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사람이다 - 그 집이 품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삶
한윤정 지음, 박기호 사진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다 읽었으니 리뷰를 써야 하는데 내용이 페이퍼에 가깝게 사적인 얘기로 흐를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들어 주저하다 시간을 끌었다.

우선 집이 사람이라는 책 제목에 공감한다. 의, 식, 주 중에 먹는 것, 입는 것도 그렇겠지만, 옷보다 음식보다 더 오랜 시간 계획하고 투자해야하고 가꾸어야 하는 집. 오랜 시간이 스며들어있고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선 책머리에서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정의를 가늠하여 네 가지를 들어보였다.

첫째, 좋은 집이란 소박한 집이다.

필요한 것은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는 집을 말한다. 상투적이고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물건이 배제된, 단순하고 잘 정리된 공간은 수행자의 거처를 연상하게 만든다고 했다.

둘째, 좋은 집이란 시간이 쌓인 집이다.

오래된 집엔 먼지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느라 아직 오랜 시간 함께 한 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집이라는 주제가 나오니 개인적으로 나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세째, 좋은 집이란 예술이 태어나는 집이다.

이게 아마 일반인에겐 가장 요원하게 들릴 수도 있는 항목일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예술이란 이전까지 없던 것, 감각을 일깨우는 것, 진선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집은 주인의 개성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공간이랄 수 있다. 집은 외부에 눈을 돌리지 않게 만드는 둥지의 역할을 한다는 대목에서는, 혼자 일을 하면서도 집보다 카페를 즐겨 찾는 시대에 살며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네째, 좋은 집이란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이다. 집이 크고 화려할 필요 없다. 이 책에 실린 작가 조은의 집이 그 예이다. 수많은 문인 친구들이 즐겨 찾고 편안해했다는 그 집은 사직동 좁은 골목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 열 몇 평의 집이었다.

 

저자는 이 네 항목에 따라 본문을 네 장으로 나누고 이것을 잘 보여주는 집들을 묶어 각 장 아래 실었다.

위에 말한 시인 조은의 집은 1장 소박한 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집은 집에 대한 나의 다른 애서인 김서령의 <가 (家)>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소개된 것을 본 적 있는, 나름 유명한 집이다. 환경운동가 차준엽이 손수 지은 토담집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집 자체였는데 집주인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가 조경란의 집은 사람이 아닌 책이 주인같은 집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담, 김근희 부부의 집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났을땐 어찌나 반갑던지.  

 

 

 

수년 전 읽은 이 책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부부가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아직도 내가 중고책으로 처분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몇 권 안되는 책 들 중의 한권이다. 유행에 맞게 새로 사서 꾸미는 재미가 아니라 고치고 만들고 가꾸는 재미로 소박하게 사는 부부의 집은 그야말로 부부의 가치관이고 철학이었다. 오랜만에 위의 책도 다시 꺼내 읽어보게 하였다.

 

2장, 시간이 쌓인 집에 실린 여섯 집 중 인상적인 집은 철물디자이너 최홍규와 이화동 성곽마을의 집이었다. 정식으로 디자인이나 건축 교육을 받은 바 없지만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면 된다는 신조로 철물점에서 시작하여 쇳대박물관으로, 이화동 마을박물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 이른 최홍규씨. 동네가 좋아지면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화동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이 동네 집들이 작은 집들이어서 세입자 없이 대개 주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값 올라 이익 본 사람은 있어도 손해 본 사람인 아직 없다니 성공적인 사례 아닌가.

 

3장, 예술이 태어난 집에 가장 먼저 나온 집은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의 제주도 소길리 집. 레전드가 된 그녀의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때'를 오랜만에 들으며 이 부분을 읽노라니 얼마나 좋던지. 자기 가슴속에 아직 끌어낼 이야기가 남아 있고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음악이라면 노래를 멈추지 말라는 그녀의 삶의 방식은 덜 먹고 덜 입는 대신 자신의 환경에서 좋은 소리와 말로 음악을 만들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4장, 공동체를 향해 열린 집에서 처음 본 서울 필동 스트리트뮤지엄은 당장이라도 가서 눈으로 보고 싶은 곳이었다. 독특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글로 사진으로 읽고 보고 하여도 감이 잘 안왔기 때문이다. 스트리트뮤지엄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남산한옥마을이 모여있던 골목에 박스 형태의 작은 미술관 8개가 들어서 있다니 어떤 분위기와 느낌일까 궁금하지 짝이 없다. 미술관 뿐 아니다. 도서관, 공연장, 레스토랑, 베이커리 카페가 문을 열었다고 하니 이곳은 앞에 든 집들과는 다른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한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도 아닌 것 같으며 짧은 시간과 안목으로 될 일도 아님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 전부인 박동훈씨가 광고업계에서 일을 시작하여 모인 수익으로 동네에 환원하자는 마음에 작은 미술관을 짓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가 일이 커졌다는 필동 타운 프로젝트. 2013년에 시작되었고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중학생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그가 한 고생과 여러 일 전전한 이야기는 간략한 소개로 다 모자랄 듯 싶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똑같은 집은 없다.

내 집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우리 집에 가자' 할 수 있는 집인지, 외부에 눈돌리지 않게 만드는 둥지 같은 집인지.

그게 꼭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0-07-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그 분의 집을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었어요. 집이 너무 유명해져서 관광객-_-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시다가 이사가게 되었다고 얘기 들었는데 책에 소개된 집은 그 다음 집일까요?@_@;; 하여간에 읽고 싶어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hnine 2020-07-06 12:57   좋아요 0 | URL
<벼랑에서 살다> 저도 가지고 있는 시집이랍니다. 벼랑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걸까요.
집이 유명해질만도 해요. 조은 시인에 대한 소개글엔 꼭 집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이 책이 2017년에 나왔으니까 아마도 이사를 갔다면 그 후가 되겠네요. 그러고보니 이사갔다면 이사간 그 집은 어떻게 해놓고 살지 벌써 궁금해지네요 이런.

2020-07-06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7-0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희집은 아닌것 같아요. ㅎㅎ 어째 해당되는게 하나도 없는것 같다니... ㅠㅠ

hnine 2020-07-07 04:26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 ㅋㅋ
해당 안되는 집이 더 많겠지요. 그런데 그게 꼭 불가능한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서 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성과 노력이면 내 집을 나 답게 가꾸고 사는 것이요. 저는 아직도 그런 로망을 버리지 못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