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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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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날 바라본다. 인형을 들고 있는데 폼이 좀 이상하다. 대부분 인형을 가슴 부위에 들고 안는다. 근데 이 아이는 인형을 자신의 눈높이와 거의 비슷한 곳까지 올렸다. 마치 낯선 이를 경계하는 듯, 그러면서도 주변의 상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눈여겨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소녀 뒤로 커다란 시계가 보이는데 숫자판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의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상징적 의미인 그림 하나만을 강조한 게 아니라 몸의 크기를 다르게 그린 소녀를 비롯해 여러 가지 그림을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어찌보면 산만하고 복잡해 보이는 그림인데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네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안나, 꼬마 트레이시, 마크, 벤. 그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정류소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게임’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가상의 주인공을 만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임.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안나가 말문을 연다. “히틀러의 딸에 대한 이야기야”하고.




히틀러의 딸의 이름은 하이디. 시골의 넓은 집에서 겔베르란 가정교사와 함께 살았다. 히틀러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큰 붉은 점이 있는데다 한쪽 다리가 짧아서 다리를 저는 아이를, 자신의 딸을 비밀에 부쳤다. 아이가 전투를 보지 못하게 막고 다른 사람들과도 떼어놓았다. 가끔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하이디는 ‘더피’라 불렀다. 얼마후 하이디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 집안일 하는 부인을 통해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잡혀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고 하이디는 베를린으로 향한다. 아버지 히틀러가 있는 곳의 방공호로...




사실 책에서 히틀러의 딸, 하이디의 이야기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선 안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며칠에 걸쳐서 이어지는데다가 주인공인 하이디는 아버지인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모른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쉬쉬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나마 지금이 전쟁 중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뿐이다. 히틀러의 딸이란 점만 빼면 하이디는 뚜렷한 개성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야기가 밋밋하게 흐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마크라는 호기심 많은 소년을 히든카드로 등장시킨다. 마크는 안나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주의를 온통 빼앗긴다. 마크의 관심은 학교로 가는 스쿨버스는 물론 학교와 집에서도 오직 안나가 해준 하이디 이야기에 관한 거였다. 히틀러가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 만약 자신의 아빠가 히틀러와 같은 짓을 했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옳은 일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끝없이 의문을 품는다.




책은 등굣길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게임을 통해 과거의 하이드와 현재의 마크의 이야기가 교차하듯 진행되는데 각 챕터의 길이도 짧은데다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빨리 읽혀진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책 읽는 시간의 몇 배가 걸렸다.




중요한 건 히틀러의 딸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냐가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을 빼앗고 존엄성을 잔인하게 짓밟는 전쟁은 왜 일어나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며 옳지 않은 일엔 과연 저항할 수 있는지...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책에선 이런 의문과 궁금증들을 마크가 대신 풀어가곤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은 기분이다. 개운해지지가 않는다. 왜일까.




마크가 상상 속의 엄마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말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에 현실의 엄마는 대답을 회피하고 얼렁뚱땅 넘어가지만 상상 속의 엄마는 달랐다. 당황스런 마음을 접고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면서 마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다면 엄마는 저항했겠어요?...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게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엄마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그들은 히틀러에게 동의하지 않았어. 아니 그가 저지르는 모든 짓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은 눈을 감고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었던 거야.”(132~ 133쪽.)




아이들은 자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진저리가 날만큼 해댄다. 나도 처음엔 아이의 질문에 잘 대응해주지만 어느 정도 계속되면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좀 고만하자!”고 할 때도 있고 “엄마도 잘 몰라.”하며 말을 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무지가 아이에게 탄로날까봐 두려운 거다.




<히틀러의 딸> 이 책은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먼저 부모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내 아이도 틀림없이 마크와 같은 질문을 던질거란 각오를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전쟁에 대해, 이념과 사상, 인간의 존엄성을 두루 꿰뚫는 심도 깊은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참, 이 책은 뒷표지도 필히 꼼꼼하게 들여다봐야한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왜일까? 궁금증은 직접 해소하시길...







사람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자기가 옳은 일을 하는지, 그른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까?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히틀러 사건은 나라 전체가 그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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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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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우리집에 왔다! 그것도 거대한 <앨리스>!! 집에 있는 두 권짜리 앨리스(이상한 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가져와서 비교해봤다. 순간 쿡, 웃음이 나왔다. 두 권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크고 두껍다. 글자크기도 합본으로 된 <앨리스>가 오히려 더 작은데 말이다. 이유가 뭘까. 힌트는 바로 부제에 있었다.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깊이 읽기’. 즉 이 책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마틴 가드너가 꼼꼼하게 주석을 붙여 제작한 책이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릴 적에 읽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국내의 유명출판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완역판으로 출간했을 때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해서 쓰윽 훑어보고 책장에 꽂아뒀다.  자세하진 않지만 내용이 어떠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다지 새로운 건 없을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에 만난 마틴 가드너의 주석판 <앨리스>는 내 기억 속의 앨리스와 뭔가 달랐다.




기본 뼈대는 비슷했다. 언니와 함께 시냇가에 갔던 앨리스가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찬 토끼가 “너무 늦었다”며 급히 사라지는 걸 보고 호기심에 쫓아간다.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가 한없이 깊은 굴속으로 떨어지면서 이상한 나라에서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먹거나 마신 음식에 따라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이상한 동물이 나타나 말을 하는건 물론이거니와 얼굴이 물고기와 개구리처럼 생긴 하인이나 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체셔고양이(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를 만난다. 병사들의 몸이 카드처럼 생긴 곳에서는 여왕과 크로케 시합을 하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상한 일 투성이다. 근데 정말 희한한 건 그 곳 사람들은 오히려 앨리스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거였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거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꾸만 ‘반대’를 외치고 거대한 체스 판 위에서 게임을 했으며 시냇물을 건널 때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저자인 루이스 캐럴이 사랑했던 앨리스란 소녀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 몇 개의 이야기가 보태져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갖가지 모험을 이 이야기를 아이들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연구대상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단순한 판타지 동화 한 편이 뭐 그리 대단할까 여겼다. 저자의 엄청난 상상력이 과연 어디서 비롯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책 속에 수록된 엄청난 분량의 주석, 때론 실제 본문의 내용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을 차지하는 주석을 읽고 나선 생각이 달라졌다. <앨리스>는 단순히 판타지 동화가 아니었다. 특이하다 못해 너무 허무맹랑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모두 저자의 철저한 의도에 의해 씌여졌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영국의 상황이나 풍습, 유행하던 말이나 시를 저자가 동화 속에 상징적으로 묘사해 놓거나 살짝 비틀어서 숨겨뒀는데 그걸 마틴 가드너가 콕콕 짚어가면서  일일이 설명해놓고 있었다. 마치 복잡한 수학 문제로 골머리를 싸맬 때 공부 잘하는 친구가 옆에서 문제 푸는 요령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여긴 이런 뜻이야, 이건 그냥 말장난이야...하면서. 물론 설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화란 아이들을 위해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문학작품이며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이 ‘동화’라는 개념에 너무 얽매였던 것 같다. 한 편의 동화를 읽을 때마다 작품 속에 숨은 교훈이 뭔지 찾아내려고 애썼기 때문에 <앨리스>를 그냥 재미만을 위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앨리스>는 한마디로 놀이다. 앨리스란 어린 소녀가 환상의 세계에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며 한바탕 신나는 놀이를 벌인 것이라고. 마치 아이들이 낮에 놀이터에서 열심히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앨리스 역시 이상한 나라와 거울나라에서 재밌게 놀다가 돌아오는 거라고...지금은 우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어른인 나에게도 좋으니까. 무엇보다 그래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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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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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큰아이의 학부모 모임에 나간다. 작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는 걸 계기로 만나게 됐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엄마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대부분 삼십대 후반에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전업주부이거나 평일 낮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한다. 남편은 평균소득을 웃도는 안정된 직업이라 생활도 여유롭다.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라서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적이다. 어쩌다 뒤늦게 모임에 합류한 난 매번 겉도는 느낌이 든다.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육아단계를 벗어난 그녀들에 비해 난 자유롭지 못하다. 외출할 때마다 기저귀며 갈아입을 옷을 챙겨야하고 모임에 나가서도 아이 뒤꽁무니 쫓아다니기 바쁘다. 그녀들만큼 풍족하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다. 나이에 걸맞는 옷차림에 아이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날씬한 그녀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모델하우스처럼 정갈하고 깔끔한 살림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녀들의 하루는 도대체 어떨지 궁금했다. 나와 같은 24시간을 보내는 게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제목에서부터 마음이 끌렸다. ‘완벽한 하루’. 어떤 하루를 완벽하다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여기 다섯 명의 여자가 있다. 줄리엣,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공부도 잘했던 그녀는 주위의 기대와 달리 평범한 교사가 되었다. 같은 교사지만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에 비해 자신은 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 오직 남편을 위해 희생해야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여긴다. 알링턴파크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사는 어맨다는 하루 종일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한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듯이. 메이지는 혼잡한 런던을 떠나고 싶어 알링턴파크로 이사 왔지만 그 곳에서도 여전히 안정감을 찾지 못한다. 반면에 크리스틴은 주변 지역보다 삶의 질이 높은 알링턴파크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한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여러 사람과의 모임을 주선하는 걸 즐기지만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아이를 임신한 솔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남는 방에 외국인 학생을 들인다. 그녀는 한동안 머물다 가는 몇 명의 외국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영국의 어느 주택가, 알링턴파크.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섯 명의 여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책은 다섯 명의 단 하루 동안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큰 사건이나 사고 없는 하루가 이어지지만 줄리엣을 비롯한 다섯명의 여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않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인해 우울해하고 불만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으며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그녀들의 분노가 언제 어떤 계기로 폭발하는 건 아닌지 책을 읽는 내내 불안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불편했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를 통해 나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를 보는 듯했다. 내 속에 감춰져있는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 분노로 가득찬 마음이 다섯 명의 이름을 빌어 불쑥 불쑥 나타날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줄리엣처럼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어맨다처럼 자신의 삶에 침범하거나 위협하는 이가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은 잔인한 충동을 느낀다. 메이지처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고 솔리와 같은 고민,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우며 크리스틴처럼 나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책 속, 알링턴마을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 속에서도 하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간혹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있다. “어머, 아직도 거실에 결혼사진을 걸어두고 계시네요.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봐요.”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벽에서 떼면 짐이잖아요. 딱히 보관할 곳도 없고...” 사실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니, 거의 대부분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얼굴에 화사한 생기가 감돌고 가슴엔 열정을 갖고 있던 내 젊은 시절의 사진에서 위안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보여주는 전시용인 셈이다.




하지만 난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내가 예전의 모습에서 떠올려야할 것은 젊음이나 날렵한 몸매가 아니라 ‘꿈’이었다. 작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 내 미래를 위한 꿈. 그 꿈을 언제부턴가 잊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한걸음 내 딛으려면 지금의 모습과 삶,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내 존재를 먼저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줄곧 거부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완벽하지 않은 지금을, 오늘이 늘 불만이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 완벽한 하루는 없었다. 줄리엣과 어맨다, 솔리, 크리스틴 그리고 메이지. 그녀들의 결코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봤지만 내일은 어떨까. 언제쯤이면 그녀들은 자신을 찾고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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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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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을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거, 참....(표지가) 그렇네. 여자 표정이나 동작이 도도한 것도 아니고...거만한 것도 아니고...비호감인데...도대체 무슨 책이고?” <스토리텔링의 비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느낌도 남편과 비슷했다. 한껏 부풀린 머리(가발인지, 모자인지 알 수 없지만)에 위로 치켜올라간 검은 안경, 그 속에 시선이 살짝  아래로 바라보는 눈동자(왠지 보바리부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리고 여자의 손! 기다란 담뱃대가 아니라 어울릴 것 같은 손가락에 펜대가 끼어져 있다. “참, 그렇다”는 남편의 표현이 딱이네...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 보고선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하지 못했을텐데 뭔가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노란 띠지에 적힌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이란 문구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란 부제였다. 스토리텔링이 ‘이야기꾼’을 나타내는 건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가 무슨 상관이 있지? 의문이 들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 이 책은 한마디로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침서이자 ‘시학’입문서다. 여기서 한가지, 털어놓을 게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시학’을 모른다. ‘시학’이란 말만 들어봤지 그게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고 기왕이면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의외로 큰 수확을 거둘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어느 유명 감독은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교재로 사용하는 ‘시학’을 가리켜 “42페이지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쓰기에 가장 간결하고 정확한 최고의 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좋은 지침서가 된다는 것이다. 2천년도 더 된 책이 말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책은 모두 33개의 소제목으로 이뤄져 있다. 서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본문에서는 그 인용문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대부분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봤던 영화일 경우에는 수월하게 넘어갔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가 나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에는 <시학>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단어가 몇 가지 나온다. 먼저 ‘비극’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슬픈 드라마’가 아니라 ‘진지한 드라마’란 의미이며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롯(plot)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빈번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액션 아이디어’다. 시나리오의 가장 근본이 되는 ‘액션 아이디어’는 행동을 이야기의 아이디어로 여기는 개념이다. 즉 행동이 사람, 인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사보다 각각의 인물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강조한다. 한마디로 등장인물의 대사 역시 행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실제로 플롯을 구성하는데 어떤 원칙이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불행’이나 ‘공포’가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 등을 <죠스>, <대부>, <죽은 시인의 사회>, <터미네이터>, <록키>, <아메리칸 뷰티> 등과 같은 영화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거리가 있었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글이 ‘책’과 가깝다면 이 책은 영상화된 글, 영화를 위한 글,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대해 풀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 두 가지 글은 서로 다르지만 아주 큰 공통점을 지닌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나왔던 것처럼  역시 ‘플롯’이 가장 중요한 것. 코바늘에 걸린 실을 어떻게 잇고 연결하느냐에 따라 문양이 제각각인 레이스가 나오듯 이야기의 얼개를 어떻게 짜맞춰가느냐에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플롯,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한동안은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더라도 머리 속에선 저자의 말이 맴돌 것 같다. 이 영화의 ‘액션 아이디어’는 뭐지? 저 사람에게 닥친 불행은 어떤 사건으로 연결되는 걸까?...으아, 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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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병풍 그림책)- 이서지 화백 풍속 그림책
이윤진 지음, 이서지 그림 / 한솔수북 / 2008년 9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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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방귀 방귀 나가신다
신순재 지음, 홍기한 그림, 윤소영 감수, 조은화 꾸밈 / 웅진주니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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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도깨비가 으히히히
싱자휘 글, 양완징 그림, 심윤섭 옮김 / 국민서관 / 2008년 6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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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글와글 낱말이 좋아
리처드 스캐리 글.그림,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4월
21,000원 → 18,9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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