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지음, 이근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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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기 이전에도 나는 워낙 약을 안먹을 수 있으면 안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몇년 전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당히 높아 당장 약을 먹기 시작해야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콜레스테롤 낮추기 위한 약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항상 그렇게 약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즉각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어서 빨리 완치될 수 있는 경우, 2차 감염을 막아야 하는 경우 등, 이럴 땐 병원에 가고 약도 처방받아 먹는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 혈압을 낮추는 약, 혈당을 내려주는 약 등등, 흔히 평생을 먹어야 한다며 처방해주는 약은 약을 먹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  증명해보일 능력은 되지 않지만 그냥 직감이라고 할까. 매일 한개의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하면 몇 년 뒤에는 그것이 두개가 되고, 세개가 되는 것, 장기 복용의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지도 않던 증상이 나타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마 가까이서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이다.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기'라니. 하지만 저자 본인도 의사인 다음에야 할 말이 없다. 중요한 건 제목이 자극적이냐 아니냐 보다는 책에 담긴 내용일 것이고, 저자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근거와 배경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몇가지 주목한 부분을 요약하여 남기기로 한다.

 

- 고혈압은 90% 이상이 원인 불명이다. 혈압을 낮추었더니 사망률이 하락했거나, 심장병이나 뇌졸중 같은 질환이 감소되었음을 검증해주는 실제 데이터는 아직까지 없다. 성인이 되면 동맥도 노화로 딱딱해져서 혈액을 흘려보내는 힘이 약해진다. 따라서 우리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혈압을 높이려고 한다. 뇌나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46쪽)

- 의학계가 기준치 (reference range) 를 낮추면 제약 업계가 돈을 긁어 모은다. (46쪽)

 

- 약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경우, 항상 몸이 나른하거나 초조하고 분노 조절이 안된다. 약을 사용하는 경우 특히 다리가 휘청거리거나, 치매 증상 등이 나타난다면 약의 부작용을 의심해 봐야 한다. 혈당치가 높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일단 부지런히 걷기부터 시작해보자. (51쪽)

 

- 의료 피폭: 일반인은 X선 검사나  CT검사 등에 의한 의료 피폭에 무관심한 실정이다. 의사들도 값비싼 기계의 본전을 뽑아야 하고 환자에게 직접 문진이나 청진을 하는 것보다 손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으므로 "일단", "만일을 위해"라는 말로 안이하게 CT검사를 권한다. CT검사의 피폭선량은 일반 X선 촬영의 200~300배나 된다. (69, 70쪽)

 

- 증상이 없는데도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 등을 약으로 낮추면 수치는 개선되어도 심장에는 좋지 않다. (75쪽)

 

- 약은 '독'이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소량을 단기간 복용하는 정도라면 간이나 신장이 약의 독성을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약의 복용이 습관화되면 틀림없이 부작용이 나타난다. (79쪽)

 

- 미국에서 의사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의사의 규칙 (1992)>이라는 책에서 발취한 내용:

  •    가능한 한 모든 약의 사용을 중단하라. 그것이 어렵다면 최대한 약을 줄여라.
  •    먹는 약의 수가 늘어나면 부작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4종류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의학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
  •    고령자 대부분은 약을 중지하면 몸 상태가 좋아진다. (80쪽)

- 흔히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암덩어리를 일시적으로 줄인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암덩어리는 반드시 다시 커진다. 즉 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암을 치료한다거나, 좀 더 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92쪽)

 

- 현재 일본이나 한국은 아주 심각한 병원 내 감염 국가이다. 감염증 환자로부터 검출한 황색포도상구균 중에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내성균인  MRSA가 차지하는 비율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탈리아 42%, 미국 40%, 영국 37%, 스페인 36%, 독일 9%, 네덜란드 0%이다. 일본은 70~80%로 이들 선진국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2010년 기준으로 72%). (96쪽)

 

- 암환자의 통증을 다스리는 법: 첫번째 방법은 진정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선 비마취 계열의 진정제를 복용하고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으면 약한 마취 계열의 진정제를 사용한다. 그것으로도 안 된다면 세번째 방법으로 모르핀을 복용하거나 이를 좌약의 형태로 투여한다. 중독이나 의존증이 될 위험이 있는 것은 매번 모르핀을 '주사'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주사로 모르핀을 투여하면 혈중농도가 급상승했을 때 뇌가 반응해 기분이 좋아진다. 이 때문에 모르핀 투여를 그만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99쪽)

 

- 암은 치료하지 않으면 통증을 조절, 통제할 수 있고 그 결과 죽기 직전까지 치매에 걸리거나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일 없이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103쪽)

 

- 무리한 연명 치료로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지 마라: 가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영양을 공급해 주고 싶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수액 주입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환자를 '익사'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수액 주입을 하지 말고 환자가 고목이 말라가듯 자연스럽게 숨을 거두게 하는 편이 낫다. 그것이 환자에게는 고통 없이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이다. (108쪽)

 

- 암의 정의 및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암 검진은 하면 할수록 암이 발견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 중에는 오진도 많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전이하지 않는) 유사 암이나 (커지지 않는) 잠재 암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PET검사는 CT 등의 검사로 발견하지 못하는 암 병소를 찾아내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그 병소는 이미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 진짜 암이거나 유사 암이므로 일찌감치 발견해도 수명은 늘어나지 않는다. (113-115쪽)

 

- 식사요법은 대개 섭취 칼로리를 줄이고 육식을 하지 않거나 현미와 채소만 먹는 식이므로 단숨에 살이 빠진다. 더욱이 자신의 의지로 식사요법을 하는 사람은 의욕이 충만해서 식사요법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살이 급격하게 빠진다. 그러나 암 환자가 그런 식으로 살이 빠지면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서 암세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식해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스모 선수처럼 지나치게 살이 찌면 당연히 수명은 짧아진다. 하지만 건강 조사 데이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사증후군에 막 접어든 정도, 즉 약간 뚱뚱한 사람이 가장 오래 살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장수한다. 정상 세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암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지름길인 것이다. (151-153쪽)

 

- 폐경기 여성은 다시마나 미역의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일본 국립암연구 센터는 2012년에 "해조류에 함유된 요오드는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미네랄이지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갑상선암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발표했다. 해조류를 거의 매일 먹는 그룹이 유두암 (갑상선암의 일종)에 걸릴 위험은, 일주일에 2일 이하로 먹는 그룹의 3.81배나 되었다 해조류를 일주일에 3~4일 먹는 그룹도, 일주일에 2일 이하로 먹는 그룹의 약 2배였다. (165쪽)

 

- 소금의 성분인 나트륨은 뇌가 보내는 명령을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등 생명 유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혈중 나트륨 농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의식 혼탁, 구토, 혈압 강하, 실신 등 심각한 증상을 불러오며 최악의 경우 생명을 잃는다. (173쪽)

 

- 입원 기간이 길면 치매가 온다: 고령의 환자는 입원을 하면 대부분 침대에 누워만 있기 때문에 근력이 떨어져서 머리가 금방 둔해진다. 이것은 치매로 이어지는 큰 원인이 된다. (211쪽)

 

- '건강수명'이란 '보살핌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을 말한다.(216쪽)

 

- 치매는 흔히 '고독병'이라고 불린다. 하루 종일 혼자서 텔레비전만 보는 일상이 계속되면 순식간에 치매가 온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의 뇌는 완전히 수동적이 되어, 멍하니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이므로 점점 퇴화된다. 또한 손발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므로 몸도 쇠약해진다. 반면에 똑같이 혼자서 생활해도 손자에게 줄 스웨터를 짜거나, 경품 응모하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응모 엽서를 쓰거나 과자를 구워서 친구에게 선물하는 등 취미 생활이나 소일거리로 손발과 머리를 자주 쓰는 사람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 (220쪽)

 

- 나이가 들어도 마음껏 울고 웃어라: 희로애락이 강할수록 뇌는 아주 활발하게 활성화되고, 기억을 저장하는 서랍도 늘어난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요즘 한창 유행인 두뇌 트레이닝보다, 의식적으로 희로애락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즉,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을 가지며 즐거울 때나 기쁠 때 크게 웃고 슬플 때나 화가 날 때는 마음껏 우는 것이다. (221쪽)

 

이 책의 맨 뒤에는 '사전의료의향서'의 견본이 나와있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나의 의향을 미리 글로 써두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연명치료에 대한 의향서 작성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는 말을 얼마전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죽음의 방법에 대한 나의 의향을 밝혀놓고 그에 따르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리 이런 책을 읽어도 위에 인용했다시피 의학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 병원에 가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의사가 지시하는 검사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 따져보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환자는 영원히 '을'일 수 밖에 없는가 생각도 들지만 이 세상엔 0과 1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르면서 맹신하는 것보다 어쨌든 나는 아는만큼 믿고, 아는 것을 믿는 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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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3-28 06:18   좋아요 0 | URL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타 천국이네요. 에궁~ 읽으실때 불편하셨겠어요. 고쳐 넣었습니다.

Ralph 2014-03-2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의사라기 보다는 진료 체계의문제이지요. 지난 50년간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의사를 교육, 훈련, 격려, 혹은 압박, 강제해왔습니다. 즉 더많은 약을 주고, 더많은 검사를 하고, 더 많은 수술을 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해왔습니다. 쓸데없이 환자와 긴이야기를 나누거나, 진찰만하고 약을 주지 않거나, 충분히 고가의장비를 사용하여 가능한 많은 검사를 하지 않은 의사는 과감히 도태시키고, 절대로 이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박멸해버렸습니다. 특히 많은 수술을 한 의사는 소위 "명의"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죠. 더많이 치료하고 더많이 약 처방하고, 더많이 검사한 의료진은 능력있는 의사, 간혹은 명의로 각종 매체에서 다루고, 정부는 훈장으로 포상해왔습니다. 이제 그 덕에 우리 국민은 특별한 증사이 없어도 싼 값에 많은 약과 많은 검사, 많은 수술을 받을 수있는 의료 천국에서 살게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포들이 한국으로 치료하러 온다니 말해 무었하겟어요..

hnine 2014-03-30 08:14   좋아요 0 | URL
Ralph님 서재를 즐겨찾는 서재로 등록 해놓고 올리시는 글을 그동안 읽어오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계신 분의 댓글을 읽으니, 저의 보잘 것 없는 리뷰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네요.
'의료천국' 대한민국이라니, 이제 '천국'이라는 말은 이렇게 아이러니한 경우에만 쓰나봅니다. 여든이 낼모레이신 제 아버지께서도 부정맥과 혈압때문에 약을 드시기 시작하신지 십년이 넘었는데 지금 댁에 가보면 그 약들을 포함하여 드셔야하는 약 봉지들이 식탁위에 한가득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먹어야 하는 약이 늘어나고 있는거죠. 엊그제는 손이 차갑고 파랗게 되어 병원에 가셨더니 류마치스가 아닌가 보기 위해 CT촬영을 하셨다고, 결과 보고 또 약 처방을 해준다고 그랬다기에 그냥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가 사랑한 클래식 - 음악이 삶에 가르쳐주는 소중한 것들
요아힘 카이저 지음, 홍은정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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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 카이저 (Joachim Kaiser). 음악 비평쪽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인지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하지만 독일 태생인 그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우리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비평가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한다. 2009년 5월부터 2011년 1월까지, 남독일신문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들을 독자로부터 받았고 그것에 대한 카이저의 대답을 하나씩 영상으로 찍어 (위의 동영상-독일어로 되어 있어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이저의 클래식 수업 (Kaiser Klassik Kunde)' 라는 비디오칼럼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2012년에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책. 원제를 이 리뷰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Sprechen wir uber Nusik)'.

독자들로부터 어떤 질문들이 그에게 전달되었을까? 쟝르도 깊이도 매우 다양하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가

 

슈베르트는 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았을까

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에서부터,

 

음악이 꼭 감동적이어야 할까?

 

바그너의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독일국가민주당을 지지할 위험에 빠지게 될까?

와 같이 단순하지 않은 질문들도 있다.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그는 장황하지도, 지루하지도않게, 필요한 정도의 대답을 필요한 만큼 들려준다.

연주중에 하는 실수는 비난받아야 하는 일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중에, 아마추어와 프로는 재능동기에 의해 구분된다는 말이 있었다 (93쪽). 재능뿐 아니라 '동기'도 포함시켰다는 것을 주목하여 보았다.

러시아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과연 정말 노래를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외모가 아름다운 것뿐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글에서 마지막 문장,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성공에는 그럴 만한 비결이 존재하는 법이다. (156쪽)

다른 사람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대작과 중간치'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였다.

극단이 세상을 값지게 만들긴 하지만, 정작 세상을 지탱하는 것을 중간치이다. (175쪽)

제일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예술 문외한'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나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처럼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을 좋아하면 아직 음악의 문외한인 걸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글이다.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은 우연히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안에 위대한 음악이라 할 만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고, 이런 음악들을 좋아하고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므로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양상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는데서 더 나아가지 않고, 더 이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거나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지 못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했다. 예를 들면 '모짜르트가 힘든 시기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작곡했다면 그는 대체 그 작품을 둘러싸고 무엇을 더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라든지, 에어처럼 아름다운 곡을 탄생시킨 바흐가 어떻게 마태수난곡의 소프라노 파트 같은 성부를 작곡할 수 있었을까?'  이런 등등의 질문들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그저 만족하고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듣기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음악의 문외한이 되는 지름길에 서 있는 것이라고. 호기심은 곧 더 알고자 하는 동기이고 욕구이다. 관심없이 불가능한 일.

가수들의 노래보다 무대 연출을 더 부각하는 요즘 오페라 무대에 대한 우려, 진정한 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글도 공감이 갔다.

음악, 또는 연주가 '독일적'이라고 할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정리도 무리가 없다.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하여 높은 성부의 두드러지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이탈리아 음악이라면 독일적이라는 것은 화음을 중시하여 낮은 소리도 가볍게 보지 않고 화성의 깊이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글이 어렵지 않고 짤막짤막하여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독자들의 질문에서 출발한 구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좀 산만하고 두서없어 보여 일관된 흐름으로 집중하여 읽혀지지는 않았다.

 

그가 영웅적인 테너라고 칭한 볼프강 빈트가센이 부르는 바그너의 로엔그린 중 <머나먼 나라에, In fernem Land>를 들어본다. 화성, 깊이, 진지함, 장중함,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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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의 생활전반을 바라보는 특성 같았어요. 단지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짧은 대화에서도 꼭 이렇게 되물었어요..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생각 그 자체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가 더 중요해보였어요.
그림을 그려도 기술적인 것보다 그것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그 사람의 생각과 과정이 훨씬 중요하게 물어지고 그것의 철학과 참신성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태도.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모든 성공에는 그럴 만한 비결이 존재하는 법이다"
라는 말은 크게 와닿네요..나인님..
산만한 책이라 하셨지만 꼭 읽어보고 싶어질만큼 잘 정리된 정성어린 리뷰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글이 참 많네요.. ~~

p.s 마지막 글은 '떠올랐다' 가 아니라 '사라졌다'에 방점이 있는 것 같아서 3 =3= 3= ^^

hnine 2014-03-25 12:06   좋아요 0 | URL
어제 새벽숲길님 서재글에서 '프랑스적' 이란 단어를 보고 바로 그날 밤에 '독일적'이라는 단어를 보니 신기하더군요.
생각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참 멋진 사람이겠지요. 눈에 보이는 것만 자꾸 더 중요시하는 시대에 살면 살수록 자꾸 잊고 살아요.
오페라 로엔그린은 지금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기엔 꽤나 무거운 작품이라고 하네요. 몇몇 사람의 영웅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사랑 받게 되었다고요.
별로 두껍지고 않고 글자도 빽빽하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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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일이다. 나와 같은 과 친구하나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연합써클 첫 모임 (불교학생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 다녀오더니 말했다.

"머리가 좋은 애들은 있지, 보통 사람들은 느낌에서 끝나는 것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해낸단 말야."

난 이 책을 읽으며 왜 이십 오년 전, 친구의 그 말이 떠올랐을까.

감탄, 깨우침의 기쁨, 한숨, 공감하는 어떤 문장은 밑줄로도 성이 안차 통채 외워버리고 싶었다. 가령 이런 문장이 그랬다.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다. 우리의 나약하고 어설픈 절망을 위해 문학은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한없는 절망의 끝에나 겨우 있을 것이다. (98쪽)

 

삶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102쪽)

 

오십을 눈 앞에 두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알게 된 것이란 고작 삶은 절망이고 허무하다는 사실이라는 것에 며칠 더 허무하고 절망스럽던 차에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이 뮤즈에게 바치는 세금은 시간이라고 (25쪽) 그가 쓴 것 처럼 그의 이 대체불가능한 언어의 구사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같은 세금을 바친다고 누구나 같은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우선 문학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희망없이도, 쉽게 절망하지도 않은 사랑이 있었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하지 않는가.

제목을 '느낌의 공동체'라 붙였다. 어느 책에 따르면 인간의 세가지 권능은 사유, 의지, 느낌이다. (...) 어쩌면 사유와 의지는 느낌의 합리화이거나 체계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갔다. 그 희미한 사태를 문장으로 옮겨보려 했고 이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잠을 자려고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 앞에서 내가 춤을 추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춤을 출 때 독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되지만 그 배가 하늘로 날아오를지 벼랑으로 떨어질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12쪽)

느낌과 정확한 문장 사이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사유'였다.

 

문학이 희망을 줄 수도 있을까.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97쪽)

허수경의 시에 대해 말한 부분이다. 사력을 다해 절망하는 것이, 어설픈 희망으로, 주입된 선입관을 바탕으로 모든 생각과 느낌의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 것보다 낫다. 최소한 나는 나 자신의 생각에 충실했으므로.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김수영 <비>)

움직이는 비애라는 말을 이제 비가 올때마다 떠올릴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다음 글은 "왜 시를 쓰냐"는 질문에 대한 김중식 시인의 답이하고 한다.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것만 '진짜'였고 나머지는 다 '가짜'였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적당(的當適當)히 가는 것이다. 끝까지 갔다가, 또는 끝까지 가려다 무서워서 되돌아 나오는 비겁의 자리가 시의 마음자리다. 시는 어쩔 줄 모르는 삶의 흔들리는 언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 (167쪽)

'시'의 자리에 '인생'을 바꿔넣어보려다 멈칫했다. 과연, 나는 끝까지 가본 적이 있던가. 그러니까 이런 말은 끝까지 사력을 다해 가보려 한 자만 할 수 있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그가 소개한 쉼보르스카의 시 <사진첩>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번역된 랭보의 시를 읽고 절망해서 외국 시와는 절교한 분들께 이 시집을 권한다(170쪽)'는 문장으로 쉼보르스카의 시를 소개하는 저자의 재치. 식상함이란 없다.

안현미 시인의 시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으로 쓴 '감전의 능력'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정확하고 독특한가.

감정을 투정부리듯 늘어놓는 것이 시가 아닌 건 맞겠지만 그렇다고 시는 곧 체험이라고 단정해도 될까? 그러나 아니지, 중요한 건 체험의 부피가 아니라 전압이지, 무엇이건 더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능력 즉 감전의 능력, 그래서 생겨나는 언어, 그 언어에 흐르는 전류, 이건 나이와 아무 상관없어. (206쪽)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주제넘지만 충고할때 "설명하려 하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라는 말과 함께 덧붙인다고 한다. "카버를 읽어라." <대성당>을 쓴 레이먼드 카버를 말하는 것이다.

소설 읽는 일을 '고독과 소통하는 일'이라고 한 것은 정홍수의 문학 평론집 <소설의 고독>을 소개하는 글에서였다.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가끔 소설을 읽지 말고 다른 책, 즉 지식에 보탬이 되는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냐던 남편에게 나는 소설은 인생의 폭을 넓혀준다고 대꾸한게 다 였는데.

나희덕의 시는 내가 특별히 즐겨 읽는 시가 아니었음에도 392쪽에 인용된 <섶섬이 보이는 방>은 한번만 읽고 넘어가게 하지 않는다. 시 전문이 길어 여기에 옮겨놓기는 생략하겠지만.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는 그곳의 여관방이라는 저자. 여행하며 구경하는 것보다 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느분의 서재에서 이미 신형철 팬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글을 본 적 있는데, 팬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대로 그의 책은 내게 와서 끝내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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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는 너무 좋아 <몰락의 에티카>까지 준비해놓고 있는데요, 두 권 다 읽어본 사람들이 <몰락의 에티카>가 더 좋다고들 하더라고요. 아니, 이것보다 더 좋은건 대체 어떤걸까 싶어 준비해둔지 오래인데 아직도 <몰락의 에티카>를 읽지 않고 있어요. 나인님도 이제 몰락의 에티카를 준비해두실 건가요?
:)

hnine 2014-03-24 14:03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솔직히 위에 쓴 것 보다 몇배 더 푸욱~ 빠졌어요. 제 딴에는 절제하며 쓴다고 쓴거랍니다 ^^ 리뷰 올리고 다른 분들 리뷰를 막 둘러보고 오는 참인데, 리뷰마저도 감동적인 것들이 많네요.
<몰락의 에티카>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아직 100여 쪽 밖에 못 읽었지만 <느낌의 공동체>보다 좀 더 평론의 느낌이 나요. <느낌의 공동체>는 저자가 극구 '산문집'이라고 한 반면 <몰락의 에티카>는 책 표지에 당당히 신형철 평론집이라고 되어 있는 걸로 봐도요.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집요하게 파고 들어 마치 해부도를 그리듯이 써놓았어요.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라는 문장은 '음악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제2의 언어'라는 문장 다음으로 제 맘에 드는 문장이네요.
다락방님도 <몰락의 에티카> 읽으실거지요? 그쵸? ^^

다락방 2014-03-24 15:37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읽을겁니다. 시기가 언제이냐, 그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ㅎㅎ

2014-03-2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5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6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전 내방 책꽂이위에 있던 시계를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지만 알록달록 예쁜 유리 시계

아까운 마음에 바로 버리지 못하고 그냥 저렇게 뉘여놓았는데

오늘 마침내 버릴려고 보니

그동안 저렇게 깨져 누워서도 열심히 움직여 제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도 못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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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ㅜ.ㅠ
어떻게 다시 붙여서 쓸 수는 없을까요?

고운 빛깔이나 무늬가 있는 테이프로 붙여서
벽에서 다시금 씩씩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hnine 2014-03-21 21:09   좋아요 0 | URL
예, 그럴 생각이어요.
깨져서도 제 할일 해내고 있는 시계가 오늘 저의 스승이 되었네요.

하늘바람 2014-03-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까워요 색도 고운데

hnine 2014-03-22 05:03   좋아요 0 | URL
한번 재생시켜 보려고요. 시계 기능은 잘 하고 있으니까요.

Jeanne_Hebuterne 2014-03-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멎은 시계로 김연수는 소설을 쓰고, hnine님은 무엇인가를 기억하거나 되새기거나, 혹은 다시 간직하시겠지요?
전 아무거나 휙휙 잘 버리는 제 성미가 못내 아쉬울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종종 어떤 순간은 기억과 맞물리거나, 혹은 홀로 존재하거나, 어떻게든 옆에 지니게 된다고 말하는 그런 순간이 부러울 때가 있거든요. 다정도 병이라지만 무정은 더 큰 병인듯 해요.


hnine 2014-03-24 08:58   좋아요 0 | URL
제가 물건을 참 잘 깨뜨려요. 컵, 그릇 등등, 덤벙거리고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계라고 예외는 아니고 또 깨뜨렸구나 했을텐데 며칠 후, 깨진 채로도 자기 할일을 해내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할까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까지는 차마 못썼답니다.
 

 

 

 

 

 

 

 

 

 

 

 

나, 한미주에게 이렇게 갑자기 관심이 쏟아질지 몰랐다.

관심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데 사람들 눈길이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옷도 사 입고, 운동화 같지 않게 색깔이 고운 요즘 유행하는 그 운동화도 사서 신고, 휴대폰이라는 것도 가져보고, 집에다 컴퓨터도 하나 사다 놓고,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거의 포기했던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수학여행 얘기를 꺼냈을 때 할머니는 마치 내가 해외여행이라도 가겠다고 한 것처럼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지금 방세 밀린게 몇 달인지 니 알기나 하나? 열 몇 살씩 먹은기 철딱서니도 없어가지고, 이 늙은이 혼자 아둥바둥 고생한다 아이가. 무신 노미 팔자가 이라노.”

“못주면 못준다고만 하면 되지 뭘......”

기대도 별로 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하나?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말대꾸를 했다.

“저 가시나 지금 뭐라카노? 그만치 키았으면 이제 집안 힝핀이 우찌 돌아가닌지 좀 살피볼줄도 알고 그라야지, 뭐 맨날 해달라고만 하노.”

‘해달라고하면 해주기나 했나 뭐?’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켜야 했다. 내 꿈도 희망도 함께 어디로 삼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미주야~ 전화!”

또 전화가 왔나보다. 우리 집 전화도 아닌데 어떻게들 주인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내게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해가더니 오늘은 어디서 온 전화일까.

반지하 방에서 밖으로 난 계단을 뛰어올라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전화를 받았다.“TBS방송 ‘사랑으로’ 프로그램 작가인데요, 한미주 학생인가요?”

또박또박한 여자 목소리는 전화기 밖으로 당장 튀어나와 굴러다닐 것 같았다.

“네......”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고요, 그동안 미주학생이 할머니 모시고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으면 해요. 한번 방문해도 될까요?”

“......”

어렵지만 꿋꿋하게? 내가 ‘꿋꿋하게’ 사는 것을 자기들이 봤나?

“물론 TV로 방송이 될 거고요, 그러면 여러 곳에서 미주 학생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전달될 거예요.”

방송 작가라는 이분은 내일 당장 여기로 오겠다고 하고 끊었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니. 안 그러면 네가 당장 어디서 그동안 밀린 방세며, 앞으로 먹고 살 거며, 해결을 하겠어. 할머니 돌아가신 건 안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러 곳에서 널 생각해주니 그나마 다행인거지.”

사실 주인아주머니 아니면 이렇게 내 얘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백내장을 치료안하고 방치한 결과 할머니의 왼쪽 눈은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역시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던 당뇨 때문에 할머니 발가락은 온전한 게 없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아 팔아야, 얼마 안 되는 생활보조금에 보태서 겨우 먹고 살 정도가 된다고 그러셨다. 며칠 전 할머니가 쓰러진 후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고 나니 집안에 돈은 바닥이 났고 치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걸러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는데도 그랬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옆에 아무도 없이, 마지막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없이 돌아가셨다. 며칠 계속 일을 못하시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보통 새벽에 다니셨으나 나는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학교 갈 시간에 겨우 일어나기도 바쁘기 때문에 어둑어둑 해진 저녁때 집을 나섰다. 주인집 전기선을 끌어 쓰고 있는 우리 방 전기계량기 검침 때문에 반지하 우리 방에 들르셨던 위층 주인아주머니께서 할머니를 발견하셨을 때 이미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더란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내가 완전히 고아가 된지 그러니까 이제 한 달 되었다.

 

다음 날, 약속대로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왔다. 한사람은 커다란 궤짝만한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메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커다란 철가방 같은 것을 들고 카메라를 멘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손에 녹음기와 공책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여자분. 질문은 이분이 다 하셨다.

“엄마 아빠 기억은 나요?”

“아뇨. 사진으로만 봤어요.”

“할머니께서 계속 키워주셨군요.”

“네.”

“어떻게 할머니 대신 폐휴지 모으는 일 할 생각을 했어요?”

‘며칠 빠지면 이 구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지 모른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다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동안 나라도 하고 있어야 했어요.’

“할머니 병원에 한번이라도 더 모시고 가려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할머니가 지금까지 다 돌봐주셨는데, 당장 막막하지 않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오랫동안 아프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제 정말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미주 학생에게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셨나요? 두 식구뿐이니 더 애틋할 것 같은데요.”

‘매일 아프다, 돈 없다 소리만 했어요. 할머니가 고생하는 건 알지만 나도 하고 싶은 거 못하며 지냈어요. 빨리 커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빨리 커서 할머니 병도 고쳐드리고 호강시켜드리고 싶었어요.”

라디오 인터뷰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질문이었고 내 대답도 거의 똑같았다.

마지막 질문만은 달랐다.

“미주는 꿈이 뭐예요?”

‘꿈이요? 당장 방세도 못 내고, 하루에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꿈이요?’

“사회복지사요. 저나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어요.”

방송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라디오에 나왔을 때와 비교가 안되었다. 내 얘기가 TV에 나가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쌀, 라면, 전기히터, 책, 옷, 그리고 내 앞으로 성금이 쌓여갔다. 할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일할 때는 안 모이던 것들이,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자꾸만 들어왔다. 이 돈으로 이제 방세 다 갚고도 핸드폰, 컴퓨터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어쩌면 햇빛도 안 들어오는 이 반지하 방에서 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난 유명해졌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애들이 좀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참아줄 수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 갑자기 선행상을 주는 것이 더 얼떨떨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 열심히 생활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머니를 도운 것이 있던가? 마지막 며칠 폐휴지를 모으고 다녔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를 위한다기 보다 할머니가 계속 그거라도 해서 돈을 벌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나?

방송이 나가고서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나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원룸건물의 방 하나를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세 없이 살아도 좋다고 했다. 이제 정말 이 반지하방을 벗어나는 것이다. 드디어.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긴 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며칠 동안은 오히려 주위에서 나에 대한 관심이 모여들어서인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잘 안 났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깨끗한 원룸으로 이사를 간다. 거의 한숨도 못자고 이삿날 아침을 맞았다. 짐이 많지 않다고 했더니 나에게 원룸을 제공해주기로 한 아저씨가 9인승차를 가지고 오셔서 짐을 옮겨 주시겠다고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박스를 방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뒤통수에 누군가의 눈길이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주인집에서 키우는 개가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통은 학교 다녀온 후 방에 들어갈 것도 없이 가방을 리어카에 싣고 바로 동네로 향하는데 그날은 그러기에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불우 학우 돕기인지 뭔지, 물론 나는 도와주는 쪽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쪽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잔뜩 안겨주는 것을 받아 가방에 들어가는 대로 막 쑤셔 넣고 낑낑대고 메고 온 참이었다. 이왕 도울 거면 차라리 필요한 곳에 쓰게 돈으로 주던지, 뭔가 부피가 나가는 것으로 떠안겨야 주는 사람 입장에서 더 뿌듯하기라도 한가? 그날은 수학여행 신청 마감일이기도 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만 못가는 것을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다 있는데서 굳이 확인해야 했을까?

“착오가 있나 해서 그래.”

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이 바로 그 순간 착오를 저지르고 있는 줄 모르시나?

아이들 다 수학여행 가고 나면 나 혼자 할 일 없이 뭘 하며 나흘을 보낼지.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시간 날 때마다 여행 갔던 얘기만 할 텐데 그러면 나는 무슨 얘기인지 몰라 멍하니 듣고만 있어야겠지. 그럴 땐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덜 초라해 보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나도 이 반지하방 아닌 곳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보고 싶었다. 할머니한테 한번만 더 졸라볼까?

무거운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컴컴한 방에 할머니가 누워있는 모습이 다른 날과 달랐다. 아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져있다고 해야 할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서있는데 할머니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아주 작은 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나보다.

“약......거기, 약......”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할머니는 분명히 비상약을 찾고 있었다. 언뜻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 눈동자는 이상하게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뒤틀리고 있었다. 무섭고 떨렸다. 할머니가 비상시에 먹을 약이라며 둔 곳을 알고 있긴 하지만 나는 얼른 약 있는 곳으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몸을 뒤틀고 눈이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가 무서웠다. 계속 그러고 서있다가는 할머니가 나 있는 쪽으로 기어 나와 내 발목을 붙잡고 끌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면 나도 할머니 옆에서 그렇게 몸을 뒤틀며 괴로워해야 할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싫어! 그러고 싶지 않아 절대!’

다 싫었다. 내가 속한 그 컴컴한 방도 싫고, 거기서 손발을 뒤틀고 있는 할머니도 보기 싫었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금 위급한 상황에 있는 할머니를 본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 어둡고 칙칙하고 언제 벗어날지 모를 나의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그대로 두고 가방도 그냥 멘 채 방문을 닫고 나왔다.

급한 발걸음으로 얼른 계단을 올라 대문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올려다보니 주인집에서 키우고 있는 바로 그 개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결국 그날 내가 나가고 없는 새에 돌아가셨다. 폐휴지를 모으러 동네를 한바퀴, 두 바퀴 돌고 집에 왔을 때 할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학교에서 이제 돌아 오냐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할 때 나는 아까 집에 들렀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프시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혼자,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 그래? 세상에......”

아주머니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은 아마 내가 더했을 것이다. 아까 할머니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약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외면했다. 나의 그 멍한 표정을 아주머니는 내가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다고 해석하셨는지 나에게 잠시 진정하라고 하시고는 병원으로, 경찰서로, 여기 저기 나 대신 연락을 해주셨다.

구청에서 사람이 다녀가고,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으로 어떻게 간신히 장례를 치렀다. 아주머니가 입소문을 내었는지 여기저기서 위로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흔적은 금방 지워지고 그 자리에 위로품 상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미주 학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에 왔던 방송국 사람들이 또 찾아온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이 좋아 후속편을 찍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 가는 장면을 잠시 촬영하겠다는 것이다.

짐 실을 차가 오고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 담긴 짐짝들이 정말 짐짝처럼 차에 실렸다. 방송국 카메라는 뭘 저렇게 찍어대는지.

짐을 싣고 차에 오르려는데 마이크를 들이대며 기분을 얘기해보란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하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사 간 방은 내겐 어떤 호화주택 못지않았다. 3층이라 올라 다니기 힘들지 모른다고 주인아저씨는 말했지만 방의 창문을 열자 저 앞 편의점까지 한눈에 다 보였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 있었네.”

들어온 위로물품과 성금 덕에 새 이불, 새 책상에, 옷장, TV, 컴퓨터까지 들여놓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다음 날, 신청기간이 지났지만 선생님께 사정해서 돈을 내고 수학여행 신청을 했다. 못갈 줄만 알았던 수학여행이다. 이제 부러운 게 없다. 내 방이 생겼고, 그 방은 내가 필요한 것으로 꽉 채워졌다. 다른 애들처럼 수학여행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다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 때문이었는지, 배가 아파서였는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새벽 3시도 채 안 된 시각이었다. 꿈에서 또 그 개를 보았다. 지난번보다 더 뚫어지게 나를 쏘아보는 개의 눈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몸 속까지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네가 뭘 알아? 나도 지금 죽을힘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거라구!’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깬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배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왔다. 더워서 자기 전에 평소에 안 먹던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은 게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원래도 찬 것 먹으면 배탈이 잘 나서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는데.

‘할머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할머니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여기 없다. 알면서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가지고 싶던 것으로 채워진 방,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방. 그런데 그 순간만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텅 빈 방이었을 뿐이다. 이 방이 내게 찬 것 먹지 못하게 잔소리 하진 않을 것이다. 저 책상에게 내가 투정부리진 못 할 것이다. 배 아프다고 내가 아무리 데굴데굴 구른들 아무도 들어줄 사람 없다. 난, 혼자이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온 몸이 땀으로 함빡 젖었다. 아무래도 약을 먹고 자야할 것 같았다.

‘이삿짐 쌀 때 약을 어디에 넣었더라......’

서랍장의 서랍을 하나하나 빼가며 찾던 중 약보다 먼저 발견한 것은 손수건으로 둘둘 말아놓은 뭉치였다.

“이게 뭐지?”

풀어 보니 돈이었다. 만날 돈 없다고 하던 할머니가 이렇게 돈을 감춰두고 있었나? 세어보니 만 원짜리 여섯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가 여섯 장, 그리고 종이쪽지에 서툰 글씨로 ‘미주수항여행’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할머니 글씨였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며 돌아앉던 할머니.

갑자기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세어보니 어차피 수학여행 경비하기에 택도 없이 모자라는 액수의 돈이지만, 방세 독촉을 받으면서 혹시 액수만큼 못 모으면 내가 더 실망할까봐 내겐 말도 없이 이렇게 돈을 모으고 있었나보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자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눈물 속에 울렁울렁 젖어보이는 방은 썰렁하기만 했다. 방이 아니라 벽이 없는 한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눈물을 닦고 풀었던 손수건 뭉치를 다시 처음처럼 싸놓았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 끝 --

 

 

 

 

 (처음 제목은 '비밀과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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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3-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이라는 이름이 한결 좋아요.
마음에 쌓은 벽이 높아만 가다가
비로소 벽이 와르르 무너졌네요..

hnine 2014-03-17 18:10   좋아요 0 | URL
'벽'이 말씀하신 그런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