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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리버보이> 이 책의 표지를 평소보다 몇 배나 설레는 마음으로 넘겼다.
1997년 해리포터와 함께 영국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노미데이트 되어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했다...는 홍보문구보다 뒷표지에 실린 ‘<마당을 나온 암탉>과 <연어> 이후로 이렇게 잔잔하고 가슴 먹먹한 소설은 처음이다’는 어느 고교 교사의 추천문구가 다른 어떤 것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제목은 강과 소년이 결합된 ‘리버보이’다. 잔잔한 흐름으로 사색적인 느낌의 강에 호기심과 혈기왕성한 소년이 어떤 모습으로 책 속에 녹아있을지....표지에 보이는 소녀는 어떤 역할을 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넘쳐나는 의문에 비해 이 책의 스토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수영을 좋아하는 15살의 제스와 그 손녀를 무척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이 책의 주인공인데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지면서 제스의 가정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할아버지는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계획, 가족휴가의 결행을 고집한다. ‘리버보이’란 제목을 붙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찾아간 할아버지의 고향...주변에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곳에서 제스는 꿈처럼 신비하고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수영하려고 찾은 강에서 반바지 차림의 소년을 만나는데 몇 번 반복되는 그 소년과의 만남이 왠지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제스 자신과 할아버지, 그 사이에 리버보이...그 소년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리버보이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소년의 이미지에 할아버지의 그림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 89쪽.
그즈음 할아버지는 도저히 그림을 완성할 수 없을만큼 건강이 악화되는데...그때 리버보이는 제스에게 말한다. “지금부터는 네가 할아버지의 손이야..” 제스는 리버보이의 조언에 의해 할아버지 최후의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한 다음 강에서 바다로 향해 헤엄쳐가고 할아버지는 또다시 쓰러지는데....
그녀는 다시 그림으로 눈을 돌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림을 살폈다... 거기에는 얼굴이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불과 얼마 전에 폭포에서 마주쳤던 그 얼굴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나의 ‘리버보이’를. - 206~207쪽.
제스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없는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지만 지금까지보다 한뼘 더 성장한 자신을 느낀다. 강이 흘러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자신에게 놓여진 더 많은 내일을 위해 더 성장하고 리버보이의 흔적을 찾아 더 많이 헤엄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며칠전 큰아이가 내게 호되게 야단맞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 “엄마,아빠는 좋겠다.” “왜?” “착한 할머니가 있어서...” “?????”
첨엔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알 것 같다. 아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자식을 올바르게 길러야한다는 부모의 의무와 욕심이 아이에게 때론 굴레가 된다는 것을. 그에 비해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 사이엔 긴장감이 없다. 무조건적인 애정이 존재할 뿐.
부모인 내가 당장 코앞에 다가온 문제, 매주 치러지는 받아쓰기 시험에 안달할 때 할머니는 오히려 “애 너무 야단치는 거 아니다”며 날 나무라고 “야야, 할미랑 동네 한바퀴 돌까...”하며 바짝 주눅든 아이의 손을 끈다. 이담에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도 그럴까...
부모 자식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가슴 저리고 애끓는 사랑이 아닌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모든 것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사랑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책, <리버보이>. 아이에게 건네기 전에 부모가 먼저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그래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흘러왔던 그 강물은 결국 다시 흘러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법이니까. - 책의 서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