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문고 55
이창숙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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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연령에 맞춰 책을 읽다보니 뒤늦게 동화와 그림책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급기야 동화 창작 공부까지 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아이가 이제 스무살이 넘었으니 오래 전 이야기이다. 공부해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지만 아이가 다 자라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동화와 그림책을 일부러 구입해서 읽어보기도 한다. 이 책도 그렇게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던 책이다.

이창숙 작가는 동화를 공부하던 모임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고 글 쓰는 저력이 있다고 느껴지는 작가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 <무옥이>를 읽으면서도 어른이 어설프게 아이의 마음을 겉돌며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 티가 나지 않는, 작가의 뚝심이랄까 그런 진지함이 느껴지는게 마음에 들었었다.

첫 페이지의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이야기에 앞서 작가를 읽기 시작한다.

내가 자라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물었어요.

"얘야, 그 일이 재미있니?"

"일을 무슨 재미로 해요?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죠."

내 대답에 엄마는 실망한 얼굴로 작게 말했어요.

"무슨 일이든 신나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내가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 또 물었어요.

"얘야, 일이 재미있니?"

"아, 그냥 하는 거예요. 직업이니까."

엄마는 또 실망한 것 같았어요.

나는 마흔 살이 넘어 우연히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얘야, 동화 쓰는 그 일이 재미있니?"

"응, 엄마, 엄청나게 재미있어요."

나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깜짝 놀랐어요. 엄마도 빙그레 웃었고요.

아, 엄마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따로 있었구나.

그 뒤로 열심히 동화를 쓰고 있다고 이어 말한다. 작가가 행복하게 동화를 쓰는 걸 보고 기뻐하셨지만 정식으로 동화 작가가 되는 건 보지 못하시고 엄마는 돌아가셨다면서 어린이 여러분도 정말 쫗아하는 일을 꼭 찾아서 누가 뭐래도 그 길을 당차게 걸어가길 바란다고.

 

이야기는 오빠의 대학 합격 잔치로 시작된다. 넉넉치 못한 농삿군집 장남인 오빠가 서울의 최고 대학 그것도 법대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시골의 잔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나와 범이는 신나서 잔치 음식 집어먹는 재미를 만끽하고 내 일 처럼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오빠의 등록금을 보태줄 정도로 훈훈한 인심의 마을 이다. 온 마을의 기대와 축하를 받으며 오빠는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고, 동생 범이는 어느 날 마을의 미루나무 새 둥지에서 새끼 새 두 마리를 꺼내와 키우기 시작한다. 나와 범이는 열심히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며 새끼 새들을 키우는데, 노란 털이 꾀꼬리인줄 알고 키우던 새는 나중에 보니 매였다. 매는 한군데 얽매여 살지 못하는 습성이 있고 사람 손을 너무 타면 안되니 더 자라기 전에 그만 놓아주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범이는 개구리를 더욱 열심히 잡아다 먹이며 애지중지 매 두마리를 키운다.

한편 동네에서는 통일벼를 키우라는 국가 시책을 듣지 않는 농부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통일벼 외에 다른 품종을 심은 논을 면서기가 와서 일부러 망쳐놓는 일이 벌어진다. 보다못해 이에 항의하다가 동네 정식이 형이 붙잡혀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가 연행되어 갔다는 소식까지, 마을 분위기는 흉흉해진다. 서울까지 부모님을 졸라 오빠의 재판에 참석하여 보고 온 나와 범이는 줄로 묶어 날라가지 못하게 키우고 있던 매를 놓아주기로 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를 쓸때 경계해야 하는 사항으로 무조건 미화 시키거나 동심을 천사처럼 그리는 주의이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쓰다보니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창숙의 <매>는 그런 의미에서 본보기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다. 어린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와 무리없이 연결시켰다. 그것은 작가의 다른 작품 <무옥이> 에서도 느꼈던 것과 같다. 수의를 입고 재판장에 나와 자신의 생각을 또렷이 말하는 오빠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기에, 묶인 줄을 끊고 날아가려 몸부림치는 매을 놓아줄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때 아이들은 어른보다 오히려 더 결단력 있다. 이것 저것 계산이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매를 놓아주며 높은 곳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매를 보고 서운함과 자랑스러움이 겹친 얼굴로 생각한다.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과연, 이 책 이 왜 동화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되고 있는지 알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그리고 동화 창작에 관심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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