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부터 건강해지는 마흔의 밥상
야마다 도요후미 지음, 전경아 옮김 / 살림Life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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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또 시작됐다. 지끈지끈 쑤시고 울리는 편두통. 어쩌다 한 두 번 나타나던 편두통이 어느샌가 완전히 고질병이 되버렸다. 작년 이맘때도 편두통이 너무 심해서 CT촬영까지 했었다. 결과는 ‘아무 이상없음.’ 담당의사는 ‘너무 심하면 참지 말고 그냥 약 먹으라’고 당부했다. 이번의 두통은 만만치않다. 사그러들 듯 하면서도 고개를 치미는 통증, 서서히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도대체 이 두통이 언제부터, 왜 자꾸 생기는지, 두통에 완치란 없는지, 이 고통을 남은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하는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고역이다. 온 몸이 뻐근하고 저려서 밤마다 내가 잠든 동안 누가 날 망치로 두드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이 들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그게 정말이구나...싶다. <세포부터 건강해지는 마흔의 밥상>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마흔이 넘은 우리 부부의 밥상에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바닥난 건강은 병든 세포가 원인! 밥상을 바꿔야 건강이 보인다’는 부제처럼 이 책은 건강해지기 위해선 우선 병든 세포를 살려내라고 말한다. 세포가 병이 든다고? 처음 듣는 말이다. 또 세포가 왜 병이 드는 걸까?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의 저자인 야마다 도요후미는 예방의학연구소 소장이자 분자영양학 박사다. 또 스포츠 영양학 분야에서 프로야구나 스모, 골프, 육상 같은 운동선수에게 영양지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수많은 운동선수에게 영양지도를 해오면서 저자는 선수들의 나쁜 식습관이 컨디션 난조와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즉, 식습관이 서구화된 시기와 선수들의 부상이 늘어나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단백 식사의 함정과 완전식품인 우유를 의심하라고 경고한다. 동물성 단백질과 칼슘함유량이 높은 유제품은 복잡한 구조 때문에 체내 흡수되기도 힘들고 장에서 분해되는 과정에 암모니아 같은 독성을 배출할 뿐 아니라 간이나 신장에도 큰 부담을 준다는 거였다. 또 뼛속의 칼슘을 녹여서 소변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골다공증의 위험성도 높아진다면서 칼슘은 마그네슘과 적정비율을 유지해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탄수화물을 비만의 근원이라며 살을 빼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위험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럼 세포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세포의 찌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저자는 해결책으로 현미와 마고와야사시이 자연식과 패스팅이란 걸 내놓았다. 마고와야사시이 자연식이란 콩과 참깨나 땅콩류,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 각종 야채, 생선류, 버섯류, 감자.고구마.토란이 고루 배합된 식사법을 말하는데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식사법이라고 한다. 패스팅은 우리 몸 속에 축적된 환경호르몬이나 중금속, 식품첨가물 같은 독소를 빼는 걸 말하는데 일종의 단식요법이다.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로 만든 주스로 최소한의 칼로리만을 섭취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은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 자정작용을 거쳐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수시로 뜨끔거렸음을 고백한다.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결한 적이 있다. 반조리 상태의 냉동식품으로 식탁을 차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것들이 모두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적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60조 개의 세포가 건강해지는 식사로 밥상으로 바꿔야겠다. 새해엔 좀 더 부지런해지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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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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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별>. 저자는 조디 피콜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알지 못하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게 될 때는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서나 선물로 받게 될 경우, 그다음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이번은 세 번째의 경우였다. 누군가의 추천도 선물도 아니었다. 노란 띠지에 적힌 단 한 줄의 문장,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이 대목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부모님을 고소하게 된 사연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열 세 살의 안나가 어느날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 심드렁한 표정의 변호사에게 안나는 똑 부러지게 말한다.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이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나의 엄마인 사라는 어느날 케이트의 몸에 생긴 네잎클로버 모양의 멍을 발견한다. 심상치않음을 느낀 그녀는 남편인 브라이언과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몇 차례의 검사결과 케이트가 골수성 백혈병 가운데서도 희귀병에 속하는 ‘전골수구백혈병’에 걸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던 그녀는 셋째를 낳기로 결정한다. 체외수정을 통해 케이트의 모든 조직과 일치하는 맞춤아기를 임신한 것. 그렇게 태어난 안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케이트를 위해 제대혈을 비롯해 줄기세포와 골수 등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케이트의 상태는 끝내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신부전증이 발병하면서 안나의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해야하는 지경에 이르고야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10대의 안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케이트를 위한 기증자로서의 삶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언니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의 권리까지 내어줘야 하는 걸까. 결국 안나는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하게 된다. 전직 변호사였던 엄마를 상대로 법정공방전을 벌이던 안나는 결국 자신이 거부하던 증인석에 어쩔 수 없이 오른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데...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소설처럼 한 두 명의 주인공이 사건이나 갈등을 일으키고 해결해가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재판의 결과에 언니의 생명이 달린 소송을 제기한 안나와 목숨을 에게 치명적인 사랑하는 딸 케이트를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던 사라와 케이트를 사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나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해주는 브라이언, 부모님의 관심이 케이트에게 집중된 탓에 오로지 탈선과 비행으로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는 큰아들 제시, 안나의 변호를 맡은 캠벨과 법정 후견인인 줄리아. 이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다.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함과 동시에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이 책이 불치병을 앓는 언니에게 장기기증을 거부하는 안나와 엄마인 사라와의 법정공방을 다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가족의 이야기였다. 가족 중 불치병을 앓거나 비행을 일삼는 자녀가 없더라도 일단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선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가족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고통스런 역사(125쪽)을 갖기도 하고 부모가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하다보면 가족의 질서는 무너지게(154쪽) 될 수도 있다는 걸 책은 말하고 있었다.




2년 전 늦은 나이에 둘째를 임신했다. 출산을 두어 달 앞두고 난 아이의 제대혈을 보관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즈음 지인의 딸이 어느날 갑자기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서 계속 수혈을 해줘야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 혹시나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싶었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내 의견에 신랑은 동의했다. 만약의 경우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그래선지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질문에 시달렸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구의 자리에서 어떤 생각들을 할 것인가. 처음 표지를 펼쳐 읽기 시작해서 55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을 덮을 때까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딸을 둔 사라와 브라이언, 죽음의 문턱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는 케이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제시와 안나의 마음이 가슴을 가득 메워버렸다. 수시로 울컥 치미는 눈물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십 년 후에도 난 언니의 동생이고 싶다는 안나, 자신의 바램 때문일까. 책은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으로 또한번 내 마음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550페이지를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두께를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했던 책이었다. 2008년 한 해를 보내면서 생명의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대목>




언니가 죽으면 언니가 있다는 말은 더 이상 안해야할까? 아니면 다른 반쪽이 가고 없는데도 동생으로 계속 남게 되는 걸까? 190쪽.




“죽는 게....무섭니?” 나는 불쑥 묻는다. 케이트는 나를 돌아보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린다. “오빠한텐 말해줄게.” 그 애는 눈을 감는다. “난 잠시 쉬러가는 것뿐이야.” 그 애는 간신히 말하고서 다시 잠이 든다. -433쪽.




“괜찮은 인생이었어. 엄마, 안 그래?” 나는 눈물이 울컷 치밀어 입술을 깨문다. “최고였어.” 나는 대답한다. -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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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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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코맥 매카시의 작품을 만났다. 그의 작품 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출간과 거의 동시에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고 뒤이어 나온 <로드>는 독자들의 반응이 ‘감동적이다’,  ‘난해하다.’며 서로 극과 극을 치닫는 등 반향을 불러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인데도 읽어보지 못했다. 왠지 어렵고 난해할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코맥 매카시의 작품 중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핏빛 자오선> 이 책은 왠지 다를 것 같았다. 조금의 망설임없이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에 비해  난이도가 덜할거라고 여겼다. 그.런.데.......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문학성’은 ‘재미’와 결코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를 보라’고 책은 시작한다. 이름이 뭔지 알 수 없는 열 네 살 소년이 가출한다. 무작정 서쪽으로 방랑하던 소년은 세인트루이스에 이르고 다시 뉴올리언스로 향한다. 무리 내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이 오가던 어느날 갑자기 소년을 총을 맞는다.(본문을 불과 1장을 넘겼을 뿐인데). 안주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소년은 다시 길을 떠나고 비정규군으로 이뤄진 부대에 합류한다. 인디언과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어느날, 인디언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부대는 몰살당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소년은 다시 여기저기 떠돌다가 감옥에 갇한다.




이후 소년은 토드빈과 함께 글랜턴의 무리에 들어간다. 거기서 큰 덩치, 온 몸에 털 하나 없는 아이 같은 얼굴의 홀든 판사가 만난다. 글랜턴의 무리는 처음엔 인디언의 머리가죽을 벗겨가면 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인디언이 아닌 사람들, 이주민이나 멕시코인 같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머리가죽까지 벗기기에 이른다. 그들에겐 아기도, 여인네도, 노인도 없었다. 이미 폭력과 피, 죽음의 맛을 본 그들에게 타인은 모두 사냥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행진을 거듭하면서 희생자의 피와 내장으로 호수를 붉게 물들였고 황무지는 피에 젖어든다.  이후 책은 시종일관 광기와 살육으로 인해 피가 흥건한 현장으로 이어진다.




책은 19세기 중반, 미국과 멕시코 간의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때를 다루고 있다. 일단 미국이 승리하면서 국경선이 그어졌지만 상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경 주변에선 더 많은 땅,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졌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타인을 죽여야 하니 살인에 대한 죄의식은 기대할 수조차 없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난감했던 적이 별로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혈이 낭자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람을 난도질하고 머리가죽을 벗기는 걸 마치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눌러잡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 잠들면 꿈에서조차 피가 흥건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후사정이나 언급도 없는데다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나타내는 어떤 문장부호도 없이 쭉 늘어놓은 문장은 책에 몰입하기도 어려웠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정말 어렵사리 읽고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멕시코와의 영토분쟁을 비롯해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또 소설의 인물 중엔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이름을 그대로 쓰기까지 했다는데...그렇게까지 해서 저자는 도대체 이 책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한걸까. 왜 소년에엔 이름이 없었을까. 굳이 '소년'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는 걸까. 판사도 그랬다. 다른이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외모,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그를 보고 난 묻고 싶었다. 소년처럼. 진짜 판사가 맞냐고...결코 잠자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홀든 판사를 통해 뭘 얘기하고자 한걸까. 미국이란 나라는 책에서처럼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로 다져진 땅 위에 세워졌다는 것? 과연 그게 전부일까.

 

뒷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영혼을 압도하는 매력적인 문체'. 그런데, 난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다. 저자가 묘사해놓은 정경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잔혹한 폭력 이면에 가려진 흐름을 보지 못한 느낌이 든다. 책에서 판사는 이런 말을 한다. '어휘야말로 힘이다. 자신이 소유한 어휘는 결코 강탈할 수 없다.' 정말이다. 코맥 매카시의 어휘를 강탈은 커녕 마음에 담기도 버거웠다.


<핏빛 자오선> 이 책은 읽는 이
의 마음을 뿌리채 흔들어놓는다. 종이위에 물감이 번지듯 메마른 사막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스멀스멀 퍼지는 붉은 피. 어딘가로 몸을 숨기지 않으면 내가 선 자리까지 삼켜질 것 같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피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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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여신 - 오드 토머스 두 번째 이야기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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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여자 표정 진짜 무섭네.” 표지그림에서 공포의 기운이 물씬 풍겨지는 책 <죽음의 여신>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한 생각이다. 집에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는지라 살짝 걱정이 됐다. 신랑한테 넘겨준 북커버가 아쉬웠지만 다시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애들이  곁에 있을 때 읽을수도 없고. 그렇담 이 책을 언제 읽지? 할 수 없이 아이들 잠든 시간에 책을 읽기로 했다. 잘 부탁해. 죽음의 여신!! 함께 멋진 밤을 보내보자고.

  

죽음을 보는 남자, 오드가 돌아왔다. 전편인 <살인예언자>에서 언제나 함께 하리라 여겼던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만다. 그 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오드는 연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드에게 윌버 제섭 박사가 죽은 영혼이 되어 나타난다. 자신의 어릴적 친구인 대니의 양아버지인 제섭박사의 영혼을 본 오드는 직감적으로 대니가 위험에 처했음을 느끼게 된다. 서둘러 찾아간 대니의 집에서 오드는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된 제섭 박사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막상 대니가 보이지 않았다. 납치된 것이다.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대니는 걸핏하면 뼈가 부러진다.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된다는 생각에 오드는 자신의 능력인 심령자석을 이용해 대니를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홍수통제용으로 건설된 하수도로 이어지는 지하에서 미약하게나마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쫓아가는데...




<살인예언자>에서 오드는 끔찍한 대량참사를 막아 피코문도의 영웅이 된다. 하지만 <죽음의 여신>에서 오드는 죽은 사람을 자신의 능력을 어릴적 친구인 대니를 위해 발휘한다. 범인에 대한 추측은 의외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대니가 힘들고 고독한 상태일 때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간 건 목소리가 부드러운 여자였을 거란 오드의 생각은 적중했다.  대니가 오드의 능력을 폰섹스로 알게 된 다투라에게 털어놓은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투라가 죽음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심령스런 일, 영혼에 집착하는 여인이라는 거였다. 그후 치명적인 미모의 여인 다투라와 그녀의 일당에 홀로 맞서 싸우게 된 오드의 만 하루동안의 숨가쁜 추격전이 벌이진다.




사실 <죽음의 여신>은 전편인 <살인예언자>에 비해 전체적으로 스릴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일단 오드에 맞서서 대결하는 인물로 등장한 다투라가 그다지 매력이 없다. 처음엔 <죽음의 여신>이란 제목을 보고 오드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여인이 등장하겠구나 생각했다. 근데 천만의 말씀,  그녀를 왜 죽음의 여신이라 하는지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오드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니를 납치하는 동기도 억지스럽다. 유령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내 앞에 소환해보라며 외치는 다투라의 모습은 열두살 철부지나 다름없었다. 

 

다만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뛰어드는 오드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친구를 탈출시킬 때 긴장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건네던 몇 마디 말에서 오드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문제의 부모에게서 문제의 아이가 자란다고 하는데 오드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폭행을 일삼던 부모에게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죽음을 보는 능력으로 인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나날을 보내지만 오드는 참으로 반듯하게 잘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2편의 끝에서 오드는 잠시나마 피코문도를 떠난다는 결정을 내린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죽음을 보는 남자 오드의 수도원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엘비스의 영혼도 그를 따라 수도원에 나타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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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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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뿌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쿤타킨테라는 흑인이 노예상에게 잡혀 미국으로 팔려온다. 자유를 빼앗긴 그는 이후 끔찍한 노예로서 살아가게 되는 무척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특히 흑인을 잡는 노예사냥꾼의 무리 중에 흑인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쿤타킨테가 노예사냥꾼에게 잡혀 손에 쇠사슬이 묶였을 때였다. 그가 자신을 묶은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몸으로 거부하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노예로서의 삶을 보여준 듯해서 오래도록 남았다.




여기 또 한 명의 흑인 노예가 있다. 이름은 옥타비안. 카시오페이아라 불리는 아름다운 미모의 어머니와 함께 거대한 저택에서 지낸다. 그를 위해 시중드는 사람이 있고 먹는 음식과 배변의 양까지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학자들로부터 문학이나 역사, 과학,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기이할만큼 섬세하고 독특한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상당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왕자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데도 그가 노예라니. 그건 무슨 이유에선가.




그들은 실험대상이었다. 임신한 상태로 미국에 온 카시오페이아는 석학협회의 관찰아래 출산하면서부터 그들 모자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학자들의 관찰과 연구 대상이 된다. 때문에 옥타비안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왠지 이상하다는 건 느끼지만 자신 역시 노예란 걸 모르고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옥타비안은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하인인 보노에게서 놀라운 사실, 자신도 보노와 마찬가지로 노예라는 얘길 듣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옥타비안은 자신에게 출입이 금지된 방, 그 속에 진실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몰래 들어간다. 소름끼치는 해골 표시에 옥타비안의 얼굴을 붙여놓은 비밀의 방. 그 방문 너머를 보고난 후 옥타비안은 혼란에 휩싸이는게 되는데....




만약 흑인이 고등교육을 받는다면 그들의 지적능력은 백인처럼 향상될 수 있는가, 흑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한 민족이기 때문에 아무리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도 소용없다...그들은 옥타비안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했다. 자신들의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백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자했다. 흑인노예를 대상으로 한 충격적인 실험. 책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궁금했다. 저자 후기를 보니 이런 교육실험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대목이 있어서 놀라웠다.




옥타비안이란 흑인소년의 굴곡진 삶을 그린 소설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이 책을 통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던 무렵,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지만 정작 그 자유가 자신의 것이 될 거란 보장조차 없었던 노예의 삶은 비참하고 참혹했다.




책의 흐름은 옥타비안의 어린 시절엔 다소 느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할 수 있었다. 자기자신을 오직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던 옥타비안이 노예로서의 멍에를 벗고 청년 프린스로 거듭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하다. 어서 빨리 2권이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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