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e-learning 에서 더 나아가 u-learning 이란 말 까지 나왔더라는 얘기를 남편과 내가 하고 있었다. u-learning의 'u'가 'ubiquitous (유비쿼터스)'에서 온 것이라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하고 있는 중 옆에서 듣고 있던 다린이가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이 되더니 끼어든다.

다린          "아빠!"
남편          "응?"
다린          "아빠가 매일 집에 늦게 오는게 바로 그 유비쿼터스 때문이지요? 다 알아요"
남편          (유비쿼터스와 조금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는 하다) "좀 관련이 있기는 하지." 
다린          "나 그 유비쿼터스라는것 싫어요!"

유비쿼터스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아이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빠를 붙잡아 두는 것은 무엇이든 아이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가보다. 

------------------------------------------------------------------------------------- 

저녁 먹고 이미 어두워졌는데 나가서 축구를 해야겠단다. 요즘 축구에 빠져 있는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축구 얘기만 한다. 한때는 그것이 레고 얘기였었고 스타워즈 얘기였었고 해리 포터 얘기였었는데.

대전 시티즌이 이번 시즌에 몇위라는 얘기는 하도 들어서 이제 알겠는데, 어느 선수의 400m 기록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어느 선수가 왜 그 팀을 떠났는지 아느냐 는 등, 정말 스포츠엔 전혀 무관심한 내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얘기만 줄곧 해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것도 컴컴한 저녁 때 아이와 공을 들고 집 앞 공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공원 바로 옆에는 모 연구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아직도 불이 환하게 켜진 곳이 많은 것을 보고 내가 아이에게 말했다.
"다린아, 저기 연구소에도 환하게 불 켜 있는 것 보이지? 아빠만 늦게 까지 일하는 거 아냐. "
그랬더니 바로 돌아오는 대답은,
"저 연구소에 지금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은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요즘은 웬만큼 어설프게 말해서는 아이의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
 

나는 다린이를 따로 학원에 보내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놀리는 편도 아니다. 워낙 학교에서 숙제도 조금 내주기 때문에 집에서 숙제 외에 매일 수학 문제집 몇 페이지, 받아쓰기 열 문제, 그리고 일기는 하고 자도록 하고, 틀린 문제는 가르쳐 주고 비슷한 문제를 내주어 확인하는 식으로, 매일 일정 시간 조금씩은 공부를 하고 자도록 하고 있는데, 일기야 워낙 쓰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매일 따로 얘기 안해도 쓰고 있지만, 수학 문제집과 받아쓰기는 꼭 좀 잔소리를 해야 펼쳐든다. 그런데 요즘은 다린이가 부쩍 이 잔소리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 나와 충돌이 잦아졌다. 네가 알아서 잘 하면 왜 잔소리를 하느냐, 알았다, 하면 되지 않느냐, 막 하려던 참이다, 매일 똑같은 설전이 왔다 갔다, 야단도 쳐봤지만 그 야단이라는 것도 잔소리의 다른 이름 아니던가? 그래서 지난 번에 미설님께서 댓글로 하신 말씀도 생각나고 해서, 아이를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겠다고 생각. 매일 하는 잔소리를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에게 표만 하나 만들게 했다. 세로로 날짜를 쭉 쓰고, 가로 칸에는 수학, 받아쓰기, 일기, 숙제 칸을 만들어서, 했으면 그 칸에 체크 표시를 하라고 했다. 나에게 보여줄 것도 없고 자기가 볼 수 있도록 책상 앞에 붙여 놓게 했다. 그리고는 잔소리 끝.
엄마의 잔소리로 아이가 이루어내는 것은 엄마의 성취감을 채우는 것이지 아이의 성취감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잔소리 줄이기 프로젝트'
요즘 내가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명이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ookJourney 2009-11-1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소리 줄이기 프로젝트, 저한테도 필요한 프로젝트인데 힘들더라구요. ^^;

hnine 2009-11-16 17:32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속으로 조용히 가끔 하는 말이 있는데요,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자.' 이거랍니다. 수학 실력은 떨어져도 그 동안 다른 종류의 포텐셜이 쌓여가겠지, 이러면서요.
잔소리 하는 시간 줄이니, 제 시간이 늘어나더라고요 ^^

무해한모리군 2009-11-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다린이 마음이 느껴지네요.
얼마나 아빠랑 놀고싶을까?
다린아 나도 유비쿼터스가 싫다 --;;

hnine 2009-11-16 19:19   좋아요 0 | URL
유비쿼터스는 여러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있네요 ^^
남자 아이라서 그런지 커갈수록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상미 2009-11-1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습관이 들 때까지는 적당한 잔소리도 필요한거 같아.
저학년 때,바른 습관들여야할 시기에 <알아서 하겠지>하고 내버려뒀더니,
중2가 되서도 못고치더라. ㅠ.ㅠ

몇 시까지 하기 이런식으로 하니까, 해놓은것 없으면서 하릴없이 그냥 시간만 채우더라.
그래서 과업완수형으로 바꿨더니,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더구나...
거기다가 더 괘씸한건 울 아들 언제나 동그라미를 한다는거 ... 하지 않고서도 ㅠ.ㅠ

딸이랑 아들 차이인건지, 첫째 둘째의 차이인건지, 능력 차이인건지 대체 모르겠구나.
엄마 맘으로는 마지막이 답일지라도 그게 답이라고는 하고 싶지 않단다.
결국 내 욕심일거지만.

hnine 2009-11-16 19:2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식 교육엔 정답이 없다고 하나보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야 늘 '적당한' 정도, 꼭 필요한 정도만 했다고 생각하는데 듣는 사람은 그게 아닌가봐. 과업완수형이 맞는 아이가 있고, 시간제한형이 맞는 아이가 있대. 너도 이미 들어본 적 있겠지만.
그런데 나는 여전히 공부 잘 하는 것이 꼭 행복한 인생과 연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서 다른 집 누가 공부를 잘 한다는 얘기를 들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편인데, 그래도 매일 뭔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습관으로 들여주고 싶었는데 말야. 네 말이 맞아. 습관화 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가서는 더 힘들어지겠지.

카스피 2009-11-1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보니 대전에 사시나봐요.아는 분도 대전 대덕 연구단지에 일하셔서 대전에 가본적이 있지요^^

hnine 2009-11-16 19:29   좋아요 0 | URL
예, 결혼 전에 직장 때문에 대전에서 잠시 살았던 적 있고, 지금도 직장 때문에 내려와서 살게 되었는데 직장은 그만 두었지만 계속 여기 살고 있어요.

마노아 2009-11-1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와 나인님, 두 사람 모두를 응원하겠어요.^^

hnine 2009-11-17 07:16   좋아요 0 | URL
아마 왜 엄마는 요새 내가 뭘 하는지 신경을 안 써주냐고, 또 그럴려나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쉽지 않긴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울보 2009-11-1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저만 하겠어요,,,ㅎㅎ
전 요즘 정말 미치고 팔짝 뛸정도인데,
저도 그 잔소리안하려고 애를 쓰는데 한번에 폭발을 해서 문제지요,
여자아이라서 더 힘들어요,,ㅎㅎ

hnine 2009-11-17 07:21   좋아요 0 | URL
여자 아이, 남자 아이를 떠나서 컸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누구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거요. 앞으로 더 그럴 것이고, 그냥 엄마가 계속 나가다가는 부딪힐 일이 더 많아질 것 같고, 그래서 저도 저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모르겠네요.

꿈꾸는섬 2009-11-1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학교 들어가면 저도 그리 될까 걱정이네요.
잔소리를 줄인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전 자신이 없는데요.ㅜ.ㅜ

hnine 2009-11-17 07:22   좋아요 0 | URL
엄마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잔소리 할 일이 더 많아져요. 그런데 아이는 점점 잔소리가 듣기 싫어지고요. 딜레마이지요.

순오기 2009-11-1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다린군~ 유비쿼터스에 아빠를 빼앗겼군요.^^
잔소리 해도 탈 안해도 탈~ 정답은 없지요.ㅋㅋ
그저 나 자랄때 어땠는지 생각하면 정답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요.^^

hnine 2009-11-17 17:19   좋아요 0 | URL
인생 선배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니 정답이 없는거 맞나봐요.
저 어릴 때랑 비교하다가 오히려 실수를 많이 하곤 하는데, 저는 정말 야단맞는 것, 잔소리 듣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그럴만한 행동은 아예 하지를 않아서 오히려 손해보는 것도 있었거든요. 혼자서 그냥 지례 짐작을 한거죠, 이건 하면 잔소리 듣겠다 하고요.

순오기 2009-11-19 20:17   좋아요 0 | URL
김훈 작가에 대해 알고 싶지 않대서~~ 후기 쓰지 말까요?^^

hnine 2009-11-19 21:21   좋아요 0 | URL
제가 반하지 않을 정도로 써주시어요 ^^

qualia 2009-11-1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 군, 명답 · 명언의 달인이시군요.
폭소와 함께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hnine 2009-11-17 17:21   좋아요 0 | URL
ㅋㅋ qualia님, 잠시나마 웃음을 드렸다니 다행입니다. 그런 김에 저도 한번 웃고~ ^^

하늘바람 2009-11-1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많은 프로젝트!
나중에 다린이 이 프로젝트라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요?
유비쿼터스가 싫다는 다린이
너무 귀엽습니다.
학원을 안보내시면 그만큼 엄마 손이 가니 많이 힘드시겠어요
잔소리 줄이기 그게 쉬운 일 아니잖아요

hnine 2009-11-18 19:51   좋아요 0 | URL
예, 쉽지 않아요. 가끔 저 애는 내 아이가 아니야, 하고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본답니다.

같은하늘 2009-11-1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가 몇 학년일까요?
저도 저희집 아이와 매일 같은 일로 잔소리하고 아이는 귀막고 있고 하거든요.
정말 슬픈 현실이네요. 잔소리를 안할 수도 없고 하는 저도 싫지만 듣는 아이도 싫을 거예요. 남자아이라 그런지 제 맘같지 않아서 저도 매일 속상해요. ㅜㅜ

hnine 2009-11-19 06:20   좋아요 0 | URL
다린이는 아홉살이고 3학년이어요. 잔소리를 할수도없고 안할수도없고, 모든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잔소리를 아예 안하는 것은 힘들지만 줄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볼때 잔소리보다는 좀 고단수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