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탄생 - 우리는 왜,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가
홍윤철 지음 / 사이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홍윤철 교수는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교실에서 환경의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성과를 정리하면서 독자에게 풀어내고 싶은 방담(放談)이 있었을 것이다.

홍 교수는 우리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알고 있는 문명 이전의 수렵채집인들은 과연 현대인게 유행하는 질병을 앓았을까?”라는 화두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조상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화두는 이어진다. 왜 우리의 조상들은 이러한 병을 앓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변화 그리고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인가?

인류의 건강은 긴 역사를 통해 유전자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확보되었다. 그렇다고 한 번 적응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계속해서 적응해야만 했다.

우리 세포는 DNA 코드의 서열 변화 때문에 다양하게 분화되지만, 세포 안에서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면서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후자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후성유전(저자는 후생유전이라고 명기하고 있으나 후성유전으로 용어가 바뀌었다)이다 *후성유전에 관한 상세 설명은 맨 아래 보론 참조

후성유전은 우리 몸에 생기는 암이나 질병의 발현 기전을 위한 연구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가령 암의 경우 비록 가족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식습관이나 흡연, 오염물질 등 외부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반응으로서 생길 때가 많다. 이 원인 물질이 DNA 결합 분자를 대체하면서 DNA를 교란시킬 때 암이나 당뇨등 만성질환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잘못된 결합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암이나 만성질환을 퇴치할 수 있다. 이처럼 후성유전은 교정 가능하다.

어쨌든 저자의 관심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홍 교수에 따르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지닌 맹점은 생존 경쟁을 만들어 내는 환경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유전자를 둘러싼 환경을 제대로 보지 않고는 대립유전자 간의 생존 경쟁이란 의미가 없다는 것.

저자는 질병의 원인이 사람에게 들어와서 병을 일으킨다기보다는 인간의 유전자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 상태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본다. 오늘날 환경에 대한 이러한 부적응은 고혈압, 당뇨, 알레르기, 암과 같은 질병의 유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환경적 요인이 각 대륙간 문명의 불평등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환경적 변화는 인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변해 왔기 때문에 부차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보다는 환경적 변화에 대한 인류의 적응의 차이가 중요하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우리 몸의 유전자는 충분히 적응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해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관통해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인류의 유전자는 인류가 생활해 온 환경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되었다.

둘째, 1만 년 전 수렵채집에서 농경목축으로 생활양식이 전환되면서 시작된 문명화 이전 시기에는 인류의 조상에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만성질환은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인류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의 두 가지 커다란 혁명적 환경 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고, 유전자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질병이 탄생하게 되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질병의 탄생을 서술하고, 2부는 질병을 탄생시킨 환경 요인 그리고 3부는 문명이 만든 질병을 다룬다.

홍 교수는 농업혁명이 질병 탄생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인류가 농경 시대 들어 군집 생활을 시작하면서 질병이 대규모로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질병을 탄생시킨 환경 요인으로 영양, 기후 변화, 햇빛, 운동(오래달리기 예), , 담배, 산업 혁명 화석 연료 등 8가지를 든다.

 

▲이집트 테베 서쪽 지구에 있는 기원전 13세기 전후 묘지 관리인 센네젬의 무덤안에 그려진 벽화. 가축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이집트인의 모습

코넬대 스펜서 웰스 교수 역시 저자의 시각과 일치한다. 그는 판도라의 씨앗에서 농경이 인류에게 낀친 '불행' 중 하나로 이전에는 별로 염려하지 않았던 전염병이 한꺼번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사례를 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무더위와 사막화 등으로 인한 피해 뿐만 아니라 모기 등 질병매개곤충 의 과잉 번식으로 새로운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동남자 등지에 서식하던 뎅기열 모기가 국내 남부 지방에서 일부 서식하기 시작했고, 뎅기열 환자 국내 유입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산업 혁명은 도시화로 인해 열악한 위생 문제를 가져왔다. 이에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등 또다른 질병 탄생의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 혁명 덕도 보았다. 이와 함께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기술은 신선한 야채, 우유 그리고 육류의 공급을 크게 늘리는 데에 기여했다. 그간 큰 위협이 되었던 질병의 원인과 발생 기전을 규명하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함으로써 인류의 건강 수준을 대폭 나아졌다.

한편 산업화는 점차 고도화되면서 생활 환경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다, 이는 또다른 질병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우리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무리였다. 너무 짧은 기간에 수많은 변화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적응 과정 속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병원체와 인간 사이에 형성된 균형이 깨지면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 플루같은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다.

끝으로 저자는 문명이 만든 질병으로 전염병,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알레르기, , 우울증 등 8가지를 꼽는다. 이는 앞서 열거한 환경적 요인들과 그 관련성을 두고 설명한다.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가령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 문제는 산업화 이전에는 용어조차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기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과제가 되었다.

주제가 무엇이든 통사적 고찰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질병이라는 부담스런 주제임에도 저자는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잘 풀어나갔다. 문체도 깔끔해서 읽는 재미도 좋고 읽는 속도도 난다. 자고로 과학을 다룬 교양 도서는 이랬으면 싶다.

 

[보론] 후성유전이란 무엇일까?

DNA
는 세포 속에서 벌거벗은 상태로 있지 않다. 다양한 단백질 분자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다. 이 분자들은 DNA와 화학결합을 이룬다. 전문가들은 이 결합을 DNA 메틸화, 히스톤의 디아세틸화 등의 방식으로 부른다. 이 분자들이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결합된 분자들이 DNA의 행동을 바꾸어, 유전자 활성을 더 높이거나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자들은 일시적으로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평생 갈 수도 있다. 평생 가는 경우 이 정보도 유전되기도 한다. 우리 몸에 있는 간세포나 근육 세포의 경우 DNA 유전 정보는 똑같다. 그런데 어떤 것은 간세포로 분화하고, 어떤 것은 근육 세포가 되는가는 바로 후성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후성이란 말은 전성과 대비되는 용어다. ‘전성가 이미 정자와 난자 속에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의미고, ‘후성은 환경적 요인 등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소지가 있어 나중에 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