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자 여행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0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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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리움박물관에서 조선 백자 기획전이 열릴때 전시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학교에 계신 교수님도 아니고 일반 도슨트도 아니신 듯한 분이 전시를 보러온 사람들을 직접 인솔하며 전시장의 전시품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었다. 우리 나라 백자에 대해 전문가급 지식으로, 재미있게 설명을 잘 해주어 그날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전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전시 설명을 마치며 본인이 작성했다는 전시탐방기 소책자를 보여주기에 전시장 직원에게 저 책자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배포용으로 나와있는게 없지만 QR code 를 찍으면 화일로 다운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다운받아 집에 와서 찬찬히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이후 그분의 백자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어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이다.

책에 실린 저자 소개이다.

'작가. 소장 역사학자이자 박물관을 사랑하는 남자. 혼자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하고 고증하고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도자기에 대한 관심은 군대 제대 직후 운명처럼 인사동을 다니다가 골동 가게에 있던 여러 도자기에 흠뻑 빠지면서 부터였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2005년부터는 도자기 공부를 위해 거의 매주 방문하였으며 이어서 한, 중, 일 여러 박물관을 다니며 수많은 도자기를 감상하는 수준까지 올라 2010년에 <중국 청화자기>라는 책을 처음 출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3층에 가면 조선의 백자 뿐 아니라 한, 중, 일 도자기를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국내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우리 나라 도자기만 전시하는 상황을 볼때 특별한 공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조선의 백자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백자에 대한 비교 설명도 포함하고 있다.


조선도자기는 앞으로 달성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명나라 황제가 사용하는 최상의 백자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명나라 번왕이 사용한 수준까지는 달성하여 조선을 통치하는 왕의 권위를 높여야만 했으니까.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기존의 백자와 격을 달리하는 질 높은 백자를 생산해야만 했다. (94, '조선과 명나라')


한반도의 백자 인기는 조선 왕실에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시작되었다. 특히 왕실에 필요한 고급 백자를 매번 명나라에서 구하는 것이 아닌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직접 생산하고자 노력하면서 관요가 설립되었고, 그렇게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도입되었다. (115, '백자를 얻으려는 노력')


조선 후기부터 유독 소중화 (小中華) 의식이 강하게 발현된다. 명나라 다음가는 문명국인 조선이 오랑캐가 황제가 된 시대 (청)를 대신하여 중화의 적통을 이어간다는 정신이 바로 그것. 지금보면 국력이 크게 꺾인 시대의 정신 승리에 가까운 모습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당시 조선인들에게 소중화의식은 매우 진지했다. 아무래도 이런 자존감마저 무너진다면 견디기 힘든 시기였나보다. 이에 따라 도자기 역시 중국 영향에 따른 디자인이 많이 보이던 조선 전기와 달리 한동안 조선만의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철화백자, 17세기말~18세기 초반 달항아리가 등장한 배경도 바로 이런 분위기가 한몫했다. 명나라와 달리 의도적으로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로 인식하면서 이들 문화 역시 배격하고자 노력한 분위기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155, '철화용준')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과연 한반도 도자기 문화가 어떠했는가.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에는 '일본경질도기'라는 회가가 설립되었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일본 기업인이 투자하여 만든 것으로 이때 근대 기술을 바탕으로 기계를 이용한 산업 도자기를 생산하였다. 일제 강점기가 끝날 무렵 남한 내 지어진 공장 중 약 85%를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인 소유의 2700여개의 공장들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미국에 의해 대부분 남한 정부로 빠르게 이전된다. 그리고 남한 정부는 이를 정치에 끈이 있는 거물 한국인에게 분배하여 나눠주었다. (222, '일제 강점기와 독립 이후 도자기')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의 마무리로서 말한다. 

결국 조선백자는 세계 도자기 흐름을 기준으로 본다면 국내용으로서 그것도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까지 전성기를 잠시 찍고 17세기 이후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어지던 산업이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을 방문하면 중국, 일본 전시실은 그들의 도자기로 가득 전시되고 있건만 한국 전시실은 대부분 빈곤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이는 17~19세기까지 조선백자가 질뿐만 아니라 절대적 생산량 또한 중국과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한 데다가 유럽 중동 등으로 백자를 수출한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반기처럼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주변국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지 않으며 상업과 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부족하다면 한반도의 미래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겠다. (234, 에필로그)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부진함의 원인을 알았다면 거기에서 그치면 안될 것이다. 지난 주 어느 박물관 대학 강의에서 강의하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최근엔 해외에서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을 방문할때 피부로 느낄 수 있겠더라고. 어느 나라의 문화가 우수하냐 보다는 어떤 다른 특징과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문화만의 고유성과 멋은 어디 있는지 발견하고자 하는 안목이 필요하고 저자와 같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조선 백자라 하면 달항아리만 얼른 떠오르고 마는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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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4-03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영국박물관에 갔을 때 중국관에 전시된 도자기에 한참 머물렀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백자보다는 청자가 더 좋은데 미술 작품도 시대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이 책 읽고 싶네요^^

hnine 2024-04-04 02:03   좋아요 2 | URL
영국박물관 중국관, 눈이 휘둥그래지지요. 저도 그랬고, 우리 나라랑 비교하고 그랬답니다.
우리 나라에서 국보급 유물들은 그와 거의 흡사한 형태의 유물들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발견된 것을 보고 실망하기도 하고 그랬고요.
이 책 아주 쉽게, 말하듯이 쓰여있어서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