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1 펭귄클래식 1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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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여행기라면 어림없다. 화보같은 사진이 보는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뿐 더러, 구구한 설명보다 사진과 지도로 방문한 지역을 잘 보여줄 수 있어 글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200년도 더 전에 나온 이 기행문은 아무리 대문호 괴테가 썼다지만 분명 지루할거라 짐작하여 시리즈로 구입한 책들 사이에서 여태 손을 대지 않고 있던 책이었다.

1749년생 괴테가 작정하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것은 1786년 (비교를 위해 1786년 우리나라는 조선 정조 임금 시대), 그의 나이 38세였다. 일년 십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기록인 이 책은 1권과 2권으로 나와 있는데 1권엔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를, 2권에는 다시 들른 로마에서의 체류기를 담고 있다. 1권만 다 읽은 상태이지만 2권으로 넘어가기 전 1권을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어 쓴다. 아마도 2권까지 다 읽은 후의 느낌은 다를지 모르고, 1권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라질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겠다 싶다.


시작은 이렇다.

1786년 9월 3일

나는 새벽 3시에 카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카를스바트는 현재 체코 영토)

나는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단신으로 우편 마차에 몸을 실었고, 아침 7시 30분에 자욱하게 안개 낀 아름답고 고요한 츠보다우에 도착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괴테의 아버지는 황실 고문관, 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공직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창작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서 문학에 대한 공부는 물론,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한마디로 다방면에 관심 많고, 재능있고, 궁금한 것은 부족함 없이 탐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수 있었던 괴테이다. 

26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파우스트>로 더욱 유명해졌을 즈음 오랫동안 꿈꿔 오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시작 부분에서 보듯이 혼자 몸으로,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은채였다. 자아에 대한 성찰과 예술적인 탐구를 위해서였다고 하나, 그러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이 동기를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괴테의 아버지가 이미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 영향도 받았을 것이고 말이다.


1권에는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여행이 주 내용이지만 거쳐간 작은 마을, 지역까지 아주 세밀하게 써놓았다. 어디에서는 누가 동행을 해주었고,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했으며, 자연적 환경이 어떻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것을 보았는지, 꼼꼼하게 기록을 해놓았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관심없는 곳을 가고 관심없는 것을 관찰하지 않았을테니, 괴테의 관심과 지식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어떤 지역에 처음 발을 들이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괴테의 경우엔 아마도 그 지역의 기후, 토양, 암석 등 자연적 특징을 세밀하고 살피고 관찰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직업이라면 모를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은 없을것이다 싶을 정도이다. 때로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 의문을 갖고 추측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맞든 틀리든).

나는 지구라는 덩어리, 그리고 특히 그 두드러진 지반이 변함없이 항상 똑같은 중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중력이 어떤 맥동(脈動) 상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중력이 필연적인 내적 요인, 어쩌면 우연한 외적 요인으로도 때로는 커지다가 때로는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2쪽)

겉으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원인은 보다 더 근본적인 데에 있을거라 확신하여 지구 중력에 까지 확장하여 추측해보는 부분이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보는 풍경에 대한 그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석호를 통과해 가면서 나는 곤돌라 뱃전에서 뱃사공들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베네치아 유파가 가장 최근에 그린 최고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햇살은 대상의 고유색을 현란하게 부각시켰고 그늘진 부분도 너무 환해서 어느 정도 다시 빛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115쪽)

지질과 기후, 식물에 대해서 쓴 부분은 딱딱하고 지루하다가도 이런 비유에선 그의 문학가로서의 기질이 읽힌다.

한편 산 마르코 성당의 둥근 지붕과 천장을 보며 성당이 지어질 당시 사용되었던 기술이 전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쉬움을 쏟기도 한다.

고대인에게 바닥을 마련해주고 기독교인에게 천장을 둥글게 해주었던 이 기술이 지금 와서는 통이나 팔찌 따위에 쓰이게 되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열악하다. (116쪽)

여기서 이 시대는 물론 괴테가 살던 18세기를 후반을 말한다.

아시시에서 폴리뇨로 가는 길은 (아시시는 알고 있지만 폴리뇨는 들어본 적이 없다) 네 시간이 걸리는 산길이었지만 오른편에 나무가 우거진 계곡이 펼쳐진, 지금까지 걸어온 산책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산책길이었다니 기억했다가 나중에 나도 기회가 되면 걸어보고 싶어졌다.

폴리뇨를 여행하는 부분에서는 '이탈리아는 자연의 혜택은 가장 많이 받은 나라지만 좀 더 편리하고 새로운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기계나 기술 면에서는 다른 모든 나라에 훨씬 뒤처져 있다'고 하면서, 무사태평 생활방식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인의 눈으로 본 이탈리아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나보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 여행하는 일은 자유로움을 댓가로 어려움도 혼자 몫인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나는 홑몸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이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이제야 뼈저리게 느낀다. 서로 다른 화폐며 마부, 물가, 열악한 숙소 때문에 날마다 어려운 일을 겪는다. 나처럼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며 끊임없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크나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소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나라를 한번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익시온처럼 바퀴에 묶여 로마로 끌려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불평도 하니 않으련다. (162쪽)

이탈리아로 떠날때는 혼자였긴 했지만 여행하는 대부분 동행자가 있긴했다. 티슈바인도 그런 동행인 중 한 사람이었다. 가는 곳마다 글을 쓰듯이 그는 그림을 그려 남기려는 화가였는다. 괴테는 여행하는 동안 자신과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는 티슈바인의 작업을 경이로운 눈으로 관찰하며 자주 언급해놓고 있는데 본문 중에 티슈바인이 괴테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티슈바인이 자주 주의 깊게 나를 관찰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내 초상화를 그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구상은 끝났고 캔버스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나는 흰 외투를 걸친 여행객의 모습으로 실제 크기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나는 무너져 내린 오벨리스크에 앉아 저 멀리 배경으로 로마의 캄파니아 지역의 페허를 굽어보게 된다. (207쪽)

이 그림은 현재 이 책 <이탈리아 기행>의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그림이고 같은 그림이 민음사의 <파우스트> 표지에도 사용되었다. 


나폴리에 가서는 당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에 직접 올라가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화산 활동을 보는 것이 경이롭고 새로운,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듯이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였으니까.

베수비오 화산이 돌덩이와 화산재를 내뿜고 있어서 밤에는 산봉우리가 빨갛에 달아오르는게 보인다. (236쪽)


인근에 베수비오 화산이 서너 개가 더 있다 하더라도 나폴리인이 자기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고 도시의 시인들이 이곳의 지형을 축복하고 몹시 과장해서 노래해도 이들을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누구도 로마를 뇌리에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자유로운 지형에 비하면 테베레 강바닥에 위치한 세계의 수도는 나쁜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수도원 같은 생각이 든다. (258쪽)

여기서 테베레 강바닥에 위치한 세계의 수도란 로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나폴리에 오면 로마는 그저 강바닥에 위치한 오래된 수도원으로 비유될 뿐이다.

나폴리에 4주 동안 머물면서 괴테는 이곳의 지형과 자연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고서 배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시칠리아 섬으로 간다. 여기서는 크니프라는 화가가 동행을 한다. 

시칠리아로 가는 배에서 배멀미를 심하게 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는 그리 좋지만은 아니었던 듯. 팔라르모와 알카모 등을 방문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의 시칠리아 여행이 즐겁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것이라곤 자연의 폭력, 시대의 음험한 술책, 자신들의 적대적인 분열이 낳은 원한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인류의 부질없는 노력밖에 없었다. 카르타고인, 그리스인 및 로마인과 이들의 수많은 후손은 건설과 파괴를 일삼아왔다. (419쪽)

시칠리아의 많은 지역과 사원이 황폐화되고 허물어진채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한탄스러웠던 것이다.

시칠리아를 떠나 다시 나폴리를 거쳐 로마를 재방문하는데, 두번째 나폴리를 가보고서 이탈리아 북부 다른 도시와의 차이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서술해놓았는데 나폴리의 생동감의 원인이 어디에 있나 나름대로 분석해보려고 했다. 역시 기후가 큰 원인. 로마를 비롯해 이탈리아 북부는 농사보다 산업에 의지해야 하는 환경, 산업이 발달한 곳이라서 일년 사시사철 노동과 근면에 적응된 생활을 해야하고 미리 대비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지만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는 더없이 좋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곳이라서 '노동의 땅'이 아니라 '경작의 땅', '행복의 땅'이라고 했다. 풍부한 바다가 있고 경작지가 있어 식량을 제공해주니 단순히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일하는 것 같다고. 대신 수공업자들은 북부에 비해 훨씬 기술이 뒤떨어져 있고 공장도 서지 않으며 지식인의 수효가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나폴리파의 어떤 화가도 위대해지지 않았고 성직자마저 안락한 생활을 하는 등, 위인들도 대부분 감각적인 쾌락과 화려함 및 오락을 추구하기 위해자신들의 재산을 허비한다고 했다. (450쪽)

어딜가나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행객으로서 나폴리는 더 할 나위 없이 유쾌한 곳이었으리라. 

이렇게 독일에서 베니치아,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다시 나폴리를 거쳐 괴테는 두번째 로마로 향한다. 그것이 2권의 내용이다.


읽는게 생각만큼 지루하지는 않다. 괴테의 자세한 여정과 관찰의 범위, 기록을 읽고 있노라니 같은 곳을 가도 보고 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것을 새삼 느낀다. 과거, 현재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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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욕심 자식욕심 두루두루 많아서 논농사 자식농사 많이 짓고 많이 생산하여서 늘그막에 보람 크신 검바골 대모 고향 가서 뵐 적마다 눈에 띄게 검불머리 흰머리 늘어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대숲으로 살아 일에 게으른 젊은것들에 회초리 되고 귀감이 되는 검마골 대모 그 대모 보면 사 년 전 간경화에 두들겨 맞고 쓰러져 끝내 못 일어나신 울엄니 생각이 나서 눈시울 붉어진다 대모와 살아생전 울엄니 사시사철 이웃하고 사시면서 일 년이면 열댓 차례씩 병아리처럼 토닥토닥 잘도 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금세 변덕도 심해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부지기수다 대모의 맏이인 찬범아저씨 서울 가서 큰 공부 마치고 은행원으로 취직된 것이 우리 동네 제일로 큰 자랑이었는데 울엄니 다섯 마지기 자갈논으로 여섯 형제 가운데 맏이와 셋째를 높은 공부 시켜 놓으니 시샘 난 대모 그걸 못 참아 틈만 나면 시비 붙고 쑥덕공론 심하여 울엄니와 대판거리해대는 식이었다 한번은 맏이의 가을 학기 등록금 기일 내에 납부 어려워 전전긍긍 울엄니 며칠을 전전반측하다가 염의 버리고 대모 찾아가 통사정 목 놓았다는데 그 대모 벽장 속 깊이 감춰돈 목돈 꺼내 침 발라 센 후 "돈 썩어도 이 돈 못 빌려준다" 면박을 줘서 그 길로 득달같이 달려와 이불 뒤집어쓰고 "독한 놈의 여편네 징한 여편네" 치미는 울화 욕으로 달래던 엄니 그 일 끝 내 못 잊고 괴로와하다 저세상 가기 두 달 전 문병 오신 대모의 소똥 같은 눈물이 여윈 볼 흥건히 적셔놓으니 그제서야 노여움의 벽 허물어 대모의 손 굳게 잡았다 그리하여 두 달 후에는 뚝 끊었던 대모의 발걸음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 들러 집 안팎 살림살이 당신 일로 삼아서 챙겨주시니 살아생전 울엄니 잔소리가 밤낮없이 무꽃으로 펴서 웃고 있다고 어쩌다 고향 챙기면 검바골 대모 내 손에 감이며 대추 혹은 토실한 알밤 넣어주시며 한참을 먼산 바라 눈물 글썽이신다



-  이 재무 <검바골 대모> 전문 -




시인의 어머니는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 중에 나오는 맏이는 육남매의 장남인 시인 자신을 가리킨 듯.


소설 같은 시, 소설보다 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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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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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 부터 저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1933년생이니 올해로 91세. 얼마전 작고하신 이어령 작가의 아내이고, 장녀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후 추모의 뜻으로 이어령의 '영'과 강인숙의 '인'을 모아 영인문학관을 설립하여 운영해오고 있다는 것, 남편과는 대학 동기로 만나 결혼하였고 저자 역시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해왔다는 것 정도이다. 


1977년이면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만은 아닌 시절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그때부터 미국과 유럽등을 여행했고 스페인 여행기는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이미 출판된 바 있다.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삶과 꿈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이후에 출판사가 문을 닫아 유통이 끊긴 상태라서, 2023년 다른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낸 책이 이번에 내가 읽은 <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이다. 

1남 5녀중 세째딸인 저자가 정년퇴직 후 다른 형제 세명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이다. 최근에 스페인에 다녀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지라 아직도 스페인 여행기라면 눈길이 멈추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여행했을까 읽어보고 싶은지라 이 책도 눈에 띄자마자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펼쳐보니 이 책에는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기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소도 다르고 여행 시기도 다른, 1977년과 1999년의 로스엔젤레스와 파리 여행기가 책의 반 조금 못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본인의 여행기를 함께 정리한다는 목적으로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기로 했다는데, 그렇다면 책 제목에 반영되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독자로서의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었다. 개정판 책에도 부제는 여전히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이라고 붙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 기록이 아닌 만큼 요즘 여행기에 거의 필수적인 사진이 그리 풍부하진 않은 편이다. 대신 방문한 곳의 인문학적, 역사적 배경 이야기가 많다. 방문자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을 나타낸 글도 좋았다. 과도한 장식과 화려한 건축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개인 취향을 얘기하면서 '과식주의'라는 말을 썼다. 이 책에서 처음 보는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 곳을 방문하면 눈으로는 그곳을 보면서도 예전에 본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분석해보는 것도 좋았다. 학자 다운 면모랄까. 눈에 보이는 뷰가 중요하고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고 각종 쇼핑 정보가 흘러 넘치는 요즘 여행기들보다 이런 점은 훨씬 좋았고, 즉각적인 정보 수집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70이상 된 자매들인데도 각자 개성이 다르고 건강상태도 디르고 보고 싶은 것이 다른지라 여행하는 동안 갈등도 있지만 결국은 핏줄. 안된 처지에 있는 자매를 생각하는 마음, 눈물로 기도하는 마음에 뭉클해지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책의 구성도 그렇고, 여행과 관련 없는 사담이 너무 자주,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여, 일반 에세이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모를까 여행기를 기대하고 책을 펼친 독자라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는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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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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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알라딘에만 해도 책 읽기에 고수이신 분들이 많고 그분 들 앞에선 감히 내세우기도 망설여지지만 나도 1,200편의 리뷰 만큼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온 입장이다보니, 올해 초 이 책을 쓴 저자분의 소개글이나 영상을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기는건 당연했다. 나처럼 평범한 분일까, 아니면 범상치 않은 분이실까. 책 아니면 안되는 일생 일대 고비가 있으셨던 것일까, 과연 그렇다면 그 고비를 넘는데 책이 어떻게 어느 만큼 도움이 되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말이다.

원래 읽으려던 책은 출판사는 다르지만 이 책과 거의 동시에 나온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였다.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이라는 소개글이 따라붙은, 다소 어려운 제목의 책이었는데 도서관에서 알아보니 마침 대출중이기도 했고, 본격적인 책 얘기는 아니지만 개인사를 다룬 <미오기전>을 읽어도 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겠다 싶어 <미오기전>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이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어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이력을 갖고 있는 만큼 글은 재미있다. 고상하고 어려운 단어 없다. 그냥 죽죽 읽어내려가면 된다. 미오기傳이라고 해서 시대 순으로 자세한 개인의 역사만 쓴 것도 아니고 일상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유머스럽게 엮었다고 보면 된다. SNS에 올리기에 딱 좋은 형식과 내용이랄까.

저자 본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얘기까지, 어쩌면 글을 잘 쓰는 능력보다 얘기를 재미있게 잘 하는 능력이 더 돋보일 정도라고 할까.

나보다 약간 연배가 위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배고픔을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 남존여비의 강력한 영향 속에 배우고 성장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놀라웠다. 드라마 아들과 딸을 연상시키는 가정환경에서 그나마 책 읽기를 좋아했음은 구원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커서 칙칙하고 어둡고 무거운 성격의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반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나의 기질은 명랑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저자, 글이 그런 기질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개인사를 글로 쓸때 자칫 잘못하면 한풀이, 넋두리가 되기 쉽다는데, 저자는 유머 코드를 최대한으로 살려 쓴 덕분인지, 그렇지는 않았다. 동시에, 진지하고 깊은 통찰이 들어가있는 그런 글도 아니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처음 집을 때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명랑 에피소드가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책 읽는게 뭐 특별한 일입니까? 책 읽는다고 어디 들어앉아 있지 않았어요. 책은 그저 생활 속에 섞여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 책과 거의 쌍둥이처럼 출판된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도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많이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알라딘 리뷰로 만나는 대단하신 독서가 몇몇분들이 떠오른다. 이분들이 책을 내신다면 못지 않을텐데.

책을 낼 시간에 차라리 책을 몇권 더 읽겠다고 하실까? 

혼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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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8-0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그렇게 되셨군요. 저는 아직 안됐을 것 같기도 합니다. 워낙 리뷰를 드문드문 올리는지라. 뭐든 꾸준히 루틴이 만들어낸 자산이 아닐까 합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앞으로도 새로운 1200 편을 응원합니다.
전 이책 중국의 마오하고 헷갈립니다. ㅋ

hnine 2024-08-04 18:21   좋아요 1 | URL
좋든 싫든 일단 읽은 책은 리뷰를 올리고 나야 다 읽은 것 같은 습관때문에 읽은 책 수 만큼의 리뷰가 되었네요. 앞으로 새로운 1200편...ㅋㅋ...
중국의 마오라 하면 마오 쩌뚱을 말씀하시나요? 제가 이렇게 무지하다니까요.

카스피 2024-08-0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0편의 리뷰라니 대단ㅎ시네요^^

hnine 2024-08-04 18:23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1200편이면 대단한 축에도 못끼지요.
1200편이라는 숫자보다는, 그만한 세월을 여기서 보냈다는게 저는 더 감회가 깊어요. 정이 들었어요.

nama 2024-08-0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읽었는데요, 이 책 <미오기전>도 읽을까 하다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왠지 비슷한 내용일 것 같기도 하고, <감으로...> 이 책도 용두사미격으로 읽었거든요. 뒤로 갈수록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hnine 2024-08-06 12:15   좋아요 0 | URL
어릴때 고생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낙천적이고 유머로 풀어내는 성격이 아니면 버텨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은 재미있게 쓰셨지만 실제 성격은 글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고 단단하신 분이 아닐까 하는. 책 얘기든, 자기가 살아온 얘기든, 제가 처음 기대했던대로 진지 모드로 적어내려갔다면 SNS 상에서 유명해지지도 사람들 사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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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 창래 작가의 소설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과 분위기도, 문체도 달랐다. 

내가 처음 읽은 이 창래의 책은 1999년에 발표한 <A gesture life>였다. 그의 첫 장편 소설은 1995년 발표한 <Native speaker>인데 미국의 한국인 2세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나중에 일부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략 이 즈음부터 이 작가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기다리던 끝에 나온 <The surrendered> 는 두툼한 부피의 책을 나오자 마자 구입해서는, 결코 쉽지 않은 내용때문에 오래 걸려 읽고도 (번역본이 나오기 전) 완전 팬이 되었다. 이미 오래 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6.25전쟁 피난 열차로 시작하는 첫 장면과 죽음을 앞에 둔 여자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만나는 쓸쓸한 끝장면만은 눈으로 본듯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타국에서의 일년> 이 나오기 바로 전작인 <만조의 바다 위에서>에서 작가는 큰 변화를 시도한 듯, 중국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2014년이니 <타국에서의 일년> 이 나오기 10년 전이다. 확실히 다작의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작품을 낼때마다 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재의 변화뿐 아니라  글 쓰는 스타일도 전작과 많이 다름을 느꼈다. 문체의 유려함, 다양한 등장 인물, 풍부한 비유법 등은 어딘가 더 차원이 높아지는 듯. 

그는 내가 그의 준비된 위성이 되기 위해 던바와 대학 생활을 쉽게 버리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471쪽)

(여기서 '던바'는 가상의 지명)

주인공인 틸러에게 인생 일대의 큰 사건의 계기를 제공하는 중국인 혈통의 퐁 로우가 틸러를 처음 본 순간부터 틸러의 앞날을 알아보는 순간을 말하는 문장이다. 준비된 위성이라는 표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성이 된다는 표현. 

이민의 역사를 가진 등장 인물이 소재가 되고 주제에도 관련이 있음은 이번에도 전작들과 같았다. 주인공 틸러는 1/8이 한국인이라 외모로는 거의 백인에 가깝다. 틸러를 자기의 새로운 사업에 끌어들이는 퐁 로우는 중국인 혈통의 거물 사업가. 틸러가 타국에서 일년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와 임시적 가족 처럼 지내게 되는 밸이라는 여자도 중국인 혈통이다. 

틸러는 대학도 아직 졸업하기 전의 젊은이로 세상을 헤쳐나갈 길이 창창한 나이이지만 개방적인듯 하면서 내성적인 면이 있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깊은 면이 있다. 말이나 행동이 아직 어른 보다는 청소년 스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세상 어떤 한 자락을 붙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목도 있다.

태평해보이는 바깥의 껍질을 뚫고 실제의 인간적 다양성으로 들어가 보면 불안과 우쭐함, 세속적인 모습과 경건한 모습, 엉망진창인 모습과 꼼꼼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크고 작은 문제에 관해 때로는 단단하고 때로는 무른 편협함이 두드러졌다. (502쪽)

세상의 허무를 느껴오던 틸러의 엄마는 틸러가 어릴 때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어린 틸러와 남편을 두고 집을 나간다. 그후 아버지는 감정을 절제하며 혼자 남은 아들 틸러를 아주 조심스럽게 키운 것 같다. 심하게 억압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대신 소통이 잘 되는 부자 사이는 아니었다. 이러한 틈은 자유와 함께 방황을 낳기도 하는 법. 경제적으로 궁핍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틸러에게 간섭은 없지만 방황을 가져다준다.

틸러는 접시닦이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우연히, 그야말로 우연히 중국인 사업가 퐁 로우를 만나게 되는데 퐁 로우는 대번에 틸러를 알아본다. 위에 인용한 것 처럼 틸러가 자신의 위성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여기에 쉽게 동조하고 그를 따라가는 틸러는 (이런 것 보면 아직 무모함이 가시지 않은 젊은이다운 면모) 퐁 로우가 시작하는 새로운 건강 음료 사업에 일조를 해줄 것을 권유받고, 그것이 살고 있던 미국을 떠나 멀리 중국, 마카오 땅을 밟게 되는 시작이 된다. 아버지에게는 학교에서 연수를 간다고 둘러치고 떠나서 보낸 일년은 떠날 땐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과 흔적, 인생 변곡점을 안겨주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 '타국에서의 일년'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옥 경험을 하고서 미국의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음식 값이 없어 곤경에 빠져있는 여자 밸과 그의 아들 빅터를 만나게 되는데, 뚜렷한 행선지가 불분명하다는 공통점때문에 그냥 스쳐가는 인연을 넘어 한 곳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해 살게 되는 것은 이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전사한 남편의 이전 행적때문에 추적을 당하며 사는 밸과 밸이 어린 아들과 틸러는 그렇게 아무 관계도 아니면서 또 특별한 관계를 이루며 한 집에 거주한다. 밸과 틸러는 서로 연인 역할이 되기도 했다가 보호자 역할이 되주기도 하면서. 상대방의 과거를 캐묻지 않으면서 가족처럼 위하는 마음으로 연대를 이루어 가는 것은, 안정된 생활을 꿈꾸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조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뿌리 내리고 싶어하지만 이들은 늘 불안하다. 오랫 동안의 정신적 불안에 길들여진 이들은 때로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지 서로 살펴야 한다. 애착인지 애정인지 모를 감정의 정체도 모호한 채로, 자기를 보호하는지 상대를 보호하는지도 모호한 채로 말이다.

아직도 세상은 위험한 곳. 밸의 자살 시도를 겨우 막아내고, 틸은 밸을 계속 예의 주시하지만 이제 그것은 긴장감이라기 보다 초탈한 모습이다. 그렇게 틸러가 사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하려 노력 중이다. 우연한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까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심지어 편히 눈을 감고 있으려고 한다. 삶이 혓바닥에 화끈한 박하를 올리도록 놔두듯이, 아니, 어떤 식으로든 행운이 따른다면 가장 아삭아삭하고 즙이 많은 주사위 크기의 수박 조각을 올릴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을 태워 버리려고 집 뒤의 테라스로 숨어드는 대신, 호미를 쥐고 돌투성이 땅에서 우리가 고른 텃밭에 거칠게 덤벼든다. 밸과 비즈에게 다양한 가을 채소를 심으라고 시킨 밭고랑의 잡초를 제거한다.

나는 그저 두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하게 되는 생각이 밤사이 얼마나 많은 싹이 텄는지에 관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685-687쪽)

(번역자를 거치긴 했지만 문장의 스타일과 표현이 색다르지 않은지. 나만의 느낌인지.)


마지막으로 번역가가 작품 뒤에 남긴 말에서, 원문을 읽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평이한 문장보다는 이전 문장에 만족하기 전에는 절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밀도 높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창래 작가의 작품의 특징을 말하면서 그런 곳에서 특히 신경을 많이 썼음을 털어놓고 있다. 평균적으로 한 문장에 70단어 이상을 담고 있다고.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작년에 나왔으니 앞으로 몇년은 더 기다려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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