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개정판
이석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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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을 읽었을 때 이 책의 느낌을 산문을 가장한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 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좋았다는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작가가 이 책을 수정하고 있다는 걸 듣고는 다시 읽고 싶었다.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신선하고 달달 했다. 더불어 작가의 전작에서 느껴지던 우울함과는 거리가 있는 상당히 밝은 느낌의 책이었다. 그 남자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 술친구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오는 이야기를 소설 형식처럼 담은 글들이다. 그러니까 장편 소설 같은 느낌의 장편 산문이랄까. 실제 이석원 작가의 이야기일까 싶은 친근함과 재미가 느껴졌다. 작가가 사랑하게 되면 아마 이런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픽션을 가미한 모호함의 어느 경계에 있는 산문이라고 해야겠다.

 


 

 

마흔두 살의 이석원 작가는 만날 약속을 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던 친구의 부탁으로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특별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단발머리에 홑꺼풀을 한 여자에게 속절없이 반했다. 쌍꺼풀이 유달리 짙은 그에게 홑꺼풀을 가진 여성이 이상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이쯤에서 쌍꺼풀 짙은 아들이 홑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던 것과 사귀는 여자애들이 모두 홑꺼풀이었다는 점과 비슷한 것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장소에 단발머리에 홑꺼풀을 한 여성이 있어 무조건 그 여자가 김정희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반갑게 맞았고, 긴 머리의 여성이 김정희일 것 같지도 않았다. 키가 상당히 큰 남자가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김정희가 보이지 않자 작가는 그대로 길을 나서려 한다. 그때 머리가 긴 여자가 좀 앉으세요.’라고 말하자 비로소 그녀가 김정희임을 짐작한다.

 


작가는 상당히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듯하다. 여자가 마음에 들어도 그는 그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여자가 나를 좋아해 줄지 살피는 작업을 상당히 오래 한다니 전혀 음악 했던 사람 같지 않다.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 여자는 몇 번을 만나면서도 늘 선을 그었다. 연락은 자기가 할 것이라고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해왔다. 사귀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했다. 경계를 긋는 김정희 씨 때문에 작가 또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숨겼다. 그가 작가라는 말도, 음악을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여자는 믿는 듯했다.

 


 

만나고 싶으나 상대방의 의향을 몰라 물어볼 때, ‘뭐해요?’라는 말을 사용한다. 질문이기도 하면서 나를 만나달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 그 여자가 뭐해요? 라고 하며 연락을 해오면 그는 늘 주책없이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작가는 그 말을 가리켜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고 말한 것 같다. 아주 소박한 기쁨이자, 즐거움의 단어다. 그러면서도 확인받고 싶은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거 말이다.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을 좋아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76페이지)

 


남의 연애사를 읽는데 왜 내 마음이 간질거리는지 모르겠다. 실제의 이야기였으면 하고 바랐고, 연애 이야기여도 상관없었다.

 


이기호 작가를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 이기호식 소설의 느낌이 났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설적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다. 이석원 작가도 이기호 작가처럼 이야기가 있는 방식의 산문을 자주 썼으면 좋겠다. 호흡이 짧은 소설들도 괜찮을 것 같다. 불운 대회에 나간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내게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혼자서 조용히 자신만의 화단을 가꾸는 일.

 

천천히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앞서 간다고도 생각지 않구요.

 

오늘도 감사히 보내시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선물은 아닙니다. (331페이지)

 


그동안 출간된 작가의 작품들을 다 읽은 사람으로서 이런 방식의 이야기 재미있다. 두 번째 읽었는데도 마치 좋아하는 소설을 다시 읽은 것처럼, 혹은 처음처럼 즐겁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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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9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개정판이 나왔군요~!! 완전 좋아하는 음악인에 완전 좋아하는 책인데 이책 너무 좋더라구요. 읽을때마다 좋은 책👍👍

Breeze 2021-07-19 13:1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