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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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의 농가에 운석이 떨어져 운석을 찾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으로 출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 이유는 운석의 가격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인 연구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운석을 찾고자 했다. 우리나라 진주에서는 비닐하우스에 떨어졌다고 하여 우리 밭에는 떨어지지 않나 하고 다들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밭 주인보다는 습득하는 이에게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운석을 찾아 헤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운석이 만약 머리에 떨어진다면? 만약 우리집에 떨어져 내 아이의 머리에 맞는다면? 생각도 하기 싫지만, 어쨌든 개빈 익스텐스의 『우주 VS. 알렉스 우즈』는 운석에 맞은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운석에 맞은 한 소년과 한 노인과의 삶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다. 진정한 우정이란 건 이런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겠금 만드는 글이다.

 

운석에 맞아 코마 상태에 빠졌다 살아난 알렉스 우즈는 대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다. 다른 아이들과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만의 시간을 즐겼던 알렉스는 몇 명의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도망치다가 피터슨 씨의 정원으로 피신했다가 피터슨 씨를 알게 되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피터슨 씨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과 살다가 이제는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이었다. 유리창을 깼다는 이유때문에 사죄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피터슨 씨의 집에 방문하던 알렉스는 피터슨 씨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사람들의 우정에는 여러가의 모습들이 있다. 동갑내기들 끼리의 우정도 있고, 이성과의 오래된 우정을 이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나이를 떠나 거의 할아버지 뻘 되는 이와 나누는 우정도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와 알프레도와의 우정처럼 피터슨 씨와 알렉스 우즈와의 우정도 이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피터슨 씨를 도와 운전을 하고, 그를 도와 편지쓰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서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빌려보는 일들이 즐겁다.

 

 

 

원칙을 가지고 살려면 진실함을 가지고 사는 거야. 그건 너만의 것이야. 남이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지. (212페이지)

 

 

얼마전에 읽은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으며 가슴아팠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피터슨 씨도 『미 비포 유』의 윌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눈도 보이지 않게 되고, 다리도 움직이기 힘들어 혼자 살기 힘든 그는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그런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알렉스 우즈의 마음을 담았다.

 

비참하지 않게 죽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건네본다.

내가 처한 상황이 피터슨 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 반대로 누군가의 죽음을 도와줘야 하는 알렉스의 입장이라면? 어려운 일이다. 결정하기까지 너무 힘들것도 같다. 사람의 죽음을 자신이 과연 결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드는 의문이었다. 합법적으로 죽음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스위스라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인간의 생명을 아무리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해도 합법적인 자살, 이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 다시 들었던 것이다.

 

아이작을 정말 돕는 길이 뭔지 아니? 그냥 그를 위해 함께 있어주는 거야. 친구가 되어주렴.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지지하면서, 효과가 있을 거야. 물론 그렇게 있어주는 건 아주 힘들지. (296페이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가슴뭉클하게 느껴졌던 건 알렉스와 피터슨 씨의 깊은 우정이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 이것 또한 알렉스의 결정이었기에 가슴 아프지만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과 진정한 우정, 과학적인 지식을 아우르는 따뜻함을 주는 소설이었고, 책 속의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어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첫소설이라는데 개빈 익스텐스라는 작가,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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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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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어렸을때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옛날 이야기라도 들려주시면 귀를 쫑긋거리고 듣고는 그 다음 내용이 듣고 싶어 할머니나 엄마에게 바짝 다가갔던 것 같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나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랬다. 시간만 나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에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곤 했었다. 이야기가 딸리면 이야기 책을 펴놓고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동화책 한 권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 그림만 보고서도 다음 내용을 줄줄이 읊곤 했었다.

 

유달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탓에 나는 지금도 이야기가 있는 책을 읽고 있고, 좋았던 책, 재미있는 책은 아이들에게 권해 주기도 한다. 같은 책을 읽고는 서로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의 아들녀석은 기욤 뮈소에 빠졌는지 전작 읽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지고 있는 책을 보이며 이 책은 어땠느냐며 묻고는 다른 책도 다 읽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전에『두근두근 내인생』을 읽고 나서는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라며 작가의 다른 책도 소개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이야기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책에서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 주인공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많다. 훗날 책속의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하여 이룬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가진 힘은 굉장히 크다.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조너선 갓셜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책이다. 우리는 책 속에서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자. 영화속 장면들을 보고 영화속에서 말하는 스토리에 깊이 빠져 주인공을 내 자신인양 감정이입하여 보게 된다. 영화속 주인공의 삶에 깊이 공감하기도 하며, 그들의 상황에 웃고 우는 감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TV 드라마나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중에 책은 아주 많은 부분을 깊이 공감한다. 영화가 화면속에서 보이는 감정의 표현이라면, 우리는 글로 이야기를 읽는다. 그 사람의 깊은 감정을 글로 읽으며 그가 가진 생각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급기야 엉엉 울기까지 한다.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지만,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깊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작가들은 이따금 글쓰기를 그림 그리기에 비유한다. 단어는 한 번의 붓놀림에 해당한다. 화가의 붓질을 한 번 또 한 번 해 나가듯 작가는 단어를 하나 또 하나 덧붙여 가면서 진짜배기 삶의 온갖 깊이와 생동감을 담아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25페이지)

 

 

 

저자는 아주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며 우리를 이야기가 가진 힘에 초대한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경험한 바를 책으로 쓴 아동 인류학의 걸작이자 젠더 심리학 실험을 소개한 책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설명을 들어보자.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성 중립적으로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을 반대의 공간에서 놀게 했지만, 남자 아이들은 인형 코너를 우주선 조종석을 둔갑시켰고, 여자아이들은 블럭 코너에서 블럭으로 집을 만들어 소꿉놀이를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대로,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야기는 공통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통의 문화라는 매듭을 단단히 매어 사회를 결속하는 고대의 기능을 여전히 수행한다. 이야기는 젊은이를 문화에 적응시킨다. 이야기는 집단을 정의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고귀한 행동인지, 무엇이 비난받을 행동인지 알려 준다. (170페이지)

 

 

 

 

저자가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봐도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 알수 있다. 저자가 말하길 아돌프 히틀러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를 관람한 후, 「리엔치」가 자신의 운명을 밝혀 주었다고 말했다. ' 독일 민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지고(至高)의 자유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 (174페이지) 고 했다. 꼭 바그너의 음악이 그의 모든 성격을 형성했으리라고는 보지 않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수 없을때는 다른 이야기 책을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탐험한다. 이야기가 주는 마력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내게 이야기는 주로 소설이다. 이야기를 말하는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몹시도 소설 책이 읽고 싶어졌다. 두세 시간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흡입력 있고 재미난 소설이었으면 한다. 이제부터 책을 골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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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슈라라봉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3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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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신문에 일본 작가중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인기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 년에 서너 편의 작품을 낼 정도로 다작을 하는 작가로 유명한데 최근에 비채 출판사에서도 그의 신간 『몽환화』를 출간해, 그가 출판사들이 좋아하는 작가가 분명하구나 라는 걸 느꼈었다. 솔직히 많은 일본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있으면 일부러 찾아보고 구입하곤 하는데, 이번에 만난 작가는 내게는 처음이었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속에서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것, 읽으면 즐거운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처음 만난 작가 마키메 마나부의 『위대한 슈라라봉』도 내게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었다.

 

청소년이 나오는 작품을 꽤 좋아하는 내게 이 작품은 내가 재미있게 읽고 아이에게도 소개해 읽히고 싶은 책이었다.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의 모험과 생각은 아이들의 즐거움을 더 배가시켜줄 것이므로. 왜 제목이 '위대한 슈라라봉' 일까. 슈라라봉이라는 것은 무언가의 소리로 짐작하는데 표지에서보이는 것처럼 무술, 이런 내용일까? 하는 궁금함이 일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고등학교를 갓 입학한 청소년들이다.

주요 주인공은 '힘'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 본가로 들어가는 히노데 료스케가 있고, 본가 히노데 단쿠로 아저씨의 아들은 단주로가 있다. 히노데 가문과 맞서는 또다른 가문의 나쓰메 히로미가 주인공 들이다. 이들은 같은 학교의 같은 반으로 라이벌 가문의 영향으로 이들도 서로를 견제하며 서로를 멀리하려고 하는 이들이다.

 

히노데 가와 나쓰메 가가 대립해온 역사는 뿌리가 깊고 그들이 가진 힘도 조금 다르다.

히노데 가가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 상대의 정신을 조종하는 힘을 비와 호에서 받는다면, 나쓰메 가는 똑같이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 상대의 몸을 조종하는 힘을 비와 호에서 받아 사용할 수 있다. 두 가문 모두 비와 호를 기점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가문으로 비와 호 주변에서 오랜 세월동안 살아온 가문이었다.

 

같은 반의 같은 모둠인 하야세의 집안 또한 이곳 비와 호를 끼고 있는 이와바시리 성의 번주 였었고, 이와바시리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해 온 하야세의 아버지의 마음 또한 편치 못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어 교장은 히노데 가와 나쓰메 가문에 나타나 현재의 단주로의 아버지와 나쓰메의 아버지와 여동생을 움직이지 못하게 힘을 써놓고, 이들 두 가문이 비와 호를 떠나면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료스케나 단주로와 히로미는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숙적이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힘을 합해 이 난관을 극복해나가고자 한다. 용과 대화하는 여자라는 단주로의 누나 기요코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한다.

 

 

 

 

 

만약 나에게 그런 사람의 정신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 료스케처럼 다른 사람과 다른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싫을까. 혹은 단주로처럼 아예 그 힘을 가지려 하지 않고 거부하게 될까.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되는 기요코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않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은둔하고 있었다. 전에 텔레비젼에서 했던 모 드라마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남자주인공은 그 소리들을 듣지 않기 위해 항상 이어폰을 끼고 다녔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특별한 상대방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은게 또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때론 자신의 능력을 피하고 싶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모두 힘을 합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을 보며 자신에게 있는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마키메 마나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소설을 읽는 일은 꽤 즐거웠다.

작가가 태어난 '간사이 지방'을 무대로 써낸 소설 속 호수 '비와 호'가 실제로 시가 현에 존재하는 호수라는 것, 경치가 굉장히 아름다운 호수를 주 무대로 그의 상상력이 발휘된 소설을 읽는 일이 즐거웠다. 히노데와 나쓰메가 함께 힘을 합할때 나는 '슈라라라라라라라 보보보보보보보봉' 의 소리를 어떤 느낌이 날까 입으로 말해보기까지 했다. 이들의 가족과 가문을 구하려는 '슈라라봉'의 모험은 계속되지 않을까.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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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외인구단 - 곧 죽어도 풀스윙, 힘 없어도 돌직구
류미 지음 / 생각학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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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나 부모들에게나 가장 힘든시기가 중학교 시절이 아닐까 한다.

우스개소리로 우리나라의 중학생 때문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잖은가. 그만큼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쩔쩔맨다.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말싸움을 하거나 하기 때문에 아이의 반항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데, 남자아이들은 일단 말수가 적어져 버리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렇듯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이 아이가 사춘기가 맞나 할 정도로 지나가는 아이도 있는 것 같다. 둘째 아이가 그랬다. 원래 말수도 없었지만, 축구나 농구 등 운동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너댓시간을 운동하는데 시간을 보내서인가, 사춘기가 그냥 지나간 것 같다. 다른 무언가에 분출할 거리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운동은 굉장히 좋은 요법인 것 같다. 땀을 흘리며 다른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게 운동하고 쓰러져 자는 경우가 많아 사춘기 시기를 무난히 넘긴것 같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운동을 하면 더 괜찮을거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어떤 아이들의 경우 중학교 때부터 폭력이나 기타 다른 이유 때문에 경찰서에 다니는 애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운동에 대한 즐거움을 주고자 만든 프로그램이 동대문 외인구단이다. 서울동대문경찰서에서 중학교 남자아이들을 상대로 야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야구 훈련은 전직 프로야구 선수들이 맡아주기로 했고, 학생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때로 상담도 해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열렬한 야구팬인 저자가 아이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상담자가 되어 쓴 글이다.

 

저자는 매월 두 번씩 동대문 외인구단의 연습 장면을 관찰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아이들의 사기를 높여주려 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서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들 스스로 하는 운동이기에 아이들에게 더 유익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이들 스스로 야구 경기를 하며 이기려 했고, 프로 야구 선수들의 가르침으로 실력이 향상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나에 대한 자랑스럽고 충만한 느낌인 자존감 말이다.

 

 

우울증이 생기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세로토닌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많다는 것이 알려졌다. 놀랄만한 사실은 몸을 쓰는 행동, 운동 그 자체가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사람에게 운동을 하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 자체로 처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91~292페이지)

 

 

야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홉 명이 모여 함께 운동해야 하는 팀 훈련이다.

한 사람만 잘해서는 되지 않으며, 모두가 힘을 합해야 좋은 결과를 낼수 있고, 한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며 화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대문 외인구단을 이끌어가는 이들 중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이들 연습이 있는 주말에도 경찰서 관계자들의 아이들을 생각하는 열정이 있었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있었기에 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둔것 같다. 해단식을 할때 모두가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야구라는 팀운동을 하며 아이들도 성큼 자란것 같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가르치려하기 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를 할수 있게 만드는 이런 프로그램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경찰서 입장에서는 이처럼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신경을 쓴다는 게 힘든 일인줄 알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각 지역마다 존재한다면 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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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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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것은 이러이러하다 라고 단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각 개인이 느끼는 사랑에 대해 사랑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각자의 사랑을 써나가니까. 아마 수많은 사랑의 정의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나 아닌 타인의 사랑을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겐 그 사랑이 아주아주 간절한 것일수 있음을 알지 않는가. 우리가 사랑할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우리도 한때는 그런 사랑을 했으므로. 또한 우리가 해보지 못한 사랑을 꿈꿀수도 있으므로.

 

칠순을 바라보는 청년작가 박범신 작가는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썼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사랑이라고 부를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여자와 다른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사랑은 비밀이고 침묵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적도 없으면서 무언의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해도 서로는 이해했다. 한 집에 살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수 있을까.

 

비밀의 사랑을 나누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름이 없다.

ㄱ, ㄴ, ㄷ이라는 이니셜로 ㄱ이라는 여자가 들려주는 ㄴ, ㄷ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ㄱ은 학교에 다닐때 '우물'이라는 짧은 소설을 써 교수의 눈에 들었으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10년만엔가 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 시멘트로 된 데드마스크가 나왔다고 했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작가는 그녀에 대한 소설을 써볼까 싶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대학 교정에서 함께 걸었었던 남자 1의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옭아맸었던 이야기를 건넨다. 우리가 봐도 남자1은 ㄱ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ㄱ은 남자1과는 다른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해'라고 절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임을 느끼는 것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남자라고 부를 때 남자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내 속에 있으나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므로, 나는 '남자'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한다. (57페이지)

 

 

 

이 소설의 주제어를 말한다면, 선인장 가시, 덩어리, 비밀, 죽음일 것이다.

먼저 선인장 가시를 볼까. 선인장은 가시를 품고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가시가 있고, 안으로 들어간 가시가 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가시로 찌르기도 한다.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며 가시를 내세운다. 장미 가시나 선인장 가시에 찔려본 사람은 알리라. 그 따가움을. 아주 작은 가시인데도 곧장 핏방울이 나오게 만든다. ㄱ에게 선인장 가시는 사랑의 한 표현일수도 있었다.

 

구소소의 부모님 집에 들어왔던 ㄱ과 ㄴ, ㄷ이 한 침대에 서로 엉켜 있을때의 모습이 덩어리이다. 덩어리는 엉켜있음이다. 세 사람 ㄱ과 ㄴ, ㄴ과 ㄷ, ㄱ과 ㄷ은 한데 엉켜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들은 서로 덩어리져있었다. 그들이 처음 만나고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비밀이라는 단어를 볼까.

세 사람이 함께 살았던 그때의 시간들,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남자의 시멘트 데드마스크가 발견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ㄴ의 죽음, ㄷ의 떠남은 그들에겐 말을 하지 않았어도 다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ㄴ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 또한 비밀이었다.

 

ㄱ,ㄴ,ㄷ의 만남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살아 숨쉰다.

바람꽃을 따러 간 오빠의 실족사, 후에 이어진 부모님의 교통사고를 겪은 ㄱ의 아픈 기억. ㄱ에게 ㄴ은 늘 우물파는 남자였지만, 5.18 광주에서 형과 아버지를 잃었던 ㄴ은 이제 실어증과 치매에 걸린 엄마만 있을 뿐이었다. 죽음은 그들 세 사람을 옭아매는 가시였고, 비밀이었으며 덩어리짐이었다.

 

 

소소한 일상이 훗날에 가서 보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들이 이처럼 소소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일까. 시작부터 말하지 않아도 이별의 시간을 알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을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은 그 어느것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욕망이 뭉쳐진 열망의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소소한 풍경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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