얼룩말을 그려 창문에 붙인다. 이번엔 "쨍!" 하고 말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다시는 "쨍"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얼룩말은 살아나온다. 아이들이 밖에서 던진 눈 뭉치가 날아와 유리창이 "쨍!" 하고 깨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교실이 겨울 숲으로 변하기도 하고 동물원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읽으며 신이 날 것이다. 롤랑은 이런 재주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강물 속에도 들어가며 당나귀, 얼룩말, 물고기 들과 친구가 된다.

나중엔 무사히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이들 책 다운 마무리이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작가의 상상력, 현실에 제한받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제 아이들은 나무에서도 동물의 모습을 보겠구나

 

원제는 The Forgotten Garden. 우리말로 '잊혀진 정원'이다.

'두레아이들'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책에 작가에 대한 소개글이 나와있지 않았다.

한때 아름다웠던 정원이 폐허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할아버지는 조금씩 정원을 손보기 시작하고, 그 결과 점차 예전의 정원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사실 내용보다 그림이 특색있어 보게 된 책이다. 사물의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스케치 풍의 그림인데, 파스텔 톤의 두드러지지 않은 잔잔한 색깔로 명암을 살려 입체감을 표시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나뭇잎 그림이 나오는데 크게 그려진 나뭇잎은 실제 나뭇잎을 아래 대고서 질감을 표현한 듯. 나뭇잎의 실감이 나면서 종이 위에서 생동감을 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자칫 나무 얘기만 나와서 아이들이 지루해하기 쉬운 것을, 나무를 전지하면서 공룡의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여우가 되기도 하며 튼튼한 말이 되어 힘차게 뛰어오르기도 한다는 내용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하였다. 앞으로 나무를 볼때 자기도 모르게 나무를 나무의 모습으로만 보는 대신 그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의 키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그림책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책

 

겉장을 들추면 그림책 작가 (김영진)가 이 책을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갔는지가 자세하게 그림과 메모로 나와있다. 2011년 8월 부터 2012년 1월이라고 작업 기간까지.

보통 섬네일 스케치 (Thumbnail sketch)라고 하는데, 열 여덟 조각 그림들과 함께 수정 과정들, 왜, 어떻게 수정했는지에 대한 메모를 읽어보니 그림책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이는 느낌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 페이지를 자세히 안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출판한 길벗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는 작가 고대영이 글을 썼다. 분명히 작가 자신의 아이들이 모델로 등장한 것 같은데 모든 아빠가 이렇게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을 어른이나 부모가 아닌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자세히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마음 없이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니까.

가족이 하루 등산 다녀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였다. 열두살 아이가 보고도 재미있다고 하니 성공이다.

 

 

그림 속에서 펭귄, 양, 비행기를 찾아라

 

이 그림책 작가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재미를 줄 수 있을까 늘 생각하는 작가라는 생각, 그리고 분명히 아이다운 장난기도 있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든한다. 하나의 예로서, 이 작가의 그림책에 보면 책 내용과 무관하게 페이지마다 아주 작은 동물이나 사물 캐릭터가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이 책에서는 펭귄과 양과 비행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아이들이 벌을 설 때는 한 구석에서 이 캐릭터들도 벌을 서고 있다. 아이들이 신나서 뛰고 있을 때는 이것들도 팔짝팔짝 뛰고 있는 모습이다.

우연히 주운 돈을 가지고 요요를 산 병관이의 파란만장한 (!) 하루. 마지막 페이지에 이불 차버리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 키우는 집이면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편안하게, 아주 착하게 잠이 든 병관이'라는 그림작가의 메모를 발견하고 마음이 더 푸근해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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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1-0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럼을 읽은 것처럼 재미나게 읽었어요
지원이 병관이 시리즈빼고 두책은 안 읽은 책인데 롤랑이 참 궁금하네요.
전 멈춰있는데 님은 계속 어린이책을 읽고 공부하시면서 발전하시는 듯해요.
좋은 책 이야기 잘 읽고 담아두고 갑니다.

hnine 2013-01-04 11:46   좋아요 0 | URL
그림책을 포함한 아이들책을 좀 더 꼼꼼히, 많이 읽어보자는 것이 올해 계획 중 하나랍니다. 공부의 차원이라기보다 오히려 저 자신을 위한'힐링'의 효과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하늘바람님도 읽어주시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으면 저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블루데이지 2013-01-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원이 살아있어요^^의 그림들이 너무 보고싶어요!
제 취향이라서 정말 숨은보물을 대신 찾아 안겨주신것같아요!! 우잉~~hnine님 감사드려요!

저희집은 지원이와 병관이 남매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살고있어요!
삼일이 멀다하고 시리즈 전권을 다 읽어줘야 잠자는 아이도 살아요!ㅋ
제가봐도 재미있긴해요!실생활동화라서 더욱 재미있는게 아닐까싶기도하구요♥

hnine 2013-01-04 14:30   좋아요 0 | URL
'정원이 살아있어요'는 가수원도서관에서 빌렸어요. 블루데이지님 댁에서는 어느 도서관이 가까운가요? 이사오고나니 가까운데 도서관이 없어서 예전만큼 자주는 못간답니다. 버스타고 내려서 버스탄 시간보다 더 걸어가야해서요.
지원이와 병관이 작가가 예전에 TV에 나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글쓴 작가보다 그림 작가에 더 관심이 가던데요? ^^ 블루데이지님 댁 아이들도 이 책을 좋아하는군요. 확실히 성공작 맞나봐요.
 
삶을 견뎌내기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이레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겉표지도 벗겨지고 없는, 낡고 자그마한 책이 도서관 서고의 다른 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것이 내 눈에 띠었다.

H Hesse라고 흘림체로 쓰여진 위에 제목은 Das Leben Bestehen. 우리말 제목은 <삶을 견뎌내기>라고 되어 있었다.

바쁘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기쁨에 대적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9쪽)

이 책의 첫 문장이다. 한 페이지를 넘겨보니 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쾌락은 점점 더 많아졌지만 즐거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참가하거나 놀이공원에라도 찾아간 사람은 몸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고, 눈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뻑뻑해져 연신 얼굴을 찡그려야만 하고, 지저분한 기억만 머릿속에 간직하게 된다. (10쪽)

소통수단은 갈수록 첨단을 달리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더 커져간다는 말이 연상되는 구절이었다.

헤세라는 사람.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지는 아주 오래 전이지만 읽으면서의 그 충격만은 지금도 기억한다. 이후로 읽은 <데미안>, <지와 사랑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역시 읽고 금방 잊혀지지 않는 작품들로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그의 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인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더니 <한밤 중의 한 시간>이라는 책을 읽을 것도 같고 제목만 눈에 익은 것도 같고.

자기계발서 제목 같은 이 책은 그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시와 산문들의 모음집이다. 그에게 삶은 견뎌내야할 긴 여정이었음은, 그가 열 다섯 살에 이미 자살 시도를 했었다는 것, 수도원에 입학했으나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는 이력 등을 떠올려볼때 의외는 아니다.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삶, 진정한 삶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왔을 그가, 삶에 대해 하는 어떤 얘기에도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고통의 세계를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고수해왔다. 다시 말해 나는 고통과 그보다 높은 힘에 나 자신을 내맡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그와 같은 힘에 맡겼다. (126쪽)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보다 어쩌면 그 고통 앞에서, 고통을 애써 외면하며 피해갈 방법을 찾는 동안이 고통 자체보다 더 인간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는데 공감한다.

133쪽에,

과감하고 맹목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단호하게 뛰어들어 호두껍질 안에 숨어 있는 혼돈을 창조해내려 한다.

이것은 곧 예술 활동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정의가 아닐까 하여 밑줄. 혼돈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 과학이라면 숨어 있는 혼돈을 창조한다는 말이 멋지다.

예술가의 종착지이자 목적지는 이제 더 이상 예술이나 작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고 단념하는 것, 영혼의 평온함과 성스러운 존재를 위하여 콤플렉스와 고뇌에 사로잡힌 편협한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다. 개인을 초월하는 자아, 즉 세상과 시간에 더 이상 사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정신적인 상태에서 세상의 혼돈이 음악으로 바뀌는 성인으로 발전하는 것이 예술가의 목표일 것이다. (135쪽)

자기 자신을 잊을때, 그래서 개인을 초월할 때, 세상과 시간에 사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때, 예술 뿐 아니라 그 어떤 가치있는 목표가 이루어지는 때는 그것에서 초월할 때라는 말은 얼마나 모순이면서 동시에 고개 끄덕이게 하는지.

자칫 어둡고 무겁고 회이적일 것 같은 그의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도 발견한다.

다가올 행복에 대한 거짓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오늘을 영원히 내일에게 제물로 바친다. (219쪽)

그가 말하는 견뎌내는 삶이란,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무시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눈은 '내일'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고정시키고, 우리는 영원히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지 않는지.

책의 뒷부분에 가면 '유쾌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쾌함이란 장난이나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식이자 사랑이며 모든 현실을 긍정하고 모든 나락과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깨어 있는 것이다. (...) 그리고 유쾌함은 아름다움의 비결이며 모든 예술의 본질적인 실체다. (...) 시인이나 음악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의 어둠이나 고통 혹은 근심이 아니다. 그들은 순수한 빛, 즉 영원한 유쾌함 가운데 한 방울을 우리에게 나누어준다.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 진화론 또는 종교에서 세계의 깊이를 재려고 아무리 애써봐도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경지는 바로 그 유쾌함이다. (226쪽)

결코 유쾌한 책이 아닌 이 책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라니. '정말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은 우리 시대와 정신의 범위 내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그는,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 고뇌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자신을 소진시키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을 때 오는 유쾌함을 목적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리뷰를 쓰기 전에 ★★★☆☆ 으로 별점을 주었다가, 다 쓰고 나서 ★★★★☆로 고친다. 이 책에 담긴 그의 모든 생각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별점 세개 했던 것을, 리뷰를 쓰다보니 좀 더 한발짝 그의 세계에 다가간 것 같아서이다.

'견뎌낸다'는 것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목표에 대한 긍정, 인정.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견뎌내게 하는 동기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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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1-0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웁자고 읽는 책이고
즐겁게 누릴 삶이겠지요

hnine 2013-01-02 06:56   좋아요 0 | URL
새해에도 즐겁게 삶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늘바람 2013-01-0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님이 먼저 챙겨주셨는데 제가 지난해 감사도 잘 못드리고 해가 바뀌었네요
저도 올핸 정신 차리고 나누고 갚으며 여유있게 살고 싶어요
님 올핸 조금 덜 외롭고 덜 춥고 덜 쓸쓸하고 덜 마음 아프고 덜 힘들어서
더 따뜻하고 더 행복하고 더 푸근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hnine 2013-01-02 07:00   좋아요 0 | URL
제가 챙겨드리기는요 뭘.
좋은 일 있었던 2012년이었지요? ^^
조바심 내지 말고 뭉근히, 꾸준하게, 그렇게 삶을 꾸려나갈 때라고 제 스스로 다짐하곤 합니다.
태은이 가지시고 서재에서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한마디씩 써주고, 그럴 때가 있었는데 어느 새 저렇게 예쁘게 크고 있고, 동생까지 봤으니...제가 키운것도 아니면서 그냥 흐뭇하네요. 알라딘을 통해 좋은 분들 알게 된 것도 별로 친구 없는 제게는 감사할 일이고요.

2013-01-01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2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3-01-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투덜투덜 뾰루퉁해져있었는데 hnine님 서재에 와서 글을 쭈욱 읽어내려가니
부끄러워졌어요! 예전엔 안그랬는데 왜 갈수록 '욱'하며 한숨을 토해내는지...
이런 저를 노골적으로 발견하고는 움찔했답니다.
긍정인정유쾌함동기견뎌냄삶 이런 문장들이 뭉쳐져 오래 맘에 머물듯 싶어요!
아! 수레바퀴아래서 다시 읽고싶어졌어요! 머리랑 가슴이랑 동시에 맞물리지않으려 요란히 울리던....그 책!
hnine 님 시동 잘걸고 2013년 출발하셨죠?? 안전운전하셔요^♥♥

hnine 2013-01-02 17:02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이 투덜거릴 일이라면 마땅히 그럴 일이었겠지요. '투덜' 하면 또 저 아니겠습니까? ㅋㅋ
어제는 친정에 다녀오고 (전 시댁이 따로 안계신 이유로), 오늘은 시어머님 기일아라서 지금 음식 준비한다고 부산떨고 있답니다.
'출발'이라는 말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네요. 예전에 박명수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하던 그 억양으로 저도 외쳐봅니다, "출발!" ^^
 

 

 

때로는 즐거운 일도 있지만,

왜 힘겹고 슬픈 날이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까요?

바람 앞에 촛불 같은 가볍고 작은 아이들.

무겁고도 커다란 슬픔에 맞서

꿋꿋하게 잘 이겨 내고 있어요.

우리, 조금 더 힘내요.

초롱초롱 눈빛 잃지 말고 씩씩한 가슴 펴고 웃어요.

알고 있나요.

작은그대들 용기가

이 세상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봐요. 그 새 희망 한 뼘, 또 자랐어요.

착하고 작은 사람들에게 진정

기쁜 날 가득하길.

- 작가의 말 전문 -

 

다 읽고서 표지를 다시 본다.

가방을 메고선 아이의 뒷모습. 이 아이는 지금 다른 아이들이 있는 쪽을 혼자서 바라보고 서 있다.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기에 자기도 끼고 싶겠지. 그래서 이 아이는 우울할까?

 

읽고 있는 나는, 어른인 나는 눈물이 핑 도는데, 책 속의 저 아이 준서는 '오늘은 좋은 날'이라고만 한다.

약간 모자라는 추미영이 짝이 되자, 반 아이들은 차림새가 지저분한 준서와 잘 어울린다고 놀리지만, 자기가 뭔가 도울 수 있는 아이가 짝이 되어 기쁘다며 오늘은 좋은 날.

선생님께서 넌 이제 급식비 안내도 된다고 하시자 이제 아버지에게 급식비 달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오늘은 기쁜날.

집을 나간 엄마가 어느 날 함께 데리고 나간 동생 은지를 데리고 학교에 나타나셨다. 이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건가보다 했지만 자장면만 사주고 다시 돌아가는 엄마. 하지만 동생도 보고 엄마도 보고 자장면도 먹었으니 여러가지 좋은 일이 한꺼번에 생긴 좋은날.

모처럼 인원수가 모자라 끼게된 축구에서 골을 넣고서 오늘은 참 기쁜 날.

어미고양이가 버리고 간 아기 고양이를 돌보며 고양이가 자기와 비슷한 신세라고 생각하지만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아기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촉감에 모락모락 기쁨이 넘치는 날이란다.

반에서 어떤 아이 돈이 없어지자 도둑으로 누명을 쓰지만 나중에 돈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자 범인이 아닌 것이 밝혀져서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란다.

다시 동생을 데리고 나타난 엄마. 이제는 정말로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나보다 했는데 동생만 집에 남겨두고 다시 가버렸다. 나중에 아버지가 아시고 술에 취해 주정을 하며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지만, 그걸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던 동생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동생이랑 다시 함께 살게 된날, 꿈속에서도 기다려왔던 날이니 오늘은 기쁜 날이란다.

 

다 읽고는 기어이 눈물이 나고 마는데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아! 이게 바로 동심이구나!' 슬프고 힘든 일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낼 수 있는 것. 다시 웃을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 작고 약한 존재일 것 같은 이 아이들 마음 속엔 억지로 지어내지 않아도 되는, 희망의 샘이 솟고 있구나.

 

작가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왔다.

동화를 쓰는 사람이란 아이들의 이런 면을 읽을 줄 알고 볼줄 알아야 함을 다시 깨닫게 해준 책.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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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2-29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페이퍼만 읽어도
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음, 읽으면 저도 눈물날거 같아요.
갑자기 왜 코등이 시큰하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해서 이렇게 감정이 먼저 알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나인 언니, 고운 일 담뿍 누리시는 새해 맞이하셔요.

hnine 2012-12-29 18:00   좋아요 0 | URL
어른용 소설보다 아이들 책에서 '힐링'되는 느낌을 더 받아요.
새해에는 더 많이 읽어보려고요.
저 책의 작가는 '영모가 사라졌다'라는 책이 제일 많이 알려졌을거예요. 저도 그 책만 읽었었는데 얼마전에 작가분을 직접 뵐 기회가 있어서 다른 작품도 읽어보자고 읽은 책이랍니다.
오늘은 기쁜날. 마치 우리가 스스로에게 걸어도 좋을 주문 같기도 하지요?
70일 여유 기간동안 잘 쉬고 놀고, 그러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