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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살아있는 것 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는 상태란 이미 생명력이 사라진 상태.
인간 역시 살아있는 존재이니 외형적인 변화와 더불어 마음 상태, 감정, 기억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도 변해간다. 외형적인 것은 눈에 금방 띄니까 모르고 지나칠 수 없고, 그래서 현대 의학 기술의 힘을 빌어 그 속도를 늦춰보려 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변화는 모른채 살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문득 그동안의 변화를 깨닫게 되는 수가 많다.
사라진 것들. The Disappeared.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른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사는 동안 축복일까 저주일까.
저자 앤드루 포터는 작가라는 능력으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모아 '사라진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 하였다.
1972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출생. 영문학과 예술학을 전공하였다. 2008년에 낸 첫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우리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데 이어 2023년에 나온 두번째 단편집 <사라진 것들>도 역시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데 성공. 나 역시 오래전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괜찮게 읽었던 기억으로 <사라진 것들>도 읽어보게 되었다.
열다섯 편의 단편은 어떻게 보면 다 비슷하다. 동일인들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주인공 부부가 나오고, 텍사스가 배경이 되며 직업이 비슷하고 성격이 비슷하다. 아주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40대. 꿈과 성공을 향해 치닫는 노력으로 매진했던 2, 30대에서 살짝 비껴나 자기의 위치를 되돌아보는 중년의 시기이다. 잃어버린 꿈과 자유를 자각하게 되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희망보다는 불안이 더 커짐을 느끼는 시기. 제목의 사라진 것들이란 다름 아닌 젊은 시절 가졌던 원래의 꿈과 자유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라진 자리에 대신 들어와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데는 또다른 시간과 연륜이 필요하리라.
첫번째 단편 <오스틴>은 텍사스의 도시명. 오스틴에서의 오랜만의 친구들 모임을 통해 단절되었던 과거가 갑자기 현재로 소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현재 나의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자고 있는 아이들의 방을 둘러 보며 이 정도면 안정된 생활이고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문단처럼 과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그 다른 삶이 살짝 윙크를 보내는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친구? 너 어디로 간거야? 라고.
네쪽 짜리 짧은 단편 <담배>에서는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보았을때, 그때 피는 담배의 맛은 이미 예전에 맛보는 담배의 맛이 아니라는 간단한 에피소드로써 상실감을 얘기하였다.
배경속에 등장하는 사물중 하나를 들어 단편의 제목으로 삼은 <넝쿨식물>에서 넝쿨식물은 집주인이자 화가인 라이어널의 스튜디오가 있는 안마당을 덮고 있던 식물이자, 더 중요하게는 그 스튜디오에서 일어났을 (일어났으리라 짐작되는) 일들을 가리키고 있다.
기원하는 것이 있을때 자신이 진짜로 기원하는 대상이 아닌 물성에 대치하는 심리가 사람에게는 있다. 구체적이지 않고 현실적이 아닌 기원일때 사람들이 차선으로 취하는 방식임을 보여주는 작품 <라임>.
<첼로>는 첼로를 연주하고 가르치는 아내의 손가락에 이상이 생겨 직업은 물론 자아마저 흔들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남편이 이야기이다. 남편의 감정이 직접 드러나지 않게 묘사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라인백>과 <히메나>는 세사람으로 구성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셋 중 한사람이 빠지고 나서야 그동안 셋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파악되거나 (히메나), 한 사람의 부재하에 남은 두 사람의 관계도 불안전해진다 (라인백).
<숨을 쉬어>에서는 어린 아들을 둔 부부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이 키우는 부모는 늘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곤 한다. 아이의 상태를 과거 자신의 어떤 실수와 관련지어 분석하는 것은 부모가 된 이상 끊이지 않는 작업이다.
<실루엣>은 여기 실린 작품들중 꽤 긴 단편이지만 본문 중에 '실루엣'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나온다. 왜 제목이 '실루엣'일까 의문이 들었다가, 이 작품의 제목이 실루엣이 아니라 '오해'라든지 '질투'라든지 하는, 내용과 더 관련있어 보이는 단어로 제목을 삼았다면 이 작품의 의미는 훅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불확실하게라도 확신을 만들어두고 싶은 인간 심리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경계나 윤곽선이 되지 못하고 실루엣으로 존재하는 인간 심리랄까.
<알라모의 영웅들>이란 작품에서 '알라모의 영웅들'이란 신혼부부의 사이를 메꾸어주던, 일종의 지루함 방지, 시간 때우기 수단이 되어준 게임 이름이다. 이것이 있어야 했던 사이는 이 게임의 부재와 함께 끝이 난다. 이렇게 관계를 상징하는 제목들의 예는 <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벌'은 누가봐도 시험적 별거를 막 시작한 나와 아내 사이의 갈등을 의미함을 알수 있다.
<포솔레>같은 작품을 읽고 나면 소설가에겐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이야깃거리화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읽어가면서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읽어나감과 동시에 나만의 이야기를 따라 만들어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사라진 것들은 정말 사라졌을까?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 한켠에서 언젠가 소환되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라졌다고 하고 싶지 않은 바램에서 그렇게 돌려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