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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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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은 건 고작 『익사』뿐이다. 책 한 권을 읽고 작가에 대해 안다고 하기는 어렵다. 몇 편의 책을 읽어봐야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는게 아닐까. 오에 겐자부로하면 일본의 작가 중 노벨문학상 두번째 수상 작가라고 알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차에 작가가 직접 골라 엮은 총 23편이 자선 단편 선집을 읽는 일은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그의 단편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초기 단편과 중기 단편 그리고 후기 단편으로 묶여져 있으며 작가의 등단작인 「기묘한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자선 단편선집의 표제작인 「사육」을 비롯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 연작과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연작 등이 실려있다.

 

  전체적인 작품의 느낌을 보자면, 꽉 막힌 공간에서의 감금과 현실과의 순응에 대한 글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장애자인 아들에 대한 글이 꽤 많은데,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들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평생의 부담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부모인 자신이 죽을때까지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죽음 이후의 자식에 대한 삶을 걱정하다보면 앞이 깜깜해질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일까, 연작 「조용한 생활」에서 딸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는 가슴이 뭉클하게 만든다. 장애인인 오빠 '이요'를 데리고 결혼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방 두 개, 거실과 부엌이 딸린 아파트를 확보할 수 있는 남자를 고르겠다고 하는 딸. 거기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장애인인 오빠를 생각하는 여동생의 애틋함 혹은 지체장애자의 성적인 '폭발'에 대한 염려를 볼 수 있었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 남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는 주로 놀이터 부근에서 어정거렸다. 사춘기 아이고 눈빛도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서 당시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요주의 인물이기도 했다. 어느 책에선가도, 장애인들이 성적으로 더 예민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우리의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르는 오빠에 대한 염려로 오빠가 걷던 길을 따라 걸었던 여동생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사육」이라는 작품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의 어느 시골 마을의 소년. 도망가던 적의 비행기가 숲에 떨어져 살아남은 검둥이 포로가 한 명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검둥이 포로를 데리고 와 창고에 가둬두었고, 마을 소년들은 검둥이가 신기해 창문으로 엿보고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그와의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산골 소년들은 처음에 검둥이 포로를 보고는 진귀한 가축 혹은 머리가 좋은 동물로 생각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였다. 산골 소년들의 순수함. 결국엔 생각의 차이로 파멸에 이르고 말지만, 아마 소년의 손에 새겨진 흉터처럼 그에 대한 기억들이 평생을 가지 않을까.

 

'레인트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밤에 소나기가 내리면 다음 날은 한낮이 지날 때까지 그 우거진 잎사귀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기 때문이에요. 다른 나무들은 비가 와도 금방 말라 버리는데 이 나무는 잔뜩 우거진 손가락만 한 잎사귀에 물방울을 저장해 두는 거죠. 정말 슬기로운 나무 아닌가요? (307페이지,  「슬기로운 '레인트리'」중에서)

 

 

  '레인트리'라는 나무가 있던가. 아무래도 '레인트리'를 주제로 한 연작때문에 '레인트리'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검색해 보았지만 자세히 나오지 않고, 미국 자귀나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알고 있는 자귀나무와 책속에서 언급하는 '레인트리'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것도 같았다. '레인트리'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모호하고 비밀스럽게 그리고 자주 언급되는데, 후기 아주 나중의 작품에서야 그가 처음 '레인트리'라는 나무를 보았던 장소와 느낌에 대해 나온다. 자신의 기억속의 장소, 그곳에 있던 나무. 그 곳의 기억들이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것 같았다.

 

  작가는 단편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 아무튼 그 오랜만의 단편의 주제는 '레인트리'였다.' 324페이지) 라고. 비탄을 뜻하는 'grief'와 대학시절 친구의 죽음, 그로 인한 비탄. 그리고 어느 음악가가 만든 '레인트리'라는 곡.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이 급해서 한 작가에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못했다. 중년이 지나고 나니 내게 남겨진 노년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수가 대충 보였다. (427페이지)

 

  오에 겐자부로는 맬컴 라우리의 책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책을 읽으며 작가들의 작품에서 촉발된 메타포를 가지고 단편들을 썼다고 했다. 아들의 눈에 드러났던 참으로 황량하고 서늘했던 비탄의 덩어리들을 보고 아들과 화해할 수 있었던 것도 블레이크의 시가 매개가 되었다고 했다. 그가 인용한 블레이크의 시는, '오오 그분은 우리의 비탄grief을 부숴 버리는 그 기쁨을 내어 주신다 우리의 비탄이 사라지기까지 우리 곁에 앉아 탄식하신다'(453페이지,  「순수의 노래, 경험의 노래」중에서) 였다. 장애를 가진 큰 아들과의 공생과 블레이크의 시에서 환기된 영감을 하나로 엮어 일련의 단편집을 완성했다고 표현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서일까. 장애를 가진 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이 고르란히 드러난 글에서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꼈다. 장애를 가진 아들, 커가는 아들에 대한 아내의 두려움과 혹은 염려.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깨우침.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올곶은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 인간에 대해 나의 삶과 연관 지어 정의집을 만들어 보고 싶기도 했다. (512페이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중에서)

 

  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싶으나 어디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에게 이 단편집을 꼭 권하고 싶다는 번역자의 말처럼,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에 대해서 좀더 다가선 느낌이다. 그가 반전반핵에 앞장서 왔고, 개인적인 삶에서 오는 깊은 성찰을 만날 수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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