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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루시아 벌린. 1936년생 그녀의 이력을 읽어보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이렇게 국내외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사는 경우가 흔하지 않을 뿐 더러, 스물 한살에 첫 결혼을 했으나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후 세번의 결혼, 싱글맘으로 네아들 부양을 위해 대학교수에서 청소부, 간호보조원을 넘나들며 일을 했다고 한다. 건강하기라도 했어야할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선천적 척추옆굽음증으로 평생 고생했으며 알콜중독을 달고 살다가 겨우 극복하지만 말년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고, 암으로 투병하다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네 아들 키우며 밤마다 틈틈이 썼다는 단편들 속에 그녀의 이런 일생이 녹아들어가있다.
평생 77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는 77편 중 43편이 『청소부 매뉴얼』에, 22편은 이 책 『내 인생은 열린 책』에 번역되어있다.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22편의 작품이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공통적 요소를 보이고 있다. 단편 마다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고 인물이 있고 직업이 있고 환경이 있다는 것을 읽다보면 지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작품에선 어떤 인물이 작가의 분신일까 찾아보기도 하면서.
글은 그렇게 어둡지고 무겁지도 않았다.
첫번째 작품 <벚꽃의 계절>은 벚꽃처럼 화사한 인생의 한 시기를 그린 것이 아니다. 흠 잡을데 없지만 매일 되풀이 되는 아내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아내의 말에 매번 똑같이 반응하고 대답하는 남편이 아내의 단조로운 일상에 기여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남편의 지루한 일상이기도 하다. 내용은 좀 다르더라도 본인의 현재 지루한 일상과 오버랩된다고 느껴 읽으면서 공감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을 작품이다.
<아내들>은 한 남자를 차례로 남편으로 두었던 자매가, 함께 앉아 그 남자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동네 부랑아들이 시키는 일을 하여 돈을 벌어오고, 귀한 돈을 벌어왔으니 칭찬을 받으리라는 아이들다운 예상과 달리 그것을 안 어른들로부터 돌아오는건 매질과 기도였다는 <오르골 화장품 정리함>까지 읽으면 이제 서서히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감을 잡는다. 짧은 이야기 속에 어떤 강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쓰는게 중요했다는 것을. 뒤에 나오는 더 짧은 단편 <흙에서 흙으로>나 <이별 연습>에서는 더 두드러지는데,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라는 저자의 말을 한번 더 되새기면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가하면 <여름날 가끔> 처럼 글이 아니라 그림, 풍경 같은 작품도 있다.
<순찰: 고딕풍의 로맨스>의 마지막 부분은, 상황은 어딘지 안전해보이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골목에서 순찰중인 야간방범대원은 "순찰이오, 안전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 들려오는 것으로 맺는다. 야간방범대원의 외침을 '어둠을 청중 삼아 노래를 불렀다'는 문장으로 표현한 것도 자꾸 읽어보게된다.
<양철지붕 흙벽돌집>은 집을 내세워하는 인생 이야기이다. 아무 의미없고 쓸데 없는 것 같은 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고, 그 흔적은 살아 있지 않은 것들 가령 집, 도로, 벽, 흙 같은 것에 남는다.
<낙원의 저녁>은 이 책의 원서가 책 제목으로 채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본이 <내 인생은 열린 책>을 책의 대표 제목으로 내세운 반면 원서는 <낙원의 저녁>을 책 제목으로 했다. 심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고 여흥과 오락만 존재하는 듯한 멕시코의 그 호텔을 '낙원'이라고 부른다. 너무나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짧은 분량이라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멕시코의 아카풀코가 배경인 <환상의 배>는 앞의 <낙원의 저녁>의 호텔 대신 마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인생은 열린 책>에서 '열린 책 (open book)' 이란, '쉽게 알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 (a person or thing that is easy to learn about and understand)'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이 사실과 상관없이 다수의 다른 사람들의 예측과 바램대로 해석되고 결론지어 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루브르에서 길을 잃다>는 작가의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간 단편 중 하나가 아닌가 하여 개인적으로 여기 실린 스물 두편 중 특히 더 꼽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인데, 죽음에 대한 사유가 들어가 있다.
죽음을 알아차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파리에서 죽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생겼다. 나는 죽음이 어떻게 엄습하는지 보았다. (318쪽)
아버지와 애인,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후라는 시간적 상황과 제목의 '길을 잃다'가 중의적이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담배를 피우면서 행인들을 구경하는 중에 내가 잠을 알아차렸듯이 죽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사람은 죽을 때 죽음을 의식할까? 죽음이 자기를 데리러 온 순간을 의식할까? 스티븐 크레인은 죽어가는 자리에서 그의 친구 로버트 바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쁘지 않아. 잠이 오지. 그리고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돼. 내가 과연 어느 세상에 있지? 하는 비몽사몽간의 경미한 불안감이 있을 뿐이야." (326쪽)
정말 그럴까?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뒤이어 <그늘>과 <초승달>로 이어진다. <그늘>은 투우장에서 소의 운명과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대비하여 그리고 있다. 제목이 그늘이라는 것,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들이 환호와 함께 던지는 장미, 카네이션, 모자에 의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늘 묘사가 여운이 남는다.
여기 실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가 단편임에도 매번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들이 모두 이야기에 기여할 필요는 없어보이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진행시키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각 인물들에 대한 묘사, 대화, 상황, 장소 설명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직접 경험하고 쓰지 않으면 못썼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작가는 인물들의 심리를 직접 묘사하기 보다 여러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그리고 이들이 빚어내는 부대 상황 묘사로써 심리 묘사를 대신하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는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근 영화화하고 있다는 그녀의 다른 책 『청소부 매뉴얼』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네 아이 재우고 밤을 밝히며, 아마도 술을 홀짝거리며,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