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집에서 점심 먹고나서 식구들이 함께 어딘가 바깥 바람을 쐬고 싶었고, 날도 날이니 절에 가자고 내가 제안했고, 집에서 가까운 동학사와 갑사중 그냥 갑사를 택한 것 뿐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절.
차가운 법당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후 잠시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옆에서 같이 절을 올린 아이에게 너는 뭐라고 기도했느냐고 물었더니
가족의 건강, 그리고 얼마전에 죽은 강아지 '레이'가 천당 가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절에 와서 천당? ㅋㅋ
갑사는 그리 크지 않은 절.
한바퀴 휘 둘러보고 지난 번에 여기 왔을 때는 어땠었지, 하며 남편과 아이와 얘기를 나누며 돌아나왔다.
집에 돌아와 남편은 잠시 낮잠을 즐기고,
아이보고 깨우지 말라고 일렀다.
저녁으로 김치부침개를 넣은 김밥을 만들었다.
김치부침개를 더 얇게 부쳤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내 생애 제일 뚱뚱한 김밥을 만들게 되었다.
나중에 남편이 나와서 보더니 이게 정녕 김밥이냐면서 사진까지 찍어놓았다 이런.
겨우 김밥 하나 하면서 생긴 산더미 같은 설겆이를 마치고
집앞에 새로 연 까페에 갔다. 어제 밤에 지나면서 보니까 오픈을 했는데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서 나라도 가줘야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2011년 마지막 날이니, 일기, 이닦기, 세수등 오늘 할일을 다 마치면 특별히 TV를 보게 해주겠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번개같이 다 하고 와서 지금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항상 서로 좋은 말만 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오글와글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이 추운 날씨에 떨지 않을 수 있는 따뜻한 집, 그리고 아직 허락된 건강...
그냥 이런 것들이 고맙고 또 고마운 밤이다.
내년에는 내가 조금만 더 무뎌지고, 마음을 여러 갈래로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뭐, 안그래도 할 수 없고 ^^ 그래, 이런 마음으로 가볍게, 가볍게.
이 공간에서 알고 지내는 많은 인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어떤 친구보다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사람들.
아이쿠, 뭉클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