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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리커버 특별판)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평점 :
역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이 책의 원제인 Explaining Humans 에 충실하게 번역한 제목을 붙여 내놓았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지금보다 덜 끌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것. 독특한 제목이면서도 무슨 뜻인지 알것 같기도 한, 매력적인 제목이다. 이럴 때를 위해 부제가 있는 것. 부제가 책 내용을 좀 더 솔직하게 설명해준다.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라고 (원서의 부제는 What science can teach us about life, love, and relationship).
저자 Dr Camillla Pang은 1992년생. 이제 갓 서른을 넘은 나이이다. 영국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컴퓨터 과학을 이용해 생물학을 해석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과학자이고 2020년 28살에 이 책을 펴냈다.
어렸을 때 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8살에 처음 자폐증 판정을 받았고 이후 26살엔 ADHD판정을 받았다. 엄마 친구가 엄마 계시냐고 전화를 했는데 엄마 계시다고 대답하고 그냥 끊었다는 어렸을 때 일화이다. 어릴 때부터 소통과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있는지, 그것을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는 그런 것은 없다고 한마디로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설명서 '아웃사이더를 위한 삶의 가이드'를 내가 직접 쓰기로 했고 그것이 이 책이라고 소개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것을 결과에 반영하는 방식의 머신러닝은 인공지능의 한 분야이고 이런 기술을 이용한 컴퓨터 정보과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자연스럽게 이것을 인간 관계, 삶의 해결책을 얻는 방법에도 적용시켜본다.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중 어떤 생각을 내세우고 어떤 것을 억눌러버리기보다는 생각들 나름 각각의 영역을 정리하고 서로의 관계를 설명하여 합리적인 결과를 내어놓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어느 한 생각으로만 결과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군중 속에서 최종적인 결정은 다수의 의견대로 결정되거나 우세한 목소리를 따르고 소수의 의견은 아무 영향력을 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최종 결과에 작든 크든 영향력을 행사하여 최종 결과에 반영된다는 것은 에르고딕 이론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의 집단이 있을 때 그것은 결코 균일할 수 없고 크고 작은 여러개의 각각 역장 (forcing field)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구성원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가 다른 역장을 가지고 다르게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그 안에서 내 평균은 당신의 평균과 마찬가지 의미를 가진다. 집단 뿐 아니라 내 안에도 수많은 내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의 총체적인 합이 나의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의 총합, 각각의 기여, 반영, 이런 것을 발견하고 기뻤을 것이다. 사람들이 평균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시고가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 취급을 해온 사람들도 엄연히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에 반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에르고딕성은 외로움, 다름, 고립감, 비정상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수학 이론이다. 통계학은 당신의 개성이 타인의 개성만큼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진화하고 생존하는 데 필요한 괴이하고도 경이로운 다양성의 일부다.
우리의 삶에서 개성과 순응은 대등한, 때로는 정반대의 힘을 행사한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과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공존하는 충동이다. 우리는 집단이라는 맥락에서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개인이다. (173)
스티븐 호킹이 시공이라는 개념을 시각화하여 제시한 '광원뿔' 이미지에서, 우리가 현재 느낄 수 있고 조절 가능한 것들은 광원뿔 이미지로 표현된 차원 내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 광원뿔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바꿀 방법을 찾고, 확실성을 기대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광원뿔 밖). 여기서 모멘텀 사고 (momentum thinking)와 포지션 사고 (positional thinking)의 균형에 대한 것을 삶을 숙고하는 두 가지 사고 방식으로 적용해본다. 모멘텀 사고는 시간에 따라 살면서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옮겨 가도록 하며, 이 사고에 따르면 행복은 우리가 성취하고 계획한 것으로 정의되는 반면 포지션 사고는 현재를 살면서 현재 순간과 현재가 주는 느낌에 사로잡혀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하고 그저 존재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두가지 방식을 삶의 순간에 어떻게 적용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중요하다. 두 개의 안경을 손에 쥐고 선택하여 세상을 보는 것으로 비유하면 너무 요원한 비유일까?
머싱러닝의 기본적인 기술의 하나인 경사하강법에서 삶의 네트워크를 탐색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 우리는 경로 전체를 미리 볼수 없고 심지어 대부분은 볼 수도 없다는 것, 둘째, 현재의 전후 사정이 당신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가 있는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만의 기준에 따라 특정 경로의 가치를 판단해야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고 언제든 목표와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면 경로를 바꿔야 한다.
곧고 완벽하고 유일한 길은 없으며 다만 발견해서 따라가기까지 기꺼움, 흥미,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길만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는 최고의 경로는 항상 객관적인 완전성보다는 여러 요인에 좌우될 것이다. (202)
여기서 파생된 네트워크식 사고도 유용한 방식이다. 네트워크란 역동적이고 적응력 있어 유용하기 때문이고, 한정되지 않고 사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투두 리스트 (to do list)'를 네트워크 다이어그램으로 바꾸어보는 것이다. 직선으로 형성된 투두 리스트보다 다이어그램으로 표현된 네트워크 속의 내 목표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변수와 곁가지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가.
불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 느끼고 살수는 없다.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불안감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경로를 수없이 모의실험하는 렌즈 역할을 하므로 유용하다. 나는 항상 불안감이 타인은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연결고리를 만드는 수퍼컴퓨터라고 생각해 왔다. 사람들은 내게 엉뚱한 짓은 그만두라고 혹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불안감 없이 그리고 불안감이 제공하는 전체 풍경을 보는 능력 없이, 그리고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더 배우려는 동기 없이 살고 싶지 않다. (205)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원자간 결합에 대한 것은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라도 날 것이다. 원자 결합 모델과 인간 관계를 연결지어 놓은 것도 그럴듯 하고 공감한다.
원자의 전자 배열 상태에 따라 나를 완성해줄 원자를 찾아간다. 원자의 배열 상태에 따라 다양한 결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나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우리가 맺는 관계가 다양한 것과 같다. 공유 결합과 이온 결합은 가장 상호적인 형태의 화학결합이지만 이온 결합이 한쪽은 주고 다른 한쪽은 받는 결합인데 반해 공유 결합은 둘 이상의 원자가 껍질구조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서로 전자를 공유하는 결합이다. 서로 밀고 당김이 최소화하는 거리에서 안전한 결합을 형성한다.
나는 한번도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을 보면서 인간 관계를 떠올려본적이 없는데. 책을 읽다보니 한번도 떠올려본적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릎을 치게 된다. 물론 우리 인간은 원자 화합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자 화합물은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유용한 모델을 제시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글에 담은 저자의 한마디를 옮겨보자면,
과학과 삶의 위대한 공통점은 둘 다 같은 부분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며,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준다는 점이다. 연구에서 돌파구를 찾았을 때 찾고 있던 해답으로 향하는 문이 마침내 열리는 그 순간만큼 내게 전율을 안겨주는 것도 없다. 아무리 작더라도 발견에서 신기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내 일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말할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역할을 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 연구와 똑같은 방법을 이용했다. (315)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인간을 알아가는 것도 쉽지 않고 인내심을 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물 여섯살에 벌써 이런 것을 알아버렸다니. 그것도 과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것 까지 알아버렸다니.
자폐, 주의력결핍 과잉 행동장애, 이런 것을 삶의 장애물로만 보지 않았고, 그것을 하나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게 되기 까지 그녀의 노력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것들에서 답을 찾지 못했을때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야겠다 생각했고 그 실마리를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과학에서 찾았다는 것은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자기의 일, 즉 과학분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계획에, 이루지 못한 목표에, 실패한 관계에 절망하지 말 것.
결국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런 저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좌절하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