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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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책만 읽으며 살면 좋겠다.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 앞에서 머무르는 일마저 행복한 일상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의 일상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지.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이라는 부제가 있는 정여울의 신간 『공부할 권리』는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하는 일, 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 까지는 없다. 우리가 읽었던 책 중에서 우리 삶에 비추어 생각하면 된다. 책 속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무심코 읽어왔던 책 보다는 저자가 말하는 책 속의 책이 더 빛나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늘 환영받는 아이로 자란 사람들이 인생의 장애물 앞에서 어쩔 줄 모릅니다. 고통에 대한 예방주사가 접종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저는 인생의 맷집을 키우고 고통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동화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26페이지)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 읽기』라는 책에 수록된 「신데렐라」를 소개하며 하는 말이다. 내게 주어진 숨은 운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진짜 운명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는 것을 말했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읽었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대한 글을 읽고는 내가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책을 읽었더라도 저자가 말하는 것의 새로운 시각을 가질수 있다는 점이다. 기억나지 않는 내용과 더불어 용기에 대한 자세를 배울수 있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분노와 복수심으로 창을 들었던 아킬레우스, 자신의 믿음과 사랑하는 것을 지키위해 앞으로 나아갔던 헥토르의 용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고독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독이 뿜어내는 소리를 좀 더 잘 들을 수 있다면요. 저는 고독한 순간에 제 마음속에 가장 절실한 에너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고독을 통해 더욱 빛나는 자기 안의 영감을 찾을 수 있다면 고독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겠지요. (100페이지)

 

  카뮈의 『이방인』을 여러번 읽었지만 아직도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던 정여울의 말이 인상적이다. 뫼르소가 느꼈던 고독, 그의 고독이 절절한 슬픔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못견뎌하는 사람이 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일이라는 것. 부디,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지 말고 즐기기를.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극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역시 가슴아픈 주제였다. 위안부를 사랑했던 일본의 군의관. 전쟁이 끝난후 일본도 조선도 아닌 먼 미국 땅에서 조선의 아이를 입양해 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일이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창래의  『척하는 삶』 즉 '제스처 라이프'는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귀향」과 현재 읽고 있는  『몽화』속 내용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픈 역사 속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켰던, 침략을 당했든 개인들은 아프고 상처일 수밖에 없는 일이므로. 

 

'평생 책만 읽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한 것은 오직 책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소박한 공간뿐.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고 그저 책 읽을 자유만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들과 화해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247페이지)

 

  책을 소개하는 에세이는 꽤 여러 편 읽었지만, 인문학적 접근은 오랜만에 읽는다. 책 속의 내용과 함께 철학적 사유를 하고 삶의 가치를 나타내는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저 책을 읽는 것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며 읽는 책은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건넬 수 있고, 우리 내면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일의 중요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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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4-0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일로 들어온 한 광고가 한시간안에 천만원을 다쓸수있냐 ㅡ하는 물음을 보곤 픽 웃으며..아 물론 ㅡ무조건 가능하다 생각했어요..외출해 써야하는게 아니라면 앉아서도 바로 천만원 어치 책을 살 수있을것 같았거든요 ㅡ그이야길 딸아이와 하며 행복했었는데 ㅡㅎㅎㅎ책만 보고 살아도 될 것 같았는데 ㅡ어렵긴 하네요...한계가 오니...^^

Breeze 2016-04-08 11:38   좋아요 0 | URL
책을 천만원어치 한번에 살수 있을까요?
아마 가방같은거, 명품으로다가, 그런거 몇개 지르면
천만워, 뭐, 우습게 쓰겠지요. ㅋㅋ
 
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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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을 둘러보면 예쁜 아이들이 무척 많다.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요즘 아이들은 예쁜 것 같다. 예쁜 과일을 먹이고, 예쁜 생각을 많이 하는 엄마들 때문일까. 예쁘게 자라라는 엄마들의 염원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모가 서구식으로 변했기 때문인지도.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별상관없겠지만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편인데, 만약 엄마도 아이를 보기를 두려워할 정도로 못생겼다면. 혹은 못생겼다고 수근대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아이가 바로 자랄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데,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의 파반느』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남자의 관심과 감정을 믿을 수 없어 했던 여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겼었던 소설이었다. 성형이 발달된 요즘.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못생겼다면 성형 수술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제목처럼 소설 속 주인공 레베카는 못생긴 여자이다. 아름다운 엄마와 아빠 사이에 태어난 딸 레베카. 축복 받으며 태어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마땅할 아이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외면받는다. 엄마는 작고 어두운 방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나오지 않고, 그러한 엄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빠는 딸 레베카를 돌보지 않는다. 그나마 유모가 있어 그녀에게 사랑을 쏟는다. 갇혀 있다시피한 레베카는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아노를 친다.

 

  레베카가 피아노를 치는 일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자신이 피아노 치는 소리를 엄마가 들었으면 했고, 엄마의 관심을 받고싶었다. 자신의 존재가 여기 엄마 곁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연주하는 순간 표정을 지우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가락에 인생을 걸어야 했으므로. 

 

 

   외로운 레베카에게 자신의 곁에 있는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알베르티나 선생님이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단 하나의 친구였던 루칠라, 데 렐리스 피아노 선생님, 데 렐리스 선생님의 엄마 데 렐리스 할머니와의 소중한 시간들이 레베카를 지켜주었다.

 

  만약 자신의 가족 중에 특별한 가족력이 있다면 장차 태어날 아이에 대한 염려가 많을 것이다.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누군가도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이 있었던 듯 한데, 그런 경우 수술하면 괜찮지 않았나 싶다. 물론 레베카의 경우는 장애를 가진 게 하나도 없었고, 단지 못생겼을 뿐이었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모든 사람이 수근거릴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는 않지만,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왕이면 예쁘게 태어나면 더 좋겠지만, 못생겼어도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여러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고 본다. 레베카가 피아노로 자신감을 가졌듯, 우리도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고. 외롭지도 않다고. 자신의 인생일 뿐이라고 말하는 레베카의 말이 사뭇 다가온다. 상처나 고통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각자의 고통과 상처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레베카처럼.

 

난 불행하지 않아.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지. 나름 잘 지내. 그리고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  (중략)  외롭다고 할 수는 없지. 그냥 그게 내 인생일 뿐이야. (2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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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aj 2016-04-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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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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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보며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볕에 몸을 말고 있는 고양이를 그려본다. 하얀 솜털처럼 보송보송은 털 사이로 나른하면서도 도도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암고양이 말이다.

 

  고양이에 대한 추억이라고는, 어렸을적 고양이를 싫어했던 여동생에게 고양이가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새끼쥐 몇마리를 여동생의 신발 속에 넣어두었던 일들이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해를 가하는 것을 보고, 고양이라는 동물은 참 영악하다고 느꼈던 기억밖에 없는데, 이와는 달리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신랑이 어렸을때 키웠던 고양이는 학교 앞까지 따라다녔고, 학교에서 돌아올때도 대문앞에서 기다렸다는 말을 들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고양이는 신랑이 키웠던 고양이처럼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어렸을 적의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에 대한 추억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함께 짧은 내용의 에세이를 펴냈으니 말이다.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가 햇살 쏟아지는 툇마루에서 낮잠을 잘때 그 옆에서 벌러덩 누워 뒹구는 걸 좋아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나는 고양이의 가르릉가르릉 소리가 무섭게 들리더만, 하루키는 그 소리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고양이의 가르릉거리는 소리마저 좋았나 보다. 고양이와의 특별한 시간들을 누렸고, 그 시간들을 추억하는 하루키의 글에서 언뜻 그리움을 엿보았다.

 

 

 

  고양이는 참으로 영특한 동물이란 사실이다. 하루키의 고양이도 전에 키우던 주인집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물론 여동생의 일 때문에도 그렇지만 말이다. 언젠가 길고양이가 자꾸 시골의 시부모님댁으로 찾아오자 먹이를 챙겨 주셨던듯 한데, 몇 번의 새끼를 낳았었나 보다. 어느 날은 한참 떨어진 곳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 고양이를 놓아두고 오셨나 보다. 그런데 한 달이 넘은 어느 날 그 고양이에 집을 찾아왔었다고 했다. 사람처럼 물어물어 찾아오지는 않았을텐데,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 왔을까. 지금은 시골집을 정리하고 도시인 우리집 부근으로 이사오셨는데, 그 고양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빈 집을 지키고 있을까? 주인이 어디갔나 하고 기다릴까? 문득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진다.

 

  하루키의 커다란 암고양이와 뒹구는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은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의 하루키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다. 짧고 그림이 가득한 어쩌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그림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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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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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은 건 고작 『익사』뿐이다. 책 한 권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몇 편의 책을 읽어봐야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는게 아닐까. 오에 겐자부로하면 일본의 작가 중 노벨문학상 두번째 수상 작가라고 알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차에 작가가 직접 골라 엮은 총 23편이 자선 단편 선집을 읽는 일은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그의 단편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초기 단편과 중기 단편 그리고 후기 단편으로 묶여져 있으며 작가의 등단작인 「기묘한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자선 단편선집의 표제작인 「사육」을 비롯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연작과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연작 등이 실려있다.

 

  전체적인 작품의 느낌을 보자면, 꽉 막힌 공간에서의 감금과 현실과의 순응에 대한 글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장애자인 아들에 대한 글이 꽤 많은데,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들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평생의 부담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부모인 자신이 죽을때까지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죽음 이후의 자식에 대한 삶을 걱정하다보면 앞이 깜깜해질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일까, 연작 「조용한 생활」에서 딸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는 가슴이 뭉클하게 만든다. 장애인인 오빠 '이요'를 데리고 결혼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방 두 개, 거실과 부엌이 딸린 아파트를 확보할 수 있는 남자를 고르겠다고 하는 딸. 거기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장애인인 오빠를 생각하는 여동생의 애틋함 혹은 지체장애자의 성적인 '폭발'에 대한 염려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 남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는 주로 놀이터 부근에서 어정거렸다. 사춘기 아이고 눈빛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서 당시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요주의 인물이기도 했다. 어느 책에선가도, 장애인들이 성적으로 더 예민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르는 오빠에 대한 염려로 오빠가 걷던 길을 따라 걸었던 여동생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사육」이라는 작품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의 어느 시골 마을의 소년. 도망가던 적의 비행기가 숲에 떨어져 살아남은 검둥이 포로가 한 명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검둥이 포로를 데리고 와 창고에 가둬두었고, 마을 소년들은 검둥이가 신기해 창문으로 엿보고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와의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산골 소년들은 처음에 검둥이 포로를 보고는 진귀한 가축 혹은 머리가 좋은 동물로 생각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였다. 산골 소년들의 순수함. 결국엔 생각의 차이로 파멸에 이르고 말지만, 아마 소년의 손에 새겨진 흉터처럼 그에 대한 기억들이 평생을 가지 않을까.

 

'레인트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밤에 소나기가 내리면 다음 날은 한낮이 지날 때까지 그 우거진 잎사귀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기 때문이에요. 다른 나무들은 비가 와도 금방 말라 버리는데 이 나무는 잔뜩 우거진 손가락만 한 잎사귀에 물방울을 저장해 두는 거죠. 정말 슬기로운 나무 아닌가요? (307페이지,  「슬기로운 '레인트리'」중에서)

 

 

  '레인트리'라는 나무가 있던가. 아무래도 '레인트리'를 주제로 한 연작때문에 '레인트리'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검색해 보았지만 자세히 나오지 않고, 미국 자귀나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알고 있는 자귀나무와 책속에서 언급하는 '레인트리'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것도 같았다. '레인트리'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모호하고 비밀스럽게 그리고 자주 언급되는데, 후기 아주 나중의 작품에서야 그가 처음 '레인트리'라는 나무를 보았던 장소와 느낌에 대해 나온다. 자신의 기억속의 장소, 그곳에 있던 나무. 그 곳의 기억들이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것 같았다.

 

  작가는 단편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 아무튼 그 오랜만의 단편의 주제는 '레인트리'였다.' 324페이지) 라고. 비탄을 뜻하는 'grief'와 대학시절 친구의 죽음, 그로 인한 비탄. 그리고 어느 음악가가 만든 '레인트리'라는 곡.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이 급해서 한 작가에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못했다. 중년이 지나고 나니 내게 남겨진 노년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수가 대충 보였다. (427페이지)

 

  오에 겐자부로는 맬컴 라우리의 책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책을 읽으며 작가들의 작품에서 촉발된 메타포를 가지고 단편들을 썼다고 했다. 아들의 눈에 드러났던 참으로 황량하고 서늘했던 비탄의 덩어리들을 보고 아들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도 블레이크의 시가 매개가 되었다고 했다. 그가 인용한 블레이크의 시는, '오오 그분은 우리의 비탄grief을 부숴 버리는 그 기쁨을 내어 주신다 우리의 비탄이 사라지기까지 우리 곁에 앉아 탄식하신다'(453페이지,  「순수의 노래, 경험의 노래」중에서) 였다. 장애를 가진 큰 아들과의 공생과 블레이크의 시에서 환기된 영감을 하나로 엮어 일련의 단편집을 완성했다고 표현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서일까. 장애를 가진 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이 고르란히 드러난 글에서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꼈다. 장애를 가진 아들, 커가는 아들에 대한 아내의 두려움과 혹은 염려.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깨우침.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올곶은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 인간에 대해 나의 삶과 연관 지어 정의집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다. (512페이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중에서)

 

  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싶으나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에게 이 단편집을 꼭 권하고 싶다는 번역자의 말처럼,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대해서 좀더 다가선 느낌이다. 그가 반전반핵에 앞장서 왔고, 개인적인 삶에서 오는 깊은 성찰을 만날 수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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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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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이탓일까.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그때는 그 음식이 지겨워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엄마의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울하고 슬플때 엄마가 해준 음식을 간절하게 먹고 싶을때가 있다. 그 전에는 왜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까. 엄마의 음식이 생각나는 날이면, 그 음식을 기억하며 만들어본다.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먹을게 많아 제대로 된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수도 있다.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가며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거나 사서 가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그 음식들을 우리집에서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김치를 잘 담그셨다. 어디 김치 뿐일까. 엄마가 해준 아귀찜, 홍어찜, 명절 음식인 두부와 무를 썰어 쇠고기로 국물을 낸 탕국(우리는 탕수국이라고 불렀다), 평소에 해주시던 물이 잘박하게 들어있이 시원한 맛이 일품인 콩나물. 오래전엔 너무 짜서 먹지 않았던 간장 게장과 빨갛게 고추가루로 맛을 낸 꽃게장. 생각해보니 엄마의 음식이 많았구나. 다른 건 대충할 줄 아는데 간장 게장은 아직까지도 엄마의 맛을 내지 못하겠다. 엄마만의 비법이 있었을까. 또한 딸기를 뭉근하게 끓여낸 딸기 고추장까지.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었으나 딸기 고추장은 아직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다.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의 음식이 있을 것이다. 기억속의 음식을 기억하는 일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과도 같다. 그때 먹었던 음식,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애틋하게 기억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못했었지. 이렇게까지 간절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황석영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 나도 이 책을 읽는데 오래전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다정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들은 그리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 생소한 음식과 함께 황석영의 그리움의 시간들을 함께 했다.

 

 

 

장아찌를 떠올리면 밥 한 덩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고는 굶주림 속에서 살아나온 사내의 등덜미에 흐트러진 하얀 비듬 생각이 나고, 그가 남긴 딸자식의 눈빛이 생각난다. (79페이지)

 

  작가는 장아찌의 맛을 떠올리며 추억의 시간을 말했다. 깻잎이며, 취, 머윗잎, 겨울에 김장하고 남은 작은 무, 마늘, 양파 등에 간장 졸인 물을 부어 만든 장아찌는 어쩌면 엄마의 맛이다. 엄마의 맛을 따라가고자 나이가 들면서 만든 음식들이다. 작가의 말처럼, 짭짤한 장아찌를 먹고 났을 때의 개운함과 입맛이 돋우어진 느낌들. 아직도 냉장고에 켜켜이 쌓여진 장아찌에 밥 한 그룻이 생각날 정도 였다.

 

  북한 출신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들고 싶었다던 노티라는 음식과 먹을 것 부족하던 피난 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장떡의 추억들은 지나간 우리의 고통의 시간을 갖게 했다. 이 때는 모든 것이 부족할 때였구나. 먹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죽느냐 사느냐의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건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벗을 떠나보낸 뒤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고, 마지막 여행길에 그가 먹고 싶었다던 아욱된장국이 올라올 때면 어쩐지 수저가 무겁다고 말했던 마지막 문장에 그만 코끝이 시큰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 책을 읽을 때 배가 고픈 상태였다. 평소라면 독서하며 보냈을 저녁 시간에 이 책 속의 추억의 음식으로 인해 배에서는 꼬르륵소리가 요동을 쳤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럼에도 추억의 음식을 먹지 않아서 일까, 작가의 말처럼 개량화된 음식을 먹어서 일까, 속이 헛헛했다.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못내 그리웠다. 막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장아찌 얹어 먹고 싶은 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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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3-24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어떤 비싸고 보기 좋은 음식보다 엄마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 결핍에서 오는 간절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어요.

Breeze 2016-03-2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