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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3부 3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3부에 해당하는 9, 10, 11, 12권은 1919년 3.1운동 후 딱 10년 후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보면 평화로운 시대가 그리 길게 있었던가 싶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만한 때가 있었을까. 주권을 되찾으려는 운동은 물론이고, 근대화의 흐름 또한 거스르지 못하니 사람들의 생활 양식, 사고 방식,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3.1운동 이후 과연 3.1운동은 실패냐 성공이냐 의견이 분분하던 대목도 이전 권에서 몇번 거론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운동이었음에도 별로 바뀐 것이 눈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 독립운동 뿐 아니라 사회 운동 성격을 가진 모임이나 단체가 꽤 많이 생겨났는데 토지 11권에서는 주로 형평사운동과 계명회를 예시로 들고 있다. 형평사운동은 그동안 천민 취급을 당하던 백정 출신들이 모여 그들의 인권을 되찾고자 만든 인권운동이고, 계명회는 사회과학 연구 단체 비슷한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서 사회주의의 태동이라고 볼수도 있는데 이것은 조선 뿐 아니라 당시 지식의 온상지로 여겨졌던 일본에서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었던 영향때문에 대개 일본 유학생 출신이 중심이 된 비밀결사 같은 것이었다. 일본 유학생은 아니지만 서희 남편 길상이 이 단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 독립운동과 줄이 연줄연줄 닿아 관여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토지, 이 소설의 시작부터 등장한 동학 운동은 그 한 줄기가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 즈음해서 활발하게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그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눠져 갈등을 보이는 가운데 김환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쇠, 석포, 관수, 혜관 등이 김환 주위에서 그를 돕고 있었다. 3.1운동 이후 독립 운동 관련 세력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동학 잔당 일원이면서 또 하나의 세력을 키워가던 지삼만의 밀고로 김환과 석포가 잡혀들어가게 되고, 병약했던 석포가 고문 받다가 먼저 죽고 김환은 감옥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김환의 죽음은 그를 수년간 옆에서 보필하던 강쇠로 하여금 복수를 결심하게 한다.
계명회도 무사하지 않아 길상 역시 체포되어 서울에서 감옥살이를 시작하고 서희는 외롭고 착잡한 세월을 보낸다.
조준구의 거짓 증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정한조의 아들 정석은 공부를 마치고 진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부인 양을례와 원만치 못한 결혼 생활을 하고, 더구나 기화를 돕는 석이를 양을례가 의심하기 시작하자 관계는 더 악화되어 급기야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고 만다.
서희와 길상의 두 아들 환국과 윤국. 활달하고 자기 표현을 잘 하는 편인 동생 윤국에 비해 형 환국은 혼자 생각이 깊고 말수가 적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느라 진주 집을 오가면서 환국은 진주의 있는 집 외동딸 양소림을 알게 되어 연모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양소림의 신체적 결함을 두고 고민한다.
토지에서 비극적 인물 중 한사람인 기화 (봉순)는 외로움과 허무감을 달래지 못해 아편중독자가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서희는 기화를 평사리로 불러 요양하게 하지만 기화는 답답하다며 자꾸 뛰쳐나가려고만 한다. 이상현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양현 조차 이런 엄마를 낯설어하고 기화의 삶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어 읽는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남을 모함한 적도 없고 착하고 순박하게만 살아온 봉순의 삶이 왜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가. 인간의 비극적 삶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답없는 질문을 또 해보게 되는 것이다.
기화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고, 그 이전에 서희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혼자 품고 살고 있던 이상현은 이 전권에서 친구인 임명빈의 동생 임명희의 사랑 고백을 받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현은 그 고백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다. 낙심한 임명희는 오빠 임명빈이 교장으로 일하는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조용하와 사랑없는 결혼을 한다. 임명희를 비롯해 강선혜, 홍성숙 같은 이가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개인적 차원 이상으로 두드러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따로 배우지 못하고 농사지으며 평생을 보낸 아낙들이 보여준, 어찌보면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 분량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한 동네 아낙 복동네가 자결한 것이 억울한 누명때문인 것을 알게 된 다른 아낙이 자발적으로 다른 두 아낙과 뜻을 모아 죽은후에라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행동을 취한 것. 헛소문을 퍼뜨려 복동네를 죽게한 봉기 노인을 동네 사람들 앞에 무릎꿇고 자복하게 하는 힘을 보인다. 꼭 많이 배운 사람일 필요 없는 것이다. 의롭고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사는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