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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학술저널 담론비평에서 진화생물학에 관한 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원래는 '[통섭논쟁] 진화론도 진화한다'는 기획기사의 일부로 연세대 대학원신문(152호)에 게재된 것인데(사회생물학에 관한 내용이 다음호에서 다루어진다고 한다) '헌대 진화생물학의 전망'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상식 차원에서 정리해둘 만하다.

담비(07. 04. 13)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다윈과 진화생물학 

‘진화(Evolution)’라고 하면 흔히 생물의 진화가 연상된다. 그런데 국어사전의 정의에도 그러하듯 ‘진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진보’ 또는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생물진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진행되는 생물들의 진보 또는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일례로,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때 그 주된 논리는 흑인들이 진화적으로 백인들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나치의 게르만주의의 배후에도 역시 그런 왜곡된 논리가 숨어있다.  

과학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의 하나로 간주되는 진화의 개념과 그 메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연구자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근 5년 동안 영국의 군함 비이글호를 타고 세계 전역을 일주하면서 생물 진화의 증거들을 풍부히 수집했다. 이런 증거들에 바탕 하여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하게 된다.

다윈은 맬서스(Thomas Malthus)가 1798년에 발표한 인구론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맬서스에 의하면 모든 생물종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서 만약 기아나 질병과 같은 재해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으면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생물들이 대부분 안정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각 세대에서 소수의 자손을 제외한 대다수 개체들이 강제로 죽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이론을 따라 다윈은 각 세대에서 도태되는 자손들은 아마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한 개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가축이나 곡식들이 인간에 의해 선택됨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종자가 개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도 어떤 선택의 메커니즘이 존재함으로 해서 생물종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윈 이후의 진화생물학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으로 진화를 설명함으로써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이론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연선택과 진화의 관계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설명하는 데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연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다윈조차도 자연선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다윈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론 연구가 현대의 진화생물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다윈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금세기 초엽, 멘델의 업적이 재발견됨으로 해서 과학계는 비로소 유전자와 자연선택 사이의 관련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전학적 지식이 처음부터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초기의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돌연변이가 대부분 개체에 해로우며 그 영향도 점진적인 것이 아닌 아주 대규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였고,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에서 요구되는 새롭고 유용한 변이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점차 유전학에 수학이 가미되면서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전학과 자연선택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원리가 종합되었는데, 이를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부른다.

사회생물학의 등장

신다윈주의가 출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도브잔스키(Dobzhansky), 메이어(Mayr), 심프슨(Simpson) 등은 집단유전학, 계통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신다윈주의의 원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 종합설(The Modern Synthesis)’이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설이 타당하다는 점을 전 세계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쾌거라 하겠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신종합설의 제창으로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신종합설이 대두되기까지 주로 고생물학, 계통분류학, 유전학 등에 의존해서 발전했던 진화생물학은 1950년대부터는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서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비롯한 일단의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물들 사이의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많은 현장 생물학자들의 관찰을 근거로 정말로 중요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생식을 위한 개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킨스, 윌리암스(Williams), 스미스(Smith) 등에 의하면 진화는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유전자들의 투쟁으로 정의된다.

1970년대에 출현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유전자 중심 진화론의 연장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생물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옳다면 어떻게 생물들 사이에서 다른 개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현상이 빈번히 관찰될 수 있으며, 또 흰개미나 꿀벌의 집단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 협조하는 공생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다윈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논의하기로 한다).

현대인과 진화생물학

다윈 이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때로는 그런 관심이 지나친 나머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과학으로서의 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일부 비전공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창조(?)해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과학자들이 단체를 결성해서 한 과학 분야를 공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진화생물학은 비단 창조과학자들과 같은 비전공 과학자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빈번하게는 일반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한 예가 아래의 풍자만화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화생물학은 앞에서와 같은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크게 해서 널리 바라본다면, 학문으로서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은 그것이 바로 인류의 장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의 적응을 다윈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했는데, 우리는 자연계에서 지나치게 적응에 성공했던 나머지 나중에 갑자기 새로 변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렀던 많은 생물종들의 예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현재 지나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지나친 적응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인류의 번영은 환경 파괴와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열대우림, 산호초, 바다와 호수, 늪지, 강과 하구 등 생물상이 가장 풍부한 장소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오존층을 훼손하고 있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더해서 온실효과를 부추기고 있다. 또, 매년 그 사용이 늘어나는 유독성 화학물질들은  우리의 식량원인 곡식의 품종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훼손과 파괴는 필경 새로운 환경 조건을 조성해서 우리 인류로 하여금 바뀌어진 환경 속에서 살 것을 강요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러한 적응에 성공해서 영원히 번영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구하는 학문이다.(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박사)

07. 04. 15.

P.S. 필자인 홍욱희 소장은 생물학과 환경학 전공자로서 여러 권의 저역서를 갖고 있다. <생물학의 시대>(범양사출판부, 1998) 등이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물론 박스보관도서인지라 소장의 의미가 없는 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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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싸이런스 > Gloria Gaynor - I Will Survive

"I Will Survive"

At first I was afraid
I was petrified
Kept thinking I could never live
without you by my side
But then I spent so many nights
thinking how you did me wrong
And I grew strong
And I learned how to get along
and so you're back
from outer space
I just walked in to find you here
with that sad look upon your face
I should have changed that stupid lock
I should have made you leave your key
If I had known for just one second
you'd be back to bother me

Go on now go walk out the door
just turn around now
'cause you're not welcome anymore
weren't you the one who tried to hurt me with goodbye
Did you think I'd crumble
Did you think I'd lay down and die
Oh no, not I
I will survive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 will stay alive
I've got all my life to live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I will survive (hey-hey)

It took all the strength I had
not to fall apart
kept trying hard to mend
the pieces of my broken heart
and I spent oh so many nights
just feeling sorry for myself
I used to cry
But now I hold my head up high
and you see me
somebody new
I'm not that chained up little person
still in love with you
and so you felt like dropping in
and just expect me to be free
and now I'm saving all my loving
for someone who's loving me

Go on now go walk out the door
just turn around now
'cause you're not welcome anymore
weren't you the one who tried to break me with goodbye
Did you think I'd crumble
Did you think I'd lay down and die
Oh no, not I
I will survive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 will stay alive
I've got all my life to live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I will survive

Petrify: immobilize somebody with fear: to cause a person or animal to become immobile with terror; make or become deadened: to become dull, stiff, or deadened, or cause something to become dull, stiff, or deadened

crumble: disintegrate: to disintegrate or fall apart; to break up into tiny bits, or make something break into tiny 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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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를 의미심장하게 듣던 그 때를 추억하며, 싸이런스님 서재에서 퍼오다...
 

친정아버지께서는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던 것 같다. 어릴 때 우리 집엔 화초와 나무가 꽤 많았고, 비록 우리들은 추운 방에서 겨울을 나더라도 화초들은 행여 얼어죽을까봐 온실이 따로 있었던 것을 보면. 도저히 추위를 참을 수가 없을 때에는 나는 가끔 책을 들고 온실 속에 들어가 있곤 했다. 그러니까 '온실 속의 화초' 보다 열악한 내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하나 ^ ^

아파트가 아니었던 우리 집엔 늘 개가 두어 마리, 고양이가 두어 마리 씩 있었고, 열대어 키우기는 또 하나 우리 부모님의 취미 생활로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우리 집 한쪽에는 어항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항의 크기가 조금씩 조금씩 커져 가더니 내가  고등학생 이었을 때는, 폭이 1m도 훨씬 넘는, 무슨 관공서 로비에나 있음직한 크기의 어항이 우리 집 거실을 떡~ 차지하고서 가끔 오시는 손님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나는, 그렇게 어릴 때 부터 마치 한 식구 처럼 보며 자라온 화초든, 어항 속의 열대어든,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종류의 식물이 있고 물고기가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의 참여가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그것들이 자라는 데에 정이 안 갔나보다. 식물에 관심이 조금씩 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때 식물 채집을 다녀보고서 부터이다. 모두들 따분해하던 식물 채집,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야 하고, 보관하여 표본 만들기는 어디 간단했나, 검색표 찾아가며 이름 알아내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그때부터 어디 야외로 가게 되면 그곳의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름도 곧잘 알아내곤 하는데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식물분류학 1년 수업 끝나면서 점차 흐지부지 되고, 이후론 또 다른데 관심을 두고 살았나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결혼해서 내 집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으나 (여기서 내집이란 내 '소유'의 집이라기보다는 내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뜻 ^ ^) 열평 남짓 되는 아파트에 화분 하나 들여 놓을 생각도 못하고 지냈었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와서는 어쩌다가 하나 둘 씩 화분이 생기게 되었는데, 주로 길 가다가 아이가 보고서 사자고 졸라서 사게된 것, 또는 친정 아버지께서 오실 때 하나씩 가져다 주신 것들이다. 그래보았자 몇개 안 되지만 그나마도 직장에 다니는 동안 역시 나는 집에 무슨 화분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오늘도 오전에 베란다에 나가 블라인드를 활짝 젖히고, 화분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알로에, 너는 왜 꽃이 필 것처럼 꽃대만 올리고 꽃은 안 피우는거니...게발선인장, 엄마가 그러시는데 너는 물 자주 주지 말랜다. 다른 화분들 줄 때 너만 안 준다고 섭하게 생각 말아라. 꽃기린, 두쪽 꽃잎이 어쩌면 이렇게 앙증맞고 귀여우냐... 마리노라벤더, 너 처럼 잘 자라는 화분 첨봤다. 검색해봤더니 너 키가 1m까지 자란다더라. 너, 화분에 키우는 식물, 맞아? 이래가면서~ ㅋㅋ

요즘은 오전에 거의 빼놓지 않는 일과이다.
여유가 생긴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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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3-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hnine님의 여유가 팍팍 감지됩니다. 부러워요~~~
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베란다로 가서 화분한테 인사해요...
'제라늄 너 참 튼튼하게 잘 자라는구나 고맙다. 난아 넌 내가 신경써주지 않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니..고맙다. 러브체인아 이름처럼 사랑스럽구나...물만 흠뻑 주면 어쩜 이리도 행복해 하니, 타라야 올해는 튼튼한 겨울 지내보자꾸나..(베란다에 그냥두었더니 다 죽어버렸어요. 흑. 그래서 새로 심었답니다)..... 그러면 하루가 넘 넘 행복해 져요~~

2007-03-30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3-3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베란다 구경 갔다가 넘 예뻐서 놀랐는데 님이 집 베란다에도 꽃이
참 어여쁘네요. 봄을 완상하는 여유, 아침마다 집에서 느끼시니 좋으시겠어요.^^

hnine 2007-03-3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이 여유가 고맙기도 하고 가끔 저를 쓸쓸하게도 하고 그러네요.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그렇지요? ^ ^
속삭이신님, 매일 얼굴을 대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들이 제게 보내는 신호에도 귀를 잘 기울여야할텐데...
배혜경님, 해리포터님 베란다 구경 저도 다녀왔는데요, 지난번 진주님도 사진 올려주신 명자나무가 또 있지 뭐에요. 탐나던걸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 우리 나라에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으니, 더 이상 '오늘'의 얘기는 아니기를, 이미 지난 '어제'의 얘기이기를 기대했으나, 아니다. 아직도 아니다.

영국에서 학위 과정중 내가 논문을 낼 때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복수 지도 교수제도를 택하고 있는 곳이 많아, 나의 지도 교수도 두 사람이 지정되었으나, 한 사람은 거의 형식상으로 이름이 올라 있을 뿐, 나의 학위 과정에는 거의 개입을 안하고 있었다. 나는 나와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 논문을 썼는데 논문의 초고를 검토한 지도 교수가 다른 한명의 지도 교수 이름도 저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 지도 교수는 적어도 이 논문에는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데 라고 당시만해도 철 없는 (?) 내가 이의를 제기하자, 두말 않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고는 내가 초고에 쓴대로, 아무리 지도 교수라도 논문에 관여하지 않은 지도 교수 이름은 포함시키지 않고, 나와 다른 한 명의 지도 교수, 두 사람의 이름으로만 논문이 나갔다.

또 다른 논문은 첫번째 논문과는 달리 여덟명의 공저자 형태로 나갔는데, 그때 나의 일을 조금씩 도와주었던 학부생 및 다른 대학원생들의 결과가 논문에 함께 실렸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남편의 예전 지도 교수가, 예전에 남편이 해놓았던 일을 가지고 논문을 한편 내자고 연락이 왔다. 남편이 논문을 다시 다듬어 그 지도 교수에게 e-mai로 보내고, 다시 검토를 하고, 첨삭하고, 서로 왔다 갔다  online상으로 discussion끝에 투고를 위한 완결본을 지도 교수가 보내왔는데, 1저자(first author)와 교신 저자 (corresponding author;논문을 지도한 사람. 논문에 대해 답변의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 이름을 모두 남편 이름으로 해서 보내왔더란다. 자기는 이 논문에 한 일이 없다며.

몇년 전 국내 모 대학에서 투고를 위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던 중, 그 논문과 아무 상관없는 교수들의 이름까지 모두 저자로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영문 없어 하며, 위의 영국에서의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그럴려면 영국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소한 연구활동과 더불어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라는 사회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자의 양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피땀 흘려 이룬 일을 관심있는 이들과 공유할수 있도록 발표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고 존중할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일 더하기 일은 이 라는 진리를 지키며 사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 많지 않은 것이 유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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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7-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의 문제인데.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겠군요.
'관행'의 이름으로 대대손손 내려오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hnine 2007-02-1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예, 말씀하신 그런 이유이지요. 현실이랍니다.
하이드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싶지요. '관행'이라는 것, 무섭더라구요.

전호인 2007-02-13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도 정치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는 듯하여 요즘은 씁쓸합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냥 관행이라고 덮어두는 것이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관행이라는 말이 좋게들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여울 2007-02-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상식'이 필요한 사회라는 생각보단, '상처'가 필요한 사회란 느낌이 듭니다. 아파도 아파할 줄 모르는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 곪고 터져, 이것이 상처라는 것이구나 최소한 느낄 줄 아는 사회면 좋겠습니다. '상처'임에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들이 안타깝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묵묵히 지키는 사람들이 그나마 무게중심을 지키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말입니다.

씩씩하니 2007-02-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세상에 자긴 한 일 하나도 없음서,,그런게 말이되나여?
전 대학 다닐때..저희 교수가 서지쪽 책을 번역하라구 학생들한테 조금씩 분량을 나눠준 후에 그걸 자기가 다시 보구 검토해서 번역한걸루 책 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황당함이라니...
전 님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사랑해요,,진짜루요,,,

hnine 2007-02-1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그날이 너무 천천히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때에는 많이 바뀌어 있기를. 그런데 그것을 위해 저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네요.
여울마당님,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일을 이루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이렇게 말없이 묵묵히 자기의 생각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씩씩하니님, 어제 남편의 지도 교수 얘기를 전화로 듣고 여러 가지 옛날 일이 생각나서 써본 것이었어요. 저 별로 자신있지도 당당하지도 않은데 어쩌지요? .... ^ ^
 

행복을 찾는가? 그건 어디에도 없다.

자유를 찾는가? 그것 역시 어디에도 없다.

찾아서 찾아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지금, 현재를 열심히, 착한 마음으로 사는 것.

그것에 뭘 더 보태고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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