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술사 무블 시리즈 2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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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같은 소설, 소설 같은 영화라는 뜻을 가진 '무블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는 『조선 마술사』이다. 조선시대에도 과연 마술사가 있었을까?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이 책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에서 조선시대에도 마술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이에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고 소설을 퇴고하는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상상을 해본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시대에 마술사가 있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들은 사대부와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을까. 사대부들의 핍박으로 자취를 감추지 않았을까.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술사들에게 열광했다. 생각해보면 마술사들이 있었을 것 같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예인집단이었던 사당패의 한 줄기가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지 못하게 했어도 소설을 즐겨 읽었던 우리 선조들처럼 그들도 눈에 휘둥그레지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잘생긴 미남자가 마술사라면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젊은 처자들은 미남자인 마술사를 보겠다며 물랑루로 달려들었을 것이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열광했을 것도 같다. 소설속 조선 마술사가 활동했던 무대인 물랑루는 프랑스의 물랑루즈처럼 상상되기도 했다.

 

영화 속 '물랑루'

 

  마술 하나로 조선 시대를 호령하는 마술사 '환희'가 있다. 그는 자신의 마술 실력을 제대로 뽐낼수 있는 물랑루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선시대의 옹주 '청명'은 궁궐속 단 하나의 친구인 은미와 함께 물랑루로 마술을 구경하러 갔다가 환희의 마술을 지켜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환희를 바라보느라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데, 무대의 천정을 바라보는 청명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혹은 청명의 하얀 목덜미 때문인지 관객과 함께하는 마술 시연에서 청명을 지적해 나오라고 한다. 물론 많은 여성들이 환희에게 지목당하고 싶어한다. 은미까지도. 태어나자마자 어미인 소원 조씨가 죽은후 궁궐 속 깊은 골방인 별당에서 있는듯 없는듯 외롭게 생활해 온 청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다. 이에 환희의 부름을 거절하고 궁궐로 돌아오게 되는데, 여태 자신의 부름을 거절한 적이 없어 환희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때의 시대는 청나라에 조공을 했던 때이다. 청나라의 사신이 찾아와 태자의 아홉번째 후궁을 뽑아가기 위해 조선의 처녀들을 데려갔었는데, 이번에는 청나라의 사신의 눈에 띄어 청명이 가게 되었다. 청명을 보내고는 못살것 같은 왕, 어느새 청명에게 사랑을 느껴 청명을 지키려는 환희의 분투가 시작된다. 소설 속 중간중간마다 환희가 살아온 과정들을 청명에게 이야기한다. 조선 태생의 환희의 어미를 때려적인 청나라 마술사 요물, 요물을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쳐 나와 세상을 주유하며 마술을 배운 이야기가 환희의 입으로 전해진다.

 

판 아래에 누워 벌이는 상상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오. 마술이 어찌 펼쳐질 것인가를, 열 가지 기술을 바탕에 깔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니까. 기술을 알수록 상상은 더 힘차게 나아가고, 나아갔던 상상도 기술을 통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오. (194페이지)

 

 

 

  마술은 판타지이다.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듯한 판타지이다. 우리가 갖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마치 꿈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것은 마술은 우리들을 환희의 도가니로 물들게 한다는 것. 옹주와 하찮은 마술사와도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은 마술에 판타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1,000가지의 마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했던 마술사의 열정,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아무래도 잘생긴 미남자인 유승호가 영화에 나온다는 소식을 접해서인지 그의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그 정도의 미남자 마술사라면 조선 팔도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했을 것이다. 원래 갖지 못하는 것에 더 애달파하는 게 당연지사. 환희와 청명의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를 읽는 일이 즐거웠다. 소설 속 판타지를 영화속에서 잘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오히려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적인 소설, 소설같은 영화를 표방한 무블 시리즈 답게 소설도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으니까. 아름다운 물랑루를 재현한 것만 봐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한때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데이비드 카퍼필드보다 더한 판타지를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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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주세요 - 제1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72
진희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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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즐거운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전에 읽었던 작품들은 청소년들의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우울한 이야기들, 예를들면 폭력과 따돌림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과를 주세요』는 좀더 긍정적인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한참 크는 아이들이 느끼는 성적인 고민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글이었다. 『사과를 주세요』는 푸른책들의 제1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네 편이 들어있는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표제작 「사과를 주세요」의 진희 작가 때문이었다. 일찍이 로맨스 소설을 여러 편 썼고, 동화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작가의 로맨스 소설을 꽤 여러 권 읽었기에 동화라면 모를까 청소년을 문학은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함이 일었다.

 

  우선 이 글의 표제작인 진희 작가의 「사과를 주세요」를 보자. 의지라는 여자 아이가 있다. 이름처럼 의지가 굳은 아이다. 작년 4월 우리는 고통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배에 탔던 한 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많은사람들이 카톡에 노란 리본을 한동안 달고 있을 정도로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 사건이었는데, 작가는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 의지라는 인물을 창조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나서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던 의지에게 수학선생은 노란 리본을 그만 떼라고 했고, '리본은 애도의 권리'라고 했던 의지에게 수학 선생은 '개나 소나 권리 타령'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의지는 자신에게 사과를 하라는 의미로 '사과를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학교 교문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의지의 모습을 보며, 의지를 바라보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소리없는 응원을 보며 우리의 청소년은 공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겼을 경우 쉬쉬하며 덮어버리기 일쑤 일텐데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의지의 모습이 왠지 뿌듯하게 느껴졌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시간을 들여 알아야만 한다. 고통은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사과는 시간을 들여 반복, 지속해야 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과에 저항해야 한다. (88페이지, 「사과를 주세요」중에서)

 

 김은재 작가의 「연애 세포 핵분열 중」이라는 작품은 한참 성에 대해 민감할 나이, 또한 이성에 대에 눈을 떠가는 나이의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이다. 태어나서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근복의 이야기를 통해 요즘의 청소년들의 연애에 대한 진솔하고도 유쾌한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 마음에 드는 방법들은 어떤게 있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겠지. 오늘 아침엔가 자매나 형제만 있는 사람들보다는 남매가 있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연애를 잘한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그것에 대한 반론이 방송인 김제동의 예를 들어 수많은 싱글들의 원성이 있었다. 연애는 나이가 어리나 젊으나 늙으나 영원한 화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 때문에 비올라의 음색에 반해 그가 연주하는 비올라 연주곡을 꽤 들었다. 모든 청소년들은 자신이 꿈꾸는 것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 만큼의 결과물이 보이지 않으면 고민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진정 원하는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기는 단편이 허혜란의 「우산 없이 비올라」라는 단편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비올라로 바꾸게 된 선욱은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일주일쯤 레슨을 쉬고 할머니 댁으로 오게 되었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예쁜 하이힐을 신는 할머니는 예쁘게 차려입고 마을회관에서 노래 부르시거나 춤추며 즐겁게 보내신다. 연습에 연습을 해도 선생님은 '네 소리를 내, 네 소리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연히 할머니를 따라 회관에 가게 된 선욱은 즐겁게 노래부르며 노시는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저절로 즐거워졌다. 

 

나만의 소리, 나만의 음악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음악으로 '놀게' 한다는 것을 또한 그것은 누구에게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필사적으로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3페이지, 「우산 없이 비올라」중에서)

 

  마지막 단편은 이순미의 「바다를 삼킨 플랑크톤」이다. 꼭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공부 하라거나 하게 되는데,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는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공부에는 취미없고 자신의 생각에 기발함을 불어넣어 전단지를 만드는 것에 취미가 있는 산하의 이야기다. 나도 역시 부모로서 산하가 내 아이라면 전단지 한다는데 무턱대고 찬성할 수 만은 없다. 틀에 박힌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못알아보는 사람들은 역시 어른인 것이다. 나 또한 이 어른들의 범주에 들었으니 할말은 없다.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 중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정작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많지는 않은지 뒤돌아 볼 일이다. 아이들과 선생님, 아이들과 부모, 모두 소통의 부재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는가. 상대방이 내게 진심을 털어놓는데도 자신만의 생각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소통이 될리가 없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기울일 준비를 해야하는게 아닐까. 그래야 소통도 되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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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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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연상하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밀레니엄 시리즈 자체보다는 밀레니엄 시리즈 속의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연상시키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소녀의 이름은 '루미키'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라는 이름이다. '루미키'라는 이름답게 이 소설은 「백설공주」라는 동화의 변주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화와는 전혀 다른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스노우화이트 트롤로지'의 첫번째 소설.

 

  소설속 루미키는 백설공주처럼 흑단의 머리칼을 갖고 있지도, 눈처럼 흰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갖지도 않은 소녀이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은 소녀로 엄마아빠가 계신 곳을 떠나 탐페레라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척을 지고 지내지도 않는다.

 

  탐페레라는 곳에서 한 사건이 발생한다. 흰 눈이 소리없이 내리는데 돈을 챙겨 모스크바로 떠나려는 여자가 있다. 모스크바로 가면 어린 딸 올가와 함께 행복하게 살거라는 희망을 안고 가려는데 집을 방문한 수상한 자들이 있다. 그녀는 한 방의 총성으로 흰 눈에 빨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이 학교의 불법으로 암실 문을 열고 들어와 피묻은 돈을 씻어 걸어 말린다. 빛이 없는 어두운 암실에서 위안을 찾곤하는 루미키는 암실에 걸려있는 돈다발들을 발견한다. 돈다발에서는 피냄새가 났다. 그리고 뭔가 음침하고도 위험한 냄새를 감지했다.  

 

  암실에 있던 돈을 그대로 놔두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 복도에서 배낭을 메고 가는 한 남자 아이를 만났고, 암실에 들어서자 지폐는 사라지고 없다. 카페에 따라간 루미키는 세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투카와 엘리사, 카스페르가 앉아 잇었다. 남자 아이는 교장의 아들 투카 였고 엘리사는 경찰의 아들이었다. 3만 유로라는 큰 돈, 더군다나 누군가의 피가 묻은 돈을 셋이서 나눠갖자는 말을 들었고, 전날 밤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과연 열일곱 살의 소녀 루미키가 이 사건을 해결해 나갈까? 고작 열일곱 살의 나이인데? 더군다나 루미키는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듯도 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달리기에서는 남자들도 따돌릴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통의 여학생은 아니다. 부모에게조차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소녀는 과거에 어떤 아픔을 겪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피해 탐페레까지 오게 되었을까.

 

  핀란드라는 도시를 상상해본다. 제일 따뜻한 날씨가 20도라는데, 모자를 쓰지 않으면 안되고, 부츠를 신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동상이 걸려버리는 흰 눈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 열일곱 살의 소녀 루미키는 3만 유로의 행방과 관련된 사항들을 찾는다. 조용히 살고 싶었으나 이제 조용히 살기는 글렀다.

 

  새하얀 설원과 피처럼 붉은 피가 뿌려진 배경. 북유럽의 차가운 스릴러 동화를 표방한 소설이었다. 추리소설치고 그리 두껍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고, 후속작들도 대기하고 있어 루미키의 과거의 행적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 책을 읽고 났더니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그리워졌다. 다음의 이야기를 더이상 만날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빈자리를 루미키가 채워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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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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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아무일 없는 듯 유유히 사라져 버린 사람. 당한 사람이 잃은 건 돈이나 재산 뿐만이 아니다.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 함께 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을 도둑맞은 것 같을 것이다. 오래전 우리 엄마에게 1년 가까이 언니, 동생하며 지내오다가 그토록 싫어했던 우리 아빠 마음까지 훔쳐 대출받는데 보증서게 하고 달아나 버린 사람.(그 사람은 등에 갓난 애기까지 업고 다녔었다.) 그일 때문에 엄마랑 아빠는 자주 다투었고, 엄마는 아주 오랜시간을 허탈해 했다. 나도 엄마 친구들에게 이모라고 부른 사람이 없었는데 결국 이모라고 부르게 만들고 말이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참 나빴다.

 

  이런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오르부아르』이다. '오르부아르'는 프랑스어로 '안녕' 혹은 '다음에 봐' 라는 말이다. 우리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는 말.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고 내일 또 만날 사람들에게 주로 하는 말. 55세의 나이에 늙깍이로 데뷔한 작가로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작품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전투에서부터 살아난 군인들, 전쟁후 돌아갈데가 없어 희망을 잃어버린 귀환병의 이야기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소설속에서 중요한 인물은 전쟁전 회계원으로 일했던 겁많고 소심한 남자 알베르 마야르와 어렸을때부터 남다른 재주로 그림을 그려왔던 에두아르 페리쿠르가 그들이다. 마지막 솜전투에서 구덩이에 빠져 죽을뻔한 알베르를 구해주다가 한 팔과 얼굴 턱부분을 잃은 에두아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업적에 눈이 먼 도네프라델 중위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의 업적을 부풀려 출세하고 싶은 피도눈물도 없는 남자다.  

 

 

  얼굴 반쪽이 날아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에두아르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이유 하나로 야전병원에서부터 그를 보살펴 온 알베르는 종전후에도 에두아르에게 모르핀을 제공하는 등 그를 보살핀다. 그런 모습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에두아르에게 새로운 신분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큰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에두아르의 가족은 그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고 그의 유해라도 가져가고 싶다고 해 알베르는 그에 대한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고, 전쟁으로 아들과 남편 등을 잃은 가족들은 평생을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자 정부는 전사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묘지를 만들고 그들을 안장하기에 이른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대로 대접을 받지만 정작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사정상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늘 우울해하며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던 에두아르가 갑자기 활기를 띄며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프랑스 정부에서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워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했고, 이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던 것이다. 에두아르는 몇 장의 스케치를 해 전사자 추모 기념비 모형을 그리는등 카탈로그를 제작하여 대사기극을 준비한 것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추모 기념비를 제작해 판매한다고 광고하고 그 금액 100억 프랑을 가로채 도망가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알베르도 결국에는 동의하게 되고 대국민 사기극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런 사기극을 펼치는 에두아르와 알베르를 싫어해야 함에도 싫지 않다. 오히려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오히려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이 사업을 계약한 이제는 대위가 된 도네프라델이 잘못되기를 바라게 된다. 분명 위법이지만 에두아르와 알베르가 꾸미는 사기극이 성공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런 우리가 잘못일까. 에두아르와 알베르가 뭔가로 보답을 받길 바랬다. 그게 에두아르의 아버지의 돈이든, 국가의 돈이든. 물론 선량한 일반 파리시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풍자적이며 통쾌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기분에 가슴이 마구 두근댔다. 피에르 르메트르라는 작가의 이름을 각인 시킨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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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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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것에 대한 비애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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