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 중 가장 외향적인 사람 - 까꿍TOON
최서연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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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발견하는 재미는 굉장한 즐거움을 준다. 첫 페이지 열었을 때부터 폭소를 터트렸는데, 책의 첫 느낌을 중요시하는 내게 기대하게 했다. 대학 재학 중인 작가 까꿍의 일상을 담은 카툰으로 코로나 시대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은 까꿍의 일상 생활을 포함해 아니라 대학 생활, 패밀리, 친구들, 알바하는 이야기들을 유머스럽게 담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놀라운 에피소드가 많았다.


 


 

 

첫 에피소드는 지하철 빌런이라는 제목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쪽 이어폰만 끼는데, 어느 날도 그처럼 한쪽 이어폰만 낀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한쪽 이어폰이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 귀에 있었다. 당황하여 자기 이어폰을 낀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한쪽 이어폰 안 들으니 음악 좀 같이 듣자고 하였다. 이 부분에서 폭소를 터트렸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끼리 이어폰을 나눠 듣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주 사이좋은 모녀 관계로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느꼈을 당황스러움이 상상되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마니또 게임을 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나 싶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자신의 마니또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작가는 자기 이름을 뽑아서 자기한테 편지 쓰고 공개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교정장치를 끼며 있었던 불편함, SNS를 시작하며 생겼던 일들, 버스를 타고 알바 가는 길에 앞좌석에 앉은 연인들의 셀카 사진에 버젓이 들어가 있는 자신의 얼굴. 이럴 때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주는데 말이다.


 

코로나 시대의 대학 생활이란 마음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수업이 있으나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집에 눕거나 씻지도 않고 마스크를 낀 채 책상에 앉아 수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팀플을 제안하시자 옆에 앉아 있던 선배와 한 팀을 하게 되었는데 전 수업에서 자던 선배를 아무도 깨우지 않아 조원 한 명을 잃었던 일화도 재미있었다.


 

 

 

엄마에게 출퇴근용 자전거가 있었다. 자전거 도둑이 많을 때였는데 도난방지용으로 엄마는 바퀴에 자물쇠를 채웠다. 도둑은 엄마를 놀리기라도 하듯 안장을 훔쳐갔다. 자전거를 끌고 올 엄마가 걱정되어 마중 나갔더니 엄마는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타고 있었다. 작가의 엉뚱하고 유머스러움이 가족에게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상상을 해보라. 자전거 뒷좌석에 엉덩이를 대고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엄마의 모습을.


 

 

 

즐겁고 유쾌하다. 그 시절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에 공감하고 코로나의 시대에 느꼈을 다양한 것들을 유머스럽게 그렸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까꿍TOON. 낄낄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다. 스트레스가 쌓이신 분들, 웃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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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개정판
이석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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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을 읽었을 때 이 책의 느낌을 산문을 가장한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좋았다는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작가가 이 책을 수정하고 있다는 걸 듣고는 다시 읽고 싶었다.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신선하고 달달 했다. 더불어 작가의 전작에서 느껴지던 우울함과는 거리가 있는 상당히 밝은 느낌의 책이었다. 그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 술친구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오는 이야기를 소설 형식처럼 담은 글들이다. 그러니까 장편 소설 같은 느낌의 장편 산문이랄까. 실제 이석원 작가의 이야기일까 싶은 친근함과 재미가 느껴졌다. 작가가 사랑하게 되면 아마 이런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픽션을 가미한 모호함의 어느 경계에 있는 산문이라고 해야겠다.

 


 

 

마흔두 살의 이석원 작가는 만날 약속을 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던 친구의 부탁으로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특별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단발머리에 홑꺼풀을 한 여자에게 속절없이 반했다. 쌍꺼풀이 유달리 짙은 그에게 홑꺼풀을 가진 여성이 이상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이쯤에서 쌍꺼풀 짙은 아들이 홑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과 사귀는 여자애들이 모두 홑꺼풀이었다는 점과 비슷한 것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장소에 단발머리에 홑꺼풀을 한 여성이 있어 무조건 그 여자가 김정희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반갑게 맞았고, 긴 머리의 여성이 김정희일 것 같지도 않았다. 키가 상당히 큰 남자가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김정희가 보이지 않자 작가는 그대로 길을 나서려 한다. 그때 머리가 긴 여자가 좀 앉으세요.’라고 말하자 비로소 그녀가 김정희임을 짐작한다.

 


작가는 상당히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듯하다. 여자가 마음에 들어도 그는 그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여자가 나를 좋아해 줄지 살피는 작업을 상당히 오래 한다니 전혀 음악 했던 사람 같지 않다.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 여자는 몇 번을 만나면서도 늘 선을 그었다. 연락은 자기가 할 것이라고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해왔다. 사귀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했다. 경계를 긋는 김정희 씨 때문에 작가 또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숨겼다. 그가 작가라는 말도, 음악을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여자는 믿는 듯했다.

 


 

만나고 싶으나 상대방의 의향을 몰라 물어볼 때, ‘뭐해요?’라는 말을 사용한다. 질문이기도 하면서 나를 만나달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 그 여자가 뭐해요? 라고 하며 연락을 해오면 그는 늘 주책없이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작가는 그 말을 가리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고 말한 것 같다. 아주 소박한 기쁨이자, 즐거움의 단어다. 그러면서도 확인받고 싶은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말이다.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을 좋아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76페이지)

 


남의 연애사를 읽는데 왜 내 마음이 간질거리는지 모르겠다. 실제의 이야기였으면 하고 바랐고, 연애 이야기여도 상관없었다.

 


이기호 작가를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 이기호식 소설의 느낌이 났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설적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다. 이석원 작가도 이기호 작가처럼 이야기가 있는 방식의 산문을 자주 썼으면 좋겠다. 호흡이 짧은 소설들도 괜찮을 것 같다. 불운 대회에 나간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31페이지)

 


그동안 출간된 작가의 작품들을 다 읽은 사람으로서 이런 방식의 이야기 재미있다. 두 번째 읽었는데도 마치 좋아하는 소설을 다시 읽은 것처럼, 혹은 처음처럼 즐겁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들어도좋은말 #이석원 #을유문화사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산문 #사랑 #공감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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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개정판이 나왔군요~!! 완전 좋아하는 음악인에 완전 좋아하는 책인데 이책 너무 좋더라구요. 읽을때마다 좋은 책👍👍

Breeze 2021-07-19 13:1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
 
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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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읽으며 제도나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게 소설 속에서 어떠한 인물상을 그리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게 변한다고 본다. 여성의 역할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작품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작품이다. 페미니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밀 작가는 앞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로 먼저 만났다. 영미문학 번역가로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들과 음식에 얽힌 의문점들을 맛깔스러운 글로 표현해 언젠가는 작가가 번역한 작품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만큼 필명 아밀로 돌아온 작가의 작품집은 꽤 궁금한 작품이었고, 역시 재미있었다.

 


 

 

2018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로드킬2020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라비4편의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로드킬부터 읽게 되었는데 한 번 책을 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말한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인물상을 그렸다. 나를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 자기의 생각대로 길을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그렸다는 점도 특별하다.


 

로드킬에서 우리는 진화에서 도태된 1급 보호대상 소수인종 여성들을 마주한다. 진화된 여자들은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장기를 대체할 뿐 아니라 수명 연장 약을 투여받았다. 반면 돈이 없는 여성들은 그런 자연진화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았고 그들이 낳은 딸들이 보호대상으로 분류되어 별도의 보호소에서 강제로 보호되어야 했다. 이곳에 있는 소녀들이 나갈 수 있을 때는 바깥세상에서 온 남자들의 면담으로 선택을 받게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혀야 가능했다.

 


로드킬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 작품에서 나왔던 인간과 여성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리의 먼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 일 수밖에 없는지, 여성이 가진 역할이 출산과 남자의 선택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 소설에서 소녀는 지금은 없는 여름이라는 계절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와 함께 탈출을 꿈꾼다. 비록 고속도로 밖에서 로드킬이 될지라도 일단 철책을 뚫고 나가야 했다.

 


라비라는 이름을 가진 주술사의 이야기는 옛것과 현재의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더 좋은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열대 부족의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곳에서 주술사의 손녀인 라비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주술사가 되어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따라 공용어로 말하면 할머니에게 혼났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주술사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찾아와 고대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사고방식을 알고 싶다고 했다. 식물학자는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지도 모를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인류학자는 고대의 언어와 전통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다. 식물학자나 인류학자가 라비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건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였다. 라비는 전통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체득했다.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들에게도 그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희망. 어쨌거나 말은 공평하므로. 말에는 돈이 들지 않으므로. 말은 누구든 아무렇게든 쓸 수 있다. 따라서 말은 무엇보다 먼저 왔다. 사물보다 먼저 이름이 왔다. 돈보다 먼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 왔다. (64페이지, 라비중에서)

 


외시경이라는 작품도 좋았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겸 교수인 남편이 아내인 작가를 언어 및 성적 폭력을 일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그늘 아래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읽는데 어떤 추리소설이 떠올라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작가인 여성은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자신의 바라보던 것을 믿고 그 의지를 실현한다.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 다만 칼과 걸레를 들고 욕실 청소를 제대로 하겠다는 여자의 모습은 섬뜩하다. 그런데도 후련한 이 마음은 무엇일까.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공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쩐지 서글픈 내용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느 한순간에 이처럼 사라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공물을 바칠 때 동물이 아닌 사람을, 그것도 살아있는 처녀를 바친다는 설화가 몹시 불편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데 왜 처녀여야 하는지 심청이처럼 아득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옛이야기와 현재 또는 미래의 어느 공간에 속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운명을 탓할 게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가는 것이다. 읽어보시라, 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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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6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8월 건강 잘챙기세요 ^ㅅ^

그레이스 2021-08-0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mini74 2021-08-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8-0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한국 정원 기행 -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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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물었다.

우리 옛 정원 보는 법을…….

 

다만, 이렇게 답했다.

오감을 열어젖힐 것,

풍경 바깥을 살필 것,

그 속을 거닐 것,

나직이 읊조릴 것, 가만히 응시할 것, 깊이 침잠할 것……. (4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금요일 퇴근 후, 담양 가사문학면에 위치한 소쇄원을 지나 텃밭에 가서 23일을 지내고 온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다녔었고, 신랑과 둘이서도 소쇄원을 풍경을 보며 옛 정원을 거닐었다. 친구들과도 함께 거닐던 곳인데 책 속에 거론되는 곳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했지만, 재작년엔 민간정원을 꽤 다녔다. 메모지에 붙여 두고 다니고 싶은 곳을 골랐다. 개인이 만든 정원은 다 달라서 그들만의 열정과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와 다르게 옛 정원은 정말 아름답다. 색이 바랜 목재와 문살의 문양을 상당히 좋아한다. 더구나 정원은 계곡이 있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가 있기 마련이다. 소쇄원 제월당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스치는 바람을, 주변의 열린 풍경을.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조선의 3대 민간 정원인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과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 그리고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부터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다. 고산 윤선도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왕을 구하려 강화도로 향하다 왕이 삼전도에서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섬의 수려한 광경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춘 곳이다. 저자는 윤선도를 가리켜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가라고 일컬었다. 고산은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수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자연과 교감하는 생활을 즐겼다. (40페이지) 역사를 살펴보며 정원을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더불어 보길도 부용동 원림 관람법을 설명한다. 낙서재를 제일 먼저 찾아 소요한 후 지루해지면 세연정을 찾을 것과 산책을 하며 해질 무렵에 동천석실에 올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기왕이면 하룻밤을 묵어가며 천천히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소쇄원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게 되자 고향에 내려와 소쇄원을 지어 은둔하였다. 소쇄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모두 찾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을 지나쳤는데 여름이 가기 전 소쇄원을 아주 천천히 거닐고 싶었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담장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마음을 열어 거닐 것이다. 영양 서석지의 핵심은 연못의 상서로운 돌들이다. 이곳의 돌들은 외부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연못 바닥에 있던 석영사암층을 활용하여 연못을 조성했다.

 


별서는 대개 담장도 문도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서울과 지방이 조금씩 다른데 서울의 별서로는 석파정, 성락원, 부암정, 옥호정 등인데, 이들은 주거가 가능한 살림집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반면 지방의 별서는 살림집 기능은 거의 없고 정자 중심의 시설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기거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별서로는 안동 만휴정, 예천 초간정, 담양 명옥헌, 대전 남간정사, 강진 백운동 별서, 강진 다산초당, 화순 임대정이 있다.

 


정원이 있는 고택 등도 자주 다니곤 하는데 오래전에 방문했던 강릉 선교장을 잊지 못한다. 방문했을 때는 선교장에 관한 지식이 없이 갔었는데 이 책에서 보니 선교장이 생긴 그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별서나 정원들은 모두 빼어난 위치와 조망, 경관을 가지고 있다. 탁 트인 장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 정원은 처음엔 서먹하나 점점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중국 정원은 첫인상은 서글서글한데 왠지 마음 두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은 집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고, 한국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5페이지)

 


옛 정원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 속에 수록된 모든 장소를 가보고 싶다. 몇몇 장소는 직접 검색을 해보고 휴대폰 메모 기능에 저장해두었다. 책 한 권을 들고 정원 기행을 떠난다면 좋겠다. 방문하기 전, 책으로 정원이 생긴 의미를 파악하고 가게 되면 정원에 대한 아름다움의 깊이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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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발표한 모든 작품을 검토하여 백석 시의 정본과 원본을 확립한 시집이다. 이번에야말로 백석의 시를 제대로 알 수 있겠다 싶었다. 잘 알지는 못하나 그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는 듯하다. 한국의 언어이지만 평안도의 사투리로 쓰인 시들은 다소 이해되지 않는 단어도 있지만 최대한 풀이하여 쓰인 시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시집의 뒷부분에는 시가 발표된 원문이 표기되어 있어, 앞부분의 시와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같은 언어인데도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사투리 또한 이해 불가능한 것도 있어 단어를 알아가는 것 또한 의미 있었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21페이지, 전문)

 


비 오는 날의 비 냄새를 좋아한다. 약간은 비릿한 냄새로 흙을 적시는 비가 냄새를 피워 올린다. 백석은 그 느낌을 개비린내라고 표현했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시였다. 일주일 가까이 비가 내려 비 비린내를 맡을 새도 없었다. 대지를 적시는 풍경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47페이지, 청시靑?전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99~100페이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부문)

 


백석의 이름만 알았을 뿐 백석의 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느 때, 백석의 시 제목을 딴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며 백석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는 전자책으로만 갖고 있어서 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제야 비로소 시를 제대로 읽는 느낌이다.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 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넷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 수원백씨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135페이지, 목구부문)

 

 

 

백석 시에서 방언과 고어를 더러 구사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옮기는 작업이 피요했다고 한다. 낯선 단어지만 옛 사람들이 사용했을 단어를 비교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백석의 작품을 더 알고 싶다면 저자 고형진이 엮은 백석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정본 백석 시집외에도 정본 백석 소설?수필,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백석의 연인 김자야 여사가 털어놓는 내 사랑 백석오 함께 읽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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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1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시 좋아하는데 정본이 나왔군요. 나타샤도 좋고.ㅎㅎ 전 여우난골족이란 시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어린시절 기억때문인지. 아이 어릴적 준치가시랑 개구리네 한솥밥 그림책으로 보곤 했는데 … 좋은 책들 추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