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평점 :
영화 「겟 아웃」을 모티프로 한 소설 『늙은이들의 가든파티』의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작가의 작품 중에 자주 나오는 한차연이 역시 주인공이다. 한차현 작가는 SF와 인간 복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건넨다.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은원만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은원은 어디 있을까.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기에 며칠째 전화 한 통 못 받고 있는 것일까. (17페이지)
스물아홉 살 청년 한차연은 물류센터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섯 살 연상의 은원을 만났다. 만난 지 600일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은원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은원이 다니던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은원이 살았던 집은 일상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다만, 은원만이 사라졌다. 은원의 유일한 친구 성이연을 찾아갔다가 의외의 인물을 만나고, 모든 기억을 잃은 은원을 병원에서 다시 마주했다.
은원은 정말 은원일까. 기억만이 사라졌을 뿐 예전 은원과 같은 사람일까. 차연이 혼란스럽다. 또는 두렵다. 은원을 다시 만난 이후로 하루 또 하루, 어느결에 나쁜 풀처럼 싹트고 자라고 번진 혼란이다. 곁에서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들이 눈치챌까 봐 혼란스러운 두려움이다. (133페이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는 인간을 위해 장기기증을 하는 클론이 나오는 작품이다. 인간을 위한 도구처럼 이용하는 걸 보며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었다. 『은원, 은, 원』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돈을 들고 찾아오는 인간들을 위해 인간 복제를 하는 내용이다.
죽은 딸을 다시 살리기 위해 복제에 성공했다면, 그 아이는 나의 딸일까, 아닐까. 몇 번의 복제 실패로 딸을 살리겠다는 희망을 잃고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은원이 내가 알던 은원이 맞는 건지 의심하며 소설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된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인간의 위치는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인간의 목소리를 그대로 구현하는 AI의 등장은 썩 반갑지만은 않은 것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가리켜 연애소설이라고 했지만, 연애소설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연애소설이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묻는 소설이다. 인간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사랑하게 된 차연. 사랑했던 은원과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던 일련의 과정으로 다시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배운 과거 은원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니 연애소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이라는 것도 배우는 거라는 걸 다시 실감한다. 영화감독 김철웅과 함께 쓴 소설이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은원은원 #한차현 #김철웅 #나무옆의자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문학 #한국문학 #한국소설 #SF소설 #연애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