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욕심 자식욕심 두루두루 많아서 논농사 자식농사 많이 짓고 많이 생산하여서 늘그막에 보람 크신 검바골 대모 고향 가서 뵐 적마다 눈에 띄게 검불머리 흰머리 늘어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대숲으로 살아 일에 게으른 젊은것들에 회초리 되고 귀감이 되는 검마골 대모 그 대모 보면 사 년 전 간경화에 두들겨 맞고 쓰러져 끝내 못 일어나신 울엄니 생각이 나서 눈시울 붉어진다 대모와 살아생전 울엄니 사시사철 이웃하고 사시면서 일 년이면 열댓 차례씩 병아리처럼 토닥토닥 잘도 싸우고 그 사이사이에 금세 변덕도 심해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온 세월이 부지기수다 대모의 맏이인 찬범아저씨 서울 가서 큰 공부 마치고 은행원으로 취직된 것이 우리 동네 제일로 큰 자랑이었는데 울엄니 다섯 마지기 자갈논으로 여섯 형제 가운데 맏이와 셋째를 높은 공부 시켜 놓으니 시샘 난 대모 그걸 못 참아 틈만 나면 시비 붙고 쑥덕공론 심하여 울엄니와 대판거리해대는 식이었다 한번은 맏이의 가을 학기 등록금 기일 내에 납부 어려워 전전긍긍 울엄니 며칠을 전전반측하다가 염의 버리고 대모 찾아가 통사정 목 놓았다는데 그 대모 벽장 속 깊이 감춰돈 목돈 꺼내 침 발라 센 후 "돈 썩어도 이 돈 못 빌려준다" 면박을 줘서 그 길로 득달같이 달려와 이불 뒤집어쓰고 "독한 놈의 여편네 징한 여편네" 치미는 울화 욕으로 달래던 엄니 그 일 끝 내 못 잊고 괴로와하다 저세상 가기 두 달 전 문병 오신 대모의 소똥 같은 눈물이 여윈 볼 흥건히 적셔놓으니 그제서야 노여움의 벽 허물어 대모의 손 굳게 잡았다 그리하여 두 달 후에는 뚝 끊었던 대모의 발걸음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 들러 집 안팎 살림살이 당신 일로 삼아서 챙겨주시니 살아생전 울엄니 잔소리가 밤낮없이 무꽃으로 펴서 웃고 있다고 어쩌다 고향 챙기면 검바골 대모 내 손에 감이며 대추 혹은 토실한 알밤 넣어주시며 한참을 먼산 바라 눈물 글썽이신다
- 이 재무 <검바골 대모> 전문 -
시인의 어머니는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 중에 나오는 맏이는 육남매의 장남인 시인 자신을 가리킨 듯.
소설 같은 시, 소설보다 좋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