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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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때 지구의 종말을 말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그저 한 점성가의 예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했고,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이러한 체제가 계속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아야 할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단 이야기다.

 

유토피아라는 게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가리킨다. 『유토피아 실험』은 문명이 붕괴된 종말 이후의 삶을 사는 실험을 실제로 했던 딜런 에번스의 고백이다. 직장과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 부지를 얻어 유토피아의 삶을 꿈꿨다. 자신의 계획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연구했던 학교와 연구 자료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게재했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혼자 가려고 했으나 아이가 있는 여자 친구를 알게 되어 그들이 살 지역과 가까운 곳에 기거하게 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곳에 기거할 곳을 정했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상향을 꿈꾸는 애덤과 애그릭이 들어왔고 다르지만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들이 기거할 유르트를 짓고 식량을 자급자족하기로 했다. 딜런이 유토피아 실험 기간을 1년여로 정했지만, 점점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보다는 자신의 자리 직장과 집을 다 팔아버리고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실험이 끝나면 집도 없는 떠돌이가 될 운명이 불안했다.

 

몇 개월씩 다녀가는 참가자들과 어지러진 유르트 안, 자신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실험은 저만치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우울증으로 이끌었다. 이 실험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1년 넘게 이어졌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공동체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으나 이 실험의 주체였던 딜런은 자꾸만 회의가 들었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은 소로처럼, 또는 몬태나주에 오두막을 지은 유나바머처럼 이 실험을 혼자 했다면 더 즐거웠을까? (중략) 예전에 코츠월드의 작은 시골집에 살 때 나는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 시간이, 몇 주씩이나 이어지기도 했던 그 나날이 그리워졌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독서를 하거나, 혼자 시골길을 오래오래 산책하곤 했다. 이제 나는 문명과 멀리 떨어져서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 중 하나에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었다. (213~214페이지)

 

나는 더 귀중한 것을 배웠다. 비록 내가 무적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310~311페이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삶의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전히 진행중일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바라보는 건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머니와 동생도 방문했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머니의 엄려스러운 눈빛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했던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험을 종료하기까지 많은 번민을 했지만, 종료를 결정하고 나서 그가 느꼈던 많은 생각들은 경험한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었으리라. 그가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음이 간절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했기에 이런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며 문명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자기 집의 안락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것. 귀한 손님이 왔을 때 꺼내놓았던 찻잔.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도 그가 공동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는 거다. 그럼에도 딜런은 귀중한 것을 배웠다고 했다. 문명이 붕괴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봤기에 스스로 헤쳐갈 수 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유토피아의 현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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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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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의 하나가 나영석 피디의 프로그램 <윤식당> 부터였다. 배우들이 음식을 배워 외국에서 식당을 경영한다. 본연의 일이 아니기에 무척 어려운 일임에도 기꺼이 성공을 시켰던 바다. 출연진들이 걷던 길, 그 거리가 스페인의 장소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과 함께 차승원, 배정남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막바지의 마을에서 하숙집을 열었다. 순례자들을 위해 순례자 숙소 즉 알베르게를 운영한다는 모토였다. 깨끗한 침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니 누가 거부를 할까. 순례길에서 <스페인 하숙>을 찾는 순례자들은 모두 만족의 얼굴을 하고 쉬다 떠났다.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스페인 하숙>을 연 장소가 순례길의 막바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라는 마을이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스페인 하숙>의 김대주 작가의 이름만 보고는 그가 쓴 이야기인줄 알았다는 거.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직접 걷기도 했던 건축가 김희곤의 책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알려진 '산티아고의 길'은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 부르고,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을 일컫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걷는다. 걷는 동안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걷기만 하며 모든 시름을 잊는다. 힘들다고 했던 일, 고민같은 건 모두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 길에 선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순례자들은 지금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부제도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라 붙여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건축물을 살피게 된다. 인간과 신을 잇는 장소인 대성당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지역만 다를 뿐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쓰는 대성당은 여러 곳에 위치해 있다. 건축가 답게 장면들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나타냈고 사진 자료와 함께 수록되어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대성당과 대성당이 가진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실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어디서부터 걸었느냐고 물으면 프랑스의 생장(생장피드포르)에서 걸었다고도 하고 팜플로나에서 걷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물론 TV 프로그램에서 순례자들의 말을 통해서였다.

 

저자는 특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속의 문장을 발췌해 산티아고 순례길과 그에 관련된 것들을 말했다. 성모 마리아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모습이 보인 절벽에 있는 거친 동굴의 성소 뿐만 아니라 레온 현대 미술관등의 건물의 웅장함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 온 건물들은 그야말로 웅장하다. 역사와 문화가 건물에 그대로 살아 있어 저자의 건축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책 속에서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인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성당과 풍경들을 은근히 기대했다. 저자가 언급한 거라고는 마르케스 후작의 궁전과 산 프란시스코 성당 뿐이었지만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정경 사진만으로도 반가웠다.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은 성별과 국적을 떠나 모두가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루에 몇십 킬로를 걷다보면 지치고 힘들다. 그렇기에 서로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종교 건물 중에서 수도원 중정보다 더 내면을 비추는 공간을 보지 못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듯이 시간의 그릇으로 빛을 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수도원의 복도처럼 빛과 어둠 사이로 걸어가는 일상의 연속이다. (261페이지)

 

 

 

대성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에너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던 절대 사랑이었다. 인간이 대성당을 지었지만 대성당이 인간의 성장시켜주었음을 산티아고 순례길의 건축이 사랑의 온기로 증명해주었다. (333페이지)

 

 

 

최근에 한 가수 부부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떠날 수 있을까 싶었다. 하루에 30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를 걷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길에서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우리 스스로 순례자가 되려는 사람이 나 뿐만 아닐 것 같다. 다녀온 사람도 많았고, 앞으로 계획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대성당과 대성당을 잇는 길을 따라 걷는 일, 이 책과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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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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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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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박찬승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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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년전 3월 1일,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지 10년째가 되던 해였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해 읽었고, 남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천도교인, 기독교인 여학생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독립을 향한 염원이 온 국민을 일으켰고, 대한 독립을 향한 단초가 되었다.

 

최근 3.1 만세 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다양한 행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역사 선생님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탐방하는 행사를 했었고, 100주년이다보니 여러모로 의미있는 한 해 였던 것 같다. 이 책 또한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1일을 기념으로 해 나왔다. 세세한 사항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 의식을 일깨워 준 책이었다.

 

우리가 역사 책을 통해 알게 된 건 33인의 민족대표가 있었고, 독립선언서를 읽어 온 국민이 독립을 향해 외쳤던 울음이었다. 독립 운동을 하던 인사들과 조선인이지만 일본인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과의 대립. 소위 밀정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했다. 수많은 일본인들과 밀정들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이런 이야기들은 영화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다.

 

 

 

 

 

이 책의 뒷 편을 보면 <2.8 독립선언서>가 있고 <3.1 독립선언서>가 수록되어 있다. 선언서의 "우리는 지금 조선의 독립국임과 동시에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라는 첫문장은 우리나라의 헌법과 거의 일치해 가슴이 벅차오른다. 독립선언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의 무단통치였다. '한국인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억압과 차별, 그리고 생존권 위협으로 나타났다.' (41페이지) 또한 고종의 승하와 함께 독살설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초안을 쓴 뒤, 일본 정부와 의회, 조선총독부에게 보낼 <독립의견서>,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보낼 <독립청원서>, 강화회의 위원들에게 보낼 <독립의견서> 까지 작성해 최린에게 넘겼다고 했다.

 

책 속에서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게 된 계기, 민족 대표에 들어간 인물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몇 달 전에 본 영화에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일본 순사들을 피해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애쓰던 게 생각났다.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본 순사들에게 들킬까봐 최남선은 독립선언서를 일본인의 집에서 썼다고 했다. 그것처럼 안전한 방법도 없다 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운동가들은 우리에게 정부가 필요하다고 여겨 임시 정부를 구성했다. 여기에서 정부 각원들의 명단의 변화를 보면 역시 정치적 인물들이란 어쩔 수 없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였던 그가 외부 인사들에게도 'President'라는 명함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안창호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니 대통령을 가로챈 것이 아닌가. 

 

 

독립을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그것이 단초가 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100년 전의 뜨거운 함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이 저지른 온갖 만행에도 꿋꿋하게 이겨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1919년, 1년 간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있다. 독립 100년, 임시정부 수립일 100년이 되는 2019년에 의미있는 작품이다. 그 날의 뜨거운 함성과 독립을 위해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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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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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의 깊이가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으나 특별히 아픈 일이 없기에 대체로 행복하다 여긴다. 지금의 나를 떠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러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할 것이다. 나 또한 최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주 하는 생각 중의 하나는 지금 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딘가 멀리, 시간적 여유가 없어 떠나지 못했던 유럽의 어딘가에서 한 달만 살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딸과 하는 대화 중 스트레스 만땅이라며 여행을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꿈꾸었던 미지의 장소를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쯤은 위로가 된다.

 

20년째 여행중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무척 반갑고도 부러운 이유다. 용기가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추진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가. 인도의 한 골목길에서, 에버리진들이 있는 장소에서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에세이라 할 것 같다.

 

소위 힐링 도서이기도 하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들. 수많은 질문들을 삼키고 하나의 질문 만을 해야 했을 때 말할 수 있는 것. 행복해지라는 샤먼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순간들에 대한 고백이었다.

 

헤어진 사람이 있었다. 상대방과 있으면 행복하지 않아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자는 말한다.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그가 얼마나 행복해 본 사람인지를 물어보라'고 말이다. 많이 행복해 본 사람이 그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법이다. 이 말은 진리와도 같다.

 

 

맨발로, 그것도 상처 입은 맨발로 떠났던 수많은 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날 주저앉게 했던 작은 실망들, 냉담한 말 한 마디, 사소한 불운들이 다시 와 박혔다. 그 쓰라린 시간들을 건너는 동안 내 신발은 트렁크 안에 고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 가면 꺼내 신으려고. (45페이지)

 

상처는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그것이 마치 자신의 장소인양 나가게 하지 못한다. 상처를 드러내야 비로소 치유가 되듯, 마음에 담고만 있으면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런 짧은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현재의 내가 상처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상처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그가 하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지금은 멈추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마라. 벌여놓은 일에서 손을 떼고 신발 끈을 풀고 앉아라. 그리고 원한다면 나와 함께 응답하지 않겠는가? (190페이지) 

 

 

 

 

책속에서 작가가 언급한 말기암 병동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의 말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죽어가는 이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사회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애썼던 것.

-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죽도록 했던 것.

 

- 일을 하느라 여행을 미루고 파티에 가지 않았던 것. (167페이지)

 

세 번째 목록에서 그만 '나도나도'라고 외치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아니겠는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일도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뒤돌아보게 된다. 잠시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하는 일, 그걸 하지 못했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일 것이다.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이며. 저자의 말처럼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신발 끈을 풀고 앉아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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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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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마운틴 걸이었다. 4~5년을 꾸준히 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먼 산은 자주 다니지 않고 가까운 뒷산, 혹은 트레킹 위주로 다니고 있다. 일 년쯤 쉬었을까. 쉬었다 다시 다니기 시작했더니 이렇게 좋은 산을 왜 다니지 않았던 걸까, 후회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집에서 나서기가 힘들지 가면 좋은데, 하는 말들을 했다. 앞으로 자주 다니자고 함께 다닌 친구랑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무래도 등산에 관련된 소설을 읽자니 즐겁게 산행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여러 명이서 함께 어울려 색색의 반찬들로 된 도시락을 챙겨먹고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들이었다. 상쾌한 공기와 친구들간의 관계가 더욱 좋아진 건 덤이었다. 그 친구들과 한라산을 등반하기도 해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다.

 

나는 이 소설이 그의 유명한 소설 『고백』처럼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소설로 보았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신 인물들의 연결 고리와 함께 산이라는 것에 대한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등산을 하게 되면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도 각자의 생각에 빠져 걷게 된다. 과거의 일들, 현재의 상황, 미래에 펼쳐질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돌아 상황들을 정리하기에 퍽 좋다. 묵묵히 고 있지만 머리속은 무척 번잡하달까.

 

 

 

 

소설 속 인물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물들이 속해 있는 장소에 따라 일본의 산과 뉴질랜드의 산을 걷게 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들 번잡한 마음들을 가지고 산에 올랐다는 거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다가 등산용품 행사할 때 구매하게 된 등산화 때문에라도 첫 등산을 하게 된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이해되지 않았던 남자 친구의 행동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함께 산에 오르는 동갑내기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엔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우정의 형태를 지니는 것이 등산 후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여성이 언니를 불편해하는 동생과 함께 산행을 하며 자기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언니가, '노조미, 너랑 오는 게 좋았어.'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은 함께 산행을 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랑 함께 산행했던 마키노는 '야리가타케' 정상을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산행을 하면 맞지 않아 등산을 혼자 다니곤 했었다. 이번에 '야리가타케' 정상을 오르리라 다짐하고 휴가를 내어 산행을 하던 그녀는 등산을 하며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게 싫었던 그녀지만 다른 일행과 걸어가며 그때 아버지가 지쳤던 게 아니었을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346페이지) 

 

 

미나토 가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이었다. 추리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등산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들, 자신이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짐들을 벗는 과정을 나타낸 수작이었다. 각자의 시선에서 산을 오르지만, 결국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등산을 하는 것임을 말했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면의 우리와 마주한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내면 속의 나,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득 산길을 걷고 싶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산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과 마주하고 싶어졌다. 푸른 하늘, 맑은 공기와 더불어 나 혼자 걸어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 걸음이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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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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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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