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께서는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던 것 같다. 어릴 때 우리 집엔 화초와 나무가 꽤 많았고, 비록 우리들은 추운 방에서 겨울을 나더라도 화초들은 행여 얼어죽을까봐 온실이 따로 있었던 것을 보면. 도저히 추위를 참을 수가 없을 때에는 나는 가끔 책을 들고 온실 속에 들어가 있곤 했다. 그러니까 '온실 속의 화초' 보다 열악한 내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하나 ^ ^

아파트가 아니었던 우리 집엔 늘 개가 두어 마리, 고양이가 두어 마리 씩 있었고, 열대어 키우기는 또 하나 우리 부모님의 취미 생활로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우리 집 한쪽에는 어항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어항의 크기가 조금씩 조금씩 커져 가더니 내가  고등학생 이었을 때는, 폭이 1m도 훨씬 넘는, 무슨 관공서 로비에나 있음직한 크기의 어항이 우리 집 거실을 떡~ 차지하고서 가끔 오시는 손님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나는, 그렇게 어릴 때 부터 마치 한 식구 처럼 보며 자라온 화초든, 어항 속의 열대어든,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종류의 식물이 있고 물고기가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의 참여가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그것들이 자라는 데에 정이 안 갔나보다. 식물에 관심이 조금씩 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때 식물 채집을 다녀보고서 부터이다. 모두들 따분해하던 식물 채집,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야 하고, 보관하여 표본 만들기는 어디 간단했나, 검색표 찾아가며 이름 알아내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그때부터 어디 야외로 가게 되면 그곳의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름도 곧잘 알아내곤 하는데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식물분류학 1년 수업 끝나면서 점차 흐지부지 되고, 이후론 또 다른데 관심을 두고 살았나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결혼해서 내 집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으나 (여기서 내집이란 내 '소유'의 집이라기보다는 내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뜻 ^ ^) 열평 남짓 되는 아파트에 화분 하나 들여 놓을 생각도 못하고 지냈었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와서는 어쩌다가 하나 둘 씩 화분이 생기게 되었는데, 주로 길 가다가 아이가 보고서 사자고 졸라서 사게된 것, 또는 친정 아버지께서 오실 때 하나씩 가져다 주신 것들이다. 그래보았자 몇개 안 되지만 그나마도 직장에 다니는 동안 역시 나는 집에 무슨 화분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더랬다.

오늘도 오전에 베란다에 나가 블라인드를 활짝 젖히고, 화분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알로에, 너는 왜 꽃이 필 것처럼 꽃대만 올리고 꽃은 안 피우는거니...게발선인장, 엄마가 그러시는데 너는 물 자주 주지 말랜다. 다른 화분들 줄 때 너만 안 준다고 섭하게 생각 말아라. 꽃기린, 두쪽 꽃잎이 어쩌면 이렇게 앙증맞고 귀여우냐... 마리노라벤더, 너 처럼 잘 자라는 화분 첨봤다. 검색해봤더니 너 키가 1m까지 자란다더라. 너, 화분에 키우는 식물, 맞아? 이래가면서~ ㅋㅋ

요즘은 오전에 거의 빼놓지 않는 일과이다.
여유가 생긴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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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3-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hnine님의 여유가 팍팍 감지됩니다. 부러워요~~~
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베란다로 가서 화분한테 인사해요...
'제라늄 너 참 튼튼하게 잘 자라는구나 고맙다. 난아 넌 내가 신경써주지 않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니..고맙다. 러브체인아 이름처럼 사랑스럽구나...물만 흠뻑 주면 어쩜 이리도 행복해 하니, 타라야 올해는 튼튼한 겨울 지내보자꾸나..(베란다에 그냥두었더니 다 죽어버렸어요. 흑. 그래서 새로 심었답니다)..... 그러면 하루가 넘 넘 행복해 져요~~

2007-03-30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3-3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베란다 구경 갔다가 넘 예뻐서 놀랐는데 님이 집 베란다에도 꽃이
참 어여쁘네요. 봄을 완상하는 여유, 아침마다 집에서 느끼시니 좋으시겠어요.^^

hnine 2007-03-3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이 여유가 고맙기도 하고 가끔 저를 쓸쓸하게도 하고 그러네요.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그렇지요? ^ ^
속삭이신님, 매일 얼굴을 대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들이 제게 보내는 신호에도 귀를 잘 기울여야할텐데...
배혜경님, 해리포터님 베란다 구경 저도 다녀왔는데요, 지난번 진주님도 사진 올려주신 명자나무가 또 있지 뭐에요. 탐나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