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친구가 어느 날 딸의 학교로부터 경고 문자를 받았단다.
'귀댁의 자녀가 복장이 불량하여 벌점을 받았으니 가정내 연계지도 부탁드립니다' 라는.
치마 길이가 짧았다는  이유인데, 일부러 치마 길이를 줄여 입은 것도 아니고 허리 사이즈에 맞추어 사다 보니 길이가 좀 짧았던 것 뿐이고, 그래봤자 무릎 길이였다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웃긴건, 그래서 벌점을 주었으면 되었지 그걸 일일이 집에다가 친절하게 통보해주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2학년, 내일 모레면 고등학교 3학년 되는 아이인데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소피는 어릴 때부터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데에는 관심이 없고 옷에 관심이 많은 아기였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어린이 그림책보다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 더 좋아했고, 못보던 옷을 보면 그것을 구경하며 넋을 잃곤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피는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발은 두개인데 왜 사람들은 똑같은 구두 두 짝을 신는지 이상했고, 왜 같은 색의 양말을 신는지 이해가 안갔다. 되도록 남들이 안 입는 옷을, 집에 있는 엄마 옷, 아빠 옷, 모두 동원하여 자기 나름대로 꾸며 입고 학교 가는 것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피 부모님은 학교로부터 경고성 편지를 받는다. '사육제 차림'으로 학교에 오게 하지 말라는 것. 소피의 부모는 소피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옷을 여러겹으로 입고 악세사리를 잔뜩 달고 다니는지. 그러자 소피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해야 옷을 입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쓰는 것처럼 옷을 입는 거예요. 내 몸은 종이고요, 두 손은 만년필, 두 눈은 영감의 창이에요. 모자는 느낌표이고, 스카프는 쉼표, 레이스는 말줄임표죠." (와~ 난 여기서 감탄!) 소피는 자신의 '시'가 무엇 때문에 문제가 되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소피를 보고 엄마, 아빠는 학교에 이렇게 써서 답장을 보낸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이 책에 나오는 소피 같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내 아이의 독특함에 내심 기쁠 것 같은데, 그건 여러 학생들이 모인 학교라는 집단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생각일까? 

아이가 네 살 때로 기억된다. 사진의 날짜를 보니 9월 초인데 여전히 땀이 줄줄 나는 더운 여름이었다. 어린이집 갈 준비를 시키고 나는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아이가 부득부득 지난 겨울에 신던 털장화를 신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신발은 겨울에 추울 때 신는 것이라고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그냥 신겨서 보냈다. 덥긴 하겠지만 그거 하루 신고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신나서 털장화 신고 아파트를 나서는 아이를 보고 웃음만 나왔다. 


 

 

    

 

 

 

 

 

 

  

 

 

 

 

 

 

 

 

 

 

 

 

 

 

 

 

 

 

 

 

 

 

나중에 여동생이 이 사진을 보고서 내게 뭐라고 했다. 그날 남들이 애 옷차림을 보고 뭐라고 했겠느냐고.
'남들이 뭐라고 하는게 뭐 그리 문제야, 자기가 저러고 싶다는데 ㅋㅋ'
그리고 나도 바쁜 아침 시간이라서 더 아이를 말릴 시간이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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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3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소피랑 소피의 부모님께 추천 꾸욱이요~!!!
이 책 넘 좋은 걸요.
저희 아들의 패션감각도 남달라서,제가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훌륭한 참고서가 되겠어요.

hnine 2010-10-31 12:17   좋아요 0 | URL
엊그제 <공주도 학교에 가야한다>라는 책을 읽고 관심이 가기 시작한 작가라서 도서관에 가서 세권을 더 빌려온 중 한권이어요. 책 괜찮지요? 소피의 패션은 하나의 예이고, 아이들의 취향이나 개성을 획일화로 밀어붙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어요.
양철나무꾼님 아들의 패션 감각, 궁금해요~ ^^

세실 2010-10-3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도 패션감각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 들어요. 규환이는 아직도 제가 꺼내주는 옷 입는 답니다. 스스로 꺼내 입으라고 하니 귀찮아서 싫다고 합니다. 에구구...

담주에 규환이가 중간고사 보는지라 오늘은 방콕입니다. 좀 답답해요.

hnine 2010-10-31 12:20   좋아요 0 | URL
엄마의 패션 감각을 규환이가 믿고 맡기는 것 아닐까요? ^^
저도 어디 나갈때마다 없는 감각에 옷 골라 입는 것이 어찌나 귀찮고 서투른지 모른답니다 이 나이까지요.
다음주가 중간 고사 기간이군요. 모범생 규환이, 잘 할거예요.

다락방 2010-10-3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피랑 소피의 부모님께 추천이에요! 저라면, 제 아이에게 남들과 똑같이 입고 다니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저렇게 현명한 편지를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 아이의 편이 되어서 지혜롭게 편지를 쓴다는게 제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일지 말이죠. hnine님, 가끔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잘 설명해주시 잖아요. 그런 모습으로 유추하건데, hnine님은 저런 편지를 참 잘 써내실 것 같아요!

hnine 2010-10-31 12:22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바로 그거죠. 저렇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현명한 편지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것. 소피의 부모님을 보니, 소피가 전혀 엉뚱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옷을 입는 것을 시를 쓰는 것에 비유하는 것을 듣고 어리지만 자기 아이의 마음을 믿고 지지해줄 수 있는 부모, 발끝 만큼이라도 닮고 싶네요.

프레이야 2010-10-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큰딸도 같은 학년이네요.
치마길이 일부러 잘라서 무릎위로 올라가게 해서 입고 다녀요.
처음엔 한두 번 말렸지만 그러고 싶어하는 애한테 더 못말리겠더라구요.
한번은 단속한다고 급히 교복치마 하나 새로 사서 갖다달라고 해서 그래준 적도 있어요.ㅎㅎ
너무 많은 규제와 통제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참..
9월 초였지만 더웠을 건데 털장화 신은 아이 귀여워요.
요즘 아가씨들도 뭐 여름에 핫팬티에 긴부츠 신고 그러죠.ㅋ

hnine 2010-10-31 18:47   좋아요 0 | URL
한참 그러고 싶을 때 아닌가 해요. 우리 세대는 그래보기도 전에 미리 억압당해버렸지요. 너무 그 시기를 답답하게 지낸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좀 억울한걸요 ^^

마노아 2010-10-3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군요. 소피의 부모님에게 더 큰 박수를 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보다 어릴 때의 다린이라니, 깜찍해 죽겠어요. 울 조카도 저럴 때가 많았는데 언니도 말리다가 시간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보내더라구요.^^ㅎㅎㅎ

hnine 2010-10-31 18:4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요즘 제가 새로이 발견한 작가예요. 수지 모건스턴이요. 마노아님도 이 사람 책들 읽어보세요, 좋아하실거라 믿어요.

춤추는인생. 2010-10-3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남자아이들은 관심없는 패션에 다린이는 어릴적부터 남달랐군요.^^
저런 고집 맘에 들어요... 요즘도 다린이 머리에 물묻히고 학교가는지, 나인님 궁금해져요.

hnine 2010-10-31 18:52   좋아요 0 | URL
춤추는 인생님, 초록바탕의 흰말, 혹시 김 점선 화가 그림인가요? 예뻐요.
다린이는 여전하지요. 머리에 물묻히고 학교가는거요 ^^ 그것까지는 괜찮은데요, 가끔 급하면 손에 침 묻혀서 머리 만지려고 해서 저를 기겁하게 한답니다 ㅋㅋ
요즘은 가끔 제 책상 뒤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서 보면 누워서 윗몸일으키기 하고 있어요. 뭐하냐고 물으면 자기도 식스팩 만들려고 그런대요 ㅋㅋ

상미 2010-10-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 추억이지 ? ㅎㅎㅎ 털장화에 반바지차림 사진도
준이 반응이 의외네...

hnine 2010-10-31 18:53   좋아요 0 | URL
경은이때문에 쓰게 된 페이퍼야...^^

상미 2010-11-01 16:1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그래도 시작이 우리 딸 얘기네 했단다 ㅎㅎㅎ
어제밤에 병규는 <어제도 학교 갔는데, 내일도 학교를 간다는건 말이 안돼>
그러는데,
딸은 <인간이 만든 조직 사회중 제일 잘 만든게 학교같아~ >
학교가는거 좋아하는거 뭔가 수상하지 ?? ㅎㅎㅎ

2010-11-01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0-11-0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철에 털장화 신은 꼬맹이가 너무 귀여운데요. ㅎㅎ

우리 모두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해주는 데 대해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눈을 돌려보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나름대로'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또 그게 너무나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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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감정 나름

자, 그렇게 이상한 자극들 앞에서 왜 동물들은 우리에게 그토록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들을 할까? 예를 들어 왜 암탉은 결과를 어렴풋이 예측이나 하듯이, 지독하게 흥미 없는 둥우리 속의 알들을 밤새 온몸으로 품을까? 유일한 대답은 자기 감정 나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짐승들의 본능을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본능을 기준으로 해석한다. 왜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딱딱한 바닥이 아니라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울까? 왜 사람들은 추운 날 난로 곁에 앉을까? 왜 방 안에서는 벽을 마주 보는 대신 얼굴을 중앙 쪽으로 향할까? 왜 딱딱한 비스킷과 개울물보다 양 등심과 샴페인을 좋아할까? 왜 젊은이는 아가씨에게 사로잡히고, 그래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심장하게 보일까? 그것이 인간의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동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좋아하고 그 방식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과학이 그 방식들을 신중히 고찰한다면 그것들 대부분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방식을 따르는 것은 유용함 때문이 아니라 그 방식을 따르는 순간 그것이 유일하게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수십억의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도 저녁을 먹으면서 유용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이 맛이 있고 그래서 더 먹고 싶기 때문에 먹는다. 만일 누군가가 왜 그런 맛의 음식을 더 먹고 싶어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존경스런 철학자가 아니라 바보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비웃음을 던질 것이다.

이와 같이 동물들은 특정한 물건이 있으면 특정한 행동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알을 보면 품고 싶어하는 암탉은, 둥우리 속의 알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소중해서 밤새 품고 있을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294쪽)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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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비약해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기술이 좀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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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의적 관점에 기여하는 기술

로버트 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본을 폭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미니밴이 일본제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세계주의적 관점에 기여하는 기술에는, 언어 능력, 여행, 역사적 지식, 사실주의 예술이 포함된다. 이런 기술들을 통해 사람들은 다른 시대였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적이었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자기 자신을 투사해 본다.(561쪽)

- 스티븐 핑커, 『빈서판』中에서

hnine 2010-11-01 15:07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내 맘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을 하나의 규격 아래 묶어 놓는다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감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대중을 이리 저리 다루기 쉽게 하는 수단이 될 뿐이지요.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들어보고 교환하는 행위에는 참 취약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쉽게들 해요.
위의 스티븐 핑커의 말은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라는 말과 통하는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BRINY 2010-11-01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습지만, 학교에서 문자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학생인권조례로 체벌이 금지되었으니까요. 아마 문자 경고가 쌓이면 그 다음은 보호자 호출이 아닐까요? 저희학교 상벌점제도 그런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벌점 주고 말지'로 끝날 게 아니니까요.
지난 여름에 신임교장이 '아예 여름 교복을 체육복으로 할까?'라고 말 꺼냈다가 부장교사들의 맹반대에 부딪히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라도 뒤집어지지 않는 한, 이런 일들은 당분간 학교현장에서 계속될 거 같습니다.

hnine 2010-11-01 15:02   좋아요 0 | URL
Briny님, 안그래도 쓰면서 짐작은 해보았네요. 학교 측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체벌이 금지되었으니 더욱 더 경고 조치가 늘어날 것이라는 말씀도 맞고요. 보호자 호출, 저도 받아봤지요. 긴장해서 갔는데 막상 교장 선생님께서는 자상하게 조목조목 설명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저 책에서요, 소피의 영향이 온 학교로 다 퍼져서는 선생님 마저 옷차림이 바뀌기 시작해요. 예전에는 소피 혼자서 튀는 차림이었는데 전교생의 옷차림이 그렇게 바뀌기 시작하자 소피는 예전에 쳐다보지도 않던 얌전한 스타일의 블라우스와 치마를 꺼내 입고 학교에 가는 것으로 끝나지요 ^^

같은하늘 2010-11-0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피와 소피의 부모님이 존경스러운걸요~~
거기다 다린이의 반팔,반바지에 털장화 패션도요~~
저는 아들만 둘을 키우지만 아홉살인 큰 아이는 지금도 저에게 무슨 옷을 입느냐고 묻고, 다섯살인 작은 아이는 팬티, 양말, 내복마저도 골라 입어요. 그것도 아주 어려서부터...ㅜㅜ 아침에 유치원 시간때문에 저도 포기하고 하고싶은데로 해서 보낸적이 있네요.

hnine 2010-11-02 04:45   좋아요 0 | URL
같은 부모 밑의 형제나 자매가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참 재미있어요. 저도 어릴 때 두 살 아래 여동생과 여러 면에서 무척 달라서 그야말로 '아롱이 다롱이'였거든요. 저희 세대가, 아니 어쩌면 제가 워낙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는 시키는대로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보니 제 생각엔 아이들이 자기가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 웬만하면 그대로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못 누려 본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