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내가 받은 질문은 여행 목적, 여행 기간, 그리고 혼자 여행하냐는 것이었다.

혼자. 그래 나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이십 여년 전 영국에 와서 지낸 3.5년 동안 내가 배워온 것은 영어 보다도, 공부 보다도, 혼자 체험을 통한 혼자 있는 법 이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하며 재발견하였다.

영국에 있었으면 영어 많이 늘었겠다는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뇨, 제가 한국에서도 말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서 3.5년 있었어도 말을 잘 안하니 영어 잘 안 늘더라고요."

전공 분야에서 이젠 전문가라 할 수 있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아뇨, 하나를 알면 모르는게 다섯 가지가 생겼어요. 그래서 공부하기 전보다 더 무식해져서 왔어요."

그럼 뭘 배워왔어요? 라고 물으신다면 "하고 싶은게 있을때 같이 할 사람 찾지 않고 그냥 혼자 해요. 하고 싶지 않은게 있을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그냥 혼자 결정해요. 그런거 배워왔어요."

 

그런데 살면서 보니 그런 것들이 영어보다, 전공보다, 더 쓸모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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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1-0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혼자의 쓸모.
근데 전 그게 참 안 되더군요.
혼자 방콕할망정 혼자 식당에 가는 게
왜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지?
여행은 고사하고 혼자 극장에 가 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ㅠ

hnine 2018-11-01 18:29   좋아요 1 | URL
전 배고픈걸 아주 아주 못참기 때문에 혼자 식당가는 것은 아주 일찍 습득했습니다.
배고파 보세요 ㅠㅠ 혼자고 뭐고 일단 먹어야합니다 ^^

혼자의 쓸모도 있지만 그래도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하는 것도 좋지요.

목나무 2018-11-0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인 법을 배우는 여행의 재발견이라... 이 글 정말 와닿는데요.
저 역시 집 떠나와 오랜 여행 중인데도, 아직도 혼자 사는 법이 서툴러 한번씩 휘청거리네요. ^^;;
좀 더 여행을 해보면 뭔가 답을 찾게되겠거니 하며 오늘 하루를 또 보냅니다. ~

hnine 2018-11-01 18:32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에 설해목님 서재에 댓글 남기려다가 초면부터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좋아요만 누르고 온적 있어요.
저도 늦은 결혼을 한지라, 잘못한 것도 없이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걱정을 많이 들었는지.
20년 전 영국에 있을때는 그저 하루하루 버텨나가는것만 해도 버거워서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 가보니 그때 저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지금 저의 모습은 또 20년쯤 지나서 제대로 보이려나요?
휘청거리는 하루, 저도 매일 그러고 삽니다. 반가와요 ^^ (휘청거리는 오후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목나무 2018-11-01 21:57   좋아요 0 | URL
아... hnine님이 남겨주시려던 말씀이 뭐였을까.... 뭔가 좋은 걸 놓쳐버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
반가워요.hnine님... 글을 읽다가 꼭 제 마음같은 글이라 저는 초면이고 뭐고 댓글을 냉큼 달았어요. ㅋㅋ
이렇게 또 한사람을 천천히 알아가고 누군가의 삶에서 위로를 받으며 휘청휘청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네요.
20년쯤 지나 제대로 보이는 내모습... 그 모습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하루 잘 살고싶다는 생각 문득 하게 됩니다. ^^


순오기 2018-11-1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영국 여행하셨네요~ 좋았겠어요!@@
하고 싶은 걸 눈치보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큰 용기겠죠. 마지막 문장에 깊이 공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