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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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이탓일까.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그때는 그 음식이 지겨워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엄마의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울하고 슬플때 엄마가 해준 음식을 간절하게 먹고 싶을때가 있다. 그 전에는 왜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까. 엄마의 음식이 생각나는 날이면, 그 음식을 기억하며 만들어본다.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먹을게 많아 제대로 된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수도 있다.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가며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거나 사서 가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그 음식들을 우리집에서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김치를 잘 담그셨다. 어디 김치 뿐일까. 엄마가 해준 아귀찜, 홍어찜, 명절 음식인 두부와 무를 썰어 쇠고기로 국물을 낸 탕국(우리는 탕수국이라고 불렀다), 평소에 해주시던 물이 잘박하게 들어있이 시원한 맛이 일품인 콩나물. 오래전엔 너무 짜서 먹지 않았던 간장 게장과 빨갛게 고추가루로 맛을 낸 꽃게장. 생각해보니 엄마의 음식이 많았구나. 다른 건 대충할 줄 아는데 간장 게장은 아직까지도 엄마의 맛을 내지 못하겠다. 엄마만의 비법이 있었을까. 또한 딸기를 뭉근하게 끓여낸 딸기 고추장까지.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었으나 딸기 고추장은 아직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다.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의 음식이 있을 것이다. 기억속의 음식을 기억하는 일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과도 같다. 그때 먹었던 음식,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애틋하게 기억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못했었지. 이렇게까지 간절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황석영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 나도 이 책을 읽는데 오래전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다정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들은 그리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 생소한 음식과 함께 황석영의 그리움의 시간들을 함께 했다.

 

 

 

장아찌를 떠올리면 밥 한 덩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고는 굶주림 속에서 살아나온 사내의 등덜미에 흐트러진 하얀 비듬 생각이 나고, 그가 남긴 딸자식의 눈빛이 생각난다. (79페이지)

 

  작가는 장아찌의 맛을 떠올리며 추억의 시간을 말했다. 깻잎이며, 취, 머윗잎, 겨울에 김장하고 남은 작은 무, 마늘, 양파 등에 간장 졸인 물을 부어 만든 장아찌는 어쩌면 엄마의 맛이다. 엄마의 맛을 따라가고자 나이가 들면서 만든 음식들이다. 작가의 말처럼, 짭짤한 장아찌를 먹고 났을 때의 개운함과 입맛이 돋우어진 느낌들. 아직도 냉장고에 켜켜이 쌓여진 장아찌에 밥 한 그룻이 생각날 정도 였다.

 

  북한 출신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들고 싶었다던 노티라는 음식과 먹을 것 부족하던 피난 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장떡의 추억들은 지나간 우리의 고통의 시간을 갖게 했다. 이 때는 모든 것이 부족할 때였구나. 먹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죽느냐 사느냐의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건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벗을 떠나보낸 뒤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고, 마지막 여행길에 그가 먹고 싶었다던 아욱된장국이 올라올 때면 어쩐지 수저가 무겁다고 말했던 마지막 문장에 그만 코끝이 시큰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 책을 읽을 때 배가 고픈 상태였다. 평소라면 독서하며 보냈을 저녁 시간에 이 책 속의 추억의 음식으로 인해 배에서는 꼬르륵소리가 요동을 쳤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럼에도 추억의 음식을 먹지 않아서 일까, 작가의 말처럼 개량화된 음식을 먹어서 일까, 속이 헛헛했다.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못내 그리웠다. 막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장아찌 얹어 먹고 싶은 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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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6-03-24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어떤 비싸고 보기 좋은 음식보다 엄마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 결핍에서 오는 간절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어요.

Breeze 2016-03-26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