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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ㅣ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특별히 좋아하는 스포츠가 없다. 잘하는 스포츠 역시 없다. 그런 내가 스포츠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쓴다. 시작은 <슬램덩크>였다.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지인에게서 우연히 건네받은 만화에 나는 쏙 빠져버렸다. 두어 달 간격으로 감질나게 한 권씩 출간되는 만화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덕분에 농구의 ‘농’자도 모르던 나는 농구 경기의 기본규칙이나마 알게 됐다. 만화로 스포츠를 배울수도 있다는 거, 이때 처음 알았다.
<슬램덩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휘슬> <스피드 도둑> <플라이 하이> <신학원 라이벌전> <H2> <그린의 정복자> <Happy!> <테니스의 왕자> <저스트 고고> <홍색히어로> <카페타>...같은 만화를 읽으며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하나하나씩 섭렵해나가고 있다.
옆으로 찢어진 날카로운 눈, 꼭 다문 입매에서 반항아 기질이 엿보이는 소년이 그려진 표지의 <배터리>를 손에 들고 가슴이 설렜다. 제목이 ‘배터리’인 걸 보니 야구인 건 분명한데, 누가 투수고 누가 포수인 걸까.
전근가는 아버지를 따라 닛타로 이사가게 된 다쿠미. 그는 누구도 손댈 수 없을 정도의 강속구를 던지는 한마디로 천재투수다. 작은 지방도시에서 살게 된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다쿠미는 우연히 ‘나가쿠라 고’란 소년을 만난다. 예전에 다쿠미의 경기를 보고 그의 공에 반한 고는 자신이야말로 다쿠미와 배터리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다쿠미 역시 자신의 공을 제대로 잡아줄 포수는 고가 유일하다고 여기면서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다쿠미에겐 고가, 고에겐 다쿠미가 있기에 환상적인 중학시절이 될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친다.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은 고에 비해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다쿠미는 다른 팀원과 쉽사리 융화되지 못한다. 야구부 선배들은 다쿠미의 재능과 실력을 시기한 나머지 폭력을 행사하고 그 일로 인해 야구부의 활동이 정지되는 사태에 이르는데....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사춘기 소년들의 야구에 대한 정열과 고민을 담은 책 <배터리>.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만화의 등장인물이 으레 그렇듯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천재투수와 그의 포수이자 단짝친구가 있고 그 반대쪽에 대립되는 성격의 인물들이 있으며 주인공과 운명적인 대결을 펼칠 또 한명의 천재타자가 기본적인 인물구도를 이룬다. 그리고 작은 것도 엄격하게 따지는 감독과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때로 중요한 조언을 해주는 전직 야구감독인 다쿠미의 할아버지와 오직 야구밖에 모르던 아버지로 인해 야구를 싫어하게 된 다쿠미의 엄마. 천재투수인 형을 동경한 나머지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생 세하. 이렇게 일종의 공식 같은 전형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야구를 사랑하고 오직 야구밖에 모르는 많은 소년들이 등장하지만 이 책의 엄연한 주인공은 배터리, 다쿠미와 고이다. 언제나 최고의 공을 던지면 자신의 역할은 다하는 거라고 여겼던 다쿠미는 고로 인해 자신 이외의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고 역시 포수는 투수의 공을 잘 받기 이전에 그가 던지는 마음과 내면 역시 보듬어줄 줄 알아야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본에선 80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영화와 만화로까지 제작됐다는 소설 <배터리> 두 소년이 만나 서로 끌어안고 부딪히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펼쳐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어떤 것에 뜨거운 열정을 갖기보다 무덤덤하게, 선생님의 눈 밖에 나지 않고 학교 - 집 - 학교 - 집....이것만을 반복하면서 그저 무사히 학교생활을 마치는 것에 치중했던 날들이었다. 성장소설을 좋아하고 스포츠 만화를 즐겨보는 이유도 아마 밋밋하고 재미없는 나의 학창시절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 또 어떤가. 나의 학창시절은 지났지만 내 아이들에겐 몇 년 후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다.(운동신경이 무딘 큰아이가 스포츠 선수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내 눈엔 사춘기 소년들의 열정과 고민도 그저 이쁘게만 보인다. 몇 년 후면 내 아이에게 이 책을 슬쩍 건네줄 날이 오겠지. 그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