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음 이야기 1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삼국지 다음 이야기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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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 선생의 필력은 거침이 없는 듯하다. 이번에는 삼국지 다음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삼국지 다음 이야기는 위진 남북조 시대를 다룬다. 우선 위진 남북조 시대 연대를 잠깐 보자. 난 항상 헷갈려서 자신이 그닥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춘추 시대 (B.C. 771 ~ B.C. 453)

전국 시대 (B.C. 453 ~ B.C. 221)

 

진 (B.C. 221 ~ B.C. 206)

초 (B.C. 208 ~ B.C. 205)

서초 (B.C. 205 ~ B.C. 202)

한 (B.C. 202 ~ 220)

   전한 (B.C. 202 ~ 8)

   신 (8 ~ 23)

   후한 (25 ~ 220)

삼국 시대 (220 ~ 280)

   위 (220 ~ 265)

   촉한 (221 ~ 263)

   오 (229 ~ 280)

진 (265 ~ 420)

   서진 (265 ~ 316)

남북조 시대 (317 ~ 589)

   동진 (317 ~ 420)

수 (581 ~ 618)

당 (618 ~ 907)

위 연대에서 '위진 남북조'만 따로 간추려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보듯 위진 시대(220 ~ 316)는 조조가 세운 위(220 ~ 265)와 사마씨가 세운 서진(265 ~ 316)이 존속한 96년이다. 사마씨의 시조는 조조의 참조였던 사마의다.

 

 

남북조 시대 (420 ~ 589)는 서진의 후신인 동진 (317 ~ 420)을 포함한 한족의 남조 정권과 북방 민족의 북조 정권이 대립하다가 581년 수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를 말한다. 그 시기는 282년이다. 이렇듯 위진 남북조 시대 (220 ~ 589)는 370년간 지속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한족 사가들은 이 당시를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기로 보고 있다. 그래서 북방 민족이 세운 북조 정권을 ‘5호 16국의 난’이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314 ~ 439)는 흉노, 갈, 선비, 저와 강 등 5호가 대두하여 흉노의 한(漢)을 세운 후 선비족의 북위가 통일할 때까지를 말한다.

중국 학자들은 북위가 들어선 시점부터 수가 통일할 때까지를 진정한 남북조 시대로 보고 있기도 한다. 이는 한족 중심의 사관(史觀)에 의한 그릇된 중화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오, 진(서진 및 동진) 그리고 남조의 송, 제, 양, 진의 6개 한족 왕조를 일컬어 육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북조는 결코 야만의 문화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강건한 상무 정신을 토대로 뛰어난 정치·군사 문화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나중에 수·당의 시기에 천하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한다.

위진 남북조 시대를 조망함으로써 난세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공하고자 한다. 시작은 위나라의 조조에서 비롯된다. 조조는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흉노와 오환 등의 북방 민족을 백성으로 적극 끌어들여 군사력 강화의 계기로 삼았다.

저자는《자치통감》을 기본으로 하되,《삼국지》,《진서》,《송서》,《남제서》,《양서》,《진서》,《위저》 등 관련 사서를 두루 인용했다. 인용된 문헌만으로도 이미 기가 죽은 나는 과연 책 내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삼국지 다음 이야기' 1권은 조조가 위를 세운 시대부터 동진 말기(5세기초)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는 제2의 전국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무차별적인 정복 전쟁이 만연했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대체로 위진남북조 시대, 특히 북방민족의 화려한 등장에 긍정적인 편이다.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문학과 음악, 회화, 서법, 종교 등 전 분야에 걸쳐 불교와 도료, 유교, 법가, 명가 등 수많이 사상이 각축을 별이면서 제2의 전국시대를 영위했다.

또한 위진남북조 시대는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에 해당된다. 뒤이은 통일 왕조 모두 이 시기에 마련된 사상과 제도 등을 토대로 천하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 예로 삼국 시대 당시 위무제 조조와 위문제 조비 때 만들어진 둔전제와 구품중정제가 서진남북조 때 들어와 부병제, 균전제, 과거제 등으로 정립된 것이다. 이들 제도는 이후 약간의 손질이 있기는 했으나 그 골격만큼은 청조 말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조에 대한 왜곡을 바로 알게 되었다. 저자는 리쭝우의《후흑학》과 이중톈의《삼국지 강의》에서 조조는 마음이 시커먼 심흑(心黑)의 대가로 묘사된다.

신동준 선생은 조조가 적의 속셈을 훤히 알고 역으로 그 허점을 찌를 줄 아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다는 점에서 볼 떄 심흑의 대가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장에서만 발휘된 것으로 사마의와 달리 사람을 다룰 때 심흑을 구사한 적이 없다.

마오쩌둥도 조조를 심흑의 인물이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희로애락을 그래도 드러내는 심백의 인물에 가깝게 보고 있다. 사실 난세에 보인 조조의 탁월한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겠다. 주어진 상황을 냉철히 진단하는 통찰, 인재를 단박에 알아보는 지감, 미련없이 포기할 줄 아는 결단 등 그 예이다.

한편 사마씨에 의해 성립된 서진 이야기는 자못 흥미로왔다. 진무제 사마염은 왕위를 백치 황제라 불린 사마충에 넘기면서 형제·친인척 간 내분, 팔왕의 난이 벌어져 나라 멸망을 재촉했다. 후계자를 잘 정해야 함을 배울 수 있는 대목.

여기서 사마충의 비 가남풍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는 '황음무도한 여인'이었다. 백치 황제를 대신해 천하를 좌지우지했고, 온갖 음란한 짓을 다 벌였다. 측천무후의 등극을 위한 전조였을까? 훗 사마충 곁에 어진 현비(賢妃)가 있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요즘같이 목숨을 걸고 고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쪽같은 선비 정신이 아쉬울 때도 없다. 당시 진원달은 이에 비견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흉노족의 실력자 유총이 황후를 위해 황의전을 화려하게 수리하려 하자 고언을 간한다. 이 때 그는 쇠사슬을 허리체 차고 나무와 묶고 있었다.

진노한 유총은 참수하라고 명했으나, 위사들이 쇠사슬을 풀지 못해 쩔쩔 맸다. 마침내 황후까지 나서 만류하자 화를 풀게 되었다. "경은 응당 짐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짐이 경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소." 저자는 진원달과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유씨 나라가 그나마 일시 지속될 수 있었다고 평한다.

중국이 G2의 강자로 부상한 지금,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한 통찰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잘 몰랐던 위진남북조의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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