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내야하는 숙제가 있다면서 밤 10시가 다되어 아들 아이가 사진을 찍으러 나가겠다고 했다.

그 시간에 혼자 보낼 수 없어서 같이 나갔다가 나도 사진을 몇장 찍어온 날이다.

우리 아파트가 지어진지 이제 5년 정도 되었고, 그 전에는 어떤 곳이었는지 이사오기 전엔 와본 적 없어 확실히 모르지만 아파트 주변으로 조금 나가보면 짐작이 안되는 바는 아니다. 논이 있고 밭이 있고, 오래 된 집들이 있는 동네가 아직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에 가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 썰렁한 곳인데 한밤중에 가보긴 처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가로등도 켜 있고 분명 사람들이 아직도 사는 동네인데 골목길엔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사람 자취가 없는데 사람은 분명히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아련하게도 하고, 반대로 정신 바짝 들게 하기도 하고, 그런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사진에 그런 감정을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러면 내가 프로작가이지 아마츄어겠는가? 위안하면서.

 

난 12번, 13번 사진이 제일 좋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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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7-11-1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8번 14번이 맘에 듭니다^^

hnine 2017-11-11 21:58   좋아요 0 | URL
8번과 14번이 맘에 드신다구요, 예~ 참고하겠습니다~ (어디에 참고하겠다는건지 ^^).
감사드려요. 8번 사진의 저런 가로등도 참 오랜만에 봤어요. 사람 하나 안지나다니는 골목길을 저 가로등이 지키고 있더라고요.
14번 사진의 갈라진 벽을 보는데, 처음엔 단단했던 그 벽이 갈라질 걸 알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벌어진 틈에서 혹시 작은 풀이라도 자라주지 않을까 가능성 희박한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nama 2017-11-1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울컥했어요. 50여 년 동안 우리 가족의 베이스캠프였던 부모님 집이 생각나서요. 이제는 갈 수 없는 남의 집이 되어버렸지요.

hnine 2017-11-11 22: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울컥! 저 날 사진 찍으며 들었던 감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웬지 모를 그 울컥이었어요.
결혼 해서 처음 살던 집은 지금이라도 가보면 다른 사람이 잘 살고 있지만 어릴 때 살던 집은 흔적도 없어진지 오래이지요. 아마 저는 찾아가래도 못 찾아갈 것 같아요.
집도, 골목길도, 간판 글씨도, 가로등도, 가로등 불빛 마저도 마치 오래 된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해서 마음이 따뜻했다가 또 약간 서글퍼졌다가, 그랬답니다.

qualia 2017-11-1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부터 시골 면 소재지에 살았었던 저로서는 위 사진들이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집니다. 온갖 추억과 회한이 스쳐 지나가는데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아늑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네요. 허름한 집들, 골목길처럼 구부러져 돌아나가는 길들, 슈퍼 간판을 단 손님 없는 오래된 구멍가게, 담벼락 위로 솟아올라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 감나무, 최소한의 손기술로 지은 듯한 건축양식도 미학도 없는 볼품없는 집들,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 기원문을 써붙인 고색창연한 옛집 대문, 얼기설기 삭아빠진 ‘스레트’ 지붕 위를 지나가는 전깃줄들, 낡은 성냥갑 같은 시멘트 건축물, 금이 쩍쩍 간 담벼락, 야트막한 산 아래 옹기종기 불을 밝히는 마을 풍경... 위 사진들 모두가 제 옛 고향 풍경 그대로입니다. 정말 너무 좋아요~ hnine 님이시니까 저런 사진 찍을 수 있는 것이겠죠. 아무나 저런 사진 못(안) 찍을 것 같아요.

hnine 2017-11-11 22:07   좋아요 0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은 아파트 숲 속에 살고 있으니 저렇게 어릴 때 내가 놀던 골목길, 우리 동네 풍경 같은 곳을 보려면 일부러 멀리 찾아가야 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집에서 몇분 안되는 곳에 저렇게 아직 남아 있을 줄 몰랐답니다. 반갑기도 하고 여기도 언젠가 없어지겠지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이렇게 보면서 감상에 빠지는 사람과 저 집에 진짜 살고 계시는 분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스레트‘지붕! ^^ 이 말도 참 오랜만에 입에서 불러보네요.
사진 보고 같이 느껴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그래주시듯이...^^

혜덕화 2017-11-1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좋아요.
가난하고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동네 풍경처럼
찾아보면 내 마음에도 금 간 벽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추억도 남아있겠지요.^^

hnine 2017-11-11 22:11   좋아요 0 | URL
가난하고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저희 어린 시절, 그랬지요. 학원도 없었고 공부 스트레스도 없었으니까요. 맛있는 거 먹으며 행복했고, 아이들과 뛰어놀며 행복했고, 용돈 같은 것도 몰랐고 게임 같은 것도 몰랐는데 말이어요.
잠깐 사진 찍으러 나가서 저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저는 지나온 시절을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것도 웬지 부끄러웠고요.

프레이야 2017-11-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비슷한 느낌의 사진들이 있어서 그걸 불러주네요.
아들이 저렇게 컸군요. 와우!!!

hnine 2017-11-11 22:1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사진도 보고 싶어요.
아들 어릴때 알라딘 서재를 시작했는데, 많이 컸지요. 방년 17세랍니다. 제가 열마디 하면 겨우 한마디 대답하는 ㅠㅠ

서니데이 2017-11-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8번이랑 11번, 13번 사진이 좋은데요.
13번은 불빛 때문에, 조금만 가면 저 안쪽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금 고단해도 조금만 가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실은 우리집이 아닌 잘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집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느낌입니다.^^
사진 속에서는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는 작은 프레임이라는 것들요. 사진찍는 아드님을 찍은 사진에서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hnine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hnine 2017-11-12 10:02   좋아요 1 | URL
맘에 드시는 사진 고르시느라 사진은 한번 더 봐주셨겠네요, 고맙습니다~ (꾸벅)
찾아갈 집이 있다는 것 만큼 사는 동안 다행스런 일이 있을까 싶어요. 누군가 기다려주는 집이라면 더욱 좋을거고요.
뭐 하다가 이제서 한밤중에 숙제 생각을 했느냐고 아들에게 싫은 소리 좀 했더랍니다. 그래도 늦게 나마 생각나서 숙제 해가니 다행이다, 그건 조금 후에 마음을 고쳐먹은 후 든 생각이고요 ^^

sslmo 2017-11-1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번이랑 7번이요~^^
마음에 등불 하나 켠듯 여겨진달까요.
사진이 죄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 좋네요~^^

hnine 2017-11-14 18:01   좋아요 0 | URL
쌀쌀한 밤에 나가서 찍었는데 불빛 때문에 오히려 사진은 따뜻하네 나왔어요. 저런 불빛 본지 오랜만이죠?
7번 사진의 하늘과 구름, 정말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는데 맘에 드신다니 기뻐요. 말이 짧으니 사진으로 밖에 표현 못해요. 3번 사진의 저 골목으로 계속 가보고 싶은데 밤이라 좀 무섭기도 하고 ^^
저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또 약간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러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