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습작기에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전단계 아니냐고 누군가 말했을때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했다. 짧은 분량속에 더 탄탄하게 무장을 해야할 구성, 그리고 뚜렷한 메시지와 임팩트, 많지 않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뚜렷해야할 캐릭터. 단편이 갖춰야할 조건은 많다. 세계적으로 단편 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져있는 체홉의 작품집을 읽었다.

안톤 체호프. 1860년 러시아 생. 의대를 졸업하여 의사로 일하면서 직업 작가로도 활동한 사람. 자신을 조련하기 위해서라며 홀로 사할린으로 가서 거주하며 마흔 편이 넘는 작품을 쓴 사람. 1904년 병세가 악화되어 독일 휴양지에서 "이제 죽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미소를 지으며 운명했다.

이 책에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굴>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아들과 구걸을 해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굴'이라는 생소한 음식을 소재로 한 짧은 글에서 보이는 간략, 압축, 주제의식을 통해, '단편'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다.

<진창> 팜므 파탈의 손아귀에서 채례로 당하는 두 남자 형제의 이야기이다. 단편의 힘은 '반전'에 있는 것일까?

<구세프> 죽음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죽든 죽음은 명예로울 수만은 없고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구세프는 아무도 아니다. 구세프는 나이고 너이다.

<검은 수사>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브린은 체호프의 전기적 인물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검은 수사라는 망상적 존재를 통해 코브린은 학문으로 성공을 바란 것, 실패한 결혼 생활 등에 대해 주입당하게 된다. 우리 인생에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검은 수사라는 존재에 대적하여 무너지지 앉을 힘을 키우는 것은 평생을 통한 숙제임을 깨닫게 한다.

<로실드의 바이올린> 평생 한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가 죽고서 비로소 찾아온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역시 죽음을 맞게 되는 관 짜는 이 야코프의 이야기이다. 평소 혐오해 마지않던 유대인 로실드에게 자기의 바이올린을 넘겨주는 행위는 아내의 죽음을 통한 자각으로, 자비를 베풀며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은 처음이자 마지막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항상 너무 늦게 깨닫는다.

<상자 속의 사나이>자신이 규정한 상자로부터 벗어날까봐 안절부절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특이한 것은 이 이야기 속 중심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아무 관련없는 사람이, 역시 아무 관련없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산딸기> 앞의 '상자 속의 사나이'와 이 작품 '산딸기', 뒤의 '사랑에 관하여'는 사할린에서 돌아온 그가 모스크바 근교 멜리호보라는 곳에 머물며 쓴 작은삼부작에 해당하는 연작 단편들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영역은 때로 그 사람의 한계가 되고 상자속이 되고 넘고 싶지 않은 경계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관하여> 동양적 사고 방식으로는 그닥 새로울게 없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결혼과 별개로 오고, 별개로 진행되는 막돼먹은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을 뿐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앞의 '산딸기'나 '사랑에 관하여'와 비슷한 소재,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 이 책의 앞에 수록된 작픔들에 비해 뒤로 올수록 너무 익숙한 소재인 느낌인데 제목때문에 그나마 눈길을 끈다. 바람둥이 남자와 우울하고 소심한 여자. 실제 현실에서 이런 성격의 남녀 사이에 서로 끌리게 될 가능성, 그것도 평생에 한번이라 할 만한 사랑을 할 가능성을 얼마나 될까. 뒤늦게 발견한 사랑을, 숨어서 하고 회한에 젖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의 단편 모음집은 제일 속도감 있게 읽혀지는 책이다. 안톤 체호프 하면 '벚꽃 동산'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그것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대개 어떤 분위기일지 조금은 머리 속에 그려진다.

펭귄클래식 시리즈는 이 책이 처음인데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들고 다니기 좋은 가벼운 제본과 장정이 실용적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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