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새벽마다 두어 시간씩 기도를 하시고, 불경을 읽으시고, 사경을 한다고 하셨다.
동생은 일어나자마자 새벽기도를 하며 마음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나는
사과를 한알 천천히 먹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뚝배기를 꺼내어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다.

두부, 콩나물, 없는 재료 아쉬워 할 것 없이

호박, 양파, 당근, 있는 재료 모아 비슷한 크기로 썰어

뚝배기에 넣고 된장 풀어 끓인다.

표고 버섯을 썰어 양파와 함께 볶는다.

달걀을 세개 풀어 계란 말이도.

남편의 도시락 반찬통에 담고,

남은 것은 따로 그릇에 담아 놓는다.

이제 밥을 안쳐야지.

불을 켜려다가

냉장고에 몇개 남아 있는 밤이 생각났다.

세개를 꺼내어 칼로 껍질을 벗겨서 넣고 밥을 한다.

 

아무 생각도 따로 하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것, 내가 손으로 하고 있는 일 밖에는.

내가 제일 단순해지는 시간.

이것도 내가 아침마다 하는 그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엄마와 동생의 아침 기도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제 식구들을 깨우기 까지 한 시간 남짓
아침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그럴듯한 하루 계획도 세워보지만
나를 더 가다듬는건
일기, 책, 계획 세우는 이 시간보다
그 전의 국 끓이고, 반찬 하고, 밥을 짓는
그 시간 같은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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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0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하는 아름다움은
어디에 견줄 수 없어요.


..


밥을 앉혀 => 밥을 안쳐

^^;;;;;;;

hnine 2012-01-04 09:00   좋아요 0 | URL
고치러갑니다, 후다닥 =3=3=3 ^^

하늘바람 2012-01-0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가다듬고 무언가를 하는 것. 정성을 다하고, 새벽의 고요를 받아들이며 내것으로 하는 것. 그건 기도를 하는 것과밥을 하는 것 다르지 않는 것같아요.

hnine 2012-01-05 07:57   좋아요 0 | URL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낼 땐는 그 새벽의 고요마저 외롭고 겨웠어요. 상황이 이렇게 사람 마음을 바꿔놓았네요.
언젠가 저도 진짜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저렇게 저만의 의식을...^^
오늘은 요며칠 아이의 요청에 따라 밥대신 허니브레드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순오기 2012-01-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는 일상을 가져본 게 언제였던가...
반성을 부르는 눈 쌓인 아침이네요.

hnine 2012-01-05 07:58   좋아요 0 | URL
반성이라니요. 누구나 하는 일을 제가 너무 의미를 붙혔나 싶은걸요.
여기도 어제 눈이 많이 왔어요. 지금 창 밖으로 보는 언덕에 여전히 눈이 하얗게 쌓였네요. 갑자기 닥터 지바고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gimssim 2012-01-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도보다 더 중요하고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하시는군요.
엄마와 동생도 먹어야 하니까요.
고즈넉한 아침시간을 즐기시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12-01-05 09:08   좋아요 0 | URL
어떤 날은 하기 싫은 날도 있어요. 더 급한 일을 하느라 빼먹는 날도 있고요.
그래서 저렇게 순탄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더 고맙기도 하고, 그렇네요.
중전님 서재 올리신 글 '그래도 쓴답니다' 읽고 왔어요. 다시 읽어보러 또 갈 거예요 ^^

꿈꾸는섬 2012-01-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오랜만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인님의 아침밥 짓는 풍경이 너무 따스해요. 재료 따지지 않고 끓여낸 된장국도 달걀말이도 정갈한 아침의 기도처럼 느껴져요. 가족들 일어나기 한 시간 전 아침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저의 아침도 그려보고 있어요.^^

hnine 2012-01-05 09:11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오래 동안 안보이셔서 궁금했지만 바쁜 일이 있으시구나, 급한 불 끄시고 다시 오시겠지...하고 있었답니다. 이제 다시 안오시려나? 하는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신 반면에 다시 오실 거라는 믿음이 가는 분이 있답니다.
제가 아마 일찍부터 출근준비를 하는 입장이라면 저런 시간도 내기 힘들겠지요. 제가 누리는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꿈꾸는 섬님의 아침 이야기도 언젠가 들려주세요.

무스탕 2012-01-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의 동선을 뒤따라 저도 같이 움직이니 너무 단조롭지도 번잡하지도 않은 편안한 아침이네요.
전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도 차리기 전에 푸다닥 있는 반찬에 밥 차려서 애들 먹여 내보내기도 바쁜데 말이에요;;
아, 전 정말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나이 40이 훌쩍 넘어도 이러니 이거 평생 갈듯 싶어요 ㅠㅠ

hnine 2012-01-05 09:14   좋아요 0 | URL
아침 시간 만큼 온전한 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저는 아침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저녁에도 일찍 자요. 어떤 때는 다린이보다도 먼저 잠들어요 ㅋㅋ
더구나 무스탕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날도 많잖아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보다 저녁 늦게 까지 깨어있는 타입의 사람이 원래 있대요. 사람의 유형일 뿐이지요. 절대 제가 부지런하거나 그런거 아니라는 것~ ^^

혜덕화 2012-01-0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아는 것.
저는 그것이 기도이고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 해도 나인님의 그 순간들이
미소가 가득한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hnine 2012-01-05 09:17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인도 여행기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잘 하고 가야 할 것 같아 엄두가 안나기도 한 나라입니다. 소설가 강석경이 인도에 다녀오고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요.
지금 이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觀'하는 것.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소 가득. 오늘은 이 네 글자를 주제로 해볼까요. ^^

2012-01-04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1-05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배고파요.......... ======333

hnine 2012-01-05 09:22   좋아요 0 | URL
지금 드시면 안돼~ 요 ^^
몇 시간만 참으셨다가 이른 아침을 드시옵소서.
배고프면 잠도 안오는데 어찌 버티셨을까...궁금합니다.

하늘바람 2012-01-05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언제 차라도 함께 마시고 싶어요

hnine 2012-01-05 09:23   좋아요 0 | URL
꼭 그러고 싶은 분, 하늘바람님~ ^^

로드무비 2012-01-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고와 다시마와 멸치와 무 넣고 끓인 육수만 있으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식생활이 쉽고 간단해져요.
작년엔 불 앞에서 육수 끓여낸 시간이 책 읽는 시간보다 많았던 듯.^^

hnine 2012-01-05 23:12   좋아요 0 | URL
아, 표고와 무도 넣고 끓이시는군요. 저는 지금까지 멸치와 다시마만 넣고 끓였어요.
ㅋㅋ 저도 가끔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서 멍하니 구경하고 있거나 육수 끓이는 동안 그 앞에서 또 무념무상의 상태로 지키고 서 있을 때 있어요.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ㅋㅋ

2012-01-06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6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