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달고 보니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린이소설에 대해, 더구나 미국의 어린이소설에 대해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미국적인 어린이소설이라는 생각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거의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이기 때문에 고치지 않고 그냥 두기로 한다.
저자인 비벌리 클리어리 (Beverly Cleary)는 미국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 졸업 후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명한 상도 여러 차례 받았는데 그녀가 쓴 수십 권 중의 하나인 이'헨쇼선생님께'라는 책은 1984년에 뉴베리 상을 받게 한 작품이다.
초등학생 '레이 보츠 (Leigh Botts인데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다면)' 는 헨쇼라는 작가의 책을 읽고 너무나 맘에 든 나머지, 자기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결심하게 한 헨쇼씨에게 편지, 이를테면 팬 레터를 쓴다. 한 차례가 아니라 계속해서 보내게 되고,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가끔 답장도 받는데 그럴 때마다 큰 격려와 도움을 받고 기뻐한다. 이 편지들 모음은 결국 또 다른 형식의 일기라고도 할 수 있어서, 소년의 가정 생활과 학교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엄마와 이혼 후 따로 떨어져 사는 아빠는 트럭 운전수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고, 이혼 후 싱글맘이 된 엄마는 주문요리업체 (케이터링 서비스)에서 일하며 경제적으로 빠듯한 생활을 꾸려 나간다. 그럼에도 틈틈히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갖고 야간학교에 나가는 긍정적이고 꿋꿋한 여성이다. 엄마가 늦게 오는 밤, 아무 할 일도 없이 심심해하며 혼자 집을 지키다 잠이 들곤 하는 레이이지만, 아빠를 그리워 하는 마음, 아빠를 따라간 애견 밴딧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과 동시에, 밤낮으로 애쓰는 엄마를 보며 안됐어하는 심정 등이, 편지글 구석구석에 참 잘 표현되어 있다.
왜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냐는 물음에 엄마는 숨기거나 대답을 회피하지 않고 아이 수준에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담담하게 설명해준다. 아빠를 비난만 하지도, 그렇지만 너희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고 앞뒤 안맞는 마무리로 설명을 끝내지도 않는,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설명을 해줄 때의 엄마는 아이를 내 밑의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이혼 자체의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어쩔 수 없이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들, 빈곤의 문제, 웬만큼 안정된 직장이 아니면 하나의 일로는 생활이 어려워 투잡, 쓰리잡을 불사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 등이 드러나고 있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글쓰는 취미를 격려해주는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들, 상황으로 그 아이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차별화하지 않는 분위기, 아이의 말을 아이의 입장에서 성실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번역본도 나와 있지만, 원서도 읽기에 어렵지 않은 수준이다.
어른으로 자란 후에도 이렇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언어로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아이들 대상으로 한 책에서 흔히 보이는 판에 박힌, 공식 같은 문장들, 혹은 아이들을 일단 웃기고 보자는 식의 글이 아니라, 정말 열 몇 살 어린 아이가 썼나 싶을 정도의 자연스럽고 솔직한 언어를 쓸 수 있는 이 책의 작가 같은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