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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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자!

이건 아주 좋아요. 발표할 수 있을 거예요. 잘 들어요. 가난과 학대를 결합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쫓아다닐 거예요. '학대'라니, 정말 바보 같은 단어 아닌가요. 아주 상투적이고 바보 같은 단어예요. 사람들은 학대 없는 가난도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절대 아무 반응도 하지 말아요. 자기 글을 절대 방어하지 말아요.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건 당신도 알 거예요. 이건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건 그의 곁을 지켰던 한 아내의 이야기예요. 그 세대에 속한 아내들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그녀가 딸의 병실에 찾아와 모두의 결혼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맺었다는 이야기들을 강박적으로 하는 거예요.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요.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그녀 자신도 몰라요. 이건 딸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예요. 불완전한 사랑이긴 하지만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누군가를 보호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 말을 떠올려요. 지금 나는 잘못하고 있는 거야. 124쪽

이것은 한 작가의 강의에서 루시 바턴(화자)이 쓴 글에 대해 받은 평가이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의 일부 대신 그녀는 "엄마가 나를 보러 병원에 왔을 때의 장면을 스케치한 원고"(123쪽)를 꺼내놨고, 작가의 응원에 힘입어 이 글을 발표한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글이 있는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얼핏 보면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마주하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가족들과 함께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다.

병원에 입원한 루시 바턴을 간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엄마가 찾아왔다. 남편의 부탁드로 엄마는 망설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던 것이다. 달리 할 것이 없는 병실에서, 며칠동안 엄마와 루시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68~69쪽

전쟁 참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루시 바턴을 학대했던 아버지, 여자 속옷을 걸치고 온동네를 뛰어다녔던 오빠, 추운 집이 싫어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따뜻한 학교에 남아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던 루시. 루시 뿐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지긋지긋했을 것 같은 그곳. 다행히 루시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한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다른 지역의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 이후로 루시는 더이상 가족을 만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족들 또한 루시를 찾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된 그녀가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담임선생님은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게 책을 주었는데, 그중에는 어른들이 읽는 책도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학교에서 숙제를 했고, 숙제를 마치면 책을 읽었다. 그 책들 덕에 몇 가지 얻은 것이 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33~34쪽

우리가 일련의 일들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세세하게 기억하거나 떠올리는 것조차 싫어서 잊어버리려고 애쓰거나. 루시의 경우엔 후자였다. 처음엔 어린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들이 싫었다. 그 이야기들을 글로 쓰기 시작한 것도 차마 말로 쏟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행히 한 작가의 응원으로 그 글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라의 이야기이자 내 대학 룸메이트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엄마. 엄마!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216쪽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된 소설이었다. 뭐라고 특정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소설처럼 보였는데, 읽어보니 정말 그랬다. 게다가 섬세한 표현들이 종종 띄어서 좋았다. 몇 권을 더 읽어보면 그녀만의 매력을 특징지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지가 내게는 흥미롭다.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11쪽

나중에, 내 첫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어느 의사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내가 만나본 의사 중에서 가장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종이에 그때 그 수강생이 뉴햄프셔 출신의 재니 탬플턴이라는 사람에 대해 말했던 것을 썼다. 내 결혼생활에서 알게 된 것을 썼다. 내가 말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썼다. 그녀는 그걸 전부 읽은 뒤 말했다. 고마워요, 루시. 괜찮을 거예요. 187쪽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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