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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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랑일까? - 쿤데라가 준비한 독자와의 이별

『이별의 왈츠』는 온천이 유명한 체코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5일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어 나무들이 노란색, 붉은색, 갈색으로 물들고 있던 어느 월요일(첫째 날), 그것도 일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소도시에서 불임 치료를 위해 온천장에 온 부인들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미혼 간호사 루제나'는 얼마 전 하룻밤을 보낸 트럼펫 주자 클리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리마는 루제나의 비장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클리마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바람끼가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알 것이다.

유명 트럼펫 주자였던 클리마에게는 전직 가수이자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카밀라'가 있다. 그는 비록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아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문제의 그날밤, 두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 준 베르틀레프와의 대화인데, 과연 누가 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이 사실을 이해 못 해요. 그 누구보다 제 아내는 더욱 이해 못 하죠. 그녀는 위대한 사랑이 우리가 바람피우는 걸 포기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매순간 뭔가가 저를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도록 만들어요. 그러나 그 여자를 소유하는 순간, 마치 다시 아내 카밀라 곁으로 저를 되던져 버리는 어떤 강력한 반동에 실린 것처럼 그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되죠. 그래서 제가 다른 여자들을 찾는다면, 그건 단지 매번 새로 부정을 저지를 때마다 더욱더 사랑하게 되는 제 아내에게로 저를 이끌어 주는 이 반동과 약동, 그리고 (다정함과 욕망, 겸손에 가득 찬) 이 찬란한 비상 때문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니까 루제나 간호사는 당신에게 단지 아내에 대한 당신 사랑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극도로 기분 좋은 확인이죠. 왜냐하면 루제나 간호사는 처음 볼 땐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그리고 그 매력이 두 시간 후에는 완전히 다 사라진다는 것 또한 아주 유리하죠."

"(…) 당신 부인이 당신에게 전부라는 사실은 바로 다른 모든 여자들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고, 달리 말하면 당신에겐 창녀들이란 거죠. 그런데 그건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심한 모독이고 크나큰 멸시인 겁니다. 이봐요, 친구, 그런 사랑은 일종의 이단이에요." 50~51쪽

둘째 날(화요일), 클리마는 루제나의 사랑 혹은 감정에 호소하며 아이를 단념시키려고 소도시로 간다. 클리마가 그녀를 사랑하니까, 단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아이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루제나는 아이가 자신에게 무기가 되어줄거라고 믿고 있다. 그 예로, 자신을 피하기만 하던 클리마가 아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유명한 트럼펫 주자가 수도에서 그녀를 만나러 왔으며, 멋진 자동차로 그녀와 드라이브했고 또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임신과 이 갑작스러운 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 의심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 힘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임신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92쪽

그녀는 자기 배 속에 든 것을 아주 강렬하게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야말로 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녀를 변모시켰으며 격상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이 개 잡는 미치광이들과 구별 지어 줬다. 그녀는 자신에겐 포기할 권리가 없노라고, 자신에겐 타협할 권리가 없노라고 생각했다. 그녀 배 속에 유일한 희망이 있기에, 미래로 가는 유일한 입장권이 있기에 말이다. 145쪽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클리마는 온천장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떻게 보면 원인 장소 제공자였던)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 씨'와 그녀의 상관인 '슈크레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베르틀레프 씨는 클리마의 생각(사랑의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를 돕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구니까.)

당시 이 나라에선 쉽게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마침 슈크레타 의사가 낙태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 소속이었다. 그러면서 클리마에게 협연을 제안한다. 자신이 드럼을 칠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같이 연주할 사람들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다고. 클리마는 시간이 부족했지만(슈크레타가 제안한 날은 목요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협연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슈크레타 의사에게 낙태 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있었고, 클리마에게도 일종의 알리바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요일(셋째 날) 아침, 슈크레타의 친구인 야쿠프가 그를 찾아온다. 야쿠프는 곧 이 나라를 떠날 예정이었는데, 예전에 슈크레타에게서 받은 파란색 알약(독약)을 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냥 버려도 될텐데, 굳이 그에게 돌려주려고 온 것은 아마 핑계였으리라. 이 온천장에는 야쿠프가 후견인으로 돌봐주고 있는 소녀(올가)가 있었는데, 그는 올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올가는 처형당한 친구의 딸로, 야쿠프는 아버지처럼 그녀를 후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야쿠프는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감옥에 다녀오고 정치적 탄압을 당했다. 복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올가를 후원해주고 있다. 아마도 (올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관대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올가의 아버지 때문에 탄압 당했더라도 이렇게 돌봐주는 아량을 지녔다고. 그는 자신이 항상 품 안에 지니고 다녔던 연한 파란색 알약을 올가에게 보여주며 그 약의 사연을 들려준다.

"십오 년도 더 되었지. 이 약을 지닌 지. 감옥에 갔다 온 이후,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어. 적어도 하나의 확신이 필요하다는 거야. 자신의 죽음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고, 또 그 방법과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야. 그런 확신이 있으면 많은 일들을 견뎌 낼 수 있지. 언제든지 원할 때 최악의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거지. (…) 이 나라에선 이런 것들을 언제 필요로 하게 될지 절대로 몰라. 그리고 그건 내게 원칙의 문제야. 모든 인간은 성년이 되는 그날 독약을 받아야 한다고 봐. 그걸 위해 엄숙한 예식도 거행되어야 하고. 자살을 고취하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큰 확신과 평온을 누리며 살기 위해 말이야. 자신의 삶과 죽음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걸 알면서 살기 위해서지. (…) 슈크레타 의사는 실험실에서 생화학자로 일을 시작했지.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했지만 그는 독약을 주지 않는 게 자신의 도의적 의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슈크레타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알약을 직접 만들어 줬어. (…) 무엇보다 그가 나를 이해했기 때문일 거야. 내가 자살극이라도 벌이며 혼자서 만족스러워하는 히스테리 환자가 아닌 걸 그는 알고 있었어.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이해했던 거야. 오늘 나는 그에게 이 약을 돌려줄 거야. 더 이상 필요치 않을 테니까." 135~136쪽

한편, 루제나의 아버지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공원을 뛰어다니는 개들을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포획하고 있다. 마침 개 한 마리가 위험에 처한 것을 목격한 야쿠프는 그 개를 안고 온천장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때 루제나가 야쿠프를 막는다. 온천장은 온천 요양객을 위한 호텔이지, 개를 위한 곳이 아니라며. 하지만 남자의 완력을 어떻게 루제나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멍청이들을 생산해 낸다는 거야. 그게 내 전공이거든. 바보스러울수록 더 자식을 원해. 완벽한 인간들은 기껏해야 자식을 하나 낳고, 자네처럼 가장 나은 인간들은 자식을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하지. 정말 엉망이야. 나는 말이야, 인간이 이방인들 사이에 태어나지 않고 형제들 사이에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시간을 보낸다네." 183쪽

불임 치료 전문의사로 이름난 슈크레타에게는 계획이 있다. 그는 자신이 치료해 준 미국인 사업가 베르틀레프의 양자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2년 전에 베르틀레프의 부인이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심지어 그의 양자가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기도 하지만, 슈크레타는 그의 양자가 되기 위해 2년 동안 끊임없이 암시를 해왔다. (하지만 베르틀레프는 조금 둔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슈크레타의 불임 치료 비법을 야쿠프에게 들려준다. 심지어 이 비법은 베르틀레프에게도 통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많은 아이들이 형제가 될 것이다.

"내 계획을 자네에게 말해 줄게. 시험관 안에 든 게 바로 내 정액이야. (…) 그 방법으로 난 벌써 상당히 많은 여성들의 불임을 치료했어. 여성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게 상당 부분 단지 남편 때문이라는 걸 기억해 두라고. 나는 전국에서 많은 환자들을 받고, 사 년 전부터 이 도시 진료소에서 산부인과 검진 책임자로 일하지. 시험관에 주사기를 갖다 댄 다음 진찰받는 여성에게 번식력이 왕성한 액체를 주입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야."

"아이를 몇 몇이나 가졌지?"

"수년 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정확한 계산은 못 해. 내가 아버지인지 언제나 확신할 수는 없거든. 내 환자들이 자기네들 남편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말하자면 내게 부정한 짓을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내 치료가 성공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이곳에 사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더 확실하지."

(…)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자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거야……."

"모두가 서로 형제야." 185~186쪽

넷째 날, 드디어 콘서트가 열리는 목요일이다. 카밀라는 남편이 소도시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가 없었고(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몰라야 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 그곳에 갔다가 콘서트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그를 잃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결국 그를 잃을지도 몰랐다!" (192쪽) 그러나 카밀라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만약에 진짜라면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야쿠프는 루제나가 깜박하고 두고 간 약통을 발견한다. 그 약통에는 야쿠프가 늘 가지고 다니는 알약과 비슷하게 생긴 진정제가 들어 있었고,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다.

야쿠프는 "바로 오늘, 연한 파란색 알약이 든 약통이 테이블 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222쪽) 우연한 일이 아니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연한 파란색 알약의 필요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내게 말하려는 건가? 아니면 독약에 대한 이런 암시를 통해 나에 대한 꺼지지 않는 원한을 표현하려는 건가?"(223쪽)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펼쳐 보았다. 자기 알약을 살펴보니, 그녀가 잊고 간 약통 속 알약보다 조금 더 진해 보였다. 그는 유리 약통을 열고 한 알을 손바닥 위에 떨어뜨렸다. 그랬다. 그의 것은 약간 더 짙었고 좀 더 작았다. 그는 약통에 두 알약을 같이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 알약들을 살펴보니, 얼핏 본다면 두 알약의 차이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제일 위에, 아마도 가장 사소한 장애를 치료하는 데 쓰는 아무 위험도 없는 알약 위에, 가면을 쓴 죽음이 놓여 있었다. 223쪽

그때 루제나가 돌아와 야쿠프가 들고 있는 자신의 약통을 발견한다. 그녀는 "당신에게 부탁이 있는데, 약 한 알만 주세요."(224쪽)라고 말하는 야쿠프를 뿌리치고 약통을 가져가 버린다.

그때부터 야쿠프는 루제나가 가져가버린 독약 생각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루제나가 지금 당장 그 독약을 먹을 수도 있는데, 마음 속으로 변명만 떠올리며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루제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약 한 알만 달라는 그의 부탁을 뿌리친 것도 루제나가 아닌가. 루제나의 행적을 (소극적으로) 찾아보기도 했으니, 이제 야쿠프도 더이상 취할 조치가 없는게 아닌가.

그때 그는 자기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준 건 우연이 아니라(즉 의식이 마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수년 전부터 기회를 엿보던 오랜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강해 결국은 그런 기회를 만들고야 만 그런 욕망 말이다. 242쪽

소도시에 도착한 카밀라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콘서트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다. 카밀라는 무대 아래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콘서트가 끝나면 클리마와 만나기로 약속한 루제나 역시 카밀라와 같은 공간에서 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바로 그때 베르틀레프가 나타나 루제나를 데리고 나간다. 루제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간 베르틀레프는 뜬금없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마치 성자처럼, 아무 조건도 없이 루제나에게 사랑을 베풀려고 한다. (여기서는 '사랑을 베풀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하거나 주는게 아니라.) 루제나가 보이지 않자 클리마는 불안해 하고, 카밀라는 그런 남편을 의심스런 눈빛으로 쫓는다.

한편 올가는 "야쿠프에게서 아버지 역할이라는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281쪽) 야쿠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이 여자아이와는 자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호의를 베풀기를 바랐지만, 그 호의는 관능적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호의란 순결하고 사심 없고 모든 쾌락과는 무관하길 원했기 때문에, 그런 욕망을 완전히 없앴던 것이다." (289쪽) 야쿠프는 올가를 보살펴 주면서 보통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관대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세를 장착한 캐릭터) 그런데 내일이면 이 나라를 떠나서 다시는 올가를 볼 일도 없으니 하룻밤 정도는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카밀라에게 준 약통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랬을지도.)

"자네는 자네가 관대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네 속에 있는 당연한 증오와 혐오를 억눌렀던 거야." _슈크레타 의사 344쪽

드디어 마지막 다섯째 날, 루제나는 "클리마 없이, 프란티셰크 없이도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과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너무나 빨리 늙게 하는 이 마술에 걸린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현명하고 성숙한 한 남자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304쪽) "베르틀레프 씨는 매력적인 남자일뿐 아니라 무엇보다 수많은 달러와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여권을 가진 미국인 사업가"(369쪽)인데다가 심지어 아이가 없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날 아침, 간호사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야쿠프는 안도한다. 하루 세 번 복용하라고 적혀 있었으니, 적어도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야쿠프의 알약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면 슈크레타가 준 것은 가짜 독약이었나보다. 그는 안도하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카밀라를 마주치게 된다. 야쿠프는 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기 삶에선 의미 없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듯이.) 오늘 이 나라를 떠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가 마주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카밀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야쿠프는 마음 속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고백한다. "마음에 드는 건 바로 당신입니다. 너무나도 당신이 좋군요. 당신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우십니다." (316쪽)

야쿠프의 난데없는 고백을 들은 카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느껴졌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클리마에게 묶어 둔 게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단지 그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일까?" (361쪽) "인생의 행로 저 앞쪽 어딘가에 트럼펫 주자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아무런 고통도 두려움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362쪽)

한편, 아침부터 찾아와 자신의 아이라며 소리치는 프란티셰크 때문에 흥분한 루제나는 약통에서 한 알을 꺼내 삼켰고, 격렬한 통증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농담』에서 헬레나가 죽으려고 먹었던 약이 복통을 불러오는 설사약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설사약이 아닐까 했는데 진짜 독약이었다.

남자친구와 싸우다가 그녀가 직접 약통에서 약을 꺼내 먹었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자살이라고 했는데, 어젯밤을 그녀와 함께 보낸 베르틀레프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며 체포하라고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대신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처럼, 조건없이 사랑을 베푸는 성자처럼 말이다.

그녀가 죽었으니 클리마는 더이상 아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슈크레타 또한 클리마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해 준다. 루제나가 그의 아이를 가졌을리 없다며, 다만 낙태를 하려면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클리마에게 부탁한거라고 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리고 야쿠프는 자신이 진짜 살인자인지도 모른채 가짜 독약을 약통에 넣긴 넣었으니 '나는 열여덟 시간 정도 암살자였군.'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난다. 인상적인 것은 야쿠프가 자신의 행동을 『죄와 벌』에서 전당포 노인을 죽인 라스콜리니코프와 비교했다는 것이다.

실험으로서, 그리고 자아 인식 행위로서의 살인, 이는 그에게 뭔가를 환기했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인간이 열등한 자를 죽일 권리가 있는지 알려고, 그리고 자신이 살인을 견딜 힘이 있는지 알려고 사람을 죽였던 라스콜리니코프였다. 그 살인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래, 라스콜리니코프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즉 살인의 무용성, 그 이론적 성격, 그러나 차이점도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재능 있는 인간이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등한 생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야쿠프가 간호사에게 독약이 든 약통을 주었을 때 그는 그와 유사한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야쿠프는 인간이 타인의 샐명을 희생할 권리가 있는지 자문한 게 아니었다. 반대로 야쿠프는 평생 인간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야쿠프는 사람들이 추상적 이념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하는 세계에 살았다. 야쿠프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뻔뻔하게도 순진하며, 때로는 슬프게도 비겁한 그 얼굴들,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하지만 은밀하게 자기 이웃들에게 잔인한 판결을, 그네들 스스로 그게 잔인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 그 얼굴들 말이다. 야쿠프는 그 얼굴들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증오했다. 더욱이 야쿠프는 모든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원하며, 단지 두 가지, 즉 처벌이 두려움과 살인을 행하는 데 따르는 물질적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사실만이 인간들에게 살인을 단념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쿠프는 모든 인간들이 몰래, 그리고 멀리서 살인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몇 분 후면 사라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실험은 완전히 헛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했다. 352~353쪽

여기서 약간의 반전은 루제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루제나를 죽인 사람은 야쿠프라는 것을 눈치챈 올가와 클리마의 마음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자 (언젠가는 하게 될) 이별 준비를 하는 아내 카밀라의 존재였다.

곳곳에 던져져 있는 상징 덩어리, 『이별의 왈츠』

모든 것을 읽어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소설은 상징들로 가득하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과 닮은 형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꿈꾸는 슈크레타와 늘 사람들에게 베풀고 다니는 성자 같은 베르틀레프의 대립이 돋보인다.

슈크레타가 꿈꾸는 사회는 마치 조지 오웰의 『1984』 속 사회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 혹은 집단 내에서의 동지애(형제애)를 중시하는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감정은 배제하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상상만해도 소름 끼친다.

공원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개를 잡는 루제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회에서 아무런 의식없이 살고 있는 사람을 표현할 것일테고.

반면 베르틀레프는 유일하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 미국인 여권을 소지한 돈 많은 사업가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종교 조차 가질 수가 없는데, 어쩌면 그는 종교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방에는 후광을 받고 있는 턱수염 난 남자 초상화가 있고, 마치 예수처럼 사랑을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과 달랐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클리마에게도 도움을 줬으며, 루제나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심지어 슈크레타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에 그를 입양하기까지 한다. 야쿠프가 지은 죄에도 마치 자신이 지은 것처럼 체포하라고 하고.

하필이면 옅은 푸른색인 독약 또한 마찬가지다.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울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게다가 후광처럼 영광 혹은 보다 고귀한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거나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필이면 푸른색인 걸 보면.

제목에 대한 고찰. 왜 『이별의 왈츠』인가?

왈츠는 남녀가 한 쌍이 되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경쾌한 춤으로, 보통은 남녀 파트너가 계속 바뀐다.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만나도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파트너를 바꿀 수 밖에 없다.

콘서트를 빌미로 모두 같은 공간에 모였던 '넷째 날', 그들은 각자 '이별의 왈츠(행위)'를 춘다.

1970년 대 초에 『이별의 왈츠』를 끝낸 후, 나는 작가로서의 내 행로가 완결됐다고 여겼다. 당시는 러시아 점령 치하였고 우리, 즉 아내와 나는 다른 일들을 근심하고 있었다. 내가 육 년 동안 완전히 중단되었던 글쓰기를 별 열정 없이 다시 시작한 것(프랑스 덕분에)은 프랑스에 온 지 일 년이 지나서였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나는 다시 한 번 발밑에서 단단한 지반을 느끼기 위해 과거에 이미 만들었던 것을 되살려 보고자 했다. 『우스운 사랑들』의 후속편 같은 것을 써 보는 것 말이다. 엄청난 퇴보 아닌가! 『배신당한 유언들』, 249쪽

쿤데라는 1997년 체코어 판 후기에서,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을 '에필로그'로, 나중에는 '이별'로 붙였으나 프랑스 출판인 갈리마르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의 제목을 고쳐서 발표했다고 한다. '에필로그' 혹은 '이별'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 체코에서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는 체코를 떠나면 더이상 글을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담아냈고, 독자와의 '이별'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소설 속 인물인 야쿠프에게 투영했을 것이다. 비록 야쿠프처럼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이진 않았더라도, 조국에 그 모든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그의 유일한 조국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조국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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