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기억난다. 대학 신입생때 첫 전공수업시간의 강의 주제는 바로 ‘생물이란 무엇인가’였다. 생물이란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며 생물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 교수님은 두 시간동안 열심히 말씀하셨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그때의 강의 내용 중 기억에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 명색이 생물학도라면 이건 꼭 알아야한다고 하셨는데...중요한 골자는 모조리 홀랑 까먹고 그나마 남아있는 건 ‘생장, 생식, 진화, 자극에 대한 반응’...생물의 특성임과 동시에 생물과 무생물을 차이점이다. 또 생물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선 아직도 많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할뿐....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 이 책을 들고 신입생 때의 일을 떠올렸다. 흩어진 지그소퍼즐, 그 낱낱의 내부엔 인간과 나비, 개구리 같은 생물과 DNA 사슬이 들어있다. 이것들을 모두 짜 맞추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인 얘기가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뉴욕 맨허튼이 등장한다. 혼잡한 도심 풍경,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의 모습을 한번 휘휘 돌아보고 카메라로 줌인 하듯 시선을 옮긴 곳은 바로 록펠러 대학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의 업적과 그에 대한 미국에서의 평가를 서술하고 있다. 사실 노구치 히데요에 대해선 만화책(그것도 끝까지 보지 못했다 ㅠㅠ)으로 읽은 게 전부여서 그가 일본의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인 줄 몰랐다. 저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그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아니다. 노구치 히데요의 연구 진행 방식이 어떠했는지, 질병의 발병원인인 병원체를 추출하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범하기 쉬운지 얘기하고 있다. 전자현미경이 발명과 함께 바이러스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짓는 기준에 혼란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 저자의 눈길이 머문 곳은 어떤 고난과 비웃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히 성실하게 연구에 몰두한 과학자들 ‘이름없는 영웅’을 소개한다. 20세기 들어 생명과학은 화려한 꽃을 피우기에 이르렀는데 그 서막은 바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이 장식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엄청난 발견을 한 공적을 인정받아 왓슨과 크릭은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그 DNA가 유전자란 걸  왓슨이나 크릭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오즈월드 에이버리.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예순을 넘긴 나이까지 연구실을 떠나지 않고 직접 시험관을 흔들고 유리 피펫을 조작했다. 그런 에이버리를 존경한 연구원들을 비롯한 록펠러 대학 사람들은 ‘에이버리에게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한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왓슨과 크릭은 에이버리의 무등을 탄 버릇없는 손자에 불과하다(52쪽)’며 언짢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결국은 에이버리가 옳았고 머스키는 틀렸다. 에이버리를 끝까지 견디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아마 시종일과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자신의 손 안에서 흔들리는 시험과 내부에서 진동하던 DNA 용액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 51쪽.




에이버리처럼 자신의 피땀어린 연구 성과를 어이없이 도둑맞은 과학자가 또 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철저하게 귀납적인 접근으로 DNA의 구조에 다가가던 그녀는 왓슨과 크릭에게 DNA의 X선 사진을 도둑맞는다. 게다가 그녀를 독립된 연구원이 아닌 ‘조수’로 언급한 책도 출간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 어떤 분야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최우선으로 할 것 같은 과학자, 그들의 영광스런 업적 이면에 이런 비리와 은폐, 조작, 음모가 숨어있을 줄이야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책에서는 또 일본 대학에서의 연구실 환경이 썩 좋지 않다는 것(어쩐지 일본에 유학간 친구가 1년 후에 스위스로 떠났는데 혹시..???)과 지그소 퍼즐과 관련해서 잃어버린 조각의 모양을 알아내는 방법, 특히 광우병의 발병 원인인 프리온 단백질에 관한 대목은 광우병소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요즘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마지막, 책이 끝나갈 즈음 나왔다.




역시 우리는 뭔가 중대한 착오를 했거나 뭔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중대한 착오란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미천한 인식이다. 그리고 간과했던 것은 ‘시간’이라는 단어였다. - 227쪽.




생명과 시간. 저자는 말한다. 생명이란 텔레비전 같은 기계가 아니라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착오였다고. 수정란이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행진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생명에 전진만 있을뿐 후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 235쪽.




DNA의 존재를 찾아 생물의 신비와 미스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안내서 같은 이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는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던 말이 있다. “@@야. 발 닦고 자라!” 수업시간에 졸고 앉아 있는 내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땐 좀 창피한 걸로 그쳤는데 이제야 후회를 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그랬으면 이 책 읽으면서 쩔쩔 매는 일이 없었을텐데....싶었다.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저자는 어린 소년시절부터 품어왔던 모양이다. 에필로그에 담겨있는 어린 시절의 얘기를 읽고 나니 저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된다. 생명의 소중함, 존귀함을 아는 그이기에 더욱.




소년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알에 미세한 구멍을 내서 안을 들여다보자고 결심했다....나는 준비한 바늘과 핀셋을 사용해 조심스럽게 네모난 모양으로 구멍을 만들었다. 그런데....안에는 배에 노른자를 품은 작은 도마뱀 새끼가 어울리지 않게 큰 머리를 동그랗게 웅크리고는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순간, 나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듯한 기분이 들어 바로 뚜껑을 닫으려고 했다. 나는 곧 내가 저지른 짓이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한번 외부의 공기에 닿아버린 도마뱀 새끼는 서서히 썩어들었고 형태가 녹아 내렸다.

이 경험은 오랜 동안 괴로운 기억이 되어 내 안에 앙금으로 남았다. 분명 이 경험은 경이로웠다. 그래서 이렇게 생물학자가 된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의식에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 235~246쪽. 에필로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色에 물들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두 권의 책 표지를 물들인 매혹적이고도 강렬한 色. 이 세상에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활활 타오를 듯 붉지만 그냥 빨강이 아니고 파도가 넘실대는 깊은 바다처럼 푸르지만 그냥 파랑이 아닌 어떤 色. 이 색깔의 이름이 도대체 뭘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나의 무식이 안타까웠다. 이 色이 담고 있는 얘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책날개를 보니 저자인 아라이는 중국 서북부의 티베트족 자치구에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色에 물들다>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인 동시에 중국의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티베트 고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의 작품에 티베트는 물론 중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티베트 소설이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니!!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붉은색 표지를 서둘러 넘기고 만난 첫대목에서 하얀 눈이 와락 안겨온다.




‘눈이 내린 새벽이었다.’...로 시작한 이 소설의 배경은 티벳과 중국(한족)의 접경지대다. 이 곳의 최고권력자이자 영주인 ‘투스’는 중국(한족) 황제의 책봉을 받는데 소설은 마이치 투스의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둘째 아들이 평범하지 않다. 마이치 투스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아이를 갖는 바람에 ‘바보’로 태어난다. 가족을 비롯한 누구나 ‘바보’로 알고 ‘바보’로 대하지만 정작 ‘나’의 행동이나 얘기 속에선 그걸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자에게 세습되는 ‘투스’란 자리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간에 피를 흘리지 않도록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분위기다.




자신들을 배신한 왕뻐 투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한족의 황특파원을 데려오면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마이치 투스는 왕뻐 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황특파원이 두고 간 양귀비 씨앗을 심고 수확해 마이치 투스는 큰 부를 축적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투스들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잘려나간 사람의 머리에서 양귀비 씨앗이 싹을 트고 자라는 대목에선 소름이 끼쳤다.




온 들판을 붉게 물들이면서 사람들을 혼란시켰던 양귀비의 씨앗은 새와 바람을 타고 다른 투스들의 영지에서도 싹을 틔운다. 마이치 투스가 거둬들인 어마어마한 은돈의 유혹에 빠진 투스들이 너도나도 양귀비 씨앗을 심을 때 마이치 투스는 반대로 곡식을 심고 풍작을 거둔다. 양귀비 씨앗을 구하러 왔던 투스들이 이번엔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이치 투스를 찾으면서 양귀비로 붉게 타올랐던 대지가 식량전쟁으로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이에 마이치 투스는 북쪽과 남쪽 변경에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어 두 아들을 보내는데...




‘나는 바보다’ 책에선 이런 대목이 심심찮게 나온다. 바보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해도 ‘바보라서 그렇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글자도 모르는 바보라서 하고 싶은 얘기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그는 100% 완전한 바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리를 볶아서 그 냄새로 오랫동안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불러오고 그들에게 한웅큼씩 건네주는 모습은 바보라고 할 수 없었다. 마이치 투스 집안의 집사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도련님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고 롱꽁 투스 역시 “멍청한 척 하지 말아요. 당신은 소문 자자한 그 바보가 아니에요. 마이치 집안 둘째 아들이 바보가 아니거나, 당신이 마이치 집안 둘째 아들이 아니거나.....”란 말을 한다. 무엇이 바보고 무엇이 똑똑한 걸까.




티베트인 작가 아라이의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 <色에 물들다>. 달라이 라마와 흰색의 나라로 불려지는 나라, 티베트. 그곳의 신화와 전설, 문화를 비롯해 그들이 지나온 역사 속의 아픔과 슬픔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좀 더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특별히 좋아하는 스포츠가 없다. 잘하는 스포츠 역시 없다. 그런 내가 스포츠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쓴다. 시작은 <슬램덩크>였다.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지인에게서 우연히 건네받은 만화에 나는 쏙 빠져버렸다. 두어 달 간격으로 감질나게 한 권씩 출간되는 만화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덕분에 농구의 ‘농’자도 모르던 나는 농구 경기의 기본규칙이나마 알게 됐다. 만화로 스포츠를 배울수도 있다는 거, 이때 처음 알았다.




<슬램덩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휘슬> <스피드 도둑> <플라이 하이> <신학원 라이벌전> <H2> <그린의 정복자> <Happy!> <테니스의 왕자> <저스트 고고> <홍색히어로> <카페타>...같은 만화를 읽으며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하나하나씩 섭렵해나가고 있다.




옆으로 찢어진 날카로운 눈, 꼭 다문 입매에서 반항아 기질이 엿보이는 소년이 그려진 표지의 <배터리>를 손에 들고 가슴이 설렜다. 제목이 ‘배터리’인 걸 보니 야구인 건 분명한데, 누가 투수고 누가 포수인 걸까.




전근가는 아버지를 따라 닛타로 이사가게 된 다쿠미. 그는 누구도 손댈 수 없을 정도의 강속구를 던지는 한마디로 천재투수다. 작은 지방도시에서 살게 된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다쿠미는 우연히 ‘나가쿠라 고’란 소년을 만난다. 예전에 다쿠미의 경기를 보고 그의 공에 반한 고는 자신이야말로 다쿠미와 배터리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다쿠미 역시 자신의 공을 제대로 잡아줄 포수는 고가 유일하다고 여기면서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다쿠미에겐 고가, 고에겐 다쿠미가 있기에 환상적인 중학시절이 될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친다.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은 고에 비해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다쿠미는 다른 팀원과 쉽사리 융화되지 못한다. 야구부 선배들은 다쿠미의 재능과 실력을 시기한 나머지 폭력을 행사하고 그 일로 인해 야구부의 활동이 정지되는 사태에 이르는데....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사춘기 소년들의 야구에 대한 정열과 고민을 담은 책 <배터리>.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만화의 등장인물이 으레 그렇듯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천재투수와 그의 포수이자 단짝친구가 있고 그 반대쪽에 대립되는 성격의 인물들이 있으며 주인공과 운명적인 대결을 펼칠 또 한명의 천재타자가 기본적인 인물구도를 이룬다. 그리고 작은 것도 엄격하게 따지는 감독과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때로 중요한 조언을 해주는 전직 야구감독인 다쿠미의 할아버지와 오직 야구밖에 모르던 아버지로 인해 야구를 싫어하게 된 다쿠미의 엄마. 천재투수인 형을 동경한 나머지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생 세하. 이렇게 일종의 공식 같은 전형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야구를 사랑하고 오직 야구밖에 모르는 많은 소년들이 등장하지만 이 책의 엄연한 주인공은 배터리, 다쿠미와 고이다. 언제나 최고의 공을 던지면 자신의 역할은 다하는 거라고 여겼던 다쿠미는 고로 인해 자신 이외의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고 역시 포수는 투수의 공을 잘 받기 이전에 그가 던지는 마음과 내면 역시 보듬어줄 줄 알아야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본에선 80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영화와 만화로까지 제작됐다는 소설 <배터리> 두 소년이 만나 서로 끌어안고 부딪히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펼쳐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어떤 것에 뜨거운 열정을 갖기보다 무덤덤하게, 선생님의 눈 밖에 나지 않고 학교 - 집 - 학교 - 집....이것만을 반복하면서 그저 무사히 학교생활을 마치는 것에 치중했던 날들이었다. 성장소설을 좋아하고 스포츠 만화를 즐겨보는 이유도 아마 밋밋하고 재미없는 나의 학창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 또 어떤가. 나의 학창시절은 지났지만 내 아이들에겐 몇 년 후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다.(운동신경이 무딘 큰아이가 스포츠 선수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내 눈엔 사춘기 소년들의 열정과 고민도 그저 이쁘게만 보인다. 몇 년 후면 내 아이에게 이 책을 슬쩍 건네줄 날이 오겠지. 그 날이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아노의 숲 15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박선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악 마라톤을 끝내고 돌아온 기분이다. 호흡이 가쁘다. 계속 숨을 몰아쉰다. 

       

카이의 피아노는!!

역시나 굉장하다.
 

쇼팽 콩쿠르 1차 예선 다섯째날, 

아마미야 슈우헤이를 포함한 네 명의 참가자 연주가 있었다.

예비선발 때 실수했던 기억을 떠올린 카이는

'쇼팽의 숲'으로 달려가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콩쿠르 출전이 무섭고 두렵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고,

결과가 어떻든간에 최선을 다해서 뛰어넘을 거라고.


 

아지노 : 산기슭에서 보는 풍경과  중턱에서 보는 풍경,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아주 다르지? 그러니까 올라가야 돼. 올라가면 본 적도 없는 풍경이 보이게 되지.

카이 : 그럼 그 산을 다 올라가면 끝이에요?

아지노 : 아니....더 높은 산을 올라가고 싶어지지....

카이 : ( 난 여태껏 본 적 없는 풍경을......보고 싶어.)

 

카이의 피아노를 어서 듣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내달렸다.

그리고 15권 중반 이후에 등장한 카이의 피아노. 숲의 피아노!!

 

1차 예선 마지막날,

카이 특유의 매력적인 소리를 듣기 위해

장 자크 세로를 비롯한 아마미야 슈우헤이와 아버지 요우이찌로우,

이상하리만치 아지노의 피아노를 증오하던 중국인 출전자 팡 웨이 등,

유명인사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실, 콩쿠르 마지막날이라 심사위원들이나 관객들은

연이어 들은 쇼팽의 음악에 지쳐있고 어느정도 긴장이 풀어진 상태.

 

선발기간 내내 컨디션 난조로 연주순서를 여러번 바꿨던 폴란드의 레프,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유리알처럼 투명한 그의 연주에

폴란드 심사위원들은 '샛별'이라며 기뻐하고

청중들 역시 폴란드 참가자 중에 우승후보가 나타났다며 환호한다.



그 다음 두번째로 등장한 카이!

그는 초등학교 음악실에서 아지노의 음악을 통해 쇼팽을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린다.

 

'여어, 쇼팽. 나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고마워, 쇼팽. 나한테 이 무대를 선물해줘서...'


 

드디어 연주를 시작한 카이,

그의 연주로 콩쿠르 회장안은 일순 살랑살랑...바람이 이는듯,

콩쿠르 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을

숲의 가장자리, 피아노의 숲으로 데려간다.

 


아아....어떻게...어떻게 이런 소리가!

피가 끓어오르는 이 느낌....

생명을...불어넣는 것 같은 느낌은...

이 피아노는....

쇼팽을 듣느라 지친 나와....

쇼팽에게 마비되어 있는 청중들을

아니, 이 회장 전체를....

서서히 깨어나게 만든다.

 



어둠이 내린 숲을 살며시 지나가는바람, 나뭇잎들의 속삭임....

 
카이는 쇼팽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갑작스레 번쩍하고 내리치는 번개!!

.....

 

<피아노의 숲>을 읽고나면 늘 갈증에 허덕인다.

유아들을 위한 사운드북처럼 만화도 그렇게 제작할 순 없나???

음악을 듣고 싶어. 카이의 음악!!!!!

 

띠지를 보니 조만간 국내에서 애니메에션이 개봉될 예정이라는데...

과연 언제일까....기다려진다.

아이 손 잡고 가서 눈으로만 듣던 파이노의 숲, 카이의 피아노에 푹 빠져보고 싶다.

(카이가 드디어 쇼팽의 강아지 왈츠를 연주한다. ^^)

 

이제 목을 길게 늘이는 일만 남았다.

16권.....제발 올해안으로 나와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번역사 오디세이
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 끌레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보통 평범한 사람에 비해) 조금 많이, 꾸준히 읽는 편이지만 번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번역된 책을 읽을 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나 몇 번을 읽어도 그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껄끄러운 대목이 나오면 ‘이게 내 한계야...’라며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아이의 그림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리듬감없이 밋밋한 문장이나 단어나 용어의 선택에 의심가는 대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눈으로 읽는 글과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글에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을 줄이야!) 그림책의 역사애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라는데 내 아이는 외면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린이독서지도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번역'의 문제였다. 그럴때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원문을 비교해서 확인해 본다지만 한글 외엔 어떤 나라의 외국어도 모르는 내겐 불가능했다. 번역자가 누구인지 확인해보고 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번역사 오디세이> 이 책은 프랑스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번역가인 저자가 쓴 프랑스 번역사이다. 번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로 얘기를 시작한 이 책은 서유럽과 아랍권, 다시 프랑스를 아우르며 그 곳에서 어떤 분야의 책이 주로 번역되어지고 그 번역이 어디로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지 않아선지 사실 이 부분은 그리 쉽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 서유럽이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을 정복했지만 그들은 이슬람의 문명, 아랍문화에 놀라게 된다. 자신들이 야만족이라 여겼던 이슬람이 따로 번역기관을 두고서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 아랍어로 번역하고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에 자극을 받은 서유럽은 번역에 몰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번역의 힘이란, 실로 놀랍다.

 




번역의 질을 거론하면서 ‘벨 앵피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벨 앵피델은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부실한 미녀’인데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프랑스가 라틴어보다 우월하고 아름답다는 우월감이 아름답지만 정확하지 않은 번역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번역사마다 번역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었다. 그 유명한 <율리시즈>를 번역한 발레리 라르보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을 연애와 비슷하다고 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은 바로 먼 나라의 공주님이어서 그 아름다운 공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아 남편의 지위를 얻고 얼마나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지는 바로 번역자의 열의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무척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의외의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작가 중에 번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가 <햄릿>과 <아이반호>를 번역했으며 프랑스문학의 대표작가인 앙드레 지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2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햄릿>을 번역하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2년전인가? 국내 모방송국의 아니운서가 번역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얼마후에 그 책은 다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아나운서 자신이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던 책에 엄연한 번역자가 따로 있었던 것, 즉 대리번역을 했다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었다. ‘번역도 엄연한 창작’인데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독자를 우롱했다며 반환소동까지 일었던 기억이 난다.

 




'번역은 창작이다.' 당시엔 그 말이 100%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번역사 오디세이>를 통해 번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또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그렇다고 창작이 아니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번역은 반역’도 아니다. 번역은 단순히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저자와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둘 사이에서 안내와 조언을 하고 더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예술, 철학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 표현하고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의 전달은 바로 번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기억하자.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그것은 살아서 고동치는 말이며 원문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다리를 뻗어 작품 전체와 긴밀히 얽혀 있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힌다. 따라서 저울의 또 한편에도 ‘똑같은 생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등가의 무게’가 필요하다. -- 발레리 라르보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넛공주 2008-06-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꼭 읽어보고 싶어요!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