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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원 기행 -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6월
평점 :
누군가 물었다.
우리 옛 정원 보는 법을…….
다만, 이렇게 답했다.
오감을 열어젖힐 것,
풍경 바깥을 살필 것,
그 속을 거닐 것,
나직이 읊조릴 것, 가만히 응시할 것, 깊이 침잠할 것……. (4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금요일 퇴근 후, 담양 가사문학면에 위치한 소쇄원을 지나 텃밭에 가서 2박3일을 지내고 온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다녔었고, 신랑과 둘이서도 소쇄원을 풍경을 보며 옛 정원을 거닐었다. 친구들과도 함께 거닐던 곳인데 책 속에 거론되는 곳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했지만, 재작년엔 민간정원을 꽤 다녔다. 메모지에 붙여 두고 다니고 싶은 곳을 골랐다. 개인이 만든 정원은 다 달라서 그들만의 열정과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와 다르게 옛 정원은 정말 아름답다. 색이 바랜 목재와 문살의 문양을 상당히 좋아한다. 더구나 정원은 계곡이 있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가 있기 마련이다. 소쇄원 제월당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스치는 바람을, 주변의 열린 풍경을.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조선의 3대 민간 정원인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과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 그리고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부터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다. 고산 윤선도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왕을 구하려 강화도로 향하다 왕이 삼전도에서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섬의 수려한 광경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춘 곳이다. 저자는 윤선도를 가리켜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가라고 일컬었다. 고산은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수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자연과 교감하는 생활을 즐겼다. (40페이지) 역사를 살펴보며 정원을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더불어 보길도 부용동 원림 관람법을 설명한다. 낙서재를 제일 먼저 찾아 소요한 후 지루해지면 세연정을 찾을 것과 산책을 하며 해질 무렵에 동천석실에 올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기왕이면 하룻밤을 묵어가며 천천히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소쇄원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게 되자 고향에 내려와 소쇄원을 지어 은둔하였다. 소쇄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모두 찾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을 지나쳤는데 여름이 가기 전 소쇄원을 아주 천천히 거닐고 싶었다. 저자가 설명한 대로 담장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마음을 열어 거닐 것이다. 영양 서석지의 핵심은 연못의 상서로운 돌들이다. 이곳의 돌들은 외부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니라 연못 바닥에 있던 석영사암층을 활용하여 연못을 조성했다.
별서는 대개 담장도 문도 없을 정도로 개방적이다. 서울과 지방이 조금씩 다른데 서울의 별서로는 석파정, 성락원, 부암정, 옥호정 등인데, 이들은 주거가 가능한 살림집의 기능을 갖춘 곳이다. 반면 지방의 별서는 살림집 기능은 거의 없고 정자 중심의 시설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기거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별서로는 안동 만휴정, 예천 초간정, 담양 명옥헌, 대전 남간정사, 강진 백운동 별서, 강진 다산초당, 화순 임대정이 있다.
정원이 있는 고택 등도 자주 다니곤 하는데 오래전에 방문했던 강릉 선교장을 잊지 못한다. 방문했을 때는 선교장에 관한 지식이 없이 갔었는데 이 책에서 보니 선교장이 생긴 그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별서나 정원들은 모두 빼어난 위치와 조망, 경관을 가지고 있다. 탁 트인 장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 정원은 처음엔 서먹하나 점점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중국 정원은 첫인상은 서글서글한데 왠지 마음 두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은 집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고, 한국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5페이지)
옛 정원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책 속에 수록된 모든 장소를 가보고 싶다. 몇몇 장소는 직접 검색을 해보고 휴대폰 메모 기능에 저장해두었다. 책 한 권을 들고 정원 기행을 떠난다면 좋겠다. 방문하기 전, 책으로 정원이 생긴 의미를 파악하고 가게 되면 정원에 대한 아름다움의 깊이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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