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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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감상은 여고졸업을 기점으로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 우연한 기회로 관심을 갖게 됐다. <피아노의 숲>과 <노다메 칸타빌레>란 만화를 보면서 클래식에 흥미가 생겼다. 만화에서 음악이 소개될 때마다 도대체 어떤 곡이길래 이런 느낌과 표현이 가능한걸까....궁금했다. 영화의 OST 음반처럼 시디를 몇 장 구해서 듣기도 했지만 클래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려면 아직 머나먼 길을 가야할 듯하다.




선명한 붉은 핏방울이 인상적인 <10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음악가들 사이에 떠도는 미신이 있다. 9번 교향곡을 작곡한 작곡가는 머지않아 죽고 만다는 ‘9번 교향곡의 저주’. 실제로 베토벤을 비롯해 슈베르트, 구스타프 말러, 드보르작과 같은 이름난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한 후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니!! 정말로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 존재하는 걸까?




1980년, 두 연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운전대를 잡았던 남자에 비해 옆에 앉았던 여인의 부상은 무척 심각하다. 그 후 이야기는 훌쩍 뛰어넘어 2007년 시점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인 다니엘 파니아구아. 서른다섯살의 그는 카를로스 4세 대학교 음악학과의 역사음악학 교수로 베토벤에 관한 논문집필 중이었다. 어느날 학과장 두란에게서 헤수스 마나뇬의 집에서 열리는 비공식 콘서트에 대신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로널드 토머스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연주한다는 말에 다니엘은 애인과의 약속을 뒤로 하고 헤수스 마나뇬의 저택으로 향한다.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콘서트에서 베토벤의 제 10번 교향곡의 제 1악장이 연주된다. 베토벤 시대에 사용되었던 악기를 그대로 모방하여 제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다니엘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베토벤을 연구하는 전문가인 다니엘조차 어느 부분이 베토벤의 오리지널 작품이고 로널드 토마스가 작곡한 부분인지 도저히 가려낼 수 없을 정도로 음악의 완성도가 뛰어났던 것이다. 잔인함, 질투, 죽음, 파괴, 고립, 비극. 그 음악은 진짜 베토벤의 것이었고 콘서트는 사기극이 아니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로널드가 혹시 베토벤의 진짜 악보를 갖고 있는건 아닐까...다니엘은 연주가 끝난후 대기실로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왠지 불안해보이던 로널드는 전화를 받고 급히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다음날 로널드는 차가운 시체가 변해있었다. 머리가 잘려나간 채 몸통만 발견된다. 며칠후 로널드의 머리도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그의 머리 뒤편은 면도가 되어있는데다 세밀하고 정확하게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오선지의 악보로 된 그 문신을 본 다니엘은 그 멜로디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아낸다. 또 프리메이슨 단원들이 배신자에게 주는 형벌 중 하나가 배신자의 머리를 몸통에서 잘라내는 것인데 비공개 연주회의 장소를 제공한 헤수스 마라뇬이 프리메이슨 단원이라는 것도 밝혀지는데....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소재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팩션 <10번 교향곡>. 짜임새 있는 구성은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에 몰입하여 빠져들게 했다. 사실 처음엔 정말 10번 교향곡이 있나...의아했다. 책 속에 들어있는 작은 시디를 줄곧 들었지만 클래식에 문외한인지라 이 음악이 진짜 베토벤의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한다. 자꾸 들으니 분위기는 왠지 정말 베토벤 음악 같네...하는 정도?? 




책은 저자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고 베토벤 전문가여서 그런지 살인범을 찾아가는 여정 곳곳에 클래식에 대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음악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었다. 또 악보의 계명이 암호처럼 쓰일 수 있다는 대목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고 베토벤의 초상화에 숨겨진 비밀들을 밝혀내는 과정은 <다빈치코드>와 분위기가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모짜르트가 천재라면 베토벤은 영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베토벤의 음악수업은 혹독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베토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 여인과의 사랑 등을 알 수 있었고 하지만 클래식을 좀 더 색다르게 접근할 수 있게 했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다만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왠지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성급하게 마침표를 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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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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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국사는 정말 재미없고 골치 아픈 과목 중 하나였다. 중요한 부분, 시험에 반드시 출제되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죽죽 글을 그어가며 달달달 외워야했으니 좋은 기억이 남았을리 없다. 그러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연히 참가한 박물관 강좌를 통해 국사에 대한 생각은 180도 방향전환을 했다. 내가 한국인인 이상 우리의 역사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 역사는 단순히 지나온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미래로 끝없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틈나는대로 역사관련책을 보면서 그동안 지식에 머물러 있던 역사를 우리 조상의 삶으로 내 안에 녹여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현재와 비교적 가장 가까운 시대인 조선후기 19세기말 무렵의 역사는 이상하게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내가 오히려 교묘히 피해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거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유린되는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눈을 감고서라도 지나고 싶었다. 그 앞을.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순 없었다. 감았던 눈을 이제 뜨자고, 치가 떨리는 분노와 슬픔에 입술을 깨물게 되더라도 이제는 맞서자고 마음먹는다.




<이산 정조대왕> <이도 세종대왕>을 저술한 저자 이상각의 <이경 고종황제>를 손에 들고 가슴이 두근댔다. <이경 고종황제>란 제목보다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란 부제에 관심이 집중됐다.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아들이자 명성황후의 남편으로만 알고 있던 고종. 그 둘 사이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던 유약한 임금으로만 알고 있던 고종에게 혹시나 숨겨진 포커페이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그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됐다.




이 책은 ‘아버지의 시대’ ‘내가 조선의 주인이다’ ‘끓어오르는 땅’ ‘대한제국의 꿈’ ‘대한독립만세’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고종이 어떻게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그 과정과 흥선대원군이 어떤 정책을 펼쳐 나갔는지 철저한 쇄국정책을 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부터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약관에 접어든 고종은 서서히 정치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명성황후는 ‘조선은 전하의 나라이니 국정을 직접 돌보라’며 수시로 친정을 권유한다. 마침내 고종은 명성황후의 조언대로 친정을 시작하고 흥선대원군은 퇴진한다.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서 제왕수업을 받지 않은 고종은 정치의 경험도 없었고 지지기반도 없다보니 자연히 명성황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국민들은 휘둘리고 내정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선을 노리는 외세의 야욕은 점차 거세져가고 있었다. 그후 조선은 동학농민전쟁을 비롯한 청일전쟁, 갑오개혁, 명성황후시해, 을미사변, 을미개혁...등으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됐는데...




텔레비전 사극을 통해 고집 센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명민한 명성황후에 휘둘리는 나약하고 존재감 없었던 임금 고종, 그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와 편견을 깨트리게 될 것이란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책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글쎄올시다...’정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과연 얘기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저자는 서두에 ‘왜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만 추궁하는지, 왜 그의 개혁적인 성과나 반일의지는 외면하고 탐욕하다고만 않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한말 고종의 입장에서 시각에서 판단해보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고종의 어떤 점을 새롭게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물론 조선을 삼킨 일제r가 고종의 업적이나 치세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해방한 후에도 그때의 왜곡이 계속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의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이경 고종황제, 그의 진면목을 우리는 과연 언제쯤 만날 수 있게 될까.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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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유전자
뤽 뷔르긴 지음, 류동수 옮김 / 도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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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주일에 한 두 번 장을 볼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호화로운 메뉴가 아닌 기본적인 밥과 국, 반찬으로 식탁을 차리는데도 버거울 지경이다. IMF 버금가는 불경기인데다 물가가 오른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식재료의 절반 정도를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다. 유정란 계란, 유기농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 유기농 야채와 과일, 우리밀로 만든 과자와 라면...이런 것들로 인한 지출이 상당한 수준이지만 감히 줄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혹시나 아이들이 뒤늦게라도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두려워서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고사리, 뿌리가 DNA 이중 나선모양이다. <태고의 유전자>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농약 없이 풍작을 이루는 기술과 이를 둘러싼 음모’란 부제에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농약 없이 풍작을 이루는 기술. 아니, 그게 정말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1988년 12월, 내가 대학에서 처음 맞은 겨울방학을 만끽하고 있을 즈음, 멀리 지구의 반대쪽 스위스에선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텔레비전의 가족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스위스의 거대 제약업체 치바가이기 그룹의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 두 과학자가 실험을 통해 2억년 전, 공룡들이 지구를 막 정복하기 시작하던 시기의 소금 결정체에서 태고 시대의 곰팡이 유기체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즉석에서 ‘관중’이라고 하는 고사리 홀씨를 전기장 안에서 처리한 결과 지금은 멸종해서 찾아볼 수 없는 골고사리로 자랐다고 말했다.




“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재배나 퇴화를 통해 일부 유전적 특질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기장을 이용하면 그 특질을 되살려내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화과정을 거슬러가는 것입니다.” - 18쪽. 서막 중에서




후손에게서 선조를 재생산할 수 있다. 이른바 ‘역진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과학계의 대사건, 대변혁이었다.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 그들은 전기장 실험기구를 이용해 박테리아나 식용 재배 식물 같은 유기체가 진화 과정에서 더는 사용되지 않아 ‘잠자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실험을 계속 시도했다.




옥수수와 밀을 전기장을 이용해 같은 실험을 거친 결과 이미 멸종한 ‘원옥수수’와 ‘원밀’이 자랐으며 수확량도 놀라울 정도였다. 일반 옥수수가 잎줄기에 1~2개의 옥수수가 달리는데 비해 원옥수수는 대의 위쪽 끝에 여러 개, 최 대 열 두 개의 옥수수 자루가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빛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성장 속도도 빨라서 해충으로 인한 피해도 적기 때문에 제초제도 필요없다는 거였다.




그들은 동물실험도 시도했다. 무지개 송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전기장 처리를 한 송어는 일반 송어에 비해 부화율에서부터 크기나 몸무게, 힘에 있어서 월등했다. 이빨도 두드러지게 날카로웠으며 인간의 접근에 극도로 긴장하는 등 행동에서도 야생형의 면모를 보여줬다.




지금까지의 과학사에 큰 변화를 가져올 만큼 놀랍고 획기적인 실험은 치바가이기 그룹에 의해 갑자기 중단된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살충제와 종자를 생산해서 전 세계에 판매하는 자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 그들의 실험이 완료는 곧 치바 그룹의 수입 감소로 직결된다는 거였다. 여기에 치바 그룹은 한술 더 떠서 두 과학자의 실험의 특허를 획득한 후 서랍 속에 잠재웠다. 모방은 금지다...는 거였다.




그리고 잠자는 유전자를 깨우는 기적 같은 실험을 이뤄냈던 두 과학자는 다른 부서로 이동되거나 회사를 떠나게 된다. 둘은 개인적으로 전기장 실험을 계속하지만 자신들의 뜻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후 에프너와 쉬르히의 실험은 검증과 증명을 거치기도 하고 몇몇 과학자가 시도했음에도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구이도 에프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부전자전이라고 아버지의 호기심과 열정, 사람들과 지식 나누기를 즐기는 성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큰아들 다니엘 에프너와 평화를 사랑하는 섬세한 자유예술가인 둘째 아들 니쿤야 에프너. 두 형제는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아버지가 못다 이룬 뜻을 이어 받았다. 아버지가 꽃 피우지 못한 실험을 계속해서 농약 없이도 풍작을 이루는 식량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제 3세계와 아프리카를 위해 쓸 계획이라고 한다.




204쪽. 저자 뤽 뷔르긴이 쓴 책 <태고의 유전자>는 한 장의 호소문을 덧붙이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것은 곧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미 오래전에 멸종해버린 잠자는 태고의 유전자가 과연 21세기에 깨어날지, 깨어난 후 그 태고의 유전자는 어떤 행보를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에 멀리서나마 힘을 실어보내고 싶어진다.







“우리가 자연의 정신적 능력을 인정한다고 전제한다면, 자연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겠지요. 자연이 지니는 이러한 정신적 능력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통해 입증됩니다. 인간 자신이 진화한 자연의 산물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생체물리학적 연구는 자연이 지닌 바로 이 자유로운 형성 능력과 그 바탕이 되는 자연의 자유의지를 분석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210쪽. 마치는 글 중에서







<태고의 유전자> 역진화를 통해 멸종된 유전자를 깨울 수 있다는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고 더불어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자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나름대로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먼저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 두 과학자의 이름이 몇 번이나 개명절차를 거쳤다. 앞표지 책날개엔 귀도 에프너와 하인츠 히르쉬로 기록되어 있더니 본문에 들어가선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로 적혔지만 어쩐 일인지 구이도 에프너의 이름은 또한번 귀도 에프너가 되버린다. 또 ‘에프너와 하인츠’라는 식의 표현도 눈에 띄였다. 물론 외국인의 이름이라 실수가 생길 수도 있지만 사소한 부분이라 치부할 것이 아니다. 번역 과정에서의 좀 더 세심한 주의가 아쉬웠다.




또 이 책이 유전자에 대한 과학자의 실험과 연구 성과에 대한 것인데도 ‘각주’나 ‘색인’이 없었다. 일례로 33쪽의 제일 아랫줄의 ‘매질’이란 용어는 과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유전자변형식품 GMO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는 요즘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증가하리라 본다. 책을 읽다가 언제라도 궁금한 점을 찾아볼 수 있도록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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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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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고 아담한 책, 은빛으로 반짝이는 표지의 배경과 어둠에 싸인 건물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거기다 <그날 밤의 거짓말>이란 제목은 내게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도대체 언제? 누가? 왜? 어떤 이유로? 거짓말을 한거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제 책장을 열자. 




평소보다 일부러 신경 써서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앞에 두고 툴툴대면서 책은 시작한다. “배 속을 비우면 죽기 힘들다는 건가”...하면서. 만약 이런 일이 평범한 가정집 식탁 앞에서 벌어졌다면 틀림없이 험한 얘기가 오고 갔겠지만 이건 특수한 상황이다.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식욕부진을 호소하는 그들은 다름아닌 사형수들이었다. 시칠리아 왕국의 외딴 섬에 있는 감옥에서 다음날 새벽이면 사형대에 오르게 될 네 명의 죄수들, 남작 인가푸, 병사 아제실라오, 시인 살림베니, 학생 나르시스. 얼핏 보면 직업이나 신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죄목은 바로 국왕 암살 음모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감옥의 첫 동이 틀 무렵 사형 집행이 정해진 그들에게 감옥의 사령관이 협상을 제시한다. 네 명 중 어느 누구라도 익명으로 배후 인물인 ‘불멸의 신’을 밝힌다면 모두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예정대로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거였다. 몇 시간 후면 목숨이 끊어질 줄 알았던 그들에게 하늘에서 뜻하지 않은 동아줄이 내려온 셈이다. 굵고 튼실한 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 모르겠지만...




배신할 것인지 아니면 신념을 지킬 것인지,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고민에 빠진 그들은 마지막 밤을 지낼 위안실에 모인다. 거기엔 이미 치릴로 수도사란 이가 먼저 와있었다.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네 사람. 그들에게 치릴로가 말을 건넨다. 단두대에서 칼날에 목이 베이는 순간, 하고 많은 지난 세월 중 어떤 모습을 떠올릴지 각자 얘기해보자고. 잠깐의 망설임은  치릴로가 끈 촛불로 사라지고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나이가 가장 어린 나르시스가 여인과의 사랑에 대해 얘길 하자 뒤를 이어 인가푸 남작이 자기보다 겨우 30분 늦게 태어난 동생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서 유럽의 수많은 망명자들의 주동자 노릇을 하게 됐는지 풀어놓는다. 아제릴라오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어떻게 해서 병사가 됐는지에 대해 말하고 시인 살림베니는 공작부인과 함께 했던 날들을 회상하듯 털어놓는데....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수상작’ 이 책의 띠지엔 이런 글귀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제수알도 부팔리노가 후보에 오르자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며 수상작 후보에 오른 작가들이 전원 자진 사퇴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책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다. 물론 결말이 초반보다 다소 성급하다는 느낌을 주긴 했다. 하지만 책의 전체를 관망하기보다 네 명의 사형수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펼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누가 배신을 할 것인지, 그들은 목숨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읽어서일까. 수시로 등장하는 인용문에 집중하지 못해서일까. 책에서 말하는 ‘불멸의 신’이 누구인지, 누가 어떤 언급을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이 왜 그날 밤에 거짓말을 했는지 그 속내를 알려면 아무래도 차후에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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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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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다. 화제의 책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국화와 칼>이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국화(평화)와 칼(전쟁)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인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 책을 읽고 싶었지만 매번 기회를 놓쳐서 아직도 읽지 못했다. 작가의 이름은 모른채 그저 <국화와 칼>이란 책만 알고 있다가 최근 <문화의 패턴>이란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두 책의 저자가 같은 인물, 루스 베네딕트였다. 그것도 매력적인 미모의 여자!!




문화인류학의 입문서로 알려진 이 책은 문화가 우리 인간의 삶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형태와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세 원시부족을 선정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의식과 생활 등 특징을 조사한다. 




먼저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부족, 아메리카 중심부에 살아선지 서구 문명에 가장 잘 알려진 원시부족 중 하나인 그들은 개인보다 철저히 단체를 중시한다. 결혼이나 이혼 같은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렸고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환각을 경험하면 그것을 죽음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또 모계사회인데다 부부도 규칙에 따라 살기 때문에 여자가 새 남자를 맞아들이려면 남편의 물건을 문턱 위에 올려놓는데 남편은 그 물건 꾸러미를 들고 어머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도부족. 돌이 많고 험준한 화산섬이라 토지가 별로 없고 어업도 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탓인지 과거엔 식인을 하기도 했다. 부족민의 생명이나 권리를 보호해줄 법은 물론 추장이나 정치조직이 없으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서로 적대적이었다. 친밀함의 상징인 결혼도 서로의 적대감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장모는 사위가 될 남자를 집에 가두기까지 한다. 또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술에 의존한다. 주술의 도움이 없으면 작물은 자라지 않고 성욕도 일어나지 않으며 경제적 거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술의 소유권이란 게 있어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가족 간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밴쿠버 섬의 콰키우틀족. 해안에 거주하는 그들은 물고기나 바다표범, 고래가 풍부해서 원시부족치고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족이다. 개인의 재산을 철저히 따져서 상속이 이뤄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귀족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우월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주인은 손님 앞에서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자랑하면 다음날엔 거꾸로 상대방 손님이 또 더 많은 재산을 탕진하는 식의 경쟁을 일삼는다. 또 결혼을 통해 신분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죽여서 그의 이름을 비롯한 권리를 얻기도 하는...현재의 상식이나 이성으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에는 이 세 원시부족의 특징을 서술하는 중간 중간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를 거론하면서 디오니소스적 문화니 디오니소스형 인간 혹은 아폴로적 관습, 아폴로형 인간이란 말을 한다. 그것은 니체의 존재의 가치에 도달하는 두 가지 아주 상반된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형이 추구하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상태는 환각이나 술 취한 상태인데 그에 비해 아폴로 형의 인간은 그런 도취의 체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중도를 지키며 파괴적인 심리 상태를 멀리한다.




저자가 살펴본 곳 중 아폴로 형에 속하는 부족은 푸에블로 족인데 그 외 대부분의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멕시코의 인디언들은 아주 열정적인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세 부족 모두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 부족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순간순간 당황스러웠다.




<문화의 패턴> 쉽지 않은 책일거라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원시부족 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전통적 관습의 영향 아래 개인의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20세기 초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원시부족의 삶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문화’가 무슨 뜻인지 찾았다.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며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라고 되어 있었다. 순간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문화의 패턴>은 루스 베네딕트의 서거 60주년을 기념해서 출간됐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촌은 갈수록 점차 가까워지고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낯선 나라의 낯선 문화에 대해 무조건 거부하기 이전에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를 두고 다시 한번 꼼꼼히 꼭꼭 씹어가며 읽어보고 싶다.







베네딕트는 세 부족을 독립된 문화의 패턴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도부 족 같은 의심, 콰키우틀 같은 과시, 주니 족 같은 달관이 현대인에게는 셋이면서 하나로 종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가령, 현대인은 어떤 때는 의심에 빠지고, 어떤 때는 과시를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달관의 태도를 보이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이다. 만약 자신이 의심을 많이 하는 현대인이라고 생각된다면, 베네딕트의 가르침대로(그렇게 의심이 많게 된 것은 본인의 성격이라기보다 문화적 조건화에 의한 것이므로)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베네딕트는 주장하고 있다. - 4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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