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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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읽으며 제도나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게 소설 속에서 어떠한 인물상을 그리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게 변한다고 본다. 여성의 역할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도 이러한 작품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작품이다. 페미니즘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밀 작가는 앞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로 먼저 만났다. 영미문학 번역가로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들과 음식에 얽힌 의문점들을 맛깔스러운 글로 표현해 언젠가는 작가가 번역한 작품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만큼 필명 아밀로 돌아온 작가의 작품집은 꽤 궁금한 작품이었고, 역시 재미있었다.

 


 

 

2018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로드킬2020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라비4편의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이다. 로드킬부터 읽게 되었는데 한 번 책을 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인물들을 말한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인물상을 그렸다. 나를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 자기의 생각대로 길을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그렸다는 점도 특별하다.


 

로드킬에서 우리는 진화에서 도태된 1급 보호대상 소수인종 여성들을 마주한다. 진화된 여자들은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장기를 대체할 뿐 아니라 수명 연장 약을 투여받았다. 반면 돈이 없는 여성들은 그런 자연진화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살았고 그들이 낳은 딸들이 보호대상으로 분류되어 별도의 보호소에서 강제로 보호되어야 했다. 이곳에 있는 소녀들이 나갈 수 있을 때는 바깥세상에서 온 남자들의 면담으로 선택을 받게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로 얽혀야 가능했다.

 


로드킬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 작품에서 나왔던 인간과 여성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리의 먼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 일 수밖에 없는지, 여성이 가진 역할이 출산과 남자의 선택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게 한다. 이 소설에서 소녀는 지금은 없는 여름이라는 계절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와 함께 탈출을 꿈꾼다. 비록 고속도로 밖에서 로드킬이 될지라도 일단 철책을 뚫고 나가야 했다.

 


라비라는 이름을 가진 주술사의 이야기는 옛것과 현재의 것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더 좋은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열대 부족의 오랜 전통을 이어오던 곳에서 주술사의 손녀인 라비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주술사가 되어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을 따라 공용어로 말하면 할머니에게 혼났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주술사가 되기 위한 연습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찾아와 고대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사고방식을 알고 싶다고 했다. 식물학자는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지도 모를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인류학자는 고대의 언어와 전통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다. 식물학자나 인류학자가 라비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건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였다. 라비는 전통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체득했다.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들에게도 그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희망. 어쨌거나 말은 공평하므로. 말에는 돈이 들지 않으므로. 말은 누구든 아무렇게든 쓸 수 있다. 따라서 말은 무엇보다 먼저 왔다. 사물보다 먼저 이름이 왔다. 돈보다 먼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 왔다. (64페이지, 라비중에서)

 


외시경이라는 작품도 좋았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겸 교수인 남편이 아내인 작가를 언어 및 성적 폭력을 일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의 그늘 아래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읽는데 어떤 추리소설이 떠올라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작가인 여성은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자신의 바라보던 것을 믿고 그 의지를 실현한다.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 다만 칼과 걸레를 들고 욕실 청소를 제대로 하겠다는 여자의 모습은 섬뜩하다. 그런데도 후련한 이 마음은 무엇일까.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공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쩐지 서글픈 내용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느 한순간에 이처럼 사라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공물을 바칠 때 동물이 아닌 사람을, 그것도 살아있는 처녀를 바친다는 설화가 몹시 불편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데 왜 처녀여야 하는지 심청이처럼 아득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옛이야기와 현재 또는 미래의 어느 공간에 속한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운명을 탓할 게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개척해가는 것이다. 읽어보시라, 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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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6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8월 건강 잘챙기세요 ^ㅅ^

그레이스 2021-08-0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mini74 2021-08-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8-0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