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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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아무일 없는 듯 유유히 사라져 버린 사람. 당한 사람이 잃은 건 돈이나 재산 뿐만이 아니다.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 함께 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을 도둑맞은 것 같을 것이다. 오래전 우리 엄마에게 1년 가까이 언니, 동생하며 지내오다가 그토록 싫어했던 우리 아빠 마음까지 훔쳐 대출받는데 보증서게 하고 달아나 버린 사람.(그 사람은 등에 갓난 애기까지 업고 다녔었다.) 그일 때문에 엄마랑 아빠는 자주 다투었고, 엄마는 아주 오랜시간을 허탈해 했다. 나도 엄마 친구들에게 이모라고 부른 사람이 없었는데 결국 이모라고 부르게 만들고 말이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참 나빴다.

 

  이런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오르부아르』이다. '오르부아르'는 프랑스어로 '안녕' 혹은 '다음에 봐' 라는 말이다. 우리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는 말.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고 내일 또 만날 사람들에게 주로 하는 말. 55세의 나이에 늙깍이로 데뷔한 작가로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작품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전투에서부터 살아난 군인들, 전쟁후 돌아갈데가 없어 희망을 잃어버린 귀환병의 이야기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소설속에서 중요한 인물은 전쟁전 회계원으로 일했던 겁많고 소심한 남자 알베르 마야르와 어렸을때부터 남다른 재주로 그림을 그려왔던 에두아르 페리쿠르가 그들이다. 마지막 솜전투에서 구덩이에 빠져 죽을뻔한 알베르를 구해주다가 한 팔과 얼굴 턱부분을 잃은 에두아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업적에 눈이 먼 도네프라델 중위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의 업적을 부풀려 출세하고 싶은 피도눈물도 없는 남자다.  

 

 

  얼굴 반쪽이 날아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에두아르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이유 하나로 야전병원에서부터 그를 보살펴 온 알베르는 종전후에도 에두아르에게 모르핀을 제공하는 등 그를 보살핀다. 그런 모습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에두아르에게 새로운 신분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큰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에두아르의 가족은 그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고 그의 유해라도 가져가고 싶다고 해 알베르는 그에 대한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전쟁의 참혹한 기억과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고, 전쟁으로 아들과 남편 등을 잃은 가족들은 평생을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자 정부는 전사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묘지를 만들고 그들을 안장하기에 이른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대로 대접을 받지만 정작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은 사정상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늘 우울해하며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던 에두아르가 갑자기 활기를 띄며 열정적으로 변해갔다. 프랑스 정부에서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워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했고, 이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던 것이다. 에두아르는 몇 장의 스케치를 해 전사자 추모 기념비 모형을 그리는등 카탈로그를 제작하여 대사기극을 준비한 것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추모 기념비를 제작해 판매한다고 광고하고 그 금액 100억 프랑을 가로채 도망가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알베르도 결국에는 동의하게 되고 대국민 사기극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런 사기극을 펼치는 에두아르와 알베르를 싫어해야 함에도 싫지 않다. 오히려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오히려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이 사업을 계약한 이제는 대위가 된 도네프라델이 잘못되기를 바라게 된다. 분명 위법이지만 에두아르와 알베르가 꾸미는 사기극이 성공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런 우리가 잘못일까. 에두아르와 알베르가 뭔가로 보답을 받길 바랬다. 그게 에두아르의 아버지의 돈이든, 국가의 돈이든. 물론 선량한 일반 파리시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풍자적이며 통쾌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기분에 가슴이 마구 두근댔다. 피에르 르메트르라는 작가의 이름을 각인 시킨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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