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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사랑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것은
이러이러하다 라고 단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각 개인이 느끼는 사랑에 대해 사랑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각자의 사랑을 써나가니까. 아마 수많은 사랑의 정의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나 아닌 타인의 사랑을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겐 그 사랑이 아주아주 간절한 것일수 있음을 알지 않는가. 우리가 사랑할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우리도 한때는 그런 사랑을 했으므로. 또한 우리가 해보지 못한 사랑을 꿈꿀수도 있으므로.
칠순을 바라보는
청년작가 박범신 작가는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썼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사랑이라고 부를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여자와 다른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사랑은 비밀이고
침묵이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적도 없으면서 무언의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해도 서로는 이해했다. 한 집에 살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이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수 있을까.
비밀의 사랑을
나누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름이 없다.
ㄱ, ㄴ,
ㄷ이라는 이니셜로 ㄱ이라는 여자가 들려주는 ㄴ, ㄷ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ㄱ은 학교에 다닐때 '우물'이라는 짧은 소설을 써 교수의 눈에
들었으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10년만엔가 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살았던 집에 시멘트로 된 데드마스크가 나왔다고 했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작가는 그녀에 대한 소설을 써볼까 싶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대학 교정에서 함께
걸었었던 남자 1의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옭아맸었던 이야기를 건넨다. 우리가 봐도 남자1은
ㄱ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ㄱ은 남자1과는 다른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해'라고 절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임을 느끼는 것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남자라고 부를 때 남자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내 속에 있으나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므로, 나는
'남자'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한다. (57페이지)
이 소설의 주제어를
말한다면, 선인장 가시, 덩어리, 비밀, 죽음일 것이다.
먼저 선인장 가시를
볼까. 선인장은 가시를 품고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가시가 있고, 안으로 들어간 가시가 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가시로 찌르기도 한다.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며 가시를 내세운다. 장미 가시나 선인장 가시에 찔려본 사람은 알리라. 그 따가움을. 아주 작은
가시인데도 곧장 핏방울이 나오게 만든다. ㄱ에게 선인장 가시는 사랑의 한 표현일수도 있었다.
구소소의 부모님
집에 들어왔던 ㄱ과 ㄴ, ㄷ이 한 침대에 서로 엉켜 있을때의 모습이 덩어리이다. 덩어리는 엉켜있음이다. 세 사람 ㄱ과 ㄴ, ㄴ과 ㄷ, ㄱ과 ㄷ은
한데 엉켜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들은 서로 덩어리져있었다. 그들이 처음 만나고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비밀이라는 단어를
볼까.
세 사람이 함께
살았던 그때의 시간들,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남자의 시멘트 데드마스크가 발견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ㄴ의 죽음, ㄷ의
떠남은 그들에겐 말을 하지 않았어도 다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ㄴ의 죽음은 비밀에 부쳐졌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 또한
비밀이었다.
ㄱ,ㄴ,ㄷ의 만남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살아 숨쉰다.
바람꽃을 따러 간
오빠의 실족사, 후에 이어진 부모님의 교통사고를 겪은 ㄱ의 아픈 기억. ㄱ에게 ㄴ은 늘 우물파는 남자였지만, 5.18 광주에서 형과 아버지를
잃었던 ㄴ은 이제 실어증과 치매에 걸린 엄마만 있을 뿐이었다. 죽음은 그들 세 사람을 옭아매는 가시였고, 비밀이었으며 덩어리짐이었다.
소소한 일상이 훗날에 가서 보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들이 이처럼
소소한 풍경을 만들어낸 것일까. 시작부터 말하지 않아도 이별의 시간을 알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을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은 그
어느것보다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욕망이 뭉쳐진 열망의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소소한
풍경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