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1 펭귄클래식 1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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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온 여행기라면 어림없다. 화보같은 사진이 보는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뿐 더러, 구구한 설명보다 사진과 지도로 방문한 지역을 잘 보여줄 수 있어 글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200년도 더 전에 나온 이 기행문은 아무리 대문호 괴테가 썼다지만 분명 지루할거라 짐작하여 시리즈로 구입한 책들 사이에서 여태 손을 대지 않고 있던 책이었다.

1749년생 괴테가 작정하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것은 1786년 (비교를 위해 1786년 우리나라는 조선 정조 임금 시대), 그의 나이 38세였다. 일년 십개월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기록인 이 책은 1권과 2권으로 나와 있는데 1권엔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를, 2권에는 다시 들른 로마에서의 체류기를 담고 있다. 1권만 다 읽은 상태이지만 2권으로 넘어가기 전 1권을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어 쓴다. 아마도 2권까지 다 읽은 후의 느낌은 다를지 모르고, 1권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라질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겠다 싶다.


시작은 이렇다.

1786년 9월 3일

나는 새벽 3시에 카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카를스바트는 현재 체코 영토)

나는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단신으로 우편 마차에 몸을 실었고, 아침 7시 30분에 자욱하게 안개 낀 아름답고 고요한 츠보다우에 도착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괴테의 아버지는 황실 고문관, 어머니는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공직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창작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서 문학에 대한 공부는 물론,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한마디로 다방면에 관심 많고, 재능있고, 궁금한 것은 부족함 없이 탐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수 있었던 괴테이다. 

26살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파우스트>로 더욱 유명해졌을 즈음 오랫동안 꿈꿔 오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시작 부분에서 보듯이 혼자 몸으로,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은채였다. 자아에 대한 성찰과 예술적인 탐구를 위해서였다고 하나, 그러기까지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이 동기를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괴테의 아버지가 이미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 영향도 받았을 것이고 말이다.


1권에는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여행이 주 내용이지만 거쳐간 작은 마을, 지역까지 아주 세밀하게 써놓았다. 어디에서는 누가 동행을 해주었고,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했으며, 자연적 환경이 어떻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것을 보았는지, 꼼꼼하게 기록을 해놓았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관심없는 곳을 가고 관심없는 것을 관찰하지 않았을테니, 괴테의 관심과 지식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어떤 지역에 처음 발을 들이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괴테의 경우엔 아마도 그 지역의 기후, 토양, 암석 등 자연적 특징을 세밀하고 살피고 관찰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직업이라면 모를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은 없을것이다 싶을 정도이다. 때로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 의문을 갖고 추측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맞든 틀리든).

나는 지구라는 덩어리, 그리고 특히 그 두드러진 지반이 변함없이 항상 똑같은 중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중력이 어떤 맥동(脈動) 상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중력이 필연적인 내적 요인, 어쩌면 우연한 외적 요인으로도 때로는 커지다가 때로는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2쪽)

겉으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 지역에 따라 다르고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원인은 보다 더 근본적인 데에 있을거라 확신하여 지구 중력에 까지 확장하여 추측해보는 부분이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보는 풍경에 대한 그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눈부신 햇살을 받고 석호를 통과해 가면서 나는 곤돌라 뱃전에서 뱃사공들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노를 저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베네치아 유파가 가장 최근에 그린 최고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햇살은 대상의 고유색을 현란하게 부각시켰고 그늘진 부분도 너무 환해서 어느 정도 다시 빛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115쪽)

지질과 기후, 식물에 대해서 쓴 부분은 딱딱하고 지루하다가도 이런 비유에선 그의 문학가로서의 기질이 읽힌다.

한편 산 마르코 성당의 둥근 지붕과 천장을 보며 성당이 지어질 당시 사용되었던 기술이 전해지고 있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쉬움을 쏟기도 한다.

고대인에게 바닥을 마련해주고 기독교인에게 천장을 둥글게 해주었던 이 기술이 지금 와서는 통이나 팔찌 따위에 쓰이게 되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열악하다. (116쪽)

여기서 이 시대는 물론 괴테가 살던 18세기를 후반을 말한다.

아시시에서 폴리뇨로 가는 길은 (아시시는 알고 있지만 폴리뇨는 들어본 적이 없다) 네 시간이 걸리는 산길이었지만 오른편에 나무가 우거진 계곡이 펼쳐진, 지금까지 걸어온 산책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산책길이었다니 기억했다가 나중에 나도 기회가 되면 걸어보고 싶어졌다.

폴리뇨를 여행하는 부분에서는 '이탈리아는 자연의 혜택은 가장 많이 받은 나라지만 좀 더 편리하고 새로운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기계나 기술 면에서는 다른 모든 나라에 훨씬 뒤처져 있다'고 하면서, 무사태평 생활방식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인의 눈으로 본 이탈리아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나보다.

예나 지금이나 혼자 여행하는 일은 자유로움을 댓가로 어려움도 혼자 몫인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나는 홑몸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이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이제야 뼈저리게 느낀다. 서로 다른 화폐며 마부, 물가, 열악한 숙소 때문에 날마다 어려운 일을 겪는다. 나처럼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며 끊임없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크나큰 불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소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나라를 한번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익시온처럼 바퀴에 묶여 로마로 끌려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불평도 하니 않으련다. (162쪽)

이탈리아로 떠날때는 혼자였긴 했지만 여행하는 대부분 동행자가 있긴했다. 티슈바인도 그런 동행인 중 한 사람이었다. 가는 곳마다 글을 쓰듯이 그는 그림을 그려 남기려는 화가였는다. 괴테는 여행하는 동안 자신과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는 티슈바인의 작업을 경이로운 눈으로 관찰하며 자주 언급해놓고 있는데 본문 중에 티슈바인이 괴테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티슈바인이 자주 주의 깊게 나를 관찰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내 초상화를 그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구상은 끝났고 캔버스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나는 흰 외투를 걸친 여행객의 모습으로 실제 크기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나는 무너져 내린 오벨리스크에 앉아 저 멀리 배경으로 로마의 캄파니아 지역의 페허를 굽어보게 된다. (207쪽)

이 그림은 현재 이 책 <이탈리아 기행>의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그림이고 같은 그림이 민음사의 <파우스트> 표지에도 사용되었다. 


나폴리에 가서는 당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에 직접 올라가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화산 활동을 보는 것이 경이롭고 새로운,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듯이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였으니까.

베수비오 화산이 돌덩이와 화산재를 내뿜고 있어서 밤에는 산봉우리가 빨갛에 달아오르는게 보인다. (236쪽)


인근에 베수비오 화산이 서너 개가 더 있다 하더라도 나폴리인이 자기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고 도시의 시인들이 이곳의 지형을 축복하고 몹시 과장해서 노래해도 이들을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누구도 로마를 뇌리에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자유로운 지형에 비하면 테베레 강바닥에 위치한 세계의 수도는 나쁜 곳에 자리 잡은 오래된 수도원 같은 생각이 든다. (258쪽)

여기서 테베레 강바닥에 위치한 세계의 수도란 로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나폴리에 오면 로마는 그저 강바닥에 위치한 오래된 수도원으로 비유될 뿐이다.

나폴리에 4주 동안 머물면서 괴테는 이곳의 지형과 자연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고서 배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시칠리아 섬으로 간다. 여기서는 크니프라는 화가가 동행을 한다. 

시칠리아로 가는 배에서 배멀미를 심하게 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는 그리 좋지만은 아니었던 듯. 팔라르모와 알카모 등을 방문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의 시칠리아 여행이 즐겁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것이라곤 자연의 폭력, 시대의 음험한 술책, 자신들의 적대적인 분열이 낳은 원한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인류의 부질없는 노력밖에 없었다. 카르타고인, 그리스인 및 로마인과 이들의 수많은 후손은 건설과 파괴를 일삼아왔다. (419쪽)

시칠리아의 많은 지역과 사원이 황폐화되고 허물어진채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한탄스러웠던 것이다.

시칠리아를 떠나 다시 나폴리를 거쳐 로마를 재방문하는데, 두번째 나폴리를 가보고서 이탈리아 북부 다른 도시와의 차이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서술해놓았는데 나폴리의 생동감의 원인이 어디에 있나 나름대로 분석해보려고 했다. 역시 기후가 큰 원인. 로마를 비롯해 이탈리아 북부는 농사보다 산업에 의지해야 하는 환경, 산업이 발달한 곳이라서 일년 사시사철 노동과 근면에 적응된 생활을 해야하고 미리 대비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지만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는 더없이 좋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곳이라서 '노동의 땅'이 아니라 '경작의 땅', '행복의 땅'이라고 했다. 풍부한 바다가 있고 경작지가 있어 식량을 제공해주니 단순히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일하는 것 같다고. 대신 수공업자들은 북부에 비해 훨씬 기술이 뒤떨어져 있고 공장도 서지 않으며 지식인의 수효가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나폴리파의 어떤 화가도 위대해지지 않았고 성직자마저 안락한 생활을 하는 등, 위인들도 대부분 감각적인 쾌락과 화려함 및 오락을 추구하기 위해자신들의 재산을 허비한다고 했다. (450쪽)

어딜가나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여행객으로서 나폴리는 더 할 나위 없이 유쾌한 곳이었으리라. 

이렇게 독일에서 베니치아,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다시 나폴리를 거쳐 괴테는 두번째 로마로 향한다. 그것이 2권의 내용이다.


읽는게 생각만큼 지루하지는 않다. 괴테의 자세한 여정과 관찰의 범위, 기록을 읽고 있노라니 같은 곳을 가도 보고 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것을 새삼 느낀다. 과거, 현재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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